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7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79화(679/920)
#679
겁쟁이와 카타콤 (2)
그렇게 우리는, 예정에도 없던 포로 하나를 사로잡게 되었다.
이제야 숨 좀 돌리나 했더니!
“······야. 너 성기사인 거 다 티나.”
“······.”
“투구 벗긴다.”
-툭, 철커덩!
가인 씨가 불량한 태도로 갑주 입은 사람을 걷어찼다.
이자벨의 넝쿨에 꽁꽁 묶인 이는 옆으로 우당탕 쓰러지더니, 투구 사이로 옅게 신음했다.
나는 놀라서 짝꿍의 팔꿈치를 답삭 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눈에 불을 켜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놈 좀 보십시오, 궁주님. 이 사치스러운 갑주랑 장신구랑······! 심지어 가죽띠조차 신상인지 아주 뺀질뺀질합니다. 여기 보이시죠? 어쭈. 옆엔 보석까지 박혀 있네? 안장깔개 자수만 보면 무슨 왕족인 줄 알겠죠?”
“네, 네.”
“그런데 죄다 긁힌 상처 하나 없고요? 개전하고 일 년이 다 돼 가는데 이런 부유한 귀족 무구(武具)가 전부 새 거다, 덩치도 산만 한 놈이. 이건 무슨 뜻이다? 본인만 믿고 따르는 병사들이 수백 명씩 죽어 나가든 말든, 지는 안전한 데 숨어서 혼자 목숨 보전하겠다고 천로 구석빼기에 뻔뻔하게 콕 처박혀 계셨다는 소리다. 오케이?”
“세상에······.”
“그러니까 이런 대접 받아도 쌉니다, 이 새끼는. 전우애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고 전혀 모르는 상놈이에요.”
-카앙!
“윽, 으으······.”
가인 씨가 무시무시한 딱밤을 먹이자, 투구 밑에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와 산트는 안절부절못하며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프랑수아를 비롯한 모든 일행이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산트와 나는 전쟁 포로라는 존재 자체가 낯설고 무서워 이렇게 굴지만, 다른 이들은 황족이나 귀족이나 왕으로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저자를 용서할 수 없는 듯했다.
가인 씨는 전쟁 영웅이니 두말할 것도 없고.
“흐으윽······.”
“······.”
절로 마른침이 꿀떡 넘어갔다.
그녀와 이자벨이 끌고 온 기사는, 거느린 병사는 물론이고 변변한 병장기 하나 없는 홑몸이었다.
검대는 있는데 검이 없는 걸로 봐서는 본인이 직접 버렸거나 누군가에게 빼앗긴 듯했다.
그 밖에 갑옷 걸친 군마 한 마리를 데리고 있기는 했으나, 아이가 워낙 겁에 질려 있어서 산트와 내가 따로 돌보게 되었다.
나는 말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쓸어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포로의 머리에서 투구가 벗겨져 나왔다.
-철컹, 찰카당!
“헉······.”
“뭐야?”
“허어엉······. 흐어어엉······.”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그야말로 눈물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
나는 조금도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외관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바싹 깎은 뒤통수와 백금빛 머리칼의 투 블록 커트가 인상적이었다.
거기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푸른 눈화장에, 짙게 그을린 피부. 크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호사스레 쩔렁대는 귀걸이와 여기 와서 처음 보는 눈썹 피어싱까지.
“찌질하게 숨어 있던 놈이 이젠 질질 짜기까지 하네. 야, 너 이름이랑 나이. 집안하고 소속 부대까지 싹 불어.”
“레, 킁. 레오······.”
“또박또박 크게 말해라. 두 번 안 묻는다.”
“레오, 레오폴트 라소······. 라고 하오······. 작, 작위는 공작······. 허엉. 나이는······.”
“잠시만요.”
“라소? 라소요?”
요한 경이 즉시 한 손을 들었고, 산트는 믿을 수 없다는 낯으로 반문했다.
순식간에 심문이 중단되었다.
나는 신국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어째 흘러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왜들 그러십니까?
*
“미친, 진짜 페네티안 왕족요? 저 엿돈이가요!?”
“진정, 진정하세요! 크리스텔!”
“야! 죽어가는 백성들은 모른 척하고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 양심 있냐?!”
나는 벌떡 일어나려는 가인 씨를 허겁지겁 붙들었다.
일행은 샛길 구석의 눈 쌓인 침엽수림에 다시금 몸을 숨긴 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기차 화통을 삶아 드신 모 기사님의 포효로 우리의 소재가 동네방네 소문이 날 성싶었다.
