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770)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770화(770/920)
매흉 (9)
빌어먹을!
-부스럭!
“숨 쉬어, 궁주. 숨 쉬어! 제대로 쉬라고!”
“허억, 안 돼, 헉, 저리 가······!”
“눈 똑바로 뜨고 날 봐! 알아보겠어?”
“꺼헉, 싫어! 허어억! 싫어, 싫, 요한 경······!”
-퍽, 퍽, 퍽!
잘못 꺾으면 그대로 부러질 것만 같은 손목이, 사시나무처럼 버들거리며 꾸역꾸역 마법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낮은 관목에 숨은 두 남자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위태로이 흔들렸다.
지브릴 디오프는 온몸으로 신관의 거부와 주먹질을 받아내면서도 침착하려고 기를 썼다.
기실 그는 생애 최초의 기억을 지닌 순간부터 냉철하기 짝이 없었으므로―황위를 이어받을지도 모르는 황족의 운명이란 본디 그런 것이라고, 보뇌르 디오프 공작은 아들에게 여러 번 강조하곤 했다―이렇듯 크게 당황한 적은 손에 꼽을 만치 드물었다.
대체 왜 이래, 무슨 독이라도 잘못 먹었나?
“방금 그게 무슨 소리였지?”
“저, 저는 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간채에서 쉭쉭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길!
“숙여!”
“꺽, 끅······!”
-바스락!
아니, 그래도 차분해져야 했다. 눈앞의 궁주라면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지브릴은 바로 이 왈패 때문에 이미 너무 많이 놀라거나 웃거나 당혹한 바 있었다.
냉정을 되찾은 그는 즉시 한 손으로 신관의 입을 틀어막았다. ‘커흡!’ 기겁한 청년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시퍼렇게 질리고 있었으나, 당장은 과호흡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마법사는 재빨리 다른 손을 놀려 그의 무릎에서 벌벌거리고 있는 신수를 붙잡았다.
겁에 질린 레아가 꼬리를 펑 터뜨리며 바동거렸다.
-끼아, 끼아, 끼아!
“입 다물어, 꼬맹이. 얌전히 안겨 있어.”
-끼웃······!
꼬마 신수를 신관의 품에 집어넣고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게 한 뒤, 망설임 없이 마법 지팡이를 빼 들었다.
왕도 한복판에서 마력을 드러내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으나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들은 즉각 이곳을 벗어나야 했고, 지브릴에게는 막강한 무력이 있었다.
저 문간채에서 누군가 나와 그들을 찾기라도 한다면 그는 곧바로 번개를―
-뽀스락!
“아저씨. 이쪽이야.”
흠칫!
“······너, 넌 뭐야. 갑자기 어디서······.”
지브릴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 그러면 안 되는 상황임을 똑똑히 아는데도 그랬다.
“이쪽에 우물 뚜껑 있어. 뒤에 숨어. 빨리.”
“······.”
그도 그럴 것이, 코앞의 수풀에서 튀어나온 소년은 눈에 익은 갈래머리를 하고 있었다.
턱밑으로는 낡은 천 조각을 둘렀고, 양손은 끈으로 칭칭 묶여 있고, 발목 한쪽에도 허술하게 밧줄이 감겨 있으며, 숱 많은 머리칼을 브리오슈처럼 동그랗게 말아 양쪽으로 올린······.
설마.
“예프 발렌틴?”
“아?”
지브릴의 물음에 어린 눈동자가 왕방울만 해졌다. 더 확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지팡이를 귓등에 꽂은 그는 냉큼 커다란 손으로 아이의 뒷덜미를 덥석 쥐었다!
“찾았다, 이 녀석.”
“으아앙!”
“조용히 해. 집에 무사히 돌아가고 싶으면 착하게 있어.”
“놔, 놔! 이거 놔! 엄마아!”
“쉿!”
예고 없이 자유를 빼앗긴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몸부림쳤다.
지브릴은 욕설을 뇌까리는 대신 혀를 차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당장 돌보고 살려서 달아나야 할 인원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셋 다 마법으로 기절시키는 편이 나을지 고민하는데―
“방금! 방금 그 맹랑한 것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느냐!”
