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784)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784화(784/920)
불길은 타오르고 가마솥은 끓으며 (4)
십여 분 전, 페네티안 왕도.
왕성으로부터 사백 걸음가량 떨어진 곳.
“언니, 빨리! 짐은 무거우니까 버리고 그냥 와!”
“이걸 어떻게 버리니, 우리 인생이 여기 다 들어 있는데 어떻게 버려!”
“그러다 길바닥에서 죽으면 인생이 다 무슨 소용이야! 바보야!”
어느 중년의 자매가 옥신각신하며 전쟁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는 끔찍한 고성과 비명, 최후를 예고하는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 등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까딱하여 고개를 잘못 돌리기라도 하면 도심 곳곳에는 지뢰처럼 참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부서진 것들, 죽은 생명들, 길 잃은 자들······. 그들 또한 그런 꼴이 될 수는 없었다.
한 여인이 성큼성큼 다가와 다른 여인의 등짐을 땅에 내던지고는 팔을 잡아끌었다.
-와장창!
“세상에, 얘! 저게 다 얼마짜리 장비인데! 우리 기반이잖아!”
“장비야 또 만들면 돼! 내려가서 목숨 붙이고, 일할 대장간 찾아서 다시 돌아다니면 돼!”
“야아아아······!”
어디선가 폭발하는 함성에 고막이 얼얼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왕성의 새하얀 장벽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나 온 왕도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탓에 빠져나가는 길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기사를 태운 군마들이 사방에서 무시무시한 말발굽을 굴러댔으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창칼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로 발톱을 할퀴어 댔다.
불붙은 몇몇 건물과 횃불 탓에 어스름 속으로 매캐한 연기마저 퍼지고 있었다.
온 얼굴에서 땀과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자매는 미친 사람처럼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걷고 뛰었다.
그러다 어느 행인과 크게 부딪혔다.
-퍽!
“아!”
“맙소사! 괜찮니?”
“······감히.”
한 여인이 발라당 자빠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내 독사처럼 쉭쉭거리는 목소리가 자매를 겁박했다.
“네놈들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이 몸이 누구인 줄 알고 함부로 손을 대느냐?”
“헉! 죄송, 죄송합니다, 나리! 저희는 그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허겁지겁 동생을 일으키던 여인이 넙죽 땅바닥에 엎드렸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말투와 태도에서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압감이 있었다.
이렇듯 질서가 무너진 전쟁통에 귀족 나리에게 밉보였다가는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에 질린 자매가 저자세를 보이자, 남자는 길쭉한 무언가로 한쪽의 턱을 겨누었다.
“······허억!”
날 끝이 돼지의 내장처럼 시뻘겋게 번들거리는, 아주 커다란 낫이었다.
베르너르 페네티안은 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기어코 여인의 목에서 피를 보았다.
주름 하나 없이 미끈한 뺨이 곪디 곪은 기대와 흥분으로 마구 경련하고 있었다.
“바른 대로 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왕성은 어느 방향이냐?”
“저, 저기! 바로 저 앞입니다! 걸어서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연기, 연기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사위가 너무 어두워서 그래요!”
“······.”
약한 이들을 상대로 악랄한 위협을 가하던 남자가, 그제야 비로소 느릿느릿 시선을 들었다.
눈꺼풀을 감기 시작한 주신의 눈동자는 먹구름인지 매연인지 모를 것에 가려 흐릿하기만 했다.
그러나 국왕의 남편으로서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었다.
아득히 높은 밤하늘, 가장 고고한 성탑 꼭대기에서 바닷바람을 받아 펄럭이는 신성 왕가의 깃발을.
-휘이이이······
“오······.”
드디어 돌아왔다. 온 페네티안을 방랑한 끝에······.
“······비켜라.”
다시금 그녀의 곁으로.
“당장 죽고 싶지 않다면.”
“예, 예!”
저주처럼 떨어진 말에 두 여인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 동생이 베르너르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언니가 기겁하며 그녀를 뜯어말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둑한 연무 속에서도 분명히 보았다.
