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70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704화(704/920)
#704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6)
“왜, 맞는 말 아닌가? 저 꼬맹이가 진짜 2왕녀라면 당장 뒤엠 후작을 동원해서 본영으로 보내는 게 나아. 왕실 방계인 레오폴트 라소와는 급이 다른 몸이시니까.”
“참······. 그림 같은 가족이다. 그름 그튼 그즈그으.”
제국의 작은 태양이신 세드리크 리에스테르 황태자 전하와 황위 계승 서열 3순위에 빛나는 지브릴 디오프 공자께서 나란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소신은 장차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여도 심중에 근심 걱정 한 톨이 없사옵니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대화는 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아이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어린애가 많이 놀라기도 했고요.”
누가 지금 전황 모른대? 내가 목소리를 죽여가며 쏘곤거렸다.
린은 그런 나를 보더니 눈을 접어가며 빵싯빵싯 웃었다.
너라도 재미있어서 다행이다.
“예리한 지적이지만, 당신의 전적을 고려했을 때 저 꼬마에 대한 사감이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게다가 저쪽은 로세하르더 궁정백의 장손으로, 장래에 백작가의 가주가 될 아이입니다. 산트의 큰조카이기도 하죠. 우리의 라소 영주성 작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아이들이 먼저 협력을 원한다고 했으니 얘길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자, 세드리크와 디오프가 서로를 돌아보고는 동시에 한쪽 눈썹을 까닥였다.
난 너희가 이런 식으로 한 핏줄이라는 걸 티 내지 않았으면 한다.
“왕녀 전하를 전쟁 포로로 삼을 생각입니까, 막내 숙부님?”
바로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설 로세하르더 공녀가 불쑥 물었다.
우리끼리 속닥거린 이야기라 못 들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세드리크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서 굉장히 어른스럽고 차분했지만, 이런 화제에는 장사가 없었으므로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어엉? 엉? 어어······.”
놀란 산트가 티테처럼 울었다. 티테는 그의 품에서 지느러미발을 팔랑거렸다.
이설이 미간을 찌푸렸고, 나는 황급히 주제를 바꾸었다.
“우리는 너희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가 다치는 일은 없게 할게. 쥘리에트 궁주의 이름으로 약속해.”
“그런 건 안 중요해. 오라버니는 어디 있어?”
“어?”
“오라버니가······. 사람들이 오라버니가 부활했다고 그랬어. 전단에서 읽었어. 이거 봐.”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코르넬리서는 분주히 자신의 짐을 뒤져 낡은 책자를 꺼냈다.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종잇장이 보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클레르 & 아드리앵 인쇄소’의 전단이었다.
신궁에 매달려 저것을 쏘아 보내던 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새 우리는 신국의 왕도 턱밑까지 와 있었다.
왕녀는 코 막힌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손이 벌벌거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예서 페네티안 왕자님이 부활하셨다!’ 여기 이렇게 쓰여 있잖아.”
“······미안, 코르넬리서. 그건 반만 사실이야.”
“뭐?”
“우리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후작님. ‘반만 사실’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뜻이라고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신국을 공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이설은 엄청나게 똑똑하구나. 나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이 산트를 돌아보자, 그는 냉큼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티테를 디오프에게 맡기고서―“이봐, 왜 나야?”―환아들을 데리고 천막을 나섰다.
아이들에게 에테르를 부어주며 산책도 하고, 서클로 안정을 도울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는 말과 함께.
꼬마들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으나 금세 사과 한 알씩을 쥐고 뒤따랐다.
이윽고 천막이 적막에 잠겼다. 나는 친구들을 일별한 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접때 사막에서 아저씨 만난 날, 기억하지?”
“절대로 못 잊어. 오라버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잖아.”
왕녀가 울먹거렸다.
하지만 이설이 손을 꼭 잡아준 덕인지, 아이는 씩씩하게 눈물을 참아냈다.
나는 보일 듯 말 듯 머리를 주억였다.
“아저씨가 그때는 왕자님의 몸을 빌렸었어.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아마 왕자님에게도 선택할 힘이 없었을 거야. 그래서 그날은 안타깝게도 코르넬리서를 알아보지 못했어.”
“······몸을 빌렸다고?”
