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6화(66/920)
#066 북부 대공의 영지 (3)
‘북부 대공’에 관한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은 채로 저녁 식사 시간이 됐다.
몰라도 전혀 상관없는 정보였지만 말이다.
이블린에 노을이 내릴 무렵 사냥에서 돌아온 프레데리크 황제는, 근사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은 내가 쏘겠다’고 발표했다.
평소에도 늘 쏘시는 분이 웬 생색인가 싶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와, 진짜 최고의 풀 빌라.”
내가 중얼거렸다.
대공의 광활한 여름별궁 부지에는 다양한 레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무려 캠프파이어와 바비큐를 할 수 있는 널따란 잔디정원도 존재했다.
별궁 시종의 안내를 받아 내려간 그곳에서 우리는 황제가 잡아온 SUV 크기의 엘크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엘크를 닮은 마수라고 했다.
“폐하께서 직접 잡으신 마수 고기를 먹게 되다니······. 자작가 역사에 길이 남을 영광입니다.”
가나엘이 황금빛 눈을 LED 조명처럼 반짝거렸다. 나 역시 신기해서 입을 벌렸다.
별궁의 주방장이 보조를 데리고 한창 해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옆에서 넋을 놓고 구경하는 하인들도 보였다.
“마수를 먹기도 하는구나. 몰랐어.”
“예로부터 무테 백작령을 비롯한 북부는, 겨울이 길어 식량 조달이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하여 평민들이 힘을 모아 마수를 잡아먹기 시작했는데, 그 요리법이 귀족층에도 퍼진 것입니다.”
뱅자맹이 야외 테이블의 의자를 빼주며 설명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고맙습니다. 마수의 독이나 체액 같은 건 어떻게 처리하죠?”
“저기 보시면, 장갑을 끼고 일하고 있지요. 다만 북부의 마수들은 중남부와 달리 독이 강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불에 구우면 전부 날아간다고 합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는 썰을 들으면 이곳이 소설 속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곤 했다.
정원 중앙의 거대한 화톳불이, 오렌지색으로 활활 타오르며 사람들의 얼굴을 아른아른 비추었다.
뱅자맹과 가나엘을 비롯한 황궁 시종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평소엔 내가 요구하지 않으면, 내 방에서 먹는 게 아니면 그럴 일이 많지 않았다.
여름별궁은 확실히 황궁보다 위계가 느슨했는데 그게 전부 황제의 뜻이었다.
‘우승 축하연’에서부터 느끼긴 했지만, 그녀는 무척 소탈한 사람이었다.
“진짜 맛있다. 살살 녹네. 누린내가 하나도 안 나.”
“그쵸, 왕자님. 육즙이 달아요.”
“‘철관사슴’ 고기가 이렇게 고급스러운 맛일 줄은 몰랐습니다.”
주방장이 향신료를 좀 쓰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잡내가 거의 없었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마수의 부드러운 식감을 만끽했다.
다른 테이블의 시종들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마셨다.
테이블 아래에선 레서판다 두 마리가 몸을 말고 취침 중이었고, 데미는 홀로 자두를 쥔 채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몸이 나른해질 만큼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문득, 크리스텔과 세드리크 황자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나야 조연이고, 내가 없어도 ‘퇴계공’ 세계관은 잘 굴러가겠지만 두 사람은 아닐 터였다.
어딘가에서 폭풍 성장 중이거나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문득 이유 모를 기대감이 들었다.
“······.”
묘한 설렘을 내리누르기 위해 사과잼 섞은 탄산수를 들이켜는데, 건너편 테이블의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불티 섞인 체리색 눈동자가 드문드문 주황빛을 띠었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금 세이디와 ‘수상한 편지’가 떠올랐다.
나는 가볍게 묵례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녀석이 그 편지를 황제에게 넘겼을까?
“왕자님, 레물라드에도 곁들여 보세요. 황궁에서 먹던 것보다 매콤한데 마수 고기와 잘 어울립니다.”
“어, 고마워.”
나는 가나엘이 밀어준 소스 보트를 들여다보았다.
아니, 그랬다면 황제가 나를 불러서 어떤 추궁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녀를 잘 알진 못하지만 지금처럼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럼 편지는 아직 세이디 손에 있는 건가? 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황자를 믿어도 되나.
“안녕, 왕자님. 마수는 입에 맞니?”
익숙한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나는 상념에서 퍼뜩 깨어났다.
고개를 돌리니, 접시와 샴페인 잔을 든 부티에 추기경이 테이블 앞에 서서 미소하고 있었다.