오른쪽 허벅다리가 반쯤 잘린 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절뚝거리며 나아가는 자를.
이미 오른팔을 잃은 자를. 시커먼 넝마주이를 걸치고서 번질번질한 눈알을 빛내며······.
쉴 새 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뇌까리는 남자를.
-저벅, 지이익, 저벅, 지이익······
“하아, 허억······. 크리스타너······. 크리스타너.”
“세상에······.”
그가 발길을 내딛는 자리마다 흑연 가루처럼 보이는 것이 후드득 떨어졌다.
자매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억누르고서 무해(霧海)의 한복판을 내달려 사라졌다.
베르너르 페네티안은 그렇게 한참이나 걸어 나갔다.
그의 정수리를 희미하게 비추는 달빛 대신, 오로지 왕성의 머리꼭지에 내걸린 깃발 하나만을 이정표 삼아.
이제 거의 다 왔다. 정말로 그녀가 코앞에 있다.
“어어어어······!”
-키기기깅!
“안 돼! 다들 피해!”
‘콰아앙!’ 대로 저편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기울고 쓰러지는 참담한 소리가 났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고함이 무작위로 허공을 찔러댔다.
그러나 베르너르는 단 한 번도 그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고서 비치적비치적 왕성만을 바라보고 걸었다.
오직 아내의 관심만을 갈구하며 살았던 그 오랜 세월의 자신처럼.
-저벅, 지이익······
-콰콰콰콰앙!
두 개의 바퀴를 잃은 마차가, 말도 마부도 없이 미끄러져 그에게로 돌진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그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였다.
-쌔애애액!
-키기기기기······!
별안간 찻간이 몹시 기이한 방향으로 홱 틀어지더니, 그 반동으로 인하여 대로 건너편까지 쏜살같이 메다 꽂혔다. ‘콰콰콰앙!’ 그리고 ‘으아악!’, ‘꺄아아악!’ 이어지는 한심한 것들의 비명. ‘쨍그랑! 쨍그랑쨍그랑, 쩽그렁쩽그렁!’ 유리창이 깡그리 박살 나는 요란한 소음이 한순간 군사들의 함성이며 서로를 베어 죽이는 소리마저 묻어버렸다.
베르너르는 여태 그쪽으로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삶에 죽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목숨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자신과······.
“······크리스타너······.”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그예 이곳까지 오셨군요.”
“······.”
우뚝. 마법처럼 발걸음이 멎었다.
베르너르는 거친 호흡이 더욱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사아아아······
“······.”
소름 끼칠 만큼 익숙한 노파였다.
그녀의 주름진 손끝은 나릿나릿 허공을 긋고 있었고, 그 선을 따라 검은 가루가 굳은 잉크처럼 흩날렸다.
국서는 그제서야 그녀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전속력으로 치달은 어느 화물 마차가, 기적적으로 그를 피하여 들입다 처박힌 곳이었다.
욕망으로 반들거리던 남자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너······. 나를······.”
“참으로 행복한 낫이 아닙니까.”
노인이 그의 무기를 보며 뜻 모를 말을 읊조렸다.
베르너르는 빠르게 두 눈을 깜빡거렸다.
온 세상의 잡소리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듯한 감각이 잇따랐다.
“곧 새로운 덮개가 생길 터이니 말입니다.”
“······.”
“가십시오. 마침내 꼭꼭 숨어 있던 운명을 발견하여 손아귀에 쥐어 보십시오.”
“······.”
“더욱 귀하게 되실 것입니다.”
노파가 시꺼먼 입을 활짝 벌려 웃어 보였다.
기함한 국서가 허겁지겁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놀라울 만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두 귀가 뻥 뚫리는 느낌에 남자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뿌우우우······!
“와아아아!”
“리에스테르, 진격하여 왕성을 포위한다!”
“황제 폐하 만세!”
“야아아아······!”
노인이 홀연히 사라진 곳에 남은 것은, 변함없는 전쟁통이었다.
리에스테르, 페네티안, 코를레오네, 스네이더르, 발렌틴, 자경단, 친위대, 도적 떼와 천것들······.
