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73)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73화(73/920)
#073 나만 아니면 돼 (3)
“방금······.”
착각이라고 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나는 서클 한가운데 앉아 몸을 이리저리 갸웃거리는 굴뚝새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성소는 언제 일그러졌었냐는 듯 반듯한 정원(正圓)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봤다.
새가 내려앉자마자, 고장 난 TV 화면처럼 흔들리던 금빛 동그라미를.
“꼬맹아. 너 진짜 신수냐?”
-삐삐삐삐
작은 새가 천연덕스럽게 울어댔다.
레서판다 세 마리는 어느새 내 다리 뒤에 숨어 있었다.
무서운 건가? 아니면 아직 새한테 낯을 가려서?
-끼이이이
데미가 씩씩하게 나와 내 앞을 막고 섰다.
그러고는 작은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며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셋 중 제일 쪼끄만 게, 내 말대로 정말 대장 행세를 했다.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데미, 괜찮아.”
내가 녀석을 달랬다.
이렇다 할 근거가 없는데도, 저 굴뚝새가 내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평범한 동물이 아닌 건 확실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들어찬 것은 불안보다는 호기심이었다.
[에테르 줄까?]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댄 것처럼 웅웅 울렸다. 새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데미가 발끝에서 내 상반신만 한 야자수 잎을 피워냈다.
여차하면 방패로 쓸 모양이었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 찬찬히 에테르를 풀어내 굴뚝새에게 전달했다.
시럽 감기약을 반 숟갈씩 떠먹이는 상상을 하니 양을 훨씬 적게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 먹네.”
정확히는, 내 에테르가 녀석의 체내로 아예 흡수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당황해서 더 많은 에테르를 굴뚝새에게 퍼주었다.
하지만 에테르는 그대로 내게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잠깐이나마 성소에 교란을 일으켰던 새인데, 꼭 보통 인간이나 동물처럼 에테르에 감응하지 않았다.
나는 서클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손을 뻗었다.
“형한테 와, 옳지.”
-삐르르, 삐삐
굴뚝새는 내 쪽으로 두어 번씩 점프하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몇 번의 날갯짓을 했다.
손바닥 안에 들어와 냉큼 자리 잡는 모습이 무척 편해 보였다. 아주 전세 냈네.
데미와 레아, 페리가 그제야 안심했는지 내 다리 사이로 꼬물꼬물 기어들어와 퍼졌다.
굴뚝새 한 줌, 레서판다 한 다라이.
“너도 뚝배기나 뚝딱이는 싫지?”
-삐삐! 삐삐삐!
대답이 좀 컸다. 크리스텔이 제안한 이름을 혐오하는 게 분명했다.
새는 놀라울 정도로 말을 잘 알아들었고, 사람을 피하기는커녕 손 타기를 즐겼다.
혹시 신수의 새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테르 흡수도 서툰 건가 싶었다.
신수가 번식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주신이 이 녀석을 덜 자란 형태로 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내 방에서 나와 함께 지내는 레서판다들과 달리, 굴뚝새는 지난 사흘간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저껜 크리스텔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고, 어제는 종일 안 보인다 싶더니 황자의 방에서 하루를 묵은 듯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내가 음식이나 물을 내밀어도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오는 건가 했는데.
“크리스텔이 ‘굴’이랑 ‘뚝’을 포기 못 하는 눈치야.”
-삐이
새는 어쩐지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식당에서 만난 크리스텔은, 기어코 ‘굴비’ 같은 이름까지 꺼내들었다.
‘뚝’자 돌림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내일은 ‘굴다리’ 따위를 제안할지도 몰랐다.
[뚝심이 어때?]내가 조심스럽게 신탁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뚝’자로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이게 최선인 것 같았다.
바람 부는 절벽에서 만난 꼬마니까 ‘실피’도 괜찮을 것 같았고, 멋진 새가 되라고 ‘난(鸞)’이라 붙여줄 생각도 있었지만······.
크리스텔도 나름 애쓰고 있는데 정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쁘지 않지? 어디 가서든 뚝심 있게 잘 살라고 뚝심이.]새가 까만 눈을 바쁘게 깜빡였다. 미안하다, 나도 이게 베스트가 아닌 건 알아.
-삐삐삐르릇!
새가 노란 부리를 벌리며 열심히 응답했다.
손바닥을 쪼아대지 않는 걸 보니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대충 ‘네 노력이 가상해서 받아들이겠다, 인간아’ 하는 건가?
