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68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687화(687/920)
#687
겁쟁이와 카타콤 (10)
그로부터 상황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갔다.
-화르르르······!
홀은 지상처럼 밝아져 컴컴한 구석 하나 없었고, 우리는 어쩌면 최초의 ‘유의미한’ 단서를 앞두고 있었다.
모두가 부산한 긴장 속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 삼 분의 일을 맡지.”
“그렇다면 저는 좌측 삼 분의 일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의문 나는 점은 모두 정리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의견을 나누도록 하지요. 남은 마나흔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좋아. 정해졌네.”
“우리 중 흑마법 범죄 연구를 전공한 이가 없어 아쉽게 되었군요.”
“그런 연구직은 보통 방셀 궁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대학교수니까. 여기까지 온 당신이 희한한 거라고, 후작님.”
세드리크, 프랑수아, 지브릴 디오프. 세 명의 마법사가 바닥의 마법식을 분석하기로 하고 각자 구역을 나누었다.
나는 세 사람에게 나의 수첩을 한 장씩 찢어주고 깃펜과 볼펜도 한 자루씩 쥐여 주었다(“이게 뭔데?” “볼펜이라고 하는 겁니다. 꽁무니를 누르면 잉크 묻은 쇠 구슬이 나오는,” “촉이 기름으로 번들거리잖아. 왜 마도구 놔두고 이런 조잡한 걸 들고 다녀?” “······내놔.”).
그러고는 널따란 홀의 한가운데를 돌아보며 부르르 몸을 한 번 떨었다.
비전투 인력들은 아직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지만―요한 경이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추측건대 마법식 중심에 커다란 마석이 박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위로 튀어나와 있는 형태는 아니고 땅속으로 단단히 꽂아 넣은 모양새라, 그 용도와 ‘활성화’ 여부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른단다.
······땅속 은밀한 곳에 숨은 초거대 마법식이라니. 벌써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푸르릉
“괜찮아, 아름아. 지금은 식이 작동 중인 게 아니래. 많이 놀랐지?”
나는 아름하르트와 다른 말들을 부지런히 달랜 뒤, 마법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이들과 함께 외곽으로 물러났다.
이제 우리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예컨대······.
“궁주님, 이것을 좀 보시겠어요? 벽에 글씨가 쓰여 있는 듯합니다.”
“네, 이자벨.”
가장 먼저 나를 부른 마담 랑부예처럼 말이다.
나는 겁 많고 순한 알리손에게 마지막 당근을 먹여 주고(슬슬 식량이 떨어져 가서 걱정이었다) 서둘러 발을 놀렸다.
이자벨은 홀의 돌벽 한 군데를 짚고 있었는데, 거기엔 누가 봐도 못이나 뾰족한 돌로 긁어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느새 기척 없이 다가온 요한 경이 나와 함께 그것을 읽었다.
“‘살아도’······.”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
“······.”
강렬한 문장에 심장이 철렁했다.
산트가 축축해진 손바닥을 자신의 갑옷에 문질렀다.
나는 저쪽에서 마법식을 살피고 있는 마법사들을 일별했다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이 글귀를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당시 이곳엔 연필이나 붓 같은 것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근처의 다른 흔적들도 전부 비뚤배뚤 돌벽을 긁고 집요하게 파낸 모양새였다.
가인 씨는 바로 옆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찾아냈다.
“‘여기서’······.”
아니. 그것은 구절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햇볕을 달라’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삐죽빼죽하게 벽을 갉은 자국은 몹시 처절해 보였다.
꼭 손톱으로 깊이 할퀸 흔적처럼 말이다.
나는 날갯죽지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몇 번이고 쥐었다 폈다.
‘잠겼다’
‘갇혔다’
절망이 묻어나는 말들이었다.
‘주신은 땅속을 살피지 않고’
‘우리는 왕의 저주를 받았다’
“왕의 저주라면······.”
“아마도 릴리아너 페네티안 선왕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속삭임에 가인 씨가 인상을 찡그렸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자벨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조금 전에 통로를 달려 나간 유해들이 생전에 남긴 글일까요?”
“히익.”
산트가 기어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즈음 물웅덩이가 저쪽에서 찰랑찰랑하며 일행을 불렀다.
우리는 말들을 한데 쉬게 두고서 빠르게 움직였다.
꼬마가 발견한 곳에는 제법 긴 문장들이 아무렇게나 새겨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라소 공작도 유심히 벽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옹당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급히 내용을 확인했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아 깊숙이 숨었다’
‘그러나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삶이다’
“‘후대인들에게 전한다’······.”
글자는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마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처럼.
