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782)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782화(782/920)
불길은 타오르고 가마솥은 끓으며 (2)
“아가, 그렇다면 너의 말은······.”
“신물 수목의 신궁을 사용해야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에바 블랑케르가 단호하고도 공손한 답을 올렸다.
마호가니 책상 건너편에 앉은 스타니슬라스 리에스테르는 조용히 소공작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그간 참으로 많이 자랐다.
키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으나 앳된 뺨에서 젖살이 쪽 빠졌고,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한결 뚜렷해져 성숙한 얼굴이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악동 소리를 들었다던 아이는 어느새 훌륭한 가주의 재목으로 자라나 있었다.
변한 것은 비단 외양뿐만이 아니었다.
짧지 않은 전쟁을 거치며, 눈앞의 소녀는 제국 사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십 대 귀족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했다.
스스로의 능력과 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여러 모임에서 군자금을 모았고, 꾸준히 승전 기도회 및 일반 신관들의 자원 활동을 독려했다.
어지간한 범인이라면 전시에는 심장이 쪼그라들기 마련이었으나 소공작은 완전히 반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부친인 공작 부군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황도와 지방 곳곳의 여러 기간사업체에 거액을 투자했다.
황도 한복판에서 운영 중인 ‘살롱 드 빅투아르’의 놀라운 확장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전하?”
바로 여기까지가,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 준 시종장 로라 멘디의 간단한 정리였다.
황제의 아버지는 어린 소공작을 눈에 담으며 다시 한번 세월을 실감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소녀의 옆으로 향했다. 머리가 희고 눈에 호수를 담은 소년은 그사이 키가 부쩍 자랐다.
언젠가 노인에게 꽃다발을 선물할 때만 해도 작디작았는데 어느새 또래의 덩치를 웃돌았다.
에바의 각별한 돌봄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나 뒤엠 후작가에서 친자식처럼 귀애한다는 이야기는 스타니슬라스도 몇 번이나 들었다.
그런 헤릿 헤인스의 어깨에는 조그마한 굴뚝새가 자리했다.
“······비렴의 방주로부터 불길한 예언을 들었다고 하였느냐?”
-삐―뽀!
굴뚝새가 우렁차게 긍정했고, 헤릿이 즉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에바는 소년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냉큼 말을 보탰다.
“그렇습니다, 전하. 일찍이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헤릿은 온종일 눈물을 쏟고, 온종일 잠을 자야 했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런. 어린아이가 몸이 축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다.”
스타니슬라스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배시시 입꼬리를 올려 괜찮다는 뜻을 전달했다.
노인은 살며시 마주 웃은 뒤 에바를 바라보았다.
“예언이라는 것이 본디 그러하겠으나, 너의 말에 불분명한 표현이 섞여 뜻을 확신할 수 없구나. 진실로 수목의 신궁을 활용한 왕도 공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
“온 대륙이 불타오르는 전시에, 불살(不殺)이라는 개인의 신념을 나라에 강요할 만큼 모자란 늙은이는 아니다. 허나 신궁의 힘은 분명 수많은 목숨을 빼앗게 될 게야. 그 후폭풍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 우리에게는 마땅히 결과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단다.”
“헤릿은 신성한 간택을 받은 아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정보와 운명을 저에게 전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신물의 주인 된 자에게는 마땅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현실에 관하여 잘 모르는 저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있었습니다.”
소공작이자 신관인 아이가 목을 가다듬었다.
문가에 선 시종장은 긴장한 낯으로 아이의 등을 바라보았다.
“‘곧 왕도에는 욕망으로 인한 대재난이 벌어질 것이고, 이후의 대륙은 우리가 알던 세상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며, 주신의 피조물들은 두 번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큰 재앙을 막기 위한 작은 재앙을 준비하라.’”
“······.”
“‘재앙’이라는 게 무엇인지, 저는 참말 모르겠습니다. 헤릿도 그것만큼은 전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군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설령 제국의 신물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지요. 또한 수목의 신궁은 오직 목표물만을 정확히 조준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
“······‘작은 재앙’ 말입니다, 전하. 어쩌면 그것이 아닐까요?”
선대 국서는 잠시 눈을 내리감았다.
지금의 대화가, 오늘 그가 내리게 될 결정이 역사의 한 장에 어떤 식으로든 남게 되리라는 사실이 뼈아팠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이러한 두려움은 옅어지지 않으니 참으로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대략 일주일 전 신물이 가져온 다른 소식을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흑마법사였던 릴리아너 페네티안 선왕의 비밀 지하도. 그곳에서 모래알처럼 쓸려 나간 백성들.
그를 이용하여 또 다른 무고한 목숨을 숱하게 살해한 스네이더르 공작. 그리고······.
‘어째서 우리에게 이러한 비극이 벌어지는가?’
‘왕이 주신의 배를 갈라 그분의 힘을 빼앗고자 한다!’
예서, 그 아이의 단정한 글씨가 기록한 희생자들의 마지막 외침.
찻물 위로 떠오르는 수많은 문장 가운데서 노인은 필요한 말만을 골라냈다.
“······채비는 되어 있는 것이냐?”
“전하께서 재가해 주신다면, 뚝심 님이 곧장 블랑케르 공작령으로 날아가 제 아비에게 명을 전달할 것입니다. 현장에서는 저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궁은 모든 인간을 주인 삼는 자비로운 신물이니, 본연의 쓰임새를 거부하지 않을 테지요. 이미 적국 하늘에 수십만 장의 전단을 뿌린 경험도 있고 말입니다.”
