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5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58화(658/920)
#658
전시금제인(戰時禁制人)? (6)
‘대부분 성기사는 강렬한 모험심을 타고난다.’
‘그들이 언제나 생명으로 주신을 방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의 아이는 빨리 자란다.’
-자박, 자박, 자박······
“괜찮아, 로스. 이번에는 확실해.”
그 말은 비단 여염집 자식들에게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바로 이곳에, 지난 석 달 동안 쑥쑥 자라난 신국의 2왕녀가 있다.
구불거리는 상아색 머리칼이 듬성듬성한 복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코르넬리서 페네티안은 궁정백의 왕도 저택에서 어느 해보다도 추운 가을과 외로운 겨울을 보냈고, 어느덧 새순이 올라오는 초봄을 앞두고 있었다.
아홉 살 아이는 그사이 종 모양 드레스보다 바지와 가죽 부츠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게 되었다.
지난달에만 젖니가 두 개나 빠졌고, 그때마다 전혀 울지 않았다.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어금니도 하나 있었으나 두려움은 없었다.
키는 거의 자라지 않았지만, 대신 머리가 훌쩍 커졌다.
-저벅
“쉿.”
어느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춘 소녀가, 옆구리에 낀 어항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가까이 전시된 갑옷 뒤로 몸을 숨기자마자 통로 쪽에서 하인 서넛이 튀어나왔다.
커다란 연두색 눈동자가 데굴데굴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주신 강림 대축일 주간이었다.
일손들은 바깥에 음료도 나누어주어야 한다느니, 작년보다 바구니가 부족하다느니 걱정하며 부랴부랴 걸어갔다.
인적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코르넬리서는 살금살금 움직여 작은 쪽문을 열고 야외로 나갔다.
조금 전 하인들이 들어온 문이었다.
-달카당!
언젠가 궁정백에게서 들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왕녀께서는 무탈히 살아남으시는 것만으로 도움이 됩니다.’
‘감히 말씀 올리건대, 이번 전쟁을 살아내시고 귀하신 2왕녀로서 신국과 왕실의 맥을 이어가시는 일이야말로, 전하께 주어진 가장 신성한 의무일 것입니다.’
“······.”
그때는 그 문장이 너무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고, 지금은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코르넬리서의 의지를 뿌리 뽑을 수 없었다.
소녀는 그사이 로세하르더 백작저의 미로 같은 장미원과 복잡한 내부를 달달 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시종과 하인의 얼굴까지 대부분 눈에 익혔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근무하는지, 각각의 성정은 어떤지도 얼추 파악했다.
궁정백이 새벽 두 시에 잠들어 여섯 시에 기상한다는 정보를 얻은 뒤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의 숨겨진 의미도 알게 되었다.
새벽 두 시에 취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하여 세 시까지 일하는 사람이 있고, 여섯 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하여 다섯 시에 깨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왕녀는 돌봄이 느슨해진 곳에서 날이 갈수록 영특해졌다.
오롯이 혼자서.
“너도 데리고 갈 거야. 네 물은 항상 내가 갈아주니까.”
-찰랑, 찰랑······
“나 없으면 안 되잖아. 걱정하지 마, 로스.”
아이가 눈 녹은 정원을 휘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수조 속 도마뱀 ‘로스’는 고운 오렌지빛을 띠고 있었는데, 몇 달 전 위니테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는 희귀종이었다.
사실은 아무도 로스처럼 생긴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코르넬리서는 누구도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음을 확인한 뒤에야 신중하게 발을 놀렸다.
늘 밝고 쨍한 빛깔의 옷감을 찾던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채도가 낮은 옷만 골라 입었다.
이러면 어른들의 시선을 덜 받는다는 사실을 학습한 결과였다.
왕녀는 겹겹이 장미원을 두르고 있는 화단을 지나, 순식간에 정원사들이 자리를 비운 미로 초입까지 들어섰다.
입구 양옆에 놓인 화분은 딱 아이의 키만큼 깡총했다.
사방에 줄기뿐인 장미가 그득그득했지만 이곳 화분만큼은 텅 비어 있었는데, 늦봄은 되어야 꽃모나 묘목을 옮겨심을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왕족의 보물 상자가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달칵
“여기서 기다려.”
조심스레 어항을 내려놓은 아이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꽃삽을 꺼내 화분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정원과 수많은 식솔을 거느린 백작저에서 삽 하나가 없어지는 일은 그날의 사소한 말썽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요즘처럼 모두가 바쁜 시기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윽고 흙투성이 가죽 가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코르넬리서는 그것을 고사리손으로 탁탁 털어냈다. 도마뱀이 물살을 헤치며 다가와 주인을 구경했다.
“어디 보자.”
활짝 열어젖힌 가방에는, 예전과 사뭇 다른 짐이 들어 있었다.
