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7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77화(877/920)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 (11)
그래. 지나치게 익숙한······.
-싸아아아······!
“제기랄, 정말로 뼛조각이 보이잖아!”
-끼아!
“하하하하하······!”
―‘빛깔’.
“이렇게나, 좋구나······. 세상에나, 좋구나······. 내 사랑아, 좋구나······!”
-쿠구궁, 쿠르르릉······!
“이봐, 유골에 저주가 걸려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 물러나!”
-지이이잉!
흑백의 세상 속, 가인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빛.
-구구구구······!
“맙소사······.”
물빛 눈동자가 멍하니 깜빡거렸다.
-웨오옹!
-파파파팟······!
-사아아······
바로 ‘그 에테르’―미약한 성반(聖盤)의 힘이, 노파의 동공 아래서 금광을 흩뿌리며 넘실거리고 있었다.
영령의 강력한 기운을 이겨내지 못한 새벽 공기가 들썩들썩 모래바람을 일으키면, 잠에서 깬 사막의 대지는 길게 몸을 떨며 신음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브릴 디오프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가인은 그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은 장면을 목격한 세드리크 리에스테르의 시선 또한 한군데 고정되어 있었다.
이내 마법사의 만류에도 꾸역꾸역 구덩이 근처로 족쇄를 끌고 나아온 노파가, 미친 사람처럼 모자를 벗어 던지고는 팔을 휘저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앙상한 양손을 조인 수갑은 쩔그럭쩔그럭 요란하게 울었다.
-죽음을 맞지 못해 늙어가는 아이야······.
“오아시스, 카라반, 하마, 모두가 안외쿠메네로 모여서. 붉은 모래, 신기루, 타조, 모두가 위니테 강가로 모여서♬”
-가엾게도, 네 핏줄이 모두 여기에 묻혔구나.
신물이 그녀를 연민하여 국화를 피워냈다.
노파의 눈알은 선명한 금빛으로 번들거렸다.
“무엇이 그리 좋으냐, 우리 엄마가 좋구나.
무엇이 그리 기쁘냐, 우리 논밭이 기쁘지.
무엇이 그리 예쁘냐, 우리 낙타가 예쁘다.
무엇이 그리 그립니, 우리, 우리 사막이 그리워······.”
‘기골트 백작이 이곳을 만든 건 대략 600년 전이에요. 우니오가 망하고 400년 가까이 흐른 시점이었죠.’
요한 헤인스의 목소리가 두 남녀의 뇌리를 동시에 울렸다.
극심한 두통으로 머리뼈가 두 쪽 날 것만 같았다.
이제 성기사들은 같은 이적을 본다.
‘그는 소수민족 출신의 신국 귀족이었는데, 늘 사막에 향수를 품었다고 해요. 그의 선조들도 생전에 우니오를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있고요.’
‘문헌에 따르면, 기골트는 사막에 나와 카라반사라이를 건설하던 때부터 서서히 이성을 잃었다고 합니다. 밤낮으로 잠들지 못하고 고대의 찬송가를 부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춤을 추었대요.’
언젠가 들었던 산트의 설명이 뒤따랐다. 가인은 안페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 정말로 랄프 기골트의 후손이 맞았던 거야······.”
“낮에는 어디 그렸나, 주신의 눈썹. 밤에는 어디 맺힐까, 주신의 눈물······.”
노인의 황금 눈알이 뚜렷뚜렷 구르며 사막을, 대지를, 흙 속을 바삐 헤아렸다.
노랫가락과 가사는 두서없이 마구 뒤엉킨 탓에, 언어가 통하는데도 그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야악!’ 마침내 안페타가 물을 찾아낸 사막의 방랑자처럼 허겁지겁 구렁으로 뛰어들었다.
놀란 코르넬리서는 오라비의 팔뚝에 답삭 매달렸다.
당장 마르티어 제일스트라 경이 노파를 통제하려 나섰으나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신관의 어깨를 붙들고 만류했다. 대지 속성의 성기사 카르메였다.
“신관님, 내버려 둬요!”
“이거 놓으시게, 지금 무엇 하는······!”
“저 노파에게서 무서운 에테르가 느껴져요! 함부로 제압할 수 없는 힘이니 몸 사려요!”
“······뭐라?”
놀란 마르티어가 머춤하는 틈을 타, 노파는 영령이 찾아낸 옛 유골들 사이를 펄쩍펄쩍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무너진 오두막의 폐허 밑에는 아주 오래된, 그럴듯한 관조차 없이 매장된 자들의 시신이 그득그득했다.
어느새 바람이 가라앉으며 새벽 또한 붉은빛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지브릴은 그제야 마법식을 거두며 목청 높였다.
“전부 평범한 유골이야! 저주나 주문 같은 건 없어. 족히 열댓 구는 넘어가겠군. 그나저나 저 노인네 끌어내야 하는 거 아냐?”