요한 경이 낮은 음성으로 이어지는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국왕의 꼭두각시가 되고 싶지 않았다’.”
꼭두각시.
그 단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 유명한 릴리아너 선왕의 칭호였다.
‘철혈의 인형술사’.
‘그래서 달아났다’
‘왕은 미쳤고 우리는’
······뒤엣 문장은 차마 완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로 가까이에 다른 사람의 기록이 있었다.
글씨는 매우 화가 난 이들이 각기 다른 시점에 새긴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서로 겹치고, 균형이 무너지고, 일부는 피가 튄 것처럼 울긋불긋하여 건드리기조차 겁이 났다.
그들을 이제 목청을 높여 고함치고 있었다.
‘신국의 군주에게는 신앙이 없다!’
‘그자는 주신을 배신했다!’
쉬이이익! 망자들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고막을 긁는 듯해 어깨가 떨렸다.
순간 환청인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다른 친구들 또한 미간을 좁힌 채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만 느낀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감상을 나눌 여유는 없었다.
옆으로, 또 옆으로 다급히 걸음을 디딜 때마다······.
‘로메로 리에스테르의 침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장면들.
‘왕이 우리를 지하로 인도했다’
그 누구도 들춘 적 없는 책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군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독을 삼켜도 썩지 않으며, 폭풍이 불어도 찢기지 않으며, 불이 붙어도 재로 화하지 않으며, 물에 빠져도 심장이 가라앉지 않으리라 약속했다’
‘신국의 어느 성기사도 너희를 꺾지 못하리라’
‘그리하여 우매한 백성이 모두 그녀를 믿었다’
‘신국에 영광을! 성전의 승리를!’
갈수록 구체적인 기록이 우리 눈앞에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아아아아······!’ 반대편 돌문 밖에서 함성을 닮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일행은 한동안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그 흐름에 압도되었다.
라소 공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읊었다.
“‘붉은 로브를 걸친 자들이’······.”
‘우리와 함께 땅 밑으로 내려왔다’
‘왕은 그들을 두고 훌륭한 마법사라 칭송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신국은 마법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가족을, 친구를, 딸과 아들을 거대한 홀로 밀어 넣었다’
.
.
.
‘너희가 서 있는 이곳’
“흡.”
산트가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틀어막았다.
요한 경이 흔들리는 그의 등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그 자리에서 왕이 가로되 너희는 나의 자비로 영생할 것이며 신국을 광영되게 할 것이니’
‘짐이 그 목숨을 면류관처럼 귀히 쓰리라’
······뭐? 나는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왕의 손끝에서 진한 녹색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숨통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우리에게 이러한 비극이 벌어지는가?’
‘어린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며 제 어미를, 아비를 찾았다’
“헉······.”
아니, 어쩌면 숨이 너무 가쁜 것 같기도 했다.
‘내 딸! 내 아들! 우리는 목이 터져라 울며 애원했다’
‘저를 죽이고 제 자식을 돌려주십시오!’
‘제 가족을 살려주십시오!’
‘폐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몰라도 진정 잘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악마에게는 인간의 간청이 닿지 않았다’
“아······.”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붙들고 의지했다. 그건 가인 씨의 팔이었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핏빛 로브의 짐승들이 지팡이를 꺼내어 휘둘렀다’
‘마법식!’
‘저주가 시작되었다!’
그 문장은 몹시 괴기스럽게 조각되어, 우리는 한동안 더 나아가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흉물처럼 새빨간 글자는 꼭 피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맙소사······. 이 말은 설마······.”
“······릴리아너 페네티안이 흑마법사였다는 겁니다.”
내가 형편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레오폴트 라소는 벌벌 떨리는 양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짓눌렀다.
신국 출신인 요한 경과 산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감히 말을 얹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마법식을 살피던 세드리크가 즉시 눈길을 맞추어 왔다.
그 또한 바닥에서 심상치 않은 단서를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고, 프랑수아는 한 손을 허리에 얹은 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시선으로 다시금 벽을 확인했다.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으며······’
‘이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곳에 새긴다’
‘릴리아너 페네티안은 수천의 죄 없는 백성을 살해했다’
‘그들의 생명을 빼앗아 강력한 마력을 얻었고, 그로써 죽은 몸을 불멸(不滅)로 만들었다’
‘우리의 가족은 텅 빈 인형이 되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이자벨이 목멘 소리로 속삭였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행복’
‘굶주림과 목마름’
‘기억과 추억’
‘그중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솜 대신 살이 붙은 인형’
끔찍했다. 너무 끔찍해서 위장이 뒤집히는 듯한 감각이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지하 깊은 곳으로 달아났다’
‘왕에게 맞서지 못한 것은, 그랬다가는 우리마저 인형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족을 따라 죽고 싶어도 우리는 살아야 했다’
‘그리하여 후대에 알려야 했다’
‘신국의 왕은 학살자다! 절대로 믿지 마라!’
