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71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719화(719/920)
버디 무비 (5)
-퍽! 퍼버벅!
“억, 아윽!”
-푸욱! 퍼억, 깡!
“커헉! 으억!”
······고통은 짧고도 굵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복도의 상황이 종료되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얻어맞은 기사들은 동료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깡통처럼 나동그라졌다.
지브릴은 무력이라곤 없는 백수 귀족같이 우두커니 서서 세드리크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다.
힘 빠진 자수정 귀걸이가 그의 귓불에서 대롱대롱 흔들거렸다.
남자의 감상을 축약하자면 대강 이러했다.
‘잠깐, 이걸 ‘상황 종료’라고 볼 수 있는 건가? 그래도 되나?’
-탓!
“얼간이처럼 서 있을 셈인가?”
-휘이이잉······!
소년이 비장하고 극적인 찬바람을 맞으며 물었다.
그러시겠지, 방금 이 복도의 창문을 죄다 작살내셨으니까.
“얼간이? 아,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쇼. 지금 누가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헷갈려서.”
“가짜 공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우리에겐 여유가 없어.”
-톡!
황태자의 맹랑한 목소리에 불도마뱀이 동의하듯 꼬리를 내리치고, 고개도 꼿꼿이 치켜들었다.
지브릴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최근에 너무 자주 했다.
마침내 그가 적당한 말대답을 찾아낼 무렵―
-우당탕퉁탕!
“에구머니나!”
“이런.”
복도 저편에서 빨랫감을 나르던 하인이 기함하며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빨랫방망이와 향주머니와 비누 따위가 정신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눈앞의 상황을 확인한 남자는 온몸을 벌벌 떨며 겁을 집어먹었는데, 아무래도 랑부예와 한통속인 듯했던 시종장과 달리 이쪽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지브릴은 상대의 입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다행히 그의 시간을 아껴주는 자들이 있었다.
“웬 소란이냐!”
“길을 비켜라! 우리가 처리하겠다!”
“히이익!”
“신화급 마수가 영주성을 배회하고 있다, 다들 방으로 돌아가!”
바깥의 난리통을 수습하던 기사들이, 기어코 내부까지 솎아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아래층에서 고함 지르는 소리가 위층까지 쩌렁쩌렁 올라왔다.
다급히 뛰어다니는 발소리, 동료를 부르는 하인들의 외침도 여러 방향에서 들렸다.
‘스릉! 스릉스릉!’ 그리고 검을 빼 드는 소음과 동시에, 통로 건너편에서 족히 삼십은 되어 보이는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은 병사였으나 살기를 뿜어내는 기사도 일부 섞여 있었다. 지브릴을 발견한 이들의 눈알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공자님, 비오른 사르헨티니 공자님이 아니십니까? 어찌 위험하게 복도에 나와 계십니까?”
“여기 창문은 또 왜······! 방금 그게 이 소리였군. 마수의 습격이 있었나?”
“손님들은 모두 지하로 모시라는 기사단장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한데 저 꼬마 놈은 무엇입니까? 거지 차림인데······.”
“잠깐만! 바닥에 우리 기사들이 쓰러져 있다!”
그럼 그렇지, 이대로 조용히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왈짜 궁주가 엮인 일이 쉽게 풀렸던 역사가 없는데.
“이것들만 치우면 서재부터 갑니까?”
“한 놈 정도는 길잡이로 삼는 편이 좋겠군.”
지브릴이 지팡이를 빼내며 묻자, 세드리크가 손등으로 단검을 굴려 잡으며 답했다.
선두의 기사들은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소화하지 못했다.
그러자 빨래 담당 하인이 팔을 번쩍 들었다.
“저, 저! 제가 가겠습니다! 신입이지만 어지간한 뒷길은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기사님들한테 매를 맞아서요!’ 따라붙는 설명이 살벌했다.
과연, 겁은 많아도 머리 회전은 빠른 자였다.
그렇다면 뒷길을 외우고 있다는 말도 진실에 가까울 법했다.
세드리크와 지브릴이 같은 각도로 고개를 까닥했다.