“죄,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귀가 어두워져서······.”
“어쩐지 잠깐 보이질 않더라니. 어서 잡아 오지 못해? 그것을 달아나게 둔다고 내가 너까지 자유롭게 해줄 것 같으냐?”
“나, 나리. 그런 것이 아니오라······.”
대답하는 누더기 아가씨의 목소리가 눅눅히 젖어 있었다. ‘덜커덩, 우당탕!’ 이어서 문간채의 서랍이며 의자 따위가 요란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브릴은 어금니를 사리물고서 무언가를 결심했다. 바로 그때―
-탁, 탁탁!
마르고 연약한 솜 주먹이 남자의 손등을 또 때렸다.
마법사는 놀란 눈으로 신관을 내려다보았다.
“쥘리에트?”
“아이, 쿨럭, 아이를 놔 주세요······.”
“뭐야, 정신이 좀 들어?”
“네, 하아······. 저, 괜찮으니까······.”
“진짜야? 어디 봐.”
지브릴이 재깍 그의 턱을 쥐고 이리저리 살폈다.
벗겨진 마석 안경이 장미휘석 줄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하얀 뺨이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공기가 섞여 바들거리는 말소리와 손끝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궁주는 벌겋게 짓무른 눈가로 더듬더듬 땅을 짚고서 자세를 바로 했다.
누가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은 몰골에 꼬마 예프가 입술을 떨었다.
지브릴을 천하의 못되고 악랄한 납치범쯤으로 여기는 게 분명했다.
그러자 신관이 설핏 웃으며 부드러운 손길로 소년을 받아 안았다.
물기를 뒤집어쓴 속눈썹은 아직 옅게 떨리고 있었지만, 조금 전까지 숨이 넘어가던 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온화한 얼굴이었다.
“옳지, 괜찮아. 우리는 네 누나의 부탁으로 왔어······. 크흠, 도로테아 말이야.”
“도로테아? 테아 누나?”
“그래······. 누나가 서명한 계약서도 있어. 나중에 보여줄게. 공자.”
어깨를 움츠린 소년은 다행히 순했고, 기대 이상으로 영리했다.
궁주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예프는 통통한 팔을 내밀며 끈을 풀어달라고 몸짓했다.
지브릴은 귀에 꽂았던 지팡이를 다시 쥐고 신관을 돌아보았다.
“안에······. 저 안에 있는 사람······. 콜록, 국서입니다.”
“······뭐?”
스스로의 청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었다. ‘끼이익······.’ 문간채의 문짝이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열리고 있었다.
궁주는 띄엄띄엄 쉰 소리로 말을 이었다.
“국서······. 베르너르 페네티안입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었는지는 몰라도······. 반드시 잡아야 해요.”
“······당신을 살해한 놈이군.”
“네.”
대답은 단호했고, 선명한 보랏빛 시선은 흔들릴지언정 떨어지지 않았다.
지브릴의 루비색 눈동자가 문간채를 다시 겨누었다.
“······생포해야 합니다, 공자.”
“······.”
이제 그에게서는 흉악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흐윽······.”
그즈음 잔뜩 겁먹은 여인이, 익숙한 누더기를 뒤집어쓴 채 눈물을 쏟으며 덤불 방향으로 걸어왔다.
사라진 소년을 찾아오라는 닦달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비틀비틀하는 다리며 홀쭉하게 들어간 뺨이 해골처럼 얄팍했다.
그동안 그녀가 국서에게 어떤 존재였을지, 꼬마는 왜 이딴 곳에서 사지가 묶인 채로 발견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마법사는 조용히 숫자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날렵한 지팡이 끝이 허공을 가르면―
-우르르릉, 콰가강!
-빠가가각······!
하늘 꼭대기에서 추락한 어마어마한 번갯불의 위력으로, 천지 사방이 몇 초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아졌다.
이어서 온 땅에 탄내가 진동했다.
*
······예서 씨?
-우르르릉, 콰가강······!
“어?”
묘한 예감에 젖어 있던 가인이 귀를 쫑긋하며 문간을 돌아보았다.
