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70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707화(707/920)
#707
모두가 스네이더르의 사람들 (2)
그날 밤, 대토론의 장이 열렸다.
-톡!
“어머니의 생신은······. 3월 9일이오. 매년 아주 성대하게 축하했고, 초대받은 귀족들은 어지간한 직계 왕족도 이렇게까지 돈을 쓰지는 않는다며 놀라곤 했소.”
얄팍한 바위 연단에 선 레오폴트 라소 공작이, 프랑수아의 마편으로 종잇장 한쪽을 가리켰다.
‘라소 영주성’이라고 쓰인 글자 위엔 이자벨이 그린 잿빛 성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와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짤 때는 역시 발표의 시각화가 중요했다.
천막에 삼삼오오 둘러앉은 친구들이 편하게 식사하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 중이었다.
여기에는 코르넬리서와 이설, 산골의 대장인 프리다, 그리고 부관인 코비도 끼어 있었다.
나는 데미가 키워준 오이를 아삭 깨물고서 ‘3월 9일’이라는 날짜를 수첩에 기록했다(겨우 사흘밖에 안 남았고, 쌈장이 없어서 아쉽다).
가인 씨가 손을 번쩍 들자 사회자인 프랑수아가 그녀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랑부예 경.”
“널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너희 엄마 혹시 무슨 결핍 있어? 그래서 그렇게 억척스러울 정도로 감투나 성과에 열을 올리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잖아. 아들의 공석을 노려 반란을 일으킨다는 게.’ 그녀의 물음에서는 정말로 요만큼의 악의도 묻어 나지 않았다.
이제 라소 공작의 정체를 아는 산골 아이들이 괜스레 어깨를 움츠렸다.
이자벨은 코비의 등을 다정히 쓸어주었다.
“······으음. 그런 면이······. 있으신 것 같기도······.”
“역시 그랬냐.”
가인 씨가 한숨을 푹 쉬었다. 공작의 낯에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가 물러갔다.
그는 씁쓸하게 웃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매년 삼월 초만 되면, 다른 가문에서 보낸 선물 마차 행렬이 성문 앞에 줄을 서는데······. 아마 올해는 그 정도는 아니리라 예상하오.”
“그렇겠지. 누가 전쟁통에 가짜 공작의 생일을 챙겨.”
상추에 고기를 싸던 지브릴 디오프가 퉁명스레 말했다.
나는 그가 한국식 고기구이를 즐기는 모습에 잠시 흐뭇했으나, 쌈을 딱 한 입 깨물더니 손에 쥐는 것을 보고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인제 보니 녀석은 깻잎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가인 씨가 귀한 콩기름을 얻어 만든 기름소금장도 단 한 번을 안 찍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선물을 보내는 이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오. 우리 가문이 왕족인 점, 그리고 나와 어머니가 전쟁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를 표하는 자가 없을 수는 없겠지. 나는 그 점을 노려서······. 우리가 영주성으로 잠입하면 어떨까 싶소. 요컨대 입성 행렬에 섞여 드는 작전이오.”
“영주성을 곧바로 칠 게 아니라면, ‘잠입’ 작전으로서는 가장 그럴듯하네요.”
“그렇소. 일단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내부는 내가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으니.”
요한 경이 나긋하게 말하자, 라소 공작은 담임 선생님께 칭찬받은 어린이처럼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자 이곳의 대장인 프리다가 손을 들었다.
프랑수아는 곧바로 드라마틱하게 손짓했다.
“마드무아젤 프리다.”
“저기, 공작님······. 어머니의 선물은 무엇으로 준비하시려고요?”
-끼이!
아이가 깨진 안경 너머로 신중하게 물었다. 마편을 든 공작은 그대로 굳었다.
“······아.”
“아? 방금 ‘아’라고 했어?”
디오프가 오만상을 썼다. 나는 덩달아 놀라서 입을 벙긋거렸다.
설마 정말로 거기까진 생각 못 한 겁니까?
그즈음 코르넬리서가 손도 들지 않고 불쑥 발언했다.
“그냥 내가 손님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아? 나는 왕녀인데.”
“그건 절대로 안 돼.”
“주신 맙소사.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합니다, 전하.”
세상에. 나와 프랑수아가 즉시 진화에 나섰다.
언니인 엘리서 왕세녀도, 오빠인 예서 왕자도 차분한 성격이건만 이 아이는 어째 사고방식부터가 남달랐다.