바위에 기댄 세드리크는 깊은 경멸의 눈빛으로 라소를 노리는 중이었다.
포로의 목엔 내가 들고 온 에테르 구속구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하난 폐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몸이 생전에 무슨 업보를 쌓았기에 저런 놈을 또 보느냐’며 한탄하셨고.
“후우······.”
나로서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까무룩 석양이 지는 시각이었다.
먼 곳에서 흐릿한 폭음과 함성이 메아리쳤고, 황태자의 입에선 부연 김이 흘러나왔다.
“······저열한 사회 지도층의 존재는 비일비재하지만, 저자가 추기경이라는 사실은 경이로울 지경이군.”
“동의합니다.”
프랑수아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무려 왕족씩이나 되어서 이곳에 은신하고 있었던 것도 충격적인데, 더 큰 쇼크는 저 ‘레오폴트 라소’라는 사람이 공기 속성의 추기경이라는 데 있었다.
대주교도 아니고 진짜 추기경!
“하······. 기가 막히네. 추기경씩이나 되는 작자가 왜 이런 데서 저러고 있는데? 이거 혹시 거대한 덫의 일부 아냐? 저놈을 미끼로 페네티안이 우릴 치려는 건 아니겠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논리적이겠지만, 조금 전에는 공작의 에테르 흐름이 지나치게 처절했어요.”
디오프가 머리를 헝클이며 불만을 터뜨리자, 요한 경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쪼르르 모여들었다.
“저자가 드러낸 감정적 동요 수준을 고려하면······. 전쟁이 두려워서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진술은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이네요. 실제로 무술을 연마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하긴.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는 흉터는커녕 굳은살 하나 없었다.
그러자 가인 씨가 다시금 화를 냈다.
“아니, 뭔 놈의 추기경이 저렇게 겁이 많대요? 추기경이면 요한 쌤처럼 성흔이 있는 거잖아요. 아까 미남이랑 광인 일대일로 붙는 거 보니까 그 사람들은 그냥 인간 병기던데. 쟤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게, 평기사도 아니고 공작씩이나 되는 놈이 숨어서 울고불고. 차라리 후방으로 빠져서 다른 방법으로 자기 나라를 돕든가.”
“아마, 아마 성흔을 얻기까지 큰 시련이 있었을 텐데요······. 저도 저런 기사님은 처음 뵙는지라 당황스럽습니다. 왕실 방계인 라소 가문의 가주님이 살생을 두려워하는 분이실 줄은······.”
“······.”
산트의 혼란스러운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나는 조용히 땔거리를 긁어모으며 저쪽 전나무 밑동에 묶인 추기경을 곁눈질했다.
일행의 모든 대화는 요한 경 덕분에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으며, 포로는 에테르를 완벽히 구속하여 우리의 소리를 엿들을 수 없게 했다.
거기다 세드리크의 지시로 눈을 가렸고 발목까지 꽁꽁 묶어두었다(디오프 공자가).
마지막으로 하난 폐하의 맹독성 식물이 주변에 촘촘한 덫을 놓았으니, 잠시라도 허튼짓을 하려고 했다가는 큰 변을 당할 터였다.
“쿠울······.”
······허.
“자나 보네.”
지금 잠이 오나. 나는 작게 혼잣말하며 짐을 풀고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골짜기에서 수천 구의 참혹한 시신을 목격했는데, 여기서는 홀로 살아남은 왕족을 만났다.
무슨 사연이 있건 간에 포로를 고운 눈으로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순순히 항복했으니 망정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저 사람도 참 공기 속성다운 듯싶었다.
‘자유로운 영혼’. 딱히 칭찬은 아니다.
*
천로의 밤은 삽시에 시커먼 이불을 끌고 왔다.
-휘이이잇, 휘이잇, 휘이잇······
이따금 빨간 새가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 울었다.
산트는 그것이 홍관조라는 이름을 지닌 수컷이며, 야행성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많은 죽음을 본 탓에 잠들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취침 준비를 했다.
바람을 막아 잠자리를 마련하고, 불침번 순서를 정하고, 동서남북으로 한 번씩 정찰을 다녀오기도 했다.
포로에게는 깨끗한 물과 육포를 먹여 주었다.
그사이 요한 경은 최대한 기척을 죽여 밤하늘을 한 바퀴 돌러 갔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적군의 눈에 띌까 봐 시도할 수 없었던 순찰이었다.
-타닥, 탁, 타다닥······
“프랑수아, 스카프 좀 풀어보십시오.”
“예. 예?”