“여기, 여기 우리 할머니인가 보다. 이분이 우리 할머니인가 보다, 응······. 파파할머니, 오랜만이어요.”
“모두 랄프 기골트 백작의 후손들이야. 저 노파도 마찬가지고! 저자의 눈을 봐, 제비! 성반에 깃들어 있던 힘 일부를 저 연금술사가 품고 있어!”
“뭐?!”
경악한 남자의 낯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자 구슬땀을 흘리던 코르넬리서가 이설에게 뭐라고 소곤거렸다.
어린 신관은 즉시 가인에게 물었다.
“랑부예 경, 성기사이신 왕녀 전하께서는 한 번도 저 노인의 에테르를 느끼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신관이 아닌데 어떻게 저런 힘을 몸에 지닐 수가 있습니까?”
“그건······.”
추기경이 잠시 말을 흐렸다.
한순간 머릿속에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단서들이 있었다.
‘크리스 고모. 저 할머니가 저랑 닮은 것 같아요.’
······소년을 닮은 노인.
‘평소에, 잠을 거의 자지 않더군요.’
‘한번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잠을 안 자고 밤낮으로 돌아다니느냐고. 그랬더니 그러더군요.’
잠들지 않는 노파.
‘어릴 때, 젊을 때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이제는 지겨워서 못 자겠다고요.’
잠꾸러기였던 소녀.
‘저의 백오십 년 연금술사 인생을 걸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지요. 성수! 가장 순수한 에테르의 결정체!’
‘그 경이로운 신의 물질은 맹세코 사막 어딘가에 남아 있사옵니다.’
어쩌면, 어쩌면 홀로 백오십 년을 살아온······.
‘-죽음을 맞지 못해 늙어가는 아이야.’
······끝을 원해도 누리지 못하는 자.
영생을 얻은 사막의 연금술사.
“······신증(神症).”
흠칫. 그 단어는 가인이 아니라 세드리크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사내의 온도 없는 시선이 무덤 한가운데서 기뻐하는 노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창백한 낯은 더더욱 희게 질렸다.
안페타는 쭈글쭈글한 손등으로 끊임없이 해골을 쓰다듬고, 모래 틈바구니에서 쏟아져 나오는 부장품을 보며 몹시 감격한 얼굴로 반가워했다.
“이거! 이거, 할멈! 우리 증조할머니 팔찌 아니야? 엉?”
“명백히 저자의 그릇에 문제가 있군. 그릇이 너무 얇거나, 혹은······.”
“너무 두꺼워. 세상에······. 저 사람 신증 환자였잖아. 그릇이 너무 두꺼워서 우리가 그 안에 숨은 소량의 에테르를 감지하지 못한 거예요!”
이마를 벅벅 문지른 가인이 속사포처럼 문장을 쏟아냈다.
마침내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는 확신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짜릿한 감각이 내달렸다.
동시에 스승님의 말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실마리처럼 맴돌았다.
‘기골트는 교황의 힘을 원하게 되었어요.’
‘대륙에서 가장 신성하고 지고한 에테르를 지닐 수 있다면, 고대 사막의 영화(榮華)를 복원하는 일도 가능하리라 믿었던 거죠.’
‘그가 성수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어요.’
“와, 십······. 장생······.”
애들이 듣고 있을 땐 욕하면 안 된다, 함가인.
‘교황청 실록에 따르면, 백작은 그대로 온몸이 타들어 가 사망했다고 해요. 그가 서 있던 자리엔 재조차 남지 않았고요.’
“잠깐만, 기골트 백작은 성수를 마시고 그 자리에서 불타 죽은 걸로 기록돼 있댔는데. 분명히 재조차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자 또한 신증 환자였군.”
황태자가 그녀를 돌아보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가인은 입을 쩍 벌렸다. 미친, 소름······!
“국왕과 교황의 허락을 얻어 계획도시를 건설할 정도의 유력한 귀족이었으니. 약이 없어 신증으로 고통받는 일은 없었겠지.”
“미쳤다! 진짜 그러네요! 비정상적으로 두꺼운 그릇을 타고난 신증 환자가 성수를 한 모금 마시고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당연히 다들 흔적도 없이 죽었다고 여겼지만······.”
“뭐야, 살아남은 거네.”
지브릴이 노인 쪽을 눈짓하며 말을 받았다.
잔뜩 흥분한 가인은 하마터면 티테의 포대기 끈을 입에 넣을 뻔했다.
야, 이런 느낌이구나, 이래서 궁주님이 걸핏하면 데미 꼬리를 드셨구나―!
“몰래 신실에 든 데다 성수까지 마신 죄인이라, 살아남았어도 죽은 척 지내야 했던 거야.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아예 종적을 감추고, 가까운 가족들만 데리고 숨어 살면서······!”