어린 왕녀의 입이 헤 벌어졌다. 린과 이설도 눈을 끔뻑끔뻑했다.
나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응. 몸은 왕자님 그대로인데, 아저씨의 영혼이 들어간 상태였어. 말하자면 ‘그릇’만 바뀐 거야. 짐작건대 주신의 뜻으로.”
“그러면 목소리는 왜 똑같아? 지금도······.”
“······글쎄. 왕자님이랑 아저씨가 특별한 인연인가 봐.”
‘왜 그렇게 저를 경계하십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당신을 경애해요.’
불현듯, 우리가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 세계선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나는 당장 그곳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스러질 듯 웃던 왕자의 마지막 인사를 떠올리지 않으려 기를 썼다.
코르넬리서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충혈된 눈망울이 안쓰러워 한숨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럼······. 오라버니가 부활한 게 아니라 세레니테 후작이······.”
“왕자님은 쥘리에트 궁에 잠들어 계셔.”
나는 침착하게 뒷말을 이었다. 코르넬리서가 전단을 꾹 쥐었다. 바스락.
“아주 깊은 잠이 드셔서, 그래서 깨어나지 못하시는 것뿐이야. 하지만 아저씨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분을 일어나게 할 거야.”
그에게 약속했으니까. 너와 엘리서를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정말이야? 오라버니가 제국에 있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야. 평화롭게 주무시고 계셔. 네가 원한다면 언약을 할게.”
“······.”
아이는 떨리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더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목소리는 흐르지 않았다.
이설은 그런 왕녀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한참 만에야 코르넬리서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언약은 필요 없어. 믿을 거야.”
“고마워.”
“그러면 후작은, 지금 오라버니인 척하고 있는 거야?”
“맞아. 아저씨가 줄곧 그분을 사칭하고 있어.”
“세레니테.”
태자가 몹시 맘에 들지 않는 말을 들었다는 양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를 올려보며 쓰게 웃었다.
그렇지만 네 친구가 둘도 없는 사기꾼인 게 사실인걸.
“······미안해. 너에게만이라도 진심으로 사과할게, 코르넬리서. 왕자님의 이름으로 항상 바르고 좋은 일만 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분 보기에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그러려고 노력할 거고. 그러니까······.”
“······.”
“꼭······. 오빠를 다시 만나게 해줄게.”
‘건강한 모습으로.’ 그렇게 덧붙이자, 끝끝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질끈 감긴 두 눈에 가슴이 시큰거렸다.
아이의 손끝에서는 차고 깨끗한 물이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뻣뻣하게 굳었다.
“아, 그러고 보니. 2왕녀가 물 속성 성기사로 각성했다던가.”
으아아!
“맞다! 그걸 왜 지금 말해요!”
“본인도 잊고 있었으면서 성질은.”
“코르넬리서, 아저씨가 도와―”
“됐습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허겁지겁 에테르를 풀어내려는데, 그동안 묵묵하던 이설이 나섰다.
아이는 나를 한 번 쏘아보더니―어이쿠―왕녀의 양손을 잡고서 조그마한 성소를 열었다. 사아아······.
“이설, 이설은 신관이구나. 둘이 짝꿍인가 보네.”
내가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린은 흥미롭다는 눈길로 두 소녀를 구경했다.
그러자 코르넬리서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대꾸했다.
“응. 크흥. 이설은 나중에 내 국서가 될 거야.”
“국, 콜록! 서헉! 콜록콜록!”
“아하. 꼬맹이들이 제법이군.”
-우으웅
폭탄처럼 날아온 발언에 나는 곧바로 사레 들렀고, 내가 어깨를 출렁이는 동안 지브릴 디오프는 팔짱을 끼고 시시덕거렸다. 아기인 티테조차 썩 감탄하는 눈치였다.
린이 ‘국서가 뭐야?’하고 묻는데 대답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쿨럭쿨럭! 아이고, 쿨룩!”
“······과연. 여자 국서라.”
세드리크, 넌 뭘 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냐!
-펄러덕!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히들 주무셨어요?”
그때, 개구리눈을 한 우리의 주인공께서 등장하셨다.
어젯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헐레벌떡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크리스텔 경! 쿨룩!”
“방금 크리스텔 경이라고 했어?”
그런데, 코르넬리서의 표정 변화가 심상치 않았다.
