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10)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10화(810/920)
붕궤하는 바벨 (1)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다시금 생명의 불빛이 반짝인다.
깜빡······.
“와아······!”
깜빡깜빡······.
“야아아아······!”
깜빡깜빡깜빡깜빡······!
“리에스테르······!”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쿠구구구궁!
“리에스테르! 너희의 황제가 여기에 있다, 물러서지 마라!”
“우와아아아아······!”
-뿌우우우우!
오랫동안 흑과 백의 빛깔만을 번갈아 흩뿌리던 하늘이, 마침내 눈부신 아침 햇살로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잠시나마 사라진 듯했던 대륙은 천공마저 진동시키는 땅울림과 함께 완벽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물론 그중에서 진실로 ‘새로움’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리에스테르! 무기를 쥐어라! 주신과 황제 폐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왕성이 완전히 무너졌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흐아아아······!”
-둥둥! 둥둥! 둥둥······!
조금 전 분명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변이 발생했다.
대륙판과 해양판이 통째로 몸을 떨며 깊은 신음을 토해냈고, 온 세상은 납작칼로 긁어낸 것처럼 새하얗게 지워졌다.
그리하여 모든 목숨은 한순간에 무(無)로 돌아갔다.
본능적으로 존재가 스러지고 있음을 깨달은 백성들이 ‘주신의 진노’를 부르짖으며 어딘가로 숨거나, 눈물을 쏟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제국군과 신국군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려 신의 자비와 용서를 간구했다.
만천하를 뒤집어 놓은 소란이 고작해야 몇 분, 아니, 어쩌면 몇십 초 전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삽시에 거짓말처럼 해결되어 버렸다.
모든 이상(異常)이, 어떠한 예고도 없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는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세워야만 했다.
“제국 땅에서 태어난 자는 모두 나를 따르라!”
“황제 폐하를 따르라!”
“와아아아아······!”
천지가 태양의 은총을 받아 제각각의 생기를 뿜어내고 또 단말마를 외치며 죽어갈 무렵, 전쟁은 가히 정점으로 치달아 있었다.
뿔피리가 적군의 고막을 터뜨릴 듯 무시무시한 울음을 토해냈고, 북소리는 페네티안 왕도의 동서남북에서 울렸다.
살아서 무기를 휘두르는 자의 대다수가 제국군이었다.
반면 돌바닥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자는 대부분이 스네이더르 반군이었다.
-콰과과과광······!
“제군! 붉은 옷을 걸친 놈은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스네이더르의 앞잡이는 모조리 생포하라는 황명이 있으셨다!”
“야아아아아······!”
전세(戰勢)는 완연히 한쪽으로 기울어 더는 균형을 되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신국의 수도는 구 할 이상이 제국군에 의하여 점령당한 상황이었다.
다섯 살 핏덩이의 눈에도 이미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요새와도 같은 저 왕성에서 국왕이 나오기만 하면, 남은 것은 항복 절차와 종전 협상뿐이었다.
그리하면 마침내 전쟁의 막이 내릴 것이다.
패자(霸者)의 정무는 바로 그날로부터 새로이 시작된다.
-히히히힝!
“워어, 하!”
성유물 ‘선황의 말안장’이 눈부신 빛살로 번쩍이고 있었다.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는 실베스트르의 목덜미를 두드려 주며 보검 뒤랑달의 피를 털어냈다.
새빨간 핏방울이 피로 물든 흙바닥에 또 다른 흔적을 덧그렸다.
그녀의 주변을 에두른 황실 근위대가 기나긴 망토를 휘날리며 최후의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황제는 잠시 고개 들어 코앞의 왕성을 올려다보았다.
-지이이잉, 카가가강!
“······.”
-채채채챙! 쿠구구구······!
“아아아악!”
“윽! 커허억!”
수십 개의 마법식이 열리고 또 닫히며, 예리한 창검이 부딪고 또 부서지는 소리.
죽어가는 자들의 덧없는 비명.
차마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사막에서 왕을 기다리던 혼령들의 처절한 복수와, 마침내 저주를 벗어던지고 자유의 몸이 된 마수들의 냉혹한 대갚음.
동해에서는 전투 마법사들과 해군이 함선을 끌고 운하로 들이닥쳤으며, 남부에서는 강력한 병장기로 중무장한 발렌틴 가문의 사병들이 벌 떼처럼 치고 올라왔다.
