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8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84화(684/920)
#684
겁쟁이와 카타콤 (7)
나는 프랑수아의 ‘작은 도움’을 받아서, 가인 씨의 뒤를 쫓았다.
아무렴 적국의 지하 통로에서 친구를 혼자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당연히 이자벨이 동행하겠다고 나섰지만, 나는 그녀를 만류해 친구들과 함께 쉴 수 있도록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인 씨는 지금의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 이유 또한 대강은 알 듯했으므로, 당장은 최소한의 인원만 따라가는 게 나았다.
게다가 일행 중에선 내가 제일 멀쩡하기도 하고. 이렇게 성소까지 전개하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대가 다녀오는 편이 낫겠군.’
‘정말요? 설마 가인 씨의 속마음을 들으셨습니까?’
‘입 다물어.’
세드리크가 조용히 나를 지명했으니까. 무진장 불쾌한 표정이긴 했지만.
-찰박, 찰박, 찰박······
“이쪽엔 물이 고여 있네.”
지하 통로는 들어올 때부터 제법 널찍했는데, 깊숙이 들어갈수록 층고와 면적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넓어졌다.
나는 황태자가 쥐여 준 작은 횃불을 들고서 조심조심 발밑을 디뎠다.
타일이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던 바닥은 이제 완벽히 포장된 도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천장은 정교하게 돌을 쌓아 만든 아치 형태였고, 특별히 눈에 띄는 조각이나 글씨 같은 것은 없었다.
문득 통로 입구를 지키고 있던 바위가 떠올랐다.
‘‘당신의 죽음을 훔치기 위하여.’ 직역하자면 그런 의미예요.’
‘죽음을 훔친다고요?’
‘의역하자면······. ‘당신이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정도가 되겠네요.’
요한 경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단정하고 낮았다.
죽음을 면하게 하는 장소라······. 그게 대관절 무슨 뜻일까.
릴리아너 페네티안은 여기서 정확히 무슨 짓을 한 거지?
-찰랑, 찰랑, 찰랑
아차차.
“······넌 계속 우리를 따라올 생각이야?”
-찰랑찰랑!
아까부터 출렁출렁 나를 따라오는 물웅덩이는, 착각인지는 몰라도 지상에서 본 것보다 몸집이 조금 부푼 모양새였다.
나는 난감하게 미소하며 녀석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사실 이런 일을 할 만한 존재를 딱 하나 알고 있기는 한데, 아기는 지금쯤 본영 오두막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을 테니 이곳까지 혼자 오기란 불가능했다.
내내 크리스털 종이 조용했으니 마수는 아니고(마수는 기본적으로 물과 불을 싫어하니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악의가 느껴지지도 않고······.
“왜? 그냥 순수하게 우리를 도와주려고?”
으쓱.
“······너 방금 어깨 으쓱한 거야?”
보고도 믿기 힘든 현상이었지만, 아무튼 그건 진짜로 일어났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본래의 목적조차 잊고 제자리에 섰다.
그러자 옹당이도 느릿느릿 걸음(?)을 멈추었다.
“어쨌든 우리한테 해를 끼치려는 건 아니지? 네가 그럴 존재 같지는 않아서······. 듣고 있니?”
-꼴랑, 꼴랑꼴랑······
“너 혹시 지금 밥 먹어?”
아니, 그걸 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잠깐 충격에 빠진 상태로, 물웅덩이가 주변의 물을 꿀렁꿀렁 흡수하여 덩치를 키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썩 즐거운 식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뭐라고 말릴 수도 없었다.
여기 와서 신기한 광경을 참 많이 봤지만 이런 종류의 명장면은 또 처음이었다.
그렇게 몇 초를 기다리고 있으니······.
-찰랑, 찰랑찰랑!
“앗, 차가워!”
녀석은 물줄기 하나를 길게 뽑아내어 나의 종아리를 답삭 잡고는, 별안간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갈림길로 접어든 몸뚱이가 크게 한 번 휘청했다.
꼬마야, 천천히 가자! 간절한 외침이 복도를 울렸다.
나는 허리띠를 생명줄처럼 붙들고서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얘는 갑자기 또 왜 이러는······!
“훌쩍.”
······아.