시종인 나탈리조차 대동하지 않은 채였다.
뱅자맹과 가나엘이 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야, 괜찮아. 잠깐 동석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그녀가 부드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두 시종이 어정쩡하게 다시 몸을 앉혔다.
나는 웃는 낯으로 선생님을 맞았다.
“맛있습니다. 전하께서도 많이 드셨습니까?”
“응, 프레데리크가 너무 먹여서 배부르네.”
추기경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접시엔 정말로 간단한 후식과 과일뿐이었다.
나는 한 입 크기로 썬 마수 고기를 레물라드에 쿡 찍었다.
“그래서, 이블린 대공이 누구인지는 알아냈니?”
그녀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세이디와 쪽지 때문에 묵직이 가라앉았던 감정이 순식간에 휘발되는 듯했다.
아니, 내가 바보도 아니고.
“확신할 순 없지만 1순위로 짐작하는 분은 있습니다.”
“오.”
베이지색 눈동자가 과장되게 동그래졌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황제가 철없어서 부끄럽다더니, 사냥터에서 그녀에게 물들었는지 나를 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마수 고기를 꼭꼭 씹어 넘긴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음, 알렉상드르 국서 전하이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헉.”
“맙소사.”
“어머, 왕자님.”
가나엘, 뱅자맹, 추기경이 차례대로 숨을 들이켰다.
샴페인 잔을 받치고 지나가던 시종마저 우뚝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다들 눈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이었다. 젠장, 분위기 보니까 아닌 것 같다.
“······틀린 모양이네요.”
“세상에.”
추기경이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렸다.
뱅자맹과 가나엘도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국서 전하께서 생전에 어떤 분이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음.”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질문을 피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과거의 어느 시점을 더듬느라 아렴풋해진 눈빛이었다.
힘들면 대답해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하려는데 추기경이 먼저 문장을 만들어냈다.
“모두에게 온화한 사람이었어.”
“······그렇군요.”
“바르고, 현명하고, 프레데리크가 뭘 해도 웃으며 받아줬지. 아, 내가 말썽피워도 마찬가지였고.”
“전하께서 말썽을 피우셨다고요?”
“프레데리크와 붙어 다녔으니까. 조금만 사고를 쳐도 일이 눈덩이처럼 커졌거든. 알렉상드르는 공자 시절부터 우리 뒤치다꺼리를 했던 것 같아.”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과연, 황제의 남편은 정은서가 열정적으로 설파한 ‘로판 북부 대공’ 개념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무뚝뚝한 얼음 왕자 스타일이 아니라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였던 듯했다.
대공이라면 아무래도 황제의 남편이 유력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쯤 되니 그냥 사촌이나 작은아버지겠지 싶었다.
“대단한 마법사였고.”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내가 주억거렸다.
‘전율의 대마법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국서는 살아생전 제국 최강의 마법사였다고 했다.
‘마수 대토벌’에서 우승한 적도 있었고, 소드마스터인 황제조차 그와 겨뤄 매번 이기진 못했다는 말도 돌았다.
보통의 마법사와 다르게, 알려진 그의 특기는 두 개나 됐다.
“세드리크를 몹시 사랑했지.”
추기경이 노래하듯 말했다. 나는 지난 마수 대토벌에서 폭주했던 황자를 떠올렸다.
부친의 환각을 본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온 산맥을 불살랐다.
모르긴 몰라도 부자지간이 매우 돈독했던 듯싶었다.
잠시간 대화가 끊겼다.
추기경은 동요 같은 선율을 흥얼거리며 샴페인을 마셨고, 뱅자맹, 가나엘과 나는 다시 고기에 집중했다.
괜한 물음을 했나 싶어 그녀의 얼굴을 흘끔 살폈더니, 추기경은 다정히 빙긋하며 ‘수직으로 썰면 육질이 더 부드러울 거란다’하고 조언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대공의 이름을 알 수 있겠구나.”
“그렇게 되나요?”
“신물이 있는 종탑에 가기로 했잖니.”
그야 그랬다.
오늘은 피서 첫날이니 푹 쉬고, 내일 레서판다들과 함께 신물을 보러 가기로 한 참이었다.
북부의 신물인 ‘비렴의 방주’는, 황야에 꽂혀 있던 ‘혜검’이나 사르네즈 영주성에서 보관했던 ‘축복’과 달리 이블린의 종탑에 모셔져 있었다.
위치 선정이 특이했다.
추기경이 말을 이었다.
“그 종탑에, 대공이 잠들어 있거든.”
*
“전하, 내일 아침에는 복귀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기사단장이 보고를 올렸다.