“주신께서 제국을 총애하신다! 단 한 발짝도 후퇴하지 마라!”
“으아아아아······!”
해가 뜨기 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소음 너머로, 기이한 육감이 군주의 덜미를 쓸고 지나갔다.
이내 암적색 눈동자가 운명의 실처럼 가늘어졌다.
“······묘하군.”
-우르르릉! 꽈가가강······!
“끄아아아악!”
보호막이 완파되어 날카로운 번개가 내리꽂히는 왕성은, 어쩐지 썩 허전해 보였다.
비단 ‘본성’이라 불리는 가장 드높은 첨탑이 무너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꽁꽁 얼어붙은 해자가 메마른 바닥을 드러내서도 아니요, 신물 ‘사룡의 심장’이 왕성의 견고한 외벽을 모조리 무너뜨려서도 아니었다.
게다가 붕괴한 본성의 중심에는 신물 ‘수목의 신궁’의 권능으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화살이 박혀 있었다.
저렇게 큰 날붙이가 대관절 언제 날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좌우지간 저것이 모든 전투를 끝낼 마지막 한 방을 제공한 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프레데리크의 신경을 긁어대는 것은 따로 있었다.
분명히 방금까지 저기에······.
“······무언가 있지 않았던가.”
아름다운 황금빛.
그녀는 안개 낀 무의식 너머에서 휘황하게 번쩍거리던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이나 불확실한 조각이었다.
고작 몇 분 전까지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면 그녀가 기억하지 못할 리 만무하며, 아군과 적군이 이토록 무감각하게 반응할 리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어어! 왕족들이 나온다! 페네티안 왕족들이 성문 밖으로 나온다!”
“아아아아아······!”
“폐하! 폐하, 페네티안의 왕족들이 하얀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
그때, 황제가 생각을 이어갈 틈도 없이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과연 근위대의 말대로 성문 안쪽에서 화려한 갑주를 입은 자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꼬마들이었다.
선두에서 하얀 깃발과 페네티안의 왕실 문장을 들고 걷는 왕족은 그중 연장자로 보였는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미루어 저 행진은 분명한 투항의 의미였다.
프레데리크는 즉시 국방부 장관과 친우를 호출했다.
“카롤린, 그자비에 공작을 데리고 가서 저들의 신병을 확보하도록. 무리 가운데 국왕이 있다면 이 몸이 친히 움직이지.”
“맡겨만 주십쇼.”
“왕족은 털끝 하나도 다쳐서는 안 돼.”
“거참, 누굴 망나니로 보시나?”
짧게 휘파람을 분 소드마스터가 장관과 더불어 말을 달려 나갔다.
프레데리크는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실베스트르를 다독이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대략 천 년간 페네티안의 왕도였던 이곳은, 과거 우니오 왕국의 후작이자 추기경이었던 유리 페네티안의 영지였다.
동쪽으로는 풍요의 바다를, 서쪽으로는 멤피스 산맥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어 당대 백성들로부터 천금(千金)과 천은(天恩)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했다.
추기경은 고향 땅인 이곳을 새 나라의 왕도로 삼기 전까지 내내 자식처럼 아끼며 돌보았다.
지금은 옛 지명으로 불리지 않으나, 당시에는 그가 직접 붙인 이름이 더욱 유명했다고 들었다.
‘바벨(Babel)’.
-둥둥둥, 둥둥둥······!
“이봐, 왕족들이 나온대! 저기 좀 보라고! 페네티안 왕족들이 밖으로 나온대!”
“그러면 우리가 이긴 거네! 응?”
“어어? 진짜로? 투항하는 거야?”
“정말이야? 이겼어? 드디어 끝인가?”
“와아아아······!”
머리끝까지 고양된 군사들 사이로 수군거림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리에스테르 황족과 귀족 기사들 또한 전쟁의 끝자락을 잡고서 기나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왕성의 정문 앞은 삽시간에 구름 떼처럼 모인 제국군 병사들로 빽빽해졌다.
그즈음 황제를 보좌하는 세실 블랑케르 공작이 어느 기사의 보고를 받고서 차츰 표정을 굳혔다.
프레데리크는 고요히 시누이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지?”