아이는 커다란 눈을 뚜렷뚜렷 굴리며 가인 씨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인지 무척 놀란 낯이었다.
마법처럼 울음이 뚝 멎었고, 이제 왕녀의 목에서는 우렁찬 딸꾹질 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앳된 시선이 구불거리는 분홍색 머리칼과 청량한 물빛 눈동자를 거쳐, 그녀의 허리춤에 꽂힌 푸른 채찍으로 향했다.
나는 칼칼한 목을 가다듬으며 눈치를 봤다.
왜 그러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뭔가 문제라도······.
“귀한 아가씨들 이야기는 라소 공작에게 들었습니다. 어째 우리 작전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요? 매번 그렇긴 하지만 말입니다.”
“서, 딸꾹, 서······!”
가인 씨가 밝게 이야기하는데, 코르넬리서가 대뜸 목청을 올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서 있지 말고 앉아라? 정신 사납다?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해방자 크리스텔 랑부예 경!”
깜짝이야! 아이가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외쳤다.
불쑥 솟구친 하얀 손이 <백곡왕의 해방자> 표지를 팔랑이고 있었다.
세드리크가 즉시 미간을 좁혔고, 번개 마법사는 휘파람을 불며 낄낄거렸다.
나는 꿈질대는 아기를 고쳐 안았다.
“······아아. 내 팬이에요?”
가인 씨가 씩 웃으며 말하기 무섭게, 린이 나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커헉!
*
한편. 인형술사의 천로에서는.
-콰과과과광······!
“전하! 왕세녀 전하!”
폭음과 비명, 무언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 너머로 간절한 부름이 찢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퍼억!’ 엘리서는 자신의 코앞까지 닥쳐온 기사 하나를 군홧발로 걷어차고서 핑그르 반 바퀴를 회전했다. 미끄러지듯 움직인 머리칼과 황금 창의 날끝이 거침없이 반군(叛軍)을 베었다. ‘콰아아앙!’ 가공할 충격파와 함께 뒤편의 적들 수십까지 우수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서슬 퍼런 눈동자가 번뜩이는 순간, 이번에는 왕세녀의 허벅다리에서 전광석화처럼 단검이 뽑혀 날았다. 정확히 그녀의 사각지대를 향해서였다. ‘푸욱!’
“억!”
“제길! 고맙습니다, 전하!”
-스팟!
얼결에 그녀의 도움을 받은 제국군 기사, 엘리자베트 무테가 고함쳤다.
그녀의 등을 노리던 스네이더르 세력의 성기사는 척추에 검을 맞아 고꾸라지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조력이었다.
엘리서는 그로부터 몇십을 더 처리한 뒤에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라비니아 발렌틴.”
팔순이 넘은 신국의 자작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으로 말을 몰고 있었다.
왕세녀는 잠시 부하들의 엄호를 받으며 창을 내렸다.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자 짧은 현기증이 일었다.
성흔을 사용한 이후 주로 사제급 신관들의 에테르를 받았고, 채 몇 시간도 쉬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척에서는 여전히 스네이더르 반군과 제국군, 엘리서의 신국군이 한데 뒤엉켜 서로의 목숨을 갈취하고 있었다.
-히히히힝!
“무슨 일인가, 자작.”
“전하, 왕도의 스네이더르 사병 수천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뭐?”
엘리서의 벽안이 크게 흔들렸다. 발렌틴 자작은 계속해서 외쳤다.
“필시 카밍하 대공 전하의 병력을 분산시키려는 책략입니다. 그분이 영지를 지키기 위하여 이곳에서 철군하리라 믿는 겝니다!”
“그럼······.”
청년이 신속히 주판을 두드렸으나, 노인의 판단이 훨씬 빨랐다.
발렌틴은 말머리를 돌리며 쩌렁쩌렁 노성을 올렸다.
“저의 사병들을 이끌고 가서 길목을 막겠습니다. 하니 두 분께서는 천로를 뚫고 왕도로 나아가십시오!”
‘반드시 반군을 섬멸하십시오, 전하!’ 자작의 애타는 간청이 모래 사이로 멀어졌다.
어쩌면 그것이 충신의 마지막 인사일지도 몰랐다.
엘리서는 이를 악물었다. 진득한 피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