-파다닷
뚝심이는 짤따란 날개를 움직여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레서판다들의 통통한 세 꼬리를 둥지 삼아 몸을 묻었다.
그새 눈에 잠이 온 데미가 투정을 부렸다.
“먼저 코해. 형은 에테르 순환 50바퀴만 하고 잘게.”
내가 소곤거렸다.
신수들 때문에 곧 다리가 저릴 게 분명했으나, 이것도 수련의 일종이라 여기기로 했다.
나도 나지만 녀석들을 제대로 돌봐주려면 더 강한 신관이 되는 게 옳았다.
‘파아앗’ 하는 소리와 함께, 금빛 에테르가 다시금 성소의 구석구석까지 번져나갔다.
*
5월 31일은, 고운 바람과 맑은 햇살이 있는 날이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예서 왕자님!”
“고맙습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주신의 영광이 함께하시기를.”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별궁의 어딜 걷든, 시종과 하인이 우르르 몰려들어 인사를 건넸다.
나는 밝은 얼굴로 한 명 한 명의 축하를 받았다.
진짜 예서 왕자가 이걸 듣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미안할 정도로, 오늘 만난 모두가 내게 좋은 말만 베풀고 있었다.
일이 바쁜 황제는 시종장 편에 친필 카드와 꽃다발을 보냈다.
부티에 추기경은 출근길에 내 방을 찾아와 뺨에 뽀뽀를 해주고 떠났다.
“왕자님, 이건 오늘 새벽에 저희가 직접 구운 카눌레입니다. 좋아하신다고 해서 100개 정도 만들어봤습니다.”
“아이고, 뭘 이렇게 많이······.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예! 그럼 방으로 곧장 배달하겠습니다.”
주방 하인 몇몇이 머리를 바닥에 닿을 듯 숙이며 인사하고 물러갔다.
북부 인심이 원래 이런 건지 다들 손이 굉장히 컸다.
아침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생일상을 받았는데, 뱅자맹과 가나엘의 협력에도 다 먹는 데 2시간 반이 걸렸다.
“왕자님, 오늘 받은 걸로 1년도 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뒤따르던 가나엘이 웃으며 감탄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시종의 하례를 받았다.
프레데리크 황제와 나의 관계가 나쁘진 않지만, 내가 볼모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생일 파티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금전적인 선물도 불가능했다.
나 역시 요란하고 부담스러운 건 좋아하지 않아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일이 이렇게 됐다.
가는 곳마다 낯선 이들이 내게 직접 만든 음식을 쏟아냈고, 정성은 거절하는 게 아니라고 배운 나는 모든 빵과 디저트를 시식했다.
전부 맛있어서 좋았지만, 이러다간 배가 차서 늦은 점심도 못 먹을 것 같았다.
‘마수 대토벌’ 때의 일이 도대체 얼마나 와전된 거지.
“왕자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꼬까옷도 입으셨네요.”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주랑 저편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크리스텔이 보였다.
머리를 높이 올린 건 똑같았지만, 오늘은 드물게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녀는 천사처럼 웃으며 내게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책입니다. 실은 왕자님 드리려고 해적선을 준비했었는데······.”
“네?”
“농담! 아무튼, 요즘 황도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이라니까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추기경 전하께 여쭤봤더니 책 선물은 얼마든지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청회색 눈동자가 유쾌하게 빛났다. 나는 미소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결국 크리스텔에게 선물을 받게 됐다.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겠습니다.”
“별말씀을요. 공작 전하께도 선물 받으셨어요?”
“아뇨.”
선물은커녕 오늘 마주친 적도 없었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 생일이라는데 이 정도로 신경 안 쓰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뭐, 딱히 황자 놈한테 바라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니 아쉽진 않았다.
놀란 크리스텔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이상하네요. 황족답게 대단한 선물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관계도 아니니까요.”
“에이, 알 거 다 아는 사이시잖아요.”
그녀가 왼눈과 오른눈을 번갈아 윙크했다.
볼 때마다 신기한데, 잠깐. 왜 말을 그렇게 합니까.
“그건 공녀도 아시는 거잖습니까. 정확히는 공녀와 저의 비밀이죠.”
“맞는 말씀이네요. 어디 가는 길이세요?”
크리스텔이 못 이기겠다는 듯 웃고는 화제를 바꿨다.
고해 성사를 받으러 간다고 답했더니, 그녀는 ‘그럼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께 드리는 서비스예요!’ 하고 즐거워했다.