로세하르더 백작저에서 둘만 몰래 빠져나와 ‘암행’을 하고 있다는 것도 기가 막혔는데, 이제는 반란군이 도사리는 성에 직접 들어가겠다니!
“코르넬리서, 네 용기는 높이 사지만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야. 우린 절대로 너와 이설을 이번 침투 작전에 포함하지 않을 거야. 너희를 안전히 지키기 위해서.”
“다음에 어른이 되면, 그때 많이 해요. 열여섯 생일 땡 하면.”
내가 엄한 표정으로 말했고, 가인 씨는 싱긋 웃으며 아이를 달랬다.
코르넬리서는 나를 밉지 않게 흘기더니 ‘세레니테 후작은 오라버니 같은 소리만 해.’하고 불평했다.
하지만 자신의 우상이 해준 말엔 확실히 기분이 풀린 얼굴이었다.
산트에게 안긴 린은 두 사람을 보며 양볼을 알사탕처럼 부풀렸다.
가만히 대화를 듣던 이자벨이 의견을 냈다.
“그렇지만, 왕녀 전하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네?”
“소란 없이 영주성의 문을 열고 들어갈 방법은 두 가지뿐이니까요. 우리는 가짜 영주보다 권위 있는 사람을 들여보내거나, 그자가 진심으로 귀히 여길 만한 것을 가져가야 합니다.”
-애오오옭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이자벨. 그런데······.”
나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끝을 흐렸다.
산골 소녀 코비는 심각한 얼굴로 입술을 모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엔 마이커 라소 같은 작자를 기쁘게 할 만한 게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래서 버려졌으니까.
이곳은 아프고, 병들고, 기형으로 태어났거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방치된 이들의 작은 나라였으니까.
-꾸루룩
데미가 내 앞에서 앞구르기를 했다.
가인 씨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에라. 잠입 말고 그냥 때려 부수기로 방향 틀까요? 그게 더 쉽고 빠르긴 한데.”
-꾸우우우
“내부의 저항이 격렬할 테니, 우리가 영주성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도 자연히 줄어들겠지. 좋은 생각이군.”
“······.”
페리가 야유했고, 가인 씨는 세드리크를 뜨겁게 노려보았다.
사내는 지지 않고 그녀의 시선을 맞받았다.
가운데 낀 나는 침착한 손길로 남은 쌀밥을 해물 육수에 말았다. 그때였다.
-오호라, 이 몸의 존재를 잊기라도 한 것이냐?
······아?
“맞다, 하난 폐하!”
이자벨의 품속에서 조그만 인형이 퐁 솟아올랐고, 옹기종기 앉아 있던 아이들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나는 기쁜 마음에 상체를 들썩거리다가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세드리크가 지하철 개표구처럼 팔뚝을 뻗어준 덕분에 가까스로 창피한 꼴을 면했다. 휴!
“고맙습니다. 폐하, 그동안 왜 그리 조용하셨습니까? 많이 고단하셨어요?”
-갓난것의 속을 들여다보느라 얼마간 기력을 썼을 뿐, 위대한 영혼이 지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착! 이자벨의 다리에 올라선 헝겊 인형이, 금 장신구를 짤랑거리며 턱을 들고 우리를 오시했다.
‘갓난것’이라면 분명 린을 말씀하시는 거겠지.
코르넬리서는 당장이라도 어르신을 조몰락대고 싶은 눈치였으나 이설이 겨우 짝꿍을 저지했다.
-전투의 혼란을 줄이고, 성주의 머리만을 잘라내어 백성의 근심을 덜어준다는 계획이 퍽 갸륵하구나. 그러니 짐이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야.
“은혜라고 하시면······.”
그녀의 화신인 이자벨이 고개를 갸웃했다. 고대의 왕은 짤막한 베일을 팔랑거렸다.
-이 몸이 진상물로 나서 주겠노라.
-꾸릇!
우와!
“오, 주신이시여!”
“대박.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폐하께선 혼자 움직이고 말하는 인형이시잖아요! 누가 봐도 무진장 신기해요!”
“뭐, 확실히 드문 볼거리긴 하지.”
“공자, 어르신께 말조심하십시오.”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법.
헝겊 인형 폐하께서 머리를 양옆으로 살랑살랑하며 말씀하셨다.