깨끗한 물을 가득 담을 수 있는 수통. 배 아플 때 먹는 약과 상처에 바르는 약.
납작하게 접을 수 있는 여벌 신발. 오래도록 상하지 않을 훈제 육포와 치즈 주머니.
금화가 적절히 섞인 비상금 주머니. 다섯 번이나 접을 수 있는 신국 지도.
오라버니가 선물로 보내준 돼지 조각상. 잔뜩 구겨지고 해진 제국의 전단.
그림을 그릴 붓이며 인형 같은 것은 모두 포기했다.
“······.”
‘부스럭, 부스럭.’ 아이는 전단을 꺼낸 자리에 오늘 가져온 설사약을 넣어놓고, 마지막으로 종잇장을 펼쳐 보았다.
‘백곡왕의 해방자’라는 글씨는 어찌나 많이 더듬었는지 누더기처럼 하얗게 보풀이 일었다.
삽화도 처음 보았을 때보다 빛이 많이 바랬다.
코르넬리서는 모험의 주인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분홍 머리 공녀. 그녀의 뒤편을 장식한 집채만 한 성게와 드높은 파도.
“······크리스텔 랑부예 경. 나도 이런 성기사가 되고 싶어.”
랑부예 경은 전설급 마수가 코앞에 나타나도 겁먹지 않는대.
열아홉 살 때부터 이미 황도에서 가장 용맹한 기사였대.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꼭. 아이가 속으로만 종알거렸다.
종잇장을 쥔 손에 뽀드득 힘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전하.”
“핫!”
왕녀는 범죄 현장에서 발각된 도둑처럼 화들짝하며 뒤를 돌았다.
익숙한 얼굴에 안심하기도 잠시, 보물 상자를 들켰다는 위기감에 아이의 낯이 희게 질렸다.
아아······.
“안녕, 이설.”
“예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
상대는 까만 잿빛 머리를 손가락 한 마디보다 짧게 자르고, 언제나 사제복 차림을 고수하는 검소한 소녀였다.
곰처럼 둥근 어깨는 코르넬리서보다 한 뼘은 더 넓었으며, 가로로 긴 눈은 어두운 자단나무 색이었다.
다만 모난 느낌보다는 전체적으로 둥근 느낌이 강했다.
이설 로세하르더는 엣자르트 로세하르더 궁정백의 장손으로, 최근 몇 달 동안 2왕녀의 말동무 역을 맡은 열한 살의 공녀였다.
왕녀와의 첫 만남에 직접 잡은 도마뱀을 선물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르넬리서는 이설이 자신의 ‘감시 역’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그것은 가방이 아닙니까?”
“이설은 몰라도 돼.”
나름 새침하게 대꾸한 꼬마 성기사가 가방을 둘둘 말아 외투 아래로 숨겼다.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문 채 다시 침실로 향했다.
어린 사제는 바닥에 놓인 어항을 챙겨서 곧장 뒤를 따랐다.
코르넬리서는 진실로 최선을 다했으나, 짧은 다리를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금방 이설에게 따라잡혀 그 아이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이내 왕녀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공녀를 돌아보았다.
일부러 쪽문을 세게 열었지만, 이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자신에게 날아오는 문짝을 한 손으로 밀어냈다. ‘콩!’
“있잖아. 왜 자꾸 따라와?”
“······저는 전하의 말동무입니다.”
“이설은 나랑 하루에 다섯 마디도 안 하는데.”
“어제는······. 일곱 마디 했습니다.”
우뚝! 조금 심통 난 아이가 복도 한복판에 멈춰 섰다.
홱 돌아보았지만 사제는 당혹해할 뿐 물러나진 않았다.
“그럼 오늘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까, 이만 가줘. 부탁해.”
“혹시 달아나시려는 건가요?”
“······.”
깜짝 놀란 코르넬리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큰일 났다. 어떻게 가방만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가방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그 가방, 침실에서 가지고 나가시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방에 두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
공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왕녀는 고민 끝에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나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다는 언니의 가르침을 떠올린 것이다.
“왕성 시종들의 눈을 피해 숨기셨을 테니, 보통 짐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이설은 너무 똑똑해. 그러면 안 돼.”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는 칭찬하셨습니다.”
소녀가 어색한 투로 말했다. 코르넬리서의 젖살이 티 나지 않게 파들거렸다.
“나는······. 말하지 않을 거야. 말할 수 없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
“그러면 이설이 궁정백에게 알릴 테니까.”
“아뇨, 저는······.”
그러자 공녀의 낯이 드물게 빨개졌다가 파래지기를 반복했다.
이설은 원체 무뚝뚝한 아이였고, 코르넬리서가 보기에는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저건 아무래도 깊은 속내를 들킨 사람의 반응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지난번처럼 맹꽁이같이 궁정백에게 잡힐 수는 없었다.