내가 선선히 그녀와 걷기 시작하자 뱅자맹과 가나엘이 은근 좋아했다.
“참, 굴뚝새 이름 붙였습니다. 뚝심이라고 합니다.”
“어머, 완전 제 취향이에요! 잘 지으셨다.”
생일에 나보다 다른 이들이 더 기뻐 보이는 것도, 기분이 썩 괜찮았다.
*
“네, 네, 왕자님······.”
고해소 바깥에 선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잘게 호흡했다.
나는 가만히 고백자의 말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손에는 크리스텔이 선물해준 여행책, <완벽 가이드: 일주일 안에 황도 정복(지도 포함)>을 든 채였다.
올해 4월에 발매된 신간이라 최신 정보가 빽빽했다.
왜 지금까지 여행 책자를 들춰볼 생각을 못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실은 이런 서적이 있는지도 몰랐다.
책에는 역사서에서 찾기 힘든 생생한 지식이 넘쳐났다.
비록 당장은 쓸모가 있지 않겠지만, 이건 <격주간 리에스테르>를 처음 읽었을 때만큼이나 신선한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선물을 받은 듯했다.
“그게, 뒷사람에게 들릴까 봐 무서워서······.”
드디어 남자가 작게 속삭였다.
나는 나무창 바깥의 그가 고해소에 몸을 한껏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궁에 고해소가 따로 없어, 작게 만들어진 기도실을 임시로 쓰게 된 것이 이런 결과를 부를 줄은 몰랐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비렴의 방주’가 있는 종탑 옆에 신전이 있기는 했지만, 절벽 전체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나는 어디서 고해를 받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별궁 시종장의 도움으로 목제 기도실 한 칸을 찾아냈다.
내가 들어가서 앉고, 고백자들이 밖에 줄을 서서 한 명씩 고해를 하면 딱 될 것 같았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뒤에 서 계신 분들도 같은 신자님입니다. 주신께서 보고 계시니, 설령 고해가 들린다고 해도 모른 척해주실 겁니다.]내가 그럴듯하게 남자를 달랬다.
그는 잠시 끙끙거리더니, 결심이 섰는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문득, 첫 번째로 고해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다는 신자가 이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저는, 저는 교황청에서 온 신관입니다. 그······. 이블린 공작 전하와, 사르네즈 공녀님의 에테르 보급을 맡고 있습니다.”
[아, 그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그의 속닥거림에 나 또한 작게 인사했다.
교황청에서 온 성기사 요한 헤인스 경과, 사제급 신관 ‘산트’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지나가다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였지만, 산트는 나를 보면 유독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절했기에 생김새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가 고해를 하러 올 줄이야.
“그런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국에 파견된 것이 영광인 줄은 알지만······.”
산트가 울먹거렸다. 나는 살짝 당황해서 나무창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마음고생을 하셨나 봅니다. 일이 많이 고되던가요?]“허엉, 고된 정도가 아닙니다. 왕자니힘······.”
창살 너머, 몸이 둥글고 커다란 청년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서둘러 고해소 문을 열고 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뒤에 멀찍이 선 신자들이 놀라서 고개를 빼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말씀해보십시오.]내가 말했다. 그는 내 손수건을 소중히 쥐고 손을 마구 움찔거렸다.
군대 말년에 신병으로 들어왔던 스무 살짜리가 떠올랐다.
“공녀님이, 그리고 전하께서······. 저를 못살게 구십니다······.”
[네?]식겁해서 마이크에 삑사리가 들어갔다. 설마 직장 내 괴롭힘인가?
“주신께 맹세코 고자질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저느흔······. 제가 아무리 덩치가 좋아도, 사제급인데요······. 두 분이 제 에테르를 무지막지하게 빼 가셔서······. 크흥.”
양처럼 순한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혼자 두 분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씀이십니까?]“그것도 그런데······. 너무 심하십니다, 진짜로. 발령 첫 주에, 저 세 번이나 기절했습니다하······.”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테르 고갈로 기절을 하셨다고요?]“공녀님이 에테르를 받아 가시면, 쉴 틈도 주시지 않고 전하께서 에테르를 뽑아 가십니다. 두 분 다, 일반적인 성기사와는 너무, 다르십니다. 교황청 성기사들은······. 아무도 그렇게 게걸스럽게 안 먹는, 흡. 끅.”
나는 아연해져서 산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굶긴 적도 없는데, 왜 쪽팔림은 내 몫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