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26)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26화(826/920)
쌍둥이자리 (9)
간밤에 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12층입니다.
“우리 욕 돼지 다 찼는데, 이번엔 작은오빠 거래, 큰오빠가.”
“······.”
아니, 사실은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
요한 경이 걱정할까 봐 억지로 눈을 붙이고 있기는 했지만 정신은 내내 깨어 있었다.
충격받은 심장이 자꾸만 벌렁거리고, 롤러코스터를 탄 감정은 울컥했다가 우울했다가 시꺼먼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머릿속 서랍들은 누군가 깽판을 놓은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속을 드러내고 쓰러져 있었다.
마음이 비정상이니 자연히 몸도 불편해져서, 뻐근한 팔다리는 자꾸만 이불을 들썩거리며 전전반측하게 되었다.
까무룩 몇 분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방안에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수조에 갇힌 바닷물고기처럼 소리 없이 입만 뻐끔거렸다.
눈앞은 온통 네모난 물거품으로 가득했다.
······이제 어떡하지. 요한 경을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는 없는데.
-문이 열립니다.
어떡하면 좋지. 단서가 전혀 안 보여······.
“정예 안 타? 뭐 두고 왔어?”
“······.”
어, 친구들을 두고 왔어······. 어떡하지.
“정예!”
흠칫!
“어, 가, 가. 요 며칠 회사에서 너무 바빴더니 집에서도 정신을 놓게 되네.”
나는 정은서가 묻지도 않은 변명을 주워섬기며 부랴부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학교 가는 동생과 함께하는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막내는 기모 후드 위로 대학 이니셜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형이 작다고 나한테 버린 트렌치코트 차림이었다.
은서는 나를 빤히 보더니 녀석답지 않게 말을 골랐다.
“그런 코트 입고 가면 회사 사람들이 예쁘다고 안 해?”
“어, 옷 예쁘다고 칭찬해 주시지.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시고.”
“음.”
“너랑 형이 워낙 잘 입혀 주니까, 맨날.”
“그건 맞는 말이야.”
꼬맹이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어색하게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 욕 돼지 저금통 다 찼는데, 정현서가 이번에는 그거 작은오빠 주래. 오빠 그걸로 폰 요금 내래.”
“아. 그건 고맙네. 큰 보탬 되겠네.”
나는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정은서는 막간을 이용해 나의 새 폰을 한 번 더 구경하고, 예쁜 케이스와 인형 고리를 새로 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녀석의 용돈 사정은 훤히 알고 있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고 싶어서 기대하고 있겠노라 말했다.
그즈음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막내와 나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며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잃어버린 친구들과 세계선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속이 울렁거리고 발밑이 쑥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동생과 이렇게 걷고 있을 때만큼은 두 발이 땅에 단단히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형이 해준 밥을 먹거나 그의 진심 어린 조언을 받을 때도 그랬다.
지금은 오직 두 사람만이 나의 버팀목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차마 요한 경에게는 의지할 수 없었다.
내가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
“어, 내가 사실 할 말이 있는데······. 어제 오빠들이랑 요한 삼촌이랑 방에서 무슨 회의 하고 있었잖아, 밤에. 중요한 얘기 한다고 그랬잖아.”
“······어어.”
나는 동생을 인도 안쪽으로 걷게 하며 어색하게 답했다.
그제야 어젯밤 나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아까부터 동생이 이상하게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막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었을지 걱정스러워 뒤늦게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화를 끝내고 나왔을 때, 정은서는 어디 있었더라? 자기 방에 앉아 있었나?
아니면 거실로 나와 있었던가? 요즘은 또렷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입고 먹고 자는지 실감을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나는 그때 방에서 음성 채팅하고 있었거든? 퇴계공 같이 파는 사람들이랑.”
“응.”
“다들 연재 초기 때부터 친구란 말이야. 나랑 취향도 잘 맞고 뭣보다 왕자님 최애 모임이란 말이야, 우리가.”
“응.”
“근데······.”
지하철역은 우리 단지에서 몹시 가까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녀석보다 한발 먼저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밟았다.