지도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남자, 이블린 공작은 말없이 턱을 한 번 까닥였다.
야영지는 기사단의 주인을 닮아 시종일관 고요하고 진중한 분위기였다.
숲 여기저기에서 자황색 모닥불이 타닥거렸고, 주위에 둘러앉은 기사들은 커피나 코코아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작의 눈이 찬찬히 움직이며 오늘 순찰한 지역을 정리했다.
장갑 낀 손가락이 이블린의 바로 오른쪽, 무테 백작령을 가볍게 짚었다.
카롤린 무테 변경백은 제국에 몇 없는 9급 검사, 즉 소드마스터였다.
한때 프레데리크 황제와 우열을 다투던 경쟁자였으나, 두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무테 백작가는 오래 전부터 황실에 충성하던 가문이었으니 사이가 나빠질 이유도 없기는 했다.
그녀의 영지는 동쪽으로 제국의 국경, 북쪽으로는 해적들이 넘어오는 북해를 접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해적은 변경백의 기사들이 막아냈다.
특히 해적선이 이블린까지 넘어오는 경우는 지난 25년간 겨우 두 번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백작령의 솔숲에 몸을 숨겼다가, 경계를 넘어 이블린으로 넘어오는 잔챙이들은 매년 존재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했다.
이블린은 비밀스러운 영지였으므로, 곳곳에 값나가는 보물이 있을 거란 환상을 품고 숨어드는 것이었다.
해적질을 오래 한 자들은 결코 이블린에 함부로 발을 디디지 않았으나, 어딜 가나 경험과 생각이 짧은 치들은 있었다.
세금도 군역도 없는 이블린에 몰래 움막을 짓고, 약탈한 물건과 함께 눌러앉는 놈도 더러 목격됐다.
젊은 이블린 공작은 영지에 머무르는 날이 짧았지만, 일단 올라오면 곧장 말을 몰고 나가 그러한 잔당을 일거에 쓸어버리곤 했다.
언젠가 이 땅을 평민들에게 개방하는 때가 온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공작은 이블린이 제국의 어느 영지보다도 평화롭기를 원했다.
“이번 소탕은 예년보다 빨리 끝난 듯합니다.”
“변경백의 노고가 컸겠지.”
단장의 말에 공작이 낮게 대답했다.
하루 만에 청소가 끝나는 일은 흔치 않은데, 올해는 유독 해적의 수가 적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곧 여름 시찰을 떠난 엘리자베트 소백작의 활약도 더해질 터였다.
공작은 기품 있는 몸놀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뜨면 종탑으로 길을 잡을까요?”
“폐하와 전하를 먼저 뵐 것이다.”
그가 움직이자, 마수의 털을 덧댄 망토 역시 밤하늘처럼 물결쳤다.
단장은 깍듯하게 몸을 숙였다.
“페네티안 신국의 예서 왕자님께서 내일 종탑에 가신다고 합니다. 하여, 폐하와 추기경 전하께서도 동행하실 것이라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
공작이 아름다운 눈동자를 한 번 감았다 떴다.
그 절벽에는 신전과 종탑, ‘공기’ 속성의 신물, 그리고 아버지의 무덤이 있었다.
그러니 왕자를 혼자 보낼 수는 없을 터였다.
그는 잠깐 무언가를 생각했다가 다시 미성을 흘려냈다.
“그렇다면,”
“해적선! 해적선이다!”
보초를 서던 기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야영지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기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모닥불을 끄고 대열을 정비했다.
공작은 조금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선두로 나섰다.
-스릉!
고고(高古)하고 신비로운 검이, 맑은 울림과 함께 남자의 손에 들렸다.
그는 오직 정면만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숲의 경계가 베일처럼 순식간에 벗겨지고, 이내 어둠을 입은 절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작의 부츠가 소금기 가득한 흙을 밟고 섰다.
-휙, 휙, 휙!
칼 같이 정렬한 기사들의 머리 위로, 바다를 겨눈 수십 개의 창이 날쌔게 떠올랐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현상에 놀라지 않았다.
공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수평선 쪽을 응시했다.
어두컴컴한 해수면 위로, 해적선의 불빛이 일출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거리가 멀었지만 확실했다.
저것은 평범한 상선도, 어느 귀족의 놀잇배도 아니었다.
“폐하께서는 이 일을 아실 필요가 없다.”
공작이 선언했다.
“여기서 끝낼 것이다.”
그의 장갑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부단장이 마석 망원경을 마구 휘둘렀다.
“전하, 하얀 깃발입니다! 놈들이 백기를 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