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01)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01화(801/920)
데아 엑스 마키나 (3)
그리하여 하얀 우주의 한복판에, 성반(聖盤)이 자리했다.
-쿠구구구······
“······.”
【······.】
「······.」
신기할 정도로, 그것은 내가 경계의 신전에서 마지막으로 목격하였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면에는 티끌 한 점 묻어 있지 않았고 핏자국도 없었다.
아무런 온도가 없는 잿빛 쟁반은 보물이라기보다 골동품에 가까워 보였다.
오히려 신물을 떠받친 것들이 신의 위엄을 대신 드러내려는 듯 수십 배는 아름답고 화려했다.
오색으로 찬란한 보석이 박힌 금 받침대, 주신의 대륙 창조 신화가 연대기 순으로 조각된 겉모양······.
【뭐라고 쓰여 있어? 작아서 잘 안 보여.】
태초부터 이곳에 있었던 가장 어린 신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내게 물었다.
나는 설핏 웃으며 은서를 올려다보았다.
“······갓 삶은 이불처럼 깨끗한 공간에 어떠한 먼지도 없었던 날. 최초의 반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대. 달그락달그락. 그것들이 소리를 내자 우주에는 노래라는 것이 생겼고, 그것들이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우주에는 춤이라는 것이 생겼어. 그리하여 세상에는 즐거움이 탄생했고, 검은 꿀이 냇물처럼 별과 별 사이를 흐르게 되었대. 달콤한 밀주(蜜酒)를 맛본 주신은 그중 세 방울을 양분으로 삼아 하늘과 바다와 대지를 창조하고······. 모든 생명에 직접 불꽃을 불어넣었다고 해.”
【우와.】
“해님은 주신의 서쪽 눈동자, 달님은 주신의 동쪽 눈동자. 한쪽 눈을 감은 시간에도 다른 눈을 뜨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대륙을 굽어살필 수 있대.”
【······아.】
인제 와 생각하면, 모든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주신은 유일신이지만 단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었다.
‘독자’라는 하나의 단어가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의 신을 포함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요컨대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의 독자들은 언제나 대륙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낮에, 저 사람은 밤에.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누군가는 태블릿으로, 또 누군가는 PC 화면으로······.
그래, ‘기계 장치로 내려온 신’.
데아 엑스 마키나(Dea Ex Machina).
“그런데 이 땅을 창조한 주신은······. 단 한 번도 대륙에 몸소 강림한 적이 없대. 오직 대륙 전역의 에테르를 통해서만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뿐이야.”
‘그녀’. 주신이 여성으로 특정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퇴계공의 독자는 구십 퍼센트 이상이 여성이라는 통계도 있었으니까.
【어, 그거는 퇴계공에서도 읽은 적 있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네 얘기였던 거야.”
【······그러네. 나는 지켜보기만 하지, 직접적인 개입은 못 하니까. 강림하면 진짜 큰일 나지······.】
정은서가 중얼중얼하며 성반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꼬맹이의 고개가 모로 기울고, 연보랏빛 성운도 녀석을 따라 사선으로 흘렀다.
【······근데 왜 속이 비었냐? 이거 원래 안에 찰랑찰랑 물 같은 거 있었는데. 그게 공식 설정인데. 아니다, 좀 바뀌었던가?】
꼬마는 역시나 지난 ‘꿈’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에 답을 돌려준 것은 내가 아니었다.
「위대하신 주신께서 친히 부어 쓰셨습니다.」
······뭐?
【잉?】
“······방금 뭐라고 했어?”
「신께서 직접 부어 쓰셨노라 말씀드렸습니다.」
보제나. 개연성을 지키는 세 자매 중 한 사람의 설명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들이 지금 우리에게 거짓을 고할 이유도 없었다.
덥석 신뢰할 수가 없으니 일단 의심하고 보기는 하는데······.
“잠깐만.”
아니, 말이 되잖아? 나는 퍼뜩 성장을 들어 올리곤 기다려 보라고 몸짓했다.