이래야 어린 동생이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더라도 언제든지 밑에서 받쳐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잡이를 잡은 막내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내가 요사이 꿈꾼 내용 얘기했지? 같은 꿈 계속 꾸고, 그게 점점 선명해진다고. 최근에는 우리 아기 왕자도 나왔는데······. 나는 막 세계의 신이고.”
“어.”
은서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가라앉은 흑색 눈동자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지?
“내 친구들도 비슷한 꿈을 꿨대.”
“······뭐?”
뭐? 나는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이건 또 예상치 못한 흐름이었다.
뭐라고?
“아니, 진짜. 구라 아니고 진짜로. 어제 토크 하다가, 어쩌다가 꿈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그렇다는 거야. 요 며칠 계속 같은 꿈만 꾼다는 거야.”
“······엉?”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 전까지 걱정하던 내용은 깡그리 잊혔다.
은서는 나와 똑같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나도 처음엔 농담하는 줄 알았다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근데 나랑 똑같더라, 이게. 심지어 배경도 일치해. 무슨 우주 같은 데 다들 혼자 앉아 있대. 거기서는 자기가 신적인 존재라는 거야. 미쳤지.”
“······.”
소름이 끼쳤다.
“뭐냐, 이걸 증상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은서가 목소리를 훅 낮추며 속삭거렸다.
그제서야 나는 녀석이 아파트에서부터 말을 빙빙 돌리며 다른 주제로만 이야기한 이유를 깨달았다.
막내는 내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염려할까 봐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아빠 같은 존재인 정현서한테는 입도 뻥끗 못 하겠지.
“······아무튼 다들 비슷해. 게다가 꿈이 점점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대.”
“······.”
세상에······. 이건 또 무슨 조화지?
우리 세계선이지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 먹은 거야?
“좀 이상하지 않음? 아무리 우리가 같은 작품 파면서 같이 즐기고 있다지만, 꿈까지 같은 내용을 꾸는 건 에바잖아.”
-삑!
정은서가 지하철 개찰구에 폰을 찍으며 말했다.
나는 처음 써 보는 페이 앱이 신기해서 어버버하며 말을 받았다.
이게 바로 신문물이라는 거구나······.
“그게······. 그렇지?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지······.”
“이거 뭐, 집단 PTSD 이런 건가? 그러면 작가님이 우리 병원비 내줘야 하는 거 아님? 아니, 내가 진짜 병원 가야 한다는 소린 아니고. 뭔 말인지 알지.”
“어어, 알지, 알지······.”
전혀 모르겠다. 그건 또 어떤 원리로 가능한 건데?
주신의 가장 큰 파편인 정은서 하나라면 또 모를까, 예서 왕자의 부활을 소망했던 모든 주신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요약하자면 그런 거야, 지금?
세계선이 어떻게 되려고 이래?
“오, 대박. 방금 미친 생각 떠오름. 우리가 단체로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을 걸면 작가님이 우릴 만나러 법원까지 와 주시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예서 왕자님을 살려내는 AU 연재를 조건으로 현장에서 극적인 합의를 보는 거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위법이나 불법행위로부터 발생하는 책임을 묻는 절차인데, 작가님은 그저 출판의 자유에 따라 소설을 연재하신 것뿐이고 위법이나 불법을 저지르신 건 아니야. 아무렴 전체 이용가인 퇴계공이 공공질서 및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내용은 아닐 테니까. 즉,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자체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본안 판단 전에 각하······.”
“너 T야?”
정은서가 계단을 내려가며 나를 흘겨보았다.
아차, 나는 뒷말을 삼키고서 냉큼 본론으로 돌아갔다. 티가 뭔지는 몰라도.
“정은, 너 요새 꿈꾼다는 거······. 그러면 갈수록 더 많은 게 보이는 거냐?”
두 개의 그릇 중 하나가 건너편에 남았고, 나는 그곳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면서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못한다.
동생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지푸라기라도 좋으니 힌트를 얻고 싶었다.
“응?”
“······그냥, 궁금해서.”
뭐가 됐든 좋으니까.
이대로 평생을 버티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
-딱딱딱!
『정숙! 정숙하시오, 정숙!』
의장석에 자리한 어느 추기경의 외침에, 삿대질하며 논쟁하던 신관들의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의사봉을 두드린 이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주름진 이마를 짚으며 한숨지었다.