비루한 목숨이 축생도처럼 얽히고설킨 난장판에서, 베르너르는 홀로 누구의 공격도 받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흐린 달빛으로 유독 새카맣던 지평선 너머에서는 수천 개의 주홍색 등불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아······.”
그것은 일종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국서는 다시 한번 자신의 고결한 위치를 깨달았다.
신성한 간택을 받은 이. 주신의 피조물은 감히 누가 와도 해칠 수 없는······.
-타앙!
바로 그 순간, 청아한 두드림이 왕도의 온 땅을 울렸다.
-히히히힝······!
이어서 어느 군마의 울음소리가 검은 안개를 헤치고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펄럭, 펄럭!’ 곧 거대한 날짐승의 나래짓 소리가 암흑을 파훼하며, 한 줄 두 줄 허공에 금빛 가닥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그 방향이었다. 부서진 마차가 거세게 처박혀 모든 것을 산산이 조각낸······.
[리에스테르, 지금 출격합니다!]······‘그’ 목소리. 국서의 고개가 부러질 듯 홱 돌아갔다.
[제국에 투항하는 자는 모두 살 것이요, 저항하는 자는 반드시 화를 입을 것이니!]“와아아아······!”
“궁주 마마 만세······!”
도심 곳곳에서 말도 안 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서로를 절멸시킬 듯이 싸우던 스네이더르와 발렌틴 가문조차 경악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찰나였다. ‘펄러덕, 펄러덕!’ 기적처럼 안개와 어둠이 썩 물러가며, 여섯 장의 날개를 단 청년이 달빛을 뿜는 지팡이를 쥐고 천공으로 솟아올랐다.
너무나 눈부셔 차마 올려보기조차 힘든 광경이었다.
월광을 정면으로 겨눈 베르너르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바로 이곳에서 페네티안 왕가의 욕망이 심판받을 것입니다!]“야아아아아······!”
반면 청년의 두 눈동자는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전율이 일었다.
‘심려 마십시오. 주신의 피조물은 결코 전하를 죽일 수 없으며······.’
“아니야.”
이것은 불가능하다.
[녹틸루카Noctilúca!]-타아앙!
그러나 주신의 치천사가 다시금 허공을 두드렸을 때는, 베르너르조차도 믿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별안간 전장 한복판에 나타난 상서로운 존재 앞에 왕도의 절반이 납작 엎드려 기도를 올리는 순간이었다.
-쏴아아아······!
[회개하십시오!]-콰르르르르······!
“우와아아······!”
몹시 거대한 건축물이, 판테온조차 그 이마를 조아릴 법한 웅장한 신전이 눈부신 성지(聖地) 위로 천천히 솟아나고 있었다.
베르너르는 언젠가 방문한 적이 있는 그곳을 바라보며 껄떡껄떡 숨을 들이켰다.
굵직굵직한 기둥을 휘감고 자라난 세계수, 온 대륙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크고 너그러운 지붕, 압도적인 전면부를 장식한 교황들의 조각상······.
그 모두가 황금빛이었다.
‘경계의 신전이 왕도로 오기 전에는 스네이더르가 망하지 않습니다.’
아니야.
“아니, 아니지, 아니······.”
온몸이 벌벌거렸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목통이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헛소리! 사기꾼 같으니! 거짓말하지 마라!”
[흐아아압!]허공에서 쌩하니 한 바퀴를 회전하여 하얀 바람을 휘감은 천사가, 그대로 성장을 치켜들고서 왕성의 보호막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콰콰콰앙―!
“으아아악!”
“맙소사, 주신께서 신국을 벌하신다!”
그리하여 최후의 심판이 시작되었다.
*
그 시각.
“저기요, 므시외. 저기 위에.”
경계의 신전 바깥에서 현지 주민들의 물건을 구입하던 뱅자맹은, 상인의 손짓을 따라 찬찬히 시선을 옮겼다.
“오······. 주신 맙소사.”
신전의 지붕 굴뚝에서, 또렷한 보라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