정은서가 병아리색 후드의 끈을 죽죽 잡아당기며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일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 갔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저와 남편이 그 신물에 관한 수소문을 계속하다가, 신국 소식줄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봄 무도회. 나에게 정보를 건네고자 스트로다 궁을 빠져나왔던 이자벨의 얼굴.
‘신국의 고위 신관들은, 신전의 신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쓰임을 다했다’고 해석하고 있다더군요.’
‘쓰임을 다했다는 건······.’
‘누군가 이미 그곳에 소원을 빌었고, 그 바람이 이뤄지면서 신물이 영구히 훼손되었다고 본다고 합니다.’
“······당연히.”
주신이 직접 소원을 빈 거야.
그냥 정은서가 아니라, 신격(神格)을 지닌 정은서가.
이보다 명쾌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 또 뭐 잘못했대?】
“너, 예서 왕자님이 전쟁터에서 죽은 날 밤에.”
【그런 말 하기 전엔 예고 좀 해줄래? 겁나 PTSD 오거든?】
“그날 자면서 소원 빌었어? 왕자님 살려달라고 빌었지?”
【소원? 웃기고 있네······. 소원 같은 예쁜 단어로는 표현도 안 될 만큼 구구절절 추잡하게 빌었어요. 나 진짜 새벽 세 시 넘어서까지 잠 한숨도 못 잤어.】
“오케이, 확인.”
성반은 오로지 교황만이 다룰 수 있는 신물이라지만, 왕자의 부활은 무려 주신이 원했던 일이었다.
은서 외에도 수많은 독자가 함께 빌었을 테니 그 신력(神力)은 더욱 막강했을 테지.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다른 조건이 하나 더 있었지만······.
“맞아. ‘피로 염원하면 이루어 준다.’”
【······피까지 봐야 진심인 거임? 빡세네. 우리 왕자님은 건강한 독자를 더 좋아할걸?】
아니.
“피를 볼 필요가 없었지. 넌 이미 ‘고귀한 혈족’인데.”
나는 일부러 그 단어를 강조하며 보제나의 낯짝을 확인했다.
그러자 세 자매가 동시에 끔찍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는 언젠가 그들이 나를 두고 사용했던 표현이기도 했다.
정은서는 원작자인 엄마의 딸이자, 대필 작가인 정현서의 동생이었다.
퇴계공의 창작자인 두 사람과 피로 이어진 신성(神性)이 있으니 구태여 고전적인 방식으로 조건을 채울 까닭이 없었다.
【혈족 이러네.】
“내 말이. 그런데 저분들은 그런 걸 참 좋아하셔서.”
「······.」
비꼼을 듣는 세 노파의 낯빛에는 어떠한 유감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저들은 언제나 그러했다.
화를 내는 법도, 기뻐하는 법도,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드러내는 법도 없었다.
그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판에 찍어낸 무표정으로, 사람들이 고통받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뿐.
「개연(蓋然)에는 감정이 없습니다.」
“······.”
그중 낫을 든 노인이, 나의 속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했다.
나는 잠든 티테를 단단히 보듬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귀하신 분께서는 줄곧 우리를 원망하셨지요.」
하······.
“그걸 말이라고 해? 그동안 당신들이 우리한테 한 짓을 생각해. 원망 안 하게 생겼어?”
「하나 우리에게는 어떠한 사감도 없었습니다.」
“그게 더 진저리나, 그게 더 막막하다고! 차라리 악감정이 있어서 그랬으면 설득이라도 하지······.”
「최소한의 개연성을 갖추지 못한 세계는 스스로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따름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결말을 막기 위하여······.」
“그놈의 개연성 타령 계속할 거면 그냥 입 닥쳐. 제발.”
끊임없이 폭언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머릿속의 필터링이 완전히 고장 난 참이었다.
지금 나의 눈에 저들은 그저 살인하는 기계로 보였다.
나는 여전히 엘리서의 피로 범벅이었으며 나의 품에는 잠든 아기가 있었다.
거기다 이제 등 뒤에는 하나뿐인 동생이 자리했다.
내가 직접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태권도 학원 버스를 태워주었던, 앞으로도 영원히 코흘리개일 정은서가.