“······불 속성의 신수님과 지브릴 디오프 공자가, 빌헬미나 스네이더르 공작을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왕도의 신국 귀족과 백성들로 구성된 자경단이 그자를 직접 감옥 마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자결하지 못하도록 입에는 재갈을 물렸고, 몸에 숨기는 무기가 없도록 머리장식부터 신발까지 모조리 빼앗았다는 보고입니다.”
“······복수로써 명예를 짓밟았군. 그자에게는 걸맞은 몰락이 되겠어.”
“한데 신수님에게 물린 부상이 심각한 탓인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사술(邪術)을 쓰는 것인지······.”
세실이 말을 잠시 멈추었다.
황제는 마지막까지 뒤랑달을 높이 치켜들어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아아아아! 항복! 항복! 항복······!”
“리에스테르! 리에스테르! 리에스테르!”
“······그자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폐하. 정확히는 공작의 언어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전언입니다.”
“······뭐라?”
프레데리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블랑케르 공작은 차분한 흑갈색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이에 디오프 공자가 비전투 마법사들의 분석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스네이더르 공작은 정식으로 재판에 서기 전까지 아군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기이한 보고가 한 건 올라왔습니다.”
“······.”
방금 들은 내용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데, ‘기이한’ 것이 또 있다고.
“······금일 날짜가 3월 25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잠깐 사이 이틀이 지난 것입니다.”
······허.
“무슨······. 누가 그런 말을 했지? 전쟁통에 지휘관들의 회중시계가 고장 난 것은 아닌가?”
“플뢰르 드 리스의 모데스트 바카리 단장이 직접 확인한 결과라고 합니다. 조금 전······.”
세실은 여간해서는 낯빛에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터져 나오는 제국군의 환성 사이로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금 전 하늘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온 왕도가 혼란에 빠졌을 때······. 바카리 단장이 직접 보았다는 모양입니다.”
“보다니, 무엇을?”
황제가 날카로이 되물었다. 공작은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바로 그 순간―
“폐하! 큿, 폐하, 폐하!”
멀지 않은 곳에서, 엘리자베트 무테가 군마 한 필조차 끌지 않고 맨몸으로 달려왔다.
어린 기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물들어 도저히 봐줄 만한 꼴이 아니었다.
카롤린을 진작 왕성 쪽으로 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프레데리크는 반가이 총애하는 아이를 맞았다.
그러나 엘리자베트는 반쯤 울고 있었다.
“폐하······! 엘리서······. 엘리서 페네티안 왕세녀 전하께서, 승하하셨습니다.”
“······.”
······.
“낫에, 낫에 관통상을 입으시고······. 범인으로 지목된 베르너르 페네티안 국서는, 왕성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왕세녀께서는······. 그분은 제대로 된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셨습니다.”
“······.”
“윽······.”
황제의 눈꺼풀이 못다 핀 화화(火花)를 애도하여 자신의 태양을 가렸다.
찰나 모든 함성이 환각처럼 멀어지고 흐릿해졌다.
눈물을 떨어뜨린 엘리자베트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령께서······. 신물 ‘이란의 영령’께서 곧바로 왕세녀 전하의 시신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신물의 조화라면 인간은 감히 간섭할 수 없는 것이다. 까닭은 들었느냐?”
“‘빈 씨앗에 품을 씨눈’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흠칫. 하문에 대답을 올린 것은 엘리자베트가 아니었다.
황제는 다소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세드리크.”
“폐하.”
크리스텔 랑부예와 더불어 나타난 황태자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해쓱했고 얼굴에 핏기가 전혀 없었다.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는 피를 쏟은 흔적 또한 짙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의 아들은 최악의 난리통 속에서도 생존한 상태였다.
황제는 두 아이의 상태를 꼼꼼히 관찰한 뒤, 그들이 챙긴 말과 신수들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린것들은 모두 잠들어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어깨를 잡아주며 이렇게 물었다.
“태사는 어찌 보이지 않느냐?”
보이지 않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라는 듯이.
“······전투 중 실종되었습니다.”
“······.”
“······폐하, 제가 찾아내겠습니다. 요한 헤인스 경은 저희의 스승님이시니 어떻게든 수색을 이어가겠습니다.”
이어서 크리스텔이 슬픔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황제는 묵묵히 눈짓하고서 두 사람을 곁에 두었다.
잃어버린 스승님. 오로지 그것만이 가인의 온전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는 이제 아무런 색채가 없는 흑백이었다.
3월 25일. 함가인의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