‘그자는 산 자를 잡아먹고 죽은 자를 토해낸다!’
.
.
.
‘왕이 주신의 배를 갈라 그분의 힘을 빼앗고자 한다!’
“제길, 이거 당장 깨부숴야겠어!”
“허억!”
디오프의 날카로운 외침에, 일행은 숨을 들이켜며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급하게 뒤를 돌다가 하마터면 날개로 친구들을 모조리 때릴 뻔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사과하고서 허겁지겁 다리를 놀렸다.
세 명의 마법사 역시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낯빛도 우리와 별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몇 킬로를 쉬지 않고 달린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세레니테.”
“이 마법식, 이 마법식으로 릴리아너 선왕이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죽지 않는 시체로 만들어 전장에 투입했어요. 세상에, 아까 그 해골들······. 가족을 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여기서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로 왕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내 자유를 갈망하다가 스스로를 지하 묘지에 안치한 사람들이에요.”
“한마디로 왕이 전쟁에서 이겨보겠다고 좀비 군단을 만든 거죠. 그것도 멀쩡한 사람들 끌고 와 죽여서. 진짜 제정신이 아니에요. 그냥 다 미쳤어, 여기는.”
“이쪽도 제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야, 분홍 공주. 좀비가 뭔지는 몰라도.”
디오프 공자가 지팡이를 빼 들며 날카롭게 말했다.
나는 즉시 프랑수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종잇장은 진작 걸레짝처럼 구겨져 있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궁주님. 이 마법식은 아주 최근에, 정확히는 바로 며칠 전에 작동된 바 있습니다. 마나흔은 정밀하게 분석할 것도 없이 명백한 흑마법사의 힘입니다. 말씀대로 수천 명을 살해하여 그 생명력을 ‘결집’ 또는 ‘축적’하는 데 특화한 마법식으로 추정되며······.”
“맙소사, 말도 안 돼요.”
그것이 사실임을 이미 알면서도, 나는 한 손에 눈두덩을 묻었다.
황태자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정중앙에 박힌 마석이, 일종의 송신기 역할을 하는 것 같더군.”
“송신기요?”
가인 씨가 되물었다. 프랑수아는 폭포처럼 신속하게 덧붙였다.
“저것 또한 최근에 추가된 부품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히는 ‘다중 송수신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이 지독한 마법식은 본래 식 ‘내부’에 자리한 생명을 빼앗아 모으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그러한 방식은 사실 모든 마법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한데 저곳에 심긴 마석이 마법식의 영향 범위를 크게 넓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영향 범위를 넓혔다면······.”
산트가 말끝을 흐렸다. 말을 받은 것은 요한 경이었다.
“천로에서 떼죽음을 당한 병사들이, 이 마법식에 당했다는 뜻이군요. 아마 이곳과 그곳은 수직으로 닿아 있겠죠.”
“아아······.”
털썩. 사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았다.
이자벨과 다른 친구들도 망연한 표정이 되었다.
어쩌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나 싶어서 한참이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십 초가 흐른 뒤에야, 가인 씨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럼 그 생때같은 목숨들로 얻은 생명력을 여기서······.”
“비행선으로 보낸 겁니다. 빌헬미나 스네이더르가요.”
내가 잇새로 문장을 짓씹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나를 퍼뜩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 모두와 눈을 마주했다.
“이번에는 미리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동의를 구할게요.”
“······.”
“저 마석, 무슨 개같은 흑마법이 걸려 있든 제가 만져서 무력화하겠습니다. 아니면 혜검 칼자루를 빌려 깨부수든지.”
“······.”
“여러분께는 너무 위험하니 제가 혼자 하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스스로의 화를 버티고, 충동을 인내해서 쥐어 짜낸 질문이었다.
짝꿍과 스승과 시선을 교환한 세드리크 리에스테르가 나를 묵묵히 돌아보았다.
주홍빛 눈동자에는 이미 사나운 풍파(風波)가 일고 있었다.
“······쥘리에트의 고견에 따르지.”
-쌔애애액!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여섯 날개를 모두 펼치고 쏘아져 나갔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중앙에 박힌 마석을 양손으로 짓눌렀다.
-쩌저저적······!
-콰아아아아!
“큿!”
동시에 어마어마한 녹빛 마나가 눈앞으로 터져 나왔다.
홀 전체를 뒤덮을 만큼, 강력하고 진득한 지옥의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