「······신성 세계선에는, 물레질하는 신의 위력이 부재하였습니다.」
“······.”
개연성 이야기를 할 바엔 차라리 닥치라는 의견을 받아들인 것인지, 다른 노파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어느새 자매는 성반의 반쪽을 둥글게 에워싸고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는 묘하게 압박감을 주는 진형이었다.
조금 전 내가 은서에게 부탁하려던 것을 중간에 끊어내기까지 했으니, 확실히 나에게 용건은 있는 모양인데······.
「조금만 수틀려도 모든 것이 붕괴할 수 있는, 가녀리고 위태로운 세계선이었습니다.」
「‘태초의 시선’을 받지 못한 세계선은 영원히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요.」
“여기서까지 스무고개 할 생각 없어. 알아듣게 얘기해.”
【나는 알아듣겠다. 이건 알아들었다.】
딱! 정은서가 손가락을 튕겼다. 하마터면 고막이 터질 뻔했다!
“윽······.”
【미안, 진짜 미안. 괜찮아? 이제 안 할게. 아, 이런 부작용이 있네, 이게.】
“······괜찮아. 저 사람들 말이 무슨 뜻인지나 얘기해 봐.”
【아니, 시선이라는 거는 독자의 시선이잖아. 그치? 아까 오빠가 그랬으니까. 여기 사람들은 평생 그걸 바라고 살아간다며.】
“어.”
【그러면 ‘태초의 시선’이라는 거는 당연히? 처음으로 소설을 보는 눈이라는 뜻이지. 직역하면.】
“어.”
【······아, 원작자 말이야, 원작자. 원래 작가는 소설의 첫 번째 독자잖아. 작가님도 당근 주신의 일부이지 않겠음?】
“······.”
뭐야, 제법 그럴듯하잖아?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동생 녀석을 올려보았다.
그러자 정은서가 오래간만에 뻐기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천재죠?】
“잠깐, 그럼······.”
‘물레질하는 신의 위력이 없다.’ 이 문장을 해석하면······. 원작자가 새로운 실을 자아내지 못하는 세계선이다.
‘태초의 시선을 받지 못했다.’ 작가의 검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선이다.
그렇지, 전부 지당한 소리다.
여기는 예서 왕자를 살려달라는 주신의 간곡한 바람이 탄생시킨 세계니까······. 정현서도 직접 발견하기 전까지는 존재를 몰랐고, 아마 엄마도 몰랐을 거야.
물론 두 사람의 상상력이 더해진 곳은 맞아. 실제로 버려진 설정, 독자님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비설들이 여기저기에 꽤 있었으니······.
주신의 일부인 작가. 그러나 작가는 개입하지 못하는 세계.
정은서의 가설이 완벽하게 옳다.
“그러면 너희는 정말로······. 원작자가 없는 세계를 지키려고 그딴 짓을 했다는 거야?”
내가 오만상을 쓰며 물었다.
“아무도 여기에 새로운 문장을 써 주거나 검토해 주지 않으니까, 너무 불안정해서 자체적으로 작가 노릇을 했다고?”
그러자 세 자매가 인공지능처럼 순차적으로 문장을 내뱉었다.
「익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틀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주신께서는 변덕스러운 존재이시지요. 이것은 고유한 신의 기질이며 우리가 언감히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일 분에 수만 가닥의 꿈이 뽑혀 나오고, 한 시간에는 수십만 개의 꿈 타래가 탄생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걸러내야 합니다.」
「누군가는 실을 감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실을 잘라야 합니다.」
정확히 같은 세 개의 목소리가 내게 답변했다.
나는 미약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반걸음 물러났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너희의 존재 이유가 그거라고 쳐.”
주신의 변덕스러움. 그 또한 지금 생각하면 타당한 성질이다.
주신은 한 명이 아니니 그들이 바라고 꿈꾸는 것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똑같이 예서 왕자를 살려달라고 빌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다양했을 거야.
어쩌면 ‘너무’ 다양했겠지.