에바가 기다렸다는 듯 후닥닥 말을 쏟아냈다. 소공작은 오늘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모든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스타니슬라스는 귀족원을 소집하는 방법 또한 고려해 보았다.
그러나 황궁의 절차는 길었고,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당장 이 소식을 프레데리크나 오렐리에게 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까운 황족과 현재 왕도에 있는 대귀족들을 불러 긴급히 논의하는 것뿐이었다.
“······.”
노인은 가만 굴뚝새를 바라보았다.
콩알처럼 작은 두 눈에서는 어떠한 의중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주신의 의지’ 그 자체인 신물의 뜻이라면······.
“······부디 생각할 여유를 다오.”
“전하.”
“몇 시간이면 될 게다. 다른 방안이 있지는 않을지 상의해 보고, 대륙 전도를 살펴보아야겠구나. 그동안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려도 좋겠다.”
국서가 상냥하게 덧붙였다.
에바는 자신의 논리가 너무 빈약했던 것은 아닐까 후회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사교계와 정계는 완전히 다른 동물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떠올라 뒷맛이 썼다.
그러자 헤릿이 그녀의 손을 더욱 꼭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
소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에바는 그것이 슬퍼 보였는지 기뻐 보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마르티어 제일스트라 경을 장미원에 맡긴 후, 이자벨 일행은 다시금 왕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들이 로세하르더 궁정백의 자택에 당도하고 채 여섯 시간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그야 당연한 결정이었다.
“맙소사, 안 돼, 안 돼······.”
-후드득······
그들이 신성한 장미밭에 도착했을 때는, 마테이스 로세하르더의 이적(異跡)을 확인할 만한 무엇도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이란의 영령’이 교황의 유해를 품에 안고 수도 방향으로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만이, 생자의 심장과 사자의 넋을 반쯤 헤집어 놓았다.
“이제 어떡하지요, 마담? 이쪽 길도 이렇게······!”
이자벨을 따라 마차에서 내린 산트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도로 통하는 길이 ‘또’ 흙더미와 부러진 고목 따위로 막혀 있었다.
스네이더르 반군이 성석 폭탄을 어찌나 많이 터뜨리고 지나갔는지, 길목에 쌓인 잔해물은 하나의 언덕배기처럼 너르고 드높았다.
반군을 추적하는 자들이 길을 돌아간다는 선택지조차 고려할 수 없도록, 인근의 지형까지 모조리 바꿔버린 지독한 패악질에는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하난 루마이얀은 어느 바위 아래 깔려 죽은 새끼 곰의 사체를 발견했다.
‘마테이스 로세하르더 성하의 유해는······. ‘소환진’의 발동을 단 한 차례 막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분께서 생전에 갈고 닦은 신력을 오롯이 당신의 육체로 쏟아부으신 결과입니다.’
장미원의 후계자는 헝겊 인형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테이스와는 별로 닮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곳 장미원의 지하실에는 그분이 직접 고안하신 방어진이 조각되어 있고······.’
‘······한데 영령님의 말씀으로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더군요.’
아니, 어쩌면 하난은 마테이스의 늙은 낯짝을 본 적이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령님과 성하께서는 일종의 거래를 하신 모양입니다.’
‘한평생 유리 페네티안의 행보를 감시할 수 있도록, 신물의 축복을 받으신 것으로 추측······.’
‘그릇 안에 정화의 힘을 받아 간직하셨고······.’
궁금했는데. 하난은 문득 부서진 기억 한 조각을 찾아냈다.
먼 옛날의 그녀는 마테이스가 늙으면 어떤 얼굴이 될지 알고 싶어 했다.
“영령께서 기어코 왕도의 경계를 넘어 들어가신다면, 주신 소환에 필요한 네 가지 속성 중 남은 것은 공기뿐입니다.”
“역풍의 예기, 세상에, 엘리서 왕세녀께서 곧 왕도로 들어가시겠지요. 우리가, 우리가 숲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였나 봅니다. 설마하니 영령님이 오실 줄 알았더라면······!”
이자벨과 산트가 하얗게 뜬 얼굴로 말을 주고받았다.
특히나 사제는 아버지와 큰형을 만난 이후로 살이 반쯤 내린 듯한 모습이었다.
마부들 또한 시꺼멓게 쌓인 퇴적물 앞에서 망연자실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내 침묵하던 하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모두 물러나라.
“예, 폐하. 다른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저희에게는 지도가 있으니······.”
-물러서라 하였다, 이자벨.
‘키이이잉―’ 인형의 두 눈이 시뻘건 핏빛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화신인 이자벨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강렬히 공명하는 그릇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뒷걸음질했다.
산트 역시 주춤주춤하며 마부들 곁으로 붙어 섰다.
-휘우우우······
-지이잉······
곧 손바닥만 한 인형의 몸통에서, 붉고 웅대한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감각에 이자벨은 차마 문장조차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아주 짧은 선언이었다.
-짐이 직접 길을 낼 것이다.
-쿠구구구구······!
*
세상에, 여기는 또······!
-둥, 둥, 둥, 둥!
“북이에요, 궁주님. 성문 안에서 북소리가 나요!”
우리가 드디어 왕성 앞에 도착했을 때는, 판테온 광장보다 더한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성벽 바깥이 아닌 ‘안에서’ 전장의 소리가 나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해답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얻을 수 있었다.
-둥, 둥, 둥······!
“쳐라! 귀족은 전부 포로로 잡아라!”
“와아아아······!”
빼곡히 도열한 왕성 친위대가 향하는 곳 역시, 성의 안쪽이었다.
나는 충격으로 눈을 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