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29)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29화(829/920)
다르타냥과 달 사냥 (1)
“뭐?”
“아니지, 나 혼자는 아니다. 형이랑 요한 경이랑 같이. 필요하면 엄마도?”
“뭐?”
정현서의 얼굴이 심상치 않게 굳어 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양손을 휘저었다가 부랴부랴 노트북 마우스를 쥐었다.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딸깍!
PPT 파일 하나가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go 세계선 횡단 프로젝트 go
주신이 없다면 만들자go!◉’
“······카피랑 디자인이 왜 저래? 너 회사 다니면서 PPT 안 만들어 봤어?”
‘설마 하루 종일 방에서 저거 만든 거냐?’ 정현서가 이상한 데서 태클을 걸었다.
나는 뭐라고 말대꾸를 하려다가―팀원분들도 내가 이런 쪽에 재주 없는 거 알아서 처음부터 안 시킨다고, 대학교 조별 과제 할 때도 발표는 내가 하고 PPT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다고―그게 본론이 아님을 빠르게 기억해 냈다.
주제에 집중해야지. 오늘의 프레젠테이션이 앞으로의 판도를 싹 바꿀 텐데!
“형, 우리는 지금까지 상황을 너무 우리 중심으로만 보고 있었던 거야.”
“······계속해 봐.”
“어, 그러니까······.”
-딸깍!
다음 슬라이드가 왼쪽에서부터 밀려 나왔다. 형이 심사위원처럼 팔짱을 꼈다.
무테안경 아래 눈초리는 성게처럼 뾰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꿀꺽.
‘나 ↔ (단절!) ↔ ‘우리 세계선’
요한 경’
“······나도 그렇고, 형이나 요한 경도 그렇고. 처한 상황이 상황인 만큼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 그냥 우리가 단절되었다는 현실에만 매몰되어서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거지.”
“······.”
“일단 이제껏 파악한 건 전부 사실이라고 치자. 세계선과 나는 서로 완벽하게 독립했고, 예서 왕자님은 부활했고, 모두는 보제나의 소멸로 인해 자유로워졌어. 그리고 형 말대로 이건 어쩌면 우리 이야기의 ‘결말’인 거야.”
-딸깍!
‘♣해피 엔딩!♡’
“야, 저 특수문자는 왜 통일이······. 디즈니 성 이미지는 화질이 저게 최선이냐?”
“하지만 주어를 ‘우리’로 놓으면, 여기서 더 나아갈 수가 없어. 성반, 성장, 날개, 마수를 감지하는 크리스털 종. 별별 아이템이 다 있어도 활용할 방법이 없다고. 그런데.”
-딸깍!
‘Wow!’
‘☞주신(主神)!☜’
‘DEA EX MACHINA’
‘woW!’
“한자를 굳이······. 느낌표는 왜 매번······. 됐다.”
“주어를 ‘주신’으로 바꾸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보여. 정은서가 우리한테 했던 꿈 이야기도 마법처럼 상당 부분 이해가 돼.”
-딸깍!
나는 비장하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다음 슬라이드가 화면을 한가득 채웠다.
반전은 이제부터야.
‘은서 ↔ (꿈 매개) ↔ ‘우리 세계선’
은서 친구들’
“······형 말대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세계선이 이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당연히 은서나 주신의 다른 조각들은 그곳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맞아. 세계선이 나와 연결되어 있었을 때도 은서는 꿈에서 깨어나면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연결이 끊어진 지금은, 더더욱 세계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해야 맞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왜? 어째서 정은서와 친구들은 계속 그곳의 꿈을 꾸는 걸까? 심지어 내용은 갈수록 선명해진다고 해. 정확히는······.”
-딸깍!
(과거) (현재) (미래)
‘은서와 친구들’
‘⇦ 꿈의 방향’
“과거의 기억만 또렷해지고 있지.”
“······허.”
정현서가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한 경은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온종일 머릿속에서 정리한 내용을 열심히 소리 내어 쏟아냈다.
“나 역시 그날 벌어진 일들을 똑똑히 기억해. 수목의 신궁에 의해 꿰뚫린 ‘주신의 우주’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예서 왕자님이 나타나서 추락하는 은서를 붙잡아 줬어. 그리고 그때······. 그분이 나를 안심시켜 주면서 분명히 말했지.”