이곳에 작가가 있었다면 그분들의 뜻을 적당히 반영하고 또 반려했겠지만······.
“······아니, 그래도 내 의문은 안 변해. 난 여전히 너희의 폭정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
나는 성장을 지팡이처럼 짚고 의지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은서가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저번에도 물었지. 오늘 다시 한번 묻자. 개연성이 왜 필요해?”
「개연성이 없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붕괴하며······.」
“그래, 그건 맞는데. 작가도 없고 어쩌고, 거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
“개연성은 소설에나 있는 거잖아. 그런데 이건 소설을 기반으로 탄생한······.”
‘현실이잖아.’ 쩌렁쩌렁 고함치고 싶었는데, 반대로 속삭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세 자매는 그런 나를 고요히 바라볼 뿐이었다.
“현실에는 결말이 없어······. 현실은 그냥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린 듯한 악역도 없고, 그린 듯한 선인도 없어. 잘 만든 악역? 현실엔 절대로 그런 거 없어. 저급하고 비열하고 지나치게 오래 사는 놈들 천지야. 욕 많이 먹어서 더 악착같아. 베르너르 페네티안 못 봤어?”
「그는 확실히 우수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쓰임새는 다했지요.」
“······내 말은······.”
지치면 안 돼. 아직 끝장을 보려면 멀었어. 나는 속으로만 되뇌며 한숨을 삼켰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스친 이마가 몹시도 뜨거웠다.
“좋아. 무슨 ‘결말’을 원해서 이러는데?”
「······.」
“막말로, 이제 다 왔잖아. 아니야? 나 지금 너희 주신 만났어. 이게 진짜 소설이라면 여기야말로 완결 근처인 거야. 이 세계는 나한테 의지하고 있으니까. 그게 팩트니까.”
「······.」
“내가 그때 말했지. 동산 세계선이 사라지기 직전에······.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주신에게 다리를 놔달라고. 그러면 내가 신과 직접 거래하겠다고. 그랬더니 너희가 뭐라 그랬어?”
「귀하신 분께서 아직 그만한 개연을 쌓지 못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동 응답기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숨죽여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은서도 어깨를 으쓱했다.
“드디어 내가 ‘개연성’을 전부 충족한 모양이네, 그렇지?”
「······.」
나를 보는 세 노파의 시선이 검게 번들거렸다. 진심으로 구역질이 났다.
나는 아직도 그날 들었던 참담한 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자매가 원망스러우실 것입니다. 우리를 이해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도 우리의 진의를 의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우리는 약속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반드시 그러한 결말을 맞을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말해 봐, 너희의 그 잘난 목표라는 거. 마침 주신께서도 듣고 계시겠다.”
「······.」
“말해. 네놈들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좇았던 그 결말이 뭔지.”
「······.」
“당장.”
「······.」
“지껄여!”
이를 갈며 경고하듯 외치자, 세 자매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무언가에 동의하는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들의 주름 진 눈이 스르륵 감겼다.
-휘우우······
그러자 조용히 별빛만이 흐르던 우주에, 어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은서의 손등을 짚은 채로 두 눈을 부릅떴다.
보제나의 검은 로브가 잉크처럼 사방으로 번지고 있었다.
까맣고 불길한 액체는 삽시에 선을 이루고, 선은 또다시 면을 이루었다.
나는 한참 후에야 그것이 책자의 형태를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매의 머리 위로 떠오른 아주 거대한 공책······.
-팔락, 팔락팔락, 팔락······
“잠깐······.”
드디어 완성된 수첩은, 무척 낯이 익었다.
표지의 생김새도 그렇고 내지 색깔마저 내가 아는 것과 똑같았다.
뚝, 심장이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설마 하며 황급히 세 자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팔락팔락, 팔락팔락팔락······!
“헉, 허억······.”
예서 왕자님의 수첩이, 맨 앞장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그즈음 나는 호흡하는 방법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는······.
-팔라닥······
‘주인공들과 엮이지 말고, 종전까지 살아남아 건강하게 귀가하자!’
과거의 내가 적은 문장이, 까마득한 곳에서 나를 오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