“······.”
“······.”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금세 무릎 사이로 숨어버렸다.
그건 코끝이 빨개진 가인 씨였다. 나는 횃불을 든 채로 우두커니 섰다.
일행이 쉬는 자리에서 겨우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홀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다리를 놓아주는 옹당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 아이가 내 친구를 찾아준 것 같았다.
조그맣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서,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가인 씨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고집스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숱이 많아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만이 구불구불 등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작은 덩치를 보고 있자니 절로 쓴웃음이 났다.
“옆에 앉아도 괜찮을까요?”
······꼭 은서 같았다. 아주 속상한 날의 정은서.
“······네.”
코맹맹이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가까운 벽에 달린 녹슨 횃불 걸이에 횃불을 꽂고, 얌전히 그녀 옆에 몸을 붙이고 앉았다.
바닥이 좀 축축하기는 했지만 괜찮았다.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
“······.”
-찰랑······
그리고 한동안,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이야기도 흐르지 않았다.
지하는 아주 고요했다. 이따금 어딘가에서 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는 했다.
그러면 물웅덩이는 우리의 눈치를 살피듯이 살금살금 움직이더니, 방울을 꼴깍 삼키고는 조금 더 커져서 돌아왔다.
나는 녀석의 재롱 아닌 재롱을 구경하고, 가인 씨의 손등이나 발끝을 물끄러미 보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똑, 똑, 똑······
누군가는 우리를 보며 ‘지금이 그럴 때냐’고 답답해할지 모르겠다.
전쟁 중에 그런 감상에 빠질 시간이 있느냐고, 어서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야단을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감히 우리가 이래야만 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영혼의 상처도 상처고, 잊히지 않는 기억 때문에 아픈 것 또한 선명한 고통이니까.
낫지 않는 부상에 시달리는 기사에게, 짧은 휴식 시간 정도는 줄 수 있는 거니까.
“······궁주님.”
마침내 그녀가 나를 불렀다. 아직 머리를 숙인 채로.
“네.”
“예서 씨.”
“네.”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다녀본 적 있어요?”
그러고는 코 막힌 목소리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열심히 답을 내놓았다.
“······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 때까지 다녔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그럼 그거 칠 줄 아세요? 체르니?”
“음······. 체르니 30까지 쳤던 것 같네요.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좋겠다.”
“······.”
불쑥, 부러움의 감정이 날아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고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사는 과거의 호수에 잠겨 있어 귀 끝만이 간신히 보였다.
“······나도 피아노 학원 다니고 싶었어요. 태권도 학원이랑.”
······.
“나중에 물어보니까, 언니도 피아노 학원 다니고 싶었대요. 근데 언니는 티를 안 냈고 나는 툭하면 엄마한테 졸랐어요. 그래서 혼자 혼나고.”
“······.”
“아빠는 내가 철없다고 소리를 질렀어요. 접시를 막 집어 던지면서. 집에 돈이 어딨어서 그런 델 보내주냐고. 효도하란 얘기는 안 할 테니까 나잇값 좀 하라고.”
“······.”
“나 그때 열 살이었는데.”
나는 숨을 멈추며 눈을 감았다. 가인 씨의 목소리는 쉬지 않고 띄엄띄엄 이어졌다.
“······한 스무 살 때는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어른들 정신 승리인 줄 알았어요. 저 사람은 자기 늙은 게 싫어서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속으로 그랬거든요.”
“······.”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마침내 그녀가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얽혔다. 눈시울이 조금 붉었다.
“내가 내 나이를 못 따라가요.”
목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나의 목구멍도 콱 조여들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정신이 그 숫자를 못 따라가. 그 시절에 자꾸 붙잡혀서.”
“······.”
“그러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예요. 적어도 나한테는······. 그게 맞아요.”
“······.”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 위안이 될 문장을 찾으려고 한참이나 입술만 움찔거렸다.
하지만 한심하게도 무엇 하나 똑바로 머릿속에 맺히는 것이 없었다.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싶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어 주고 싶은데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정말로 ‘동생’이 된 기분이었다.
바보같이.
“······.”
고민 끝에 내가 해낸 일이라고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서 그녀의 손을 맞잡은 것뿐이었다.