‘「걱정하지 마세요.」’
‘「주신의 우주는 이곳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저 신궁의 화살 때문에 일부가 부서졌을 뿐······. 본래 광활한 공간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즉, 주신의 거처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어. 은서와 친구들이 매일 우리 세계선의 꿈을 꿀 수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거야. 신궁에 의해 부서진 공간은 일부에 불과하고······.”
그리고······.
“그리고?”
“······이건 나만의 추측이지만, 주신은 아직 원하는 결말을 읽지 못했으니까.”
내가 문 쪽을 곁눈질하며 속삭였다.
낮에 엄마를 만나고 온 은서는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고서 TV로 넷플릭스를 보느라 바빴다.
나의 말을 이해한 형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주신이 원하는 결말이 더 있다고?”
“어디까지나 가설이야. 하지만 형이라면 어떻겠어? 그날 우리가 얻어낸 결말에 만족하겠어? 입장 바꿔 놓고 생각을 해 봐. 형이 정은서 같은 독자라면? 요한 경이 우리 이야기의 독자라면요?”
“······.”
“······.”
“맞아, 주신이 처음 소원을 빌었을 때 바란 건 딱 하나였을 거야. 예서 왕자를 살려달라고. 그건 일단 이루어졌지, 좋아. 심지어 내가 빙의 첫날부터 바랐던 것도 이루어졌어. 어쨌든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런데 과연 그게 다일까? 형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매일 독자님들의 반응을 보잖아. 무협이든, 로판이든.”
정현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1화 썼을 때랑 지금이랑, 독자님들이 바라는 게 같아?”
“······그건 아니지. 소설이 장편으로 진행되면 당연히 보고 싶어 하시는 내용에도 변화가······.”
“바로 그거야.”
짝! 나는 손뼉을 쳐서 청중의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두 쌍의 눈동자가 나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주신은 다음 이야기를 원해. 그러니까 차마 떠나지 못하고 꿈속 거처를 맴돌면서, 앞부분만 무한정 ‘복습’하고 있는 거야. 은서랑 친구들이 깨어 있는 시간에 음성 채팅하듯이 말이야. 갈수록 꿈 내용이 선명해지는 게 당연하지!”
정현서가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꽤 그럴듯하네.”
그럴듯하다마다! 나는 검지로 허공을 콕 찌르며 계속해서 발언했다.
“접때 형이 동산에서 나한테 그랬지. 한 세계가 충분히 정립되고, 그곳의 인물들이 넘치게 사랑받으면······.”
‘【글은 스스로 살아 숨 쉬어. 정말로.】’
‘【내가 지나치게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사건이 발생하고, 인물들은 알아서 행동하고 대처해. 누가 특출나게 잘나서가 아냐. 그간 쌓인 시간과······.】’
“과분한 애정이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
“독자님들의 사랑이 세계를 살게 하는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주신’인 거잖아.”
“······그러면 네 계획은······.”
“그분들한테 돌려줄 거야.”
-딸깍!
날렵한 클릭 소리와 함께 슬라이드가 오른쪽에서 들이닥쳤다.
‘지상최대 팬픽션 공모전 – 당신도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뭐냐. 아, 팬픽도 공모전을 하네? 올해부터 시작하는 건가?”
우리 삼 남매에겐 익숙한 디자인의 스크린숏.
형의 <낙화검무>와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가 선 독점으로 연재되고 있는 사이트였다.
퇴계공은 현재 1부 완결 후 휴재 기간이지만.
“그렇대. 본 사이트에서 유료 연재 중이거나 완결 난 작품을 주제로, 독자님들이 직접 이야기를 짓는 공모전이야. 화제성 잡아서 독자 풀도 넓히고, 잠재적으로는 신인 작가 풀까지 넓히기 위해서 이번에 처음으로 개최한다고 해.”
“심경수 이사님 또 재밌는 아이디어 내셨네.”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행사가 되겠네요.”
“그렇죠? 대상 수상 작가에게는 삼백만 원 상당의 플랫폼 이용권과 원작 작가님과의 오성급 호텔 식사권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물론 최우수상, 우수상, 특선도 있고요.”