“이건 또 누구야? 오호라! 나 어릴 적 걸핏하면 마수 거죽을 벗겨다 주던 종숙모님이구나! 아이, 아직도 고우시네. 손발은 칼처럼 날렵하고!”
“그러면 신증이 유전된 거라고 봐야겠군.”
“어쩌면 신증뿐 아니라 광기도! 아니지, 물론 저 사람의 경우는······.”
가인은 문득 시선을 내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곁에 꼭 붙어서 안페타를 관찰하던 헤릿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네 개의 신물이 한자리에 모여 힘을 내뿜고 있는 탓에, 소년은 온몸이 차디찼다.
물의 기사는 바람의 아이를 꼭 보듬어 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예요······. 손녀가 왔어요. 금칠한 담뱃대를 보니까 딱 우리 할아버지인데, 무얼. 깍쟁이처럼 구시기는······.”
“······.”
노인의 음색에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말없이 지켜보던 영령은 다정한 손길로 무덤 안에 꽃을 담아 주었다.
가인은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속삭였다.
“······집안 대대로 신증을 앓는 데다, 가난해져 약까지 구하기 힘들었다면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도 죽지 않았어. 아니, 정확히는 죽지 못했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몸속의 에테르가······.”
“······백오십 년 동안 저자를 살려놓은 건가.”
‘쯧.’ 마법사가 혀를 찼다.
신수들은 성기사들의 발치를 맴돌며 어떠한 결정을 기다리는 듯했다.
마르티어도, 카르메도, 코르넬리서와 이설도 마침내 노인의 비극을 이해하고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세 마리의 구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안페타의 독백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증손녀, 아니, 고손녀예요, 인사 한번 해주세요. 옳지······. 이제 도로 살려줄게요. 내가 다들 살려줄 거야, 그렇지! 여기 어디에 귀한 에테르를 숨겨 두셨지요?”
“······.”
노파는 해골의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정강이뼈를 매만지며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부장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는 그에 얽힌 사연을 줄줄이 늘어놓기도 했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오직 그녀의 낡은 기억만이 알 테지만.
“에테르를 찾으면, 그걸 찾으면, 그러면 우리끼리 다시 지내는 게지요. 암요.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놀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으면서······. 흐흐흐.”
노인은 줄곧 울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안페타여요, 안페타. A-N-P-E-T-A, 안페타. 안테파는 우리 엄마 이름. A-N-T-E-P-A. 인제야 기억하시는구먼? 히히······.”
“······저자의 저주를 풀어줄 방법이, 마침 우리의 유일한 해답과 같군요.”
그때, 일행을 이곳까지 인도한 예서 페네티안이 달그림자처럼 서느런 목소리로 말했다.
가인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돌아보았다.
“노파의 그릇 안에 남은 에테르를 소진할 수 있게 해주면, 가엾은 영혼은 마침내 자유로워질 겁니다.”
“······.”
“안타깝게도 저이는 평생을 몰랐던 모양이지만······.”
건조한 바람이 불어 남자의 금발을 흩뜨리고 지나갔다.
코르넬리서는 오라비의 다리에 몸을 기댄 채로 겨우겨우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노파의 목소리는 마치 어린아이의 응석처럼 애처롭게 들렸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엄마는 어디 묻혔는지 몰라요. 할머니, 우리 엄마 어디 묻었어요? 왜 나한테는 알려주지 않고······.”
“······안페타(Anpeta)는 성반(Pátĕna)의 철자를 뒤섞은 이름이니까요.”
그가 그렇게 문장을 맺었다.
가인이 앓는 듯한 한숨을 터뜨렸다.
세드리크는 묵묵히 구덩이 바닥으로 노파를 데리러 갔다.
*
번쩍!
“허억―!”
나는 악몽이라도 꾼 사람처럼 벌떡 몸을 일으켰다.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했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등짝도 축축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지난번이나 엊그제처럼 엘리서의 꿈을 꾼 건 아니었는데.
실수로 팬픽에 우리 가족 정보를 전부 써버려서 회사 동료들에게 비밀을 들키거나, 악플이 많이 달리거나, 군대 다시 가는 내용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후우, 하아······.”
순식간에 차가워진 손바닥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협탁에 올려둔 자리끼를 마셨다.
그러고는 천천히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5월 22일 금요일
04:44AM’
“······다섯 시가 다 됐네.”
좀 더 잘 수 있겠다.
그건 사실 두 번째로 든 생각이었지만, 구태여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않기로 했다.
괜히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
혹시나 해서 침대 밑의 요한 경을 할끔 내려다보았다.
그는 동화 속 공주님처럼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 때문에 깨진 않으신 것 같아서 다행이다.
“······별일 없을 거야······.”
정말로, 친구들에겐 별일 없을 거야.
나는 주문처럼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까무룩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돼서는 새벽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