“나는 이만 가볼게. 졸려서 낮잠 잘래.”
“아, 전······!”
이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홀로 남았다. 아니,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잔뜩 꼬인 코르넬리서가 도마뱀 수조를 깜빡하고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어. 할아버지께 알려야 해.”
한참을 고민하던 공녀가, 마침내 도마뱀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꼬마는 이설과 눈을 마주한 채 꼬리로 벽을 톡톡 두드렸다.
*
와, 군영에 사람 진짜 많다―!
“세드리크 태자 전하와 쥘리에트 궁주님 납시오!”
정확히는 온 부대가 죄다 여기 모인 것 같아!
“보여? 궁주님 보여?!”
“아이고, 참! 밀지 말라니까? 어차피 앞에 있는 나도 안 보여!”
“날개는? 궁주님 날개는!”
“접으셨나 봐! 지금은 없어!”
“랑부예 경! 저희 왔습니다! 랑부예 경!”
“물러나시게, 줄 안에서만 보시게! 위험하니 질서를 지키도록!”
“으아악! 천사님이 나를 보셨어! 방금 눈 마주쳤어!”
“눈이 진짜 보라색이셔? 응? 대답해봐!”
오늘은 거의 갈색입니다······.
나는 길가를 메운 인파를 둘러보며 오래 끓인 떡국처럼 졸아붙었다.
“세상에, 정말로 궁주님이야! 그때 우리 치료해 주셨던!”
“전하께서도 아주 건강해 보이시네!”
“리에스테르 해군 만세! 랑부예 경 만세!”
“태자 전하 행차하신다, 길을 비켜라!”
“만세! 만세! 만세!”
“궁주 마마! 여기요! 여기입니다, 궁주 마마!”
“하하하, 안녕하세요······.”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군중 한편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하마터면 기사들의 저지선이 우르르 무너질 뻔했다.
불필요한 행동을 했나 싶어 철렁했는데, 다비드가 괜찮다는 뜻으로 미소를 보내주었다. 물론 호위를 맡은 지브릴 디오프의 생각은 달라 보였다.
가인 씨는 번개 마법사가 뭐라고 핀잔하건 말건 해군 병사들에게 양팔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매력적인 손 키스를 보내기도 했다. 또다시 우레와 같은 환성이 폭발했다.
“와아아아아······!”
“랑부예! 랑부예! 랑부예! 랑부예!”
“랑부예 경! 제 등판에 서명해 주십쇼!”
맙소사, 아이들 두고 나오길 잘했다. 티테나 레아는 울었을 것 같아!
“여러분 오늘 몇 시부터 나와 계셨어요?”
“아아악! 새벽 다섯 시요!”
“아이고, 제대로 못 주무셔서 어떡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전 밤새웠습니다! 오늘 궁주님이 외출하실 수도 있다고 해서 그냥 여기서 노숙했습니다!”
“헉······.”
‘감사합니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토록 긍정적인 관심과 응원을 받는 건 분명 고맙고 기쁜 일이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선명하게 샘솟았다.
다행히 본영의 하늘은 쨍하게 맑았으며, 상상했던 것만큼 춥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두의 열기가 추위의 접근을 꼭꼭 막아버린 것만 같았다.
뺨이 뜨끈뜨끈 녹아서인지 입매도 자꾸만 어설프게 풀어졌다.
“연무장은 이쪽입니다, 전하. 궁주님.”
“황제 폐하와 손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요한 경이 뒤쪽에서 치렁치렁한 겉옷을 잡아주었다.
나는 뉘트 자매가 건네준 셔츠를 입고, 며칠 동안 급하게 제작하였다는 특수 로브까지 걸치고 있었다.
일단 황명이 떨어진 뒤로는 상황이 무진장 긴박하게 돌아갔다.
기실 오두막을 나와서 군영의 가장 너른 길로 진입하기까지의 일은 기억에 제대로 남지도 않았다.
나는 고막이 얼얼해지는 감각에 적응하려 애쓰며, 친구들과 함께 연무장 흙을 밟았다.
이내 널따란 공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어, 이란의 영령님이다!”
아주아주 커다란 우리의 신물 친구와,
“반가운 얼굴들도 있네요.”
“아······.”
낯익은 중년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옆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년 시종도 함께였다.
나를 발견한 아이가 눈부시게 파안하며 두 팔을 휘저었다.
순간 귓속이 멍해졌다. 단전에서부터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뱅자맹! 가나엘―!”
나는 다른 모든 것을 잊고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디오프가 뛰지 말라며 혀를 차는 소리가 귓등으로 멀어졌다.
와락 안긴 품에는 기억 속의 온기가 그대로 있었다.
바보같이 목이 메어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봄이 가까워진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