그러자 어느 기사가 설마설마하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만 그녀의 턱은 이미 이를 갈고 있었다.
“젠장! 영주성의 난리는 모두 저놈들 짓이다, 잡아라!”
“흐아아압!”
-쌔애앵!
좁은 복도로 창칼이 날아들고,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다.
지브릴은 세탁실 하인이 뒤로 숨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지팡이를 휘둘렀다.
세드리크는 익숙하게 그보다 앞서 단검과 표창을 내던졌다.
‘우우웅!’ 순간적으로 강력한 마나가 폭발하며 두 남자의 머리칼을 마구 휘저었다.
“둘이 한패다! 당장 공작님께 알······!”
-쌕, 쌕쌕, 쌔애액!
-우르르릉, 콰가강!
핏빛 마나를 두른 날붙이에 서슬 퍼런 번갯불이 튀고, 대낮의 복도는 연보랏빛으로 환히 밝아졌다.
영주성의 대지가 길게 신음했다.
*
-쿠구구궁······!
흠칫! 본성 밖을 달리던 가인은 즉시 뒤돌아보았다.
뾰족뾰족한 탑과 빨간 지붕 너머로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
그러나 익숙한 에테르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는 궁주님의 힘이 짧게 폭발했고, 그 뒤로는 하난 폐하의 독기 어린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요한 샘의 바람은 흔적조차 없었지만 그분이야 원체 에테르를 잘 숨기시니 그러려니 했다.
레오폴트 라소는 지금껏 본인의 능력을 드러낸 적이 없다시피 했고.
그러니까 지금껏 감감무소식인 건 오직······.
“올리.”
“네, 네?”
“태자 전하가 걱정되어서 그러니?”
동물원을 향해 앞서 달리던 이자벨이, 가인을 돌아보며 그녀의 속을 또렷하게 읽어냈다.
마치 맑고 얕은 연못을 들여다보듯이.
가인은 그 사실에 조금 멍해져서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찰나 영주성의 모든 혼란이 귓등으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땀에 젖은 이마에 연둣빛 머리카락이 달라붙었고, 혼령이 깃들지 않은 몸은 아직 근력이며 체력이 가인보다 훨씬 달렸다.
벅찬 숨소리엔 조금의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자벨은 품에 린을 안은 채 영주성 한복판을 내달리며, 못난 딸을 꿋꿋이 걱정하고 있었다.
아기의 회분홍 눈망울이 가인의 시야에 선명하게 박혀 들었다.
“······크리스텔?”
“······.”
“······.”
마치 ‘중요한’ 존재라는 것처럼. 그 애가 그녀에게 뭐라도 된다는 것처럼.
“······아니에요, 걱정은 무슨. 세상에서 제일 걱정할 필요 없는 분이 황태자 전하신데요.”
‘어서 가요.’ 머리를 한차례 내저은 가인이 웃는 낯으로 성큼성큼 앞서갔다.
그들은 지금, 영주성 최후방에 자리하고 있다는 ‘동물원’을 쳐부수러 가는 중이었다.
규와 데미, 페리, 로피가 먼저 출발했지만 그 아이들에게만 상황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자벨은 아직 상단의 직원 연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 사태의 책임을 물으며 그녀를 공격해올지도 모르므로, 가인이 제대로 곁을 지켜주어야만 했다.
하난 폐하도 안 계시니 진짜 마수 떼가 덮치는 경우 역시 고려해야 했고.
“후······.”
“신화급 마수가 나타났다! 모두 대피! 화롯가나 물속으로 대피해!”
“빨리 뛰어, 빨리! 짐은 나중에 챙기고!”
“아까 봤어? 온몸이 시뻘건 용! 지나가는 거 봤어?”
바쁘게 옆을 지나쳐 가는 병사들, 멀리서 명령을 쏟아붓는 기사들.
영주성의 신관으로 보이는 몇몇과 얼굴이 허옇게 뜬 하인들까지.
모두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움직이느라 가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주인 잃은 마차와 손수레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점점 가팔라지는 오르막에 어쩐지 숨이 찼다.