고위 성직자들 사이의 격렬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은, 다름 아닌 경계의 신전이었다.
『현재 발언권은 로날트 뤼퍼르트 총대리 전하께 있소이다. 인내로써 주신을 섬기는 분들께서는 부디 입을 닫고 귀를 기울이시오. 전하.』
“뭐라고 하는가?”
“글쎄요. 총대리에게 발언 기회를 양보하라는 것 같습니다.”
『저 뻔뻔한 노인네 같으니. 전쟁이 코앞에서 벌어지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야 제 밥그릇을 놓치지 않으려고 땅굴에서 기어 나왔단 말이오?』
『그러니 교황 선출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겠지요. 이러다 교황청 굴뚝이 먼저 썩겠소이다.』
“아, 귀를 기울여도 들리는 게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이보십시오, 수어 통역에 걸리는 시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반론해야 하는 때에 반론했을 뿐이오!”
제국에서 건너온 대주교들이 다시 한번 항의했고, 일찍이 신국을 등진 대주교들은 교황청의 비인간적인 면모에 치를 떨었다.
의장석의 노인은 피로에 찌든 얼굴로 의사봉을 휘휘 저어댔다.
그러자 발언대에 서 있던 교황청의 집사가 보일 듯 말 듯 묵례하고는 장내를 돌아보았다.
층층이 드높은 회의장에 모인 성직자들은 모두 정복 차림이었으며, 하나같이 뾰족한 주교관을 착용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뤼퍼르트의 눈빛이 느릿느릿 그들을 지나쳐 하늘로 나아갔다.
까마득한 천장 중앙을 장식한 금빛 기계 장치는 소리 없이 움직이며 달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이제 달은 없지요.』
“······.”
“······.”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제국 신관들이 수어 통역사 쪽을 돌아보았다.
통역사들은 뻘뻘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양손과 안면 근육을 움직였다.
뤼퍼르트 총대리는 계속해서 발언했다.
『제국의 주교님들과 일부 신국의 주교님들께서 정당한 의혹을 제기하셨으니······. 저는 이 자리에서 겸허히 인정하겠습니다. 신물 ‘소원의 성반’이 파괴된 것은 사실입니다.』
“······.”
“······.”
부지런히 손짓하는 이들의 면면이 시시각각으로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교황청의 과실이 아니며, 오히려······.』
“그 입 다무시오!”
-타앙!
통역사의 손놀림을 빠르게 읽어낸 어느 주교가, 탁자를 두드리고 성장을 치켜들며 목청을 올렸다.
이어서 그녀는 분기탱천한 얼굴로 마구 문장을 쏘아댔다.
“주신의 천사! 일찍이 페네티안 왕도에 치천사가 강림하여 달을 품고 달아났고, 그와 동시에 이곳의 성반도 파괴되었다면 신의 뜻은 명백한 것이 아니오? 깊이 실망하신 그분께서는 교황청을 버리신 겝니다!”
“옳소!”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으나 좌우간 맞는 말씀이겠지. 재청하는 바요.』
『리에스테르인들은 정말이지 감성적이란 말이죠. 가끔은 보고만 있어도 속이 시원해지는 장점이 있어요.』
“전쟁이 발발하고 끝날 때까지, 대관절 총대리와 교황청이 무엇을 했단 말이오? 수천, 수만의 죄 없는 이들이 죽어 나가는 처참한 꼴을 보면서 신전은 지금껏 무엇을 했단 말이오!”
“그렇지, 그렇지!”
“재청합니다!”
신관들이 소리 높여 호응하고 턱을 까닥거렸다.
뤼퍼르트는 가만히 눈을 돌려 좌중을 살폈다.
리에스테르의 오렐리 부티에 추기경은 금일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 대신 내내 앞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인장이 있었다.
그는 단 한 차례도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않았으나 총대리는 그의 존재감을 가장 강하게 받아들였다.
『······.』
『······.』
중립파 추기경 아리 스홋.
필시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와 부티에의 내밀한 지령을 받은 자.
“교황청의 우두머리로서, 총대리께서는 마땅히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할 것이오!”
“옳소!”
“와아아!”
신관들이 뜨겁게 손뼉 치며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뤼퍼르트는 지난한 정치극을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