어쩐지 무척 유쾌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듣건대 저자의 어미는 무척이나 잔혹하고 섬뜩한 취향을 지닌 듯하니, 이 몸이 아무리 거룩한 존재라 하여도 인형의 형태만으로는 그치를 만족시키기 힘들 것이다.
-끼응
“마, 맞는 말씀이시오. 진정으로 그렇소.”
라소 공작이 신점 보러 온 사람처럼 허겁지겁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인형은 앙증맞은 팔을 움직여 허리춤의 사이프를 꺼내 들었다. 뽀스락!
-그러니 신수들까지 동원하여야 한다.
“예?”
-끼어어······!
“오오, 과연······!”
그러자 내내 우리 앞에서 시위하던 레서판다들이, ‘드디어!’ 하는 듯한 자세로 앞발을 들고 벌떡 기립했다.
프랑수아는 신수들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감탄과 박수만 보내고 있었다.
나는 밥숟갈을 뜨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것은 아무래도 나와 산트와 라소 공작뿐인 듯했고, 다른 일행은 전부 이 작전에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당사자인 신수들이 제일 적극적이었다!
-끼아아! 끼우우우······!
“데미, 진정, 진정해. 이러다 성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진 낼라.”
-이이이잉
로피마저도 세운 꼬리를 파르르 떨며 흥분감을 드러냈다.
아니, 누가 보면 우리가 애들 가둬 놓고 키우는 줄 알겠네.
나는 당황한 와중에도 무릎을 기어오르는 구구 서너 마리를 도와주었다.
깜찍이 도마뱀들이 혀를 날름날름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잠깐, 설마 너희도 가려고?
“저, 그러면 제가 아이들과 동행하겠습니다. 물론 걱정하시겠지만, 아무래도 보호자가 한 명은 필요하고 저는 대주교급 신관이니까······.”
-어허. 선택이 아니라 마땅히 가야 하는 것이다. 어린것 중에서는 네가 특상품이거늘.
“······예?”
당연히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하난 폐하께서 기다렸다는 듯 나를 겨누셨다.
뭐라고 반발하려던 짝꿍들이 일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예에?
-불사조의 날개가 여섯 장이나 되는데, 한 번은 써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허억.”
-부우욱, 펄러덕!
으어억! 놀란 날개 두 장이 순간적으로 셔츠를 찢고 튀어나왔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신수들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식겁한 코르넬리서가 놀라움과 즐거움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래도 밥그릇은 엎지 않고 사수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등 뒤에서 태자가 낮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
라소 영주성의 가장 커다란 성채는, 큰 잔치를 앞두고 있음에도 태풍의 눈처럼 조용했다.
-똑똑똑
“······마이커 공작님.”
문을 두드리고 방으로 들어온 시종이, 주인의 책상에 조심스레 다과를 놓았다.
화려한 창살 그림자가 드리운 실내는 마치 감옥처럼 어둑했다.
수명을 거의 다한 마법 조명 하나, 희미한 촛불 두어 개가 일렁거릴 뿐이었으니 해가 떨어지기 전부터 서재는 이미 고요한 밤이었다.
시종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물건까지 주인 앞에 올렸다.
반쯤 찢어진 데다 얼룩까지 묻은 전단이었다.
-부스럭
“······.”
“······.”
노인의 눈알이 한참이나 종잇장을 훑고는, 마침내 시종을 향했다.
중년인은 긴장한 기색으로 또박또박 입술을 움직였다.
“왕도, 왕도에서 돌고 있는 종이라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계의 투견으로 유명한 시트룬 후작을 비롯하여 다수의 귀족과 정치인이 내용을 보증하였고······.”
“······너는. 이따위. 글. 을.”
이윽고 노인이, 다소 어눌한 발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씹어뱉었다.
부자유스러운 혀와 달리 눈빛만큼은 눈앞의 사람을 찍어 누를 듯 형형했다.
종은 한기를 느끼며 목을 구부렸다.
“멍청하게, 이것을 믿느냐? 모두······. 여기. 쓰인. 모두가.”
“······.”
“모두가, 스네이더르의 사람들이거늘.”
“아······.”
전혀 몰랐다.
몇몇이야 알았지만, 설마하니 전부가 스네이더르의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침을 삼킨 시종이 서둘러 전단을 거두려 했으나 노인의 주름진 손이 그보다 훨씬 빨랐다.
-탁!
침묵 끝에, 마이커 라소가 녹슨 쇳소리로 선언했다.
“······나는. 나는 당하지 않는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