그리고 성화(聖火)로 피운 모닥불 앞에서, 나는 불쑥 그런 말을 꺼냈다.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생각난 김에 꼭 치유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후작이 매우 당황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맞은편에 앉아 대화 중인 산트와 이자벨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도리아의 갈기를 빗질해 주던 가인 씨는 그런 후작을 알아채고서 눈을 가늘게 떴다.
“화, 황송합니다. 큰 상처가 아니오니 귀하신 분께서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 경이 다치게 한 것 아닙니까?”
“오, 맙소사. 그걸 어떻게······.”
내가 속삭거리자, 후작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입술을 움찔거렸다.
나는 그가 어버버하는 사이 스카프 아래를 슬쩍 들춰보았다.
······세상에. 눈이 잠시 질끈 감겼다.
“멍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습니다. 목 전체에요. 어째서 본영의 치유 신관에게 보이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더니 프랑수아가 허둥지둥 시선을 피했다. 소곤거림은 더욱 작아졌다.
“그야······. 이런 것을 어찌 보이겠습니까. 누가 봐도 상해의 흔적이니 신관들은 범인을 찾고자 했을 겁니다. 자칫하면 군영에 좋지 않은 소문도 났겠지요. 제가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일······.”
“여태 안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요한 경이 아침마다 프랑수아의 막사에 들른 거겠죠.”
“······.”
“저 이런 거 눈치 되게 빠릅니다.”
놀란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던 후작이, 그 말을 듣고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변했다.
그건 무슨 표정입니까?
“궁주님은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분이시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비드를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프랑수아가 아픈 것 같은데, 혹시 요한 헤인스 경이 얽힌 일이라면 숨기지 마시고 알려달라고요. 그랬더니 후작님이 요한 경의 격리 구역 담당자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속닥거리자, 미남이 허탈하게 웃고서 한숨 지었다.
나는 설핏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위한 치유 서클을 열어주었다.
이내 푸른 알갱이들이 남자의 목을 포근하게 감쌌다.
-사아아아······
“추기경이신 데다 폭주 위험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곳에서 폭력적인 성향이 드러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성기사 공부는 꽤 했거든요.”
“······.”
“······그래도 헤릿의 대부는 해주실 거죠?”
“당연한 말씀을. 그 햇살 같은 아이는 장차 뒤엠 가문의 수호천사가 될 겁니다.”
“하하하.”
나는 활짝 웃으며 조심스레 손을 뗐다.
상처 부위에 접촉한 채로 곧장 에테르를 부었더니, 확실히 회복이 빨랐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금세 말끔해진 목을 꾹꾹 눌러보는 후작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별말씀을요.
잠자코 상황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린 가인 씨가 큼큼 헛기침하며 다가왔다.
“궁주님, 후작님.”
“아, 네.”
“랑부예 경.”
“우리 앞으로의 계획 좀 논의해 볼까요?”
그녀는 우리 옆에 털퍼덕 앉더니, 맞은편에 앉은 산트와 이자벨의 주의도 이쪽으로 끌어왔다.
세드리크와 디오프 공자는 마지막 정찰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모닥불에 마른 가지를 몇 개 던져 넣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좋습니다.”
“먼저 포로 놈. 저 무책임한 폴더폰인지 뭔지 하는.”
“레, 레오폴트······.”
“대충 비슷하니까요, 사제님. 어쨌든 쟤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원래 있던 데다 두고 갈까요?”
“으음······.”
그 물음엔 모두가 심각한 낯이 되었다.
일단 스스로의 의지로 항복했으니 죽일 수는 없고, 도덕적으로도 그래선 안 되었다. 신분이 왕족이니만큼 사로잡는 편이 가장 유리하기도 했다.
다만 추기경이라, 강제로 끌고 가기에는 영······. 많은 부분이 걸렸다.
추기경의 신력이 너무 강하니 내 신탁은 통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결국 짐인데.
그렇지 않아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침투 임무에 저자를 동행시키는 건 리스크가 컸다.
하지만 여기 두고 갔다가 혼자 딴마음이라도 먹으면······.
“아까 보니까 요 근처엔 지하수가 솟아나고, 추위를 피할 만한 바위도 있더라고요. 그런 데다 버리고 가면 알아서 집에 가든지 울다가 탈진하든지 하지 않을까요? 갑주랑 식량이랑 말은 우리가 챙기고.”
“······잠깐만요.”
나는 눈을 깜빡이며 퍼뜩 고개를 들었다.
가인 씨는 여전히 또랑또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다닥 폴더폰 공작을 돌아보았다.
······지하수? 그건 지하에 물이 흐르는 공간이 있다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