딸깍, 딸깍딸깍. 나는 홈페이지에서 긁어온 모집 요강을 개괄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자 한참이나 손끝으로 팔뚝을 두드리던 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요컨대 네가······. 직접 글을 써서 주신에게 새로운 떡밥을 제공하겠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엄밀히 따지면, 내가 직접 쓸 필요는 없어.”
딸깍딸깍! 나는 신속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다른 파일을 띄웠다.
노트북에 연결된 구형 폰은 여전히 나를 위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 □□□□ □□□ □.hwp’
액정만 죽었을 뿐이지, 내부는 멀쩡하니까.
“······.”
“······.”
“······정예서, 너 설마······.”
네모네모 파일을 확인한 정현서의 낯에 경악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맞아. 우리 이야기를 그대로 연재할 거야. 깨진 글자만 잘 채워 넣어서 올리면 돼.”
“미친놈인가······.”
“앞서 말했듯이, 요한 경과 나에겐 자력으로 세계선을 건널 방법이 없어. 각자 에테르는 충만하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다지. 그곳 친구들은 지금쯤 우리를 찾고 있겠지만, 정확히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는 전혀 알 수 없고.”
“문서 뒷부분의 문자는 전부 네모로 보이니까요.”
“네. 그러니까 저는 주신의 힘을 빌릴 겁니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우리 이야기의 후속을 원하는 것 같거든요. 감사한 일이죠.”
딸깍딸깍!
‘♬주신은 꿈에서 희희낙rock!
우리는 세계선 건너가job!♪’
“······환장한다······.”
“새로운 이야기로 주신의 시선을 받으면, 그녀의 눈길 자체가 세계선을 다시 살게 할 겁니다. 내내 그래왔듯이요.”
“무척 흥미로운 이론이군요.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어요.”
“도대체 누가 이 새끼한테 또라이 유전자를 물려주신 거지······? 정은서는 얘에 비하면 양반인데?”
“모두를 꼭두각시 취급하던 보제나도, 악한인 베르너르 페네티안도 죽고 없는 세계입니다. 주신이 우리의 재회를 바라주기만 한다면 그게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요. 언제가 됐든, 어떤 식으로든 말입니다.”
-딸깍!
‘-감사합니다-
-Thank You-’
대망의 마지막 슬라이드가 저쪽 구석에서 날아왔다.
이마를 짚은 정현서는 아주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레서판다 사진은······.”
“우리 애물단지들 보고 싶어서 막판에 한 장 넣었어. 얘는 에버랜드에 있는 앤데 얘도 이름이 레아래.”
“진짜 미친놈인가······?”
“여기까지 저의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예서였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에야 나는, 방의 불이 켜져 있는 채로 발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프레젠테이션할 때는 좀 어두워야 분위기가 사는데.
“크흠. 리뷰 및 질문받겠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또라이 님.”
“네, 정현서 님.”
나는 형을 향해 진지하게 손짓했다. 그 역시 만만치 않게 심각한 얼굴이었다.
“저 공모전 요강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떠올리신 거면, 우선 그 부분은 리스펙트 하고요.”
“감사합니다.”
“말인즉 주신을 상대로 어그로를 끌기 위해 내용 수정 없이 그대로 연재를 하겠다. 그게 지금 또라이 님의 원대하신 계획인 것 같은데.”
“‘어그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비슷합니다.”
“사생활 문제는 고려 안 합니까?”
“······자의식 과잉입니다, 현서 님. 팬픽 속의 정예서라는 인간이 실존할 거라고 믿는 독자님이 과연 얼마나······.”
“너의 동생분께서 그걸 읽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
······아.
“우린 지금 정은서한테 저쪽 세계선에 관한 내용을 깡그리 비밀로 하고 있죠. 그런데 냅다 본명을 까고 경험담을 연재하시겠다는 겁니까?”
“······.”
“설마 오후 내내 이거 만드시면서 그 부분을 생각 못 하신 건 아닐 텐데요. 관련해서 답변 듣고 싶습니다.”
“······.”
큰일 났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요한 경을 바라보았다가―살려주세요―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떡하지?
“······생각 안 했냐? 솔직히 말해. 너 이 계획 짜면서 정은서 생각 안 했지?”
“······응······.”
“어이구, 이 화상아!”
-짝!
악! 날개 아파! 살살 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