“헉, 후우······.”
아니지, 고작 이따위 오르막으로 가빠질 숨이 아니었다.
가인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의 도약으로 언덕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성기사였으므로.
“크리스텔.”
“말씀하세요.”
“······역시 과거의 일 때문에 많이 힘든 거지?”
“······.”
그러니까 지금 호흡이 힘들다고 느끼는 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가인은 묵묵히 땅만 내려다보며 발을 놀렸다.
성격이 못돼 먹어서, 언젠가 진짜 엄마가 말했듯이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애가 예민하고 못돼서.’
무거운 아기를 대신 안아드리겠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이자벨은 언제나처럼 딸의 발자국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힘들 텐데도 군소리 한 번을 하는 법이 없었다. 린이 그녀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았다.
“알아. 엄마한테 말할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는 거.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라소 공작의 모습을 보고 지나간 시간을 떠올렸다는 거.”
“······.”
결국 이자벨이 먼저 용기를 냈다. 비겁한 함가인은 상상조차 못 해본 일이었다.
“우리 딸 마음 아픈 거 알아. 그렇지만 엄마가 힘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
“저는 이자벨 고생 안 시키고 싶어요.”
가인은 그녀와 눈을 맞추려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더러워진 웃옷 단추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게 한계였다.
정말로 이것보단 잘하고 싶은데, 제발 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당장은 이게 그녀의 최대치였다.
형편없이 벌벌거리는 목소리가 기어 나왔다.
“가끔 뭐에 버튼이 눌려서 이럴 때가 있는데, 며칠 두면 금방 멀쩡해져요. 너무 염려하실 필요 없어요.”
“······.”
“자주는 아니고 몇 년에 한 번씩만 이래요. 저 빨리 괜찮아질게요.”
“······.”
“신경 쓰이시는 일 없게 할게요. 죄송해요.”
가인이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방금 한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로 조금만 시간을 주면, 그러면······. 그녀는 다시 이자벨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크리스텔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밝고, 활기차고, 그녀의 ‘진짜’ 딸이 살아서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며 어머니에게 보람과 기쁨만을 안겨주는 존재.
그늘 같은 건 모르고,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아이.
다정하고 부유한 가족의 애정을 듬뿍 마시며 살아온 이자벨에게······.
“진짜로 별거 아니에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딸. 참 쉽다.
“······별거 아니어도 좋아. 엄마는 전부 궁금해.”
“······.”
그 말은, 오래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법처럼 눈이 마주쳤다.
가인은 지금 자신이 뛰고 있는지 넘어졌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자벨이 그녀를 바라보며 봄꽃처럼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언젠가, 그 감옥 같은 사르네즈 영주성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던 날처럼.
“내 아이는 힘들고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으니까.”
“······.”
“괜찮아. 이번에도 차근차근히 해나가면 돼, 올리. 엄마랑 같이. 지난 상처는 함께 돌보고, 조금씩 약도 바르고······. 그러다 보면 좋아질 거야. 엄마는 믿어.”
“······.”
장담할 수 있었다.
이자벨은 가인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서는 마음이 안정된 이 특유의 강인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가인은 종종 그 때문에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바로 지금처럼.
“아니요.”
“······.”
아니, 방금 그것은 함가인의 쓰레기 같은 변명이다.
숨이 막히는 것은 이자벨 때문이 아니다.
이 저급한 새끼야, 네가 어떻게 그딴 생각을 해?
“감사하지만 저 혼자 해볼게요. 평소에도 알아서 그렇게 했으니까······.”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릴게.”
“그러지 마세요. 제 사생활이잖아요.”
“······.”
그것이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가인은 명백히 충격받은 이자벨의 눈빛을 뒤로한 채 오르막을 뛰어올랐다.
린의 커다란 눈동자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무시했다.
당장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쿠구구구······!
“동물원의 마수들이 풀려날 거야! 빨리 달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고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그냥, 제 마음속에 팬 끔찍한 구덩이 속으로 숨어들고만 싶었다.
모르는 자들의 낯선 말들이 검은 밀물 너머로 쓸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