그러자 가인 씨는 나를 빤히 보더니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깨에 서늘한 무게감이 툭 내려앉았다.
분홍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시야로 들어왔다.
“······.”
“······.”
그 상태에서 조금 더 고심하다가, 나는 느릿느릿 그녀 쪽으로 목을 기울였다.
이내 머리와 머리가 맞닿고, 잠시간 두 사람분의 숨소리만이 가만가만 흘러갔다.
더는 눈길을 마주할 수 없는 자세였지만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 손깍지를 끼고 서로 기대고 있으면, 내가 항상 곁에 있겠다는 마음이 전해질 것만 같았다.
살며시 눈을 감고······.
“와, 씨. 저게 뭐야.”
움찔!
“네?”
“궁주님, 킁. 저거 개미 아닙니까? 개미 떼가 줄지어 가는데요. 그것도 너무 많이.”
“어어······.”
나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쭉 뺐다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벽에 걸린 횃불을 빼내는 사이 가인 씨는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내 쥐었다.
서둘러 불빛으로 바닥을 비추어 보니······.
-쏴르르, 쏴르르, 쏴르르르······
“어헉!”
-찰랑!
수십만, 수백만······. 아니, 최소한 수억 마리는 될 법한 개미들이 허겁지겁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숫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지라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물웅덩이도 깜짝 놀랐는지 우리 뒤편으로 쪼르르 달려와 숨었다.
그야말로 복도의 절반이 개미로 시커멓게 물든 수준이었고, 이탈하는 녀석 하나 없이 질주하는 모습엔 오스스 소름이 끼쳤다.
무리는 일제히 우리가 왔던 길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쟤들 혹시 지상으로 나가려는 거 아닐까요? 딱 봐도 달아나는 것 같은데.”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벌써 부패한 마나의 심장부까지 접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요. 어두워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라도.”
프랑수아에게 마석 회중시계가 있기는 하지만, 부패한 힘이 가득한 지하로 들어온 뒤부터는 귀신같이 고장이 난 참이었다.
나는 가인 씨의 말에 끄덕끄덕하며 횃불로 복도 저편을 밝혀 보았다.
개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방향이었다.
긴장으로 꿀떡하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싸라라라, 싸라라라······
“가인 씨.”
“한번 가보자고요?”
“······역시 누나는 척하면 착이네요.”
조금 자신 없이 말했는데, 가인 씨는 그걸 또 어떻게 듣고 기분 좋게 웃었다.
창피함에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다시금 손을 잡고서 갈림길의 깊숙한 어둠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라도 단서를 건져서 돌아가면 친구들이 좋아하겠지.
너무 위험할 것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후딱 뛰어오자.
······참. 이자벨이랑 꼭 이야기해보라는 말을 못 했는데.
*
그 시각. 제33기병대는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째서 완벽한 휴식이 아닌고 하니, 첫째로 그들에게는 사로잡은 포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지체 높은 왕족 성기사가.
“그렇다면 공작님께서는, 실제로는 책임지고 있는 군사가 전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이자벨이 부드럽게 물었다.
레오폴트 라소는 다른 남성들의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상대로 지브릴 디오프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비웃었다.
“하. 공작씩이나 돼선 사병 하나도 없다고? 당신 아직 우리가 누군지 몰라? 속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저, 정말이오! 나는 혼자, 혼자 몸으로 이곳까지······. 궁정백도, 스네이더르 공작도 그거면 된다고 했소. 내가 참, 참전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산트는 벌써 공작이 안쓰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한이 사제를 보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전장으로 나오면······. 코뿔소들을 직접 보살필 수 있지 않겠느냐고······. ”
그때였다.
-우두두두······
“으아아악!”
“와아아악! 전하! 태자 전하아아악······!”
복도 저편에서, 코뿔소 떼가 달려오는 듯한 진동과 함께 엄청난 고함이 쏟아졌다.
세드리크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혜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천하의 그로서도 극복할 수 없는 당혹이라는 게 존재했다.
-두두두두두두······!
“튀어! 빨리 튀어요! 아아악, 미치이이인!”
“요한 겨어어어엉!”
언뜻 보이는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해골 무리였다.
그들이 휴식을 취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