오페라 극장 바깥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하늘을 때리고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돌아본 황태자 또한 불쾌한 것을 감지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저와 기분 나쁘게 엉켜 있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냉큼 요한 샘의 얼굴을 추가로 확인했다.
“······슬슬 돌아갈까요?”
추기경의 옥빛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가인은 잽싸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시간이 늦었네요.”
‘빨리 가요, 쌤.’ 가인은 허겁지겁 로브 후드를 뒤집어쓰고 나갈 준비를 했다.
친절한 세작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태자가 그에게 몇 가지 당부하는 것을 기다리고, 혹시나 분장실에 쓸데없는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는지 거듭 점검하고 문 앞까지 나왔을 때는 어느덧 마음이 너무 급했다.
서늘한 밤바람이 성기사들의 코끝을 불길하게 맴돌았다.
“이것 봐, 비도 안 옵니다. 공기 중에 물기가 별로 없어요. 느낌상 제비가 마법을 쓴 것 같습니다.”
“······.”
“······.”
“막 강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궁주님 생각도 퍼뜩 났고요. 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중얼거리듯 말한 가인은 세작이 챙겨준 겨울 코트 몇 벌을 보란 듯이 품에 안았다.
외투실에 두고 간 분실물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세 사람을 기다린 말들은 조용히 머리를 내리며 인사할 따름이었다.
소리 없이 공기를 다스려 주변을 탐색한 요한이 먼저 걸음을 뗐다.
그때였다.
-쿠웅······!
“······리지 마라! 대열을 유지해라!”
“어?”
분명히, 왕성 방향에서 들린 고함이었다.
도리아의 안장에 오르던 가인이 두 눈을 회동그래 떴다.
세드리크는 특유의 기민한 감각으로 소리의 근원을 짚어 냈다.
“······.”
-쿠웅!
왕성의 안쪽.
-쿵! 쿵······!
제법 깊은 곳.
-콰앙······!
“두려워할 것 없다, 제군! 단순한 기물 낙하 사고로······.”
성벽을 겹겹이 에두르고 있던 친위대 일부가 흐트러지자, 누군가 목이 터져라 고성을 올려댔다.
어느덧 왕성 주변으로는 대낮처럼 밝은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조금 전 굉음은 꿈속의 뒤척임이었다는 양, 친위대는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고서 빽빽이 늘어섰다.
그들을 주시하던 태자의 노을빛 눈동자가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또한 보름달이 그 모두를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한편, 페네티안 왕성의 가장 외진 어느 탑.
‘제법 깊은 곳’.
-콰아아앙······!
모두의 고막을 찢는 공해에 가까운 소음과 함께, 마침내 성탑 현관의 목문이 과자 조각처럼 떨어져 나갔다.
주변으로 뿌연 먼지가 일며 문짝 파편과 구부러진 나사 따위가 살벌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근처에 있던 모든 이는 멍한 낯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에 갇혀 영영 귀가하지 못하는 귀족, 그들을 보좌하는 시종, 하인, 수도사, 종지기······.
얼마 지나지 않아 분진이 가라앉고, 문을 부순 이의 그림자가 윤곽을 드러냈다.
“······시종장은 어디에 있느냐. 짐이 그녀를 보아야겠다.”
“······.”
왕의 손아귀에는 길쭉한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이를 발견한 모두가 공황에 빠졌다.
“흐아아악!”
“뛰어, 다들 뛰어!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
“아아악, 아아아악!”
“시종, 시종장님을 모셔 와라! 어서!”
“무슨 개소리야, 살고 싶으면 빨리 뛰라고요! 나리!”
몇몇 시종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으나 태부족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마지막으로 왕성에서 크리스타너 페네티안을 목격했던 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밀가루 반죽처럼 허옇게 질린 이들이 왕에게 예를 차리는 것조차 잊고서 동서남북으로 달음박질쳤다.
크리스타너는 한동안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사슬에 묶여 있던 그녀의 손목과 맨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 내가 알아서 찾아야겠구나.”
하지만, 이따위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깨를 으쓱한 왕은 마지막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