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8화(88/920)
#088 파드트루아의 유령 (3)
-딸랑!
“마수가 여기 왜 있습니까. 아니, 그전에 이거······.”
“마수의 마나를 감지하는 마도구야.”
세드리크 황자가 낮게 속삭였다.
그는 내가 쥐고 있는 종을 향해 손을 뻗더니, 장갑을 낀 채로 붉은 마나를 얕게 흩뿌렸다.
나와 크리스텔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내 황자의 힘이 마도구에 깃들었다.
그러자 하얀 빛을 뿜던 종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해졌다.
더는 소리를 내거나 빛나지 않았다. 나는 놀라서 황자에게 눈을 돌렸다.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났다.
“고맙습니다.”
“······.”
“이렇게 좋은 걸 주셨는지 몰랐네요. 잘 쓰겠습니다.”
언젠가는 꼭 감사를 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귀한 아이템이었다.
마나 감응력이 바닥인 내게는 반드시 필요한 마도구였다.
“생일 선물로 받으신 겁니까?”
크리스텔이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속닥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화제를 돌렸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황도 수비대가 극장을 수색했지만 마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조용한걸요.”
내가 살짝 턱짓했다. 어느새 막이 오르고, 오페라 극장의 무대 위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섬세한 배경을 그려 넣은 판자들이 양옆에서 밀물처럼 들어왔다.
장내는 아무 소란 없이 평화로웠다.
“수상한 마나는 느껴지지 않아.”
“저도요. 마수가 있었다면 진작 알았을 겁니다.”
두 남녀가 차례로 대답했다. 나는 살포시 인상을 찡그렸다.
황궁에 결계가 있어 마수가 침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황도의 외곽은 황도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수는 경계를 통과하기 전에 전부 사살된다고 했다. 그럼······.
“전하, 이거 어디서 사셨습니까? 혹시 사기 당하신 거 아닐까요?”
크리스텔이 진지하게 소곤거렸다.
그녀는 내 손 안의 종을 가리키며, ‘원하시면 같이 가서 환불 받아 드리겠다’고 제안했다.
황자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내 아버지께서 만드신 거야.”
“정말 사기네요. 사기적인 능력을 지닌 마도구.”
그녀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유턴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폈다.
마수의 마나에 반응해 작게 울던 종과, 마수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는 주인공들.
그러나 마도구가 ‘전율의 대마법사’ 알렉상드르 국서의 수제품인 이상, 불량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나는 서늘한 수정의 촉감을 느끼며 입을 뗐다.
“마수가 너무 약한 거 아닐까요?”
“네?”
종은 다시 소중히 품에 넣었다.
부친의 유품이라니까 앞으로는 훨씬 잘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고.
“황도 수비대의 눈에 띄지 않고 도심까지 들어온 데다, 두 분의 마나 감응력에도 걸리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 아니겠습니까. 아주 적은 마나를 지닌 개체겠죠.”
세 개의 시선이 빠르게 얽혔다.
최근 황도에서 마수 관련해 있었던 소동이라고는 극장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루머가 전부였다.
즉, 마수 녀석은 인명을 위협하며 큰 사고를 칠 정도로 강력하지 못했다.
나는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뱅자맹, 가나엘, 다비드의 눈길이 무대가 아닌 우리에게 꽂혀 있었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자꾸 속살거리니 사정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일단 관객을 대피시키는 게,”
“반갑습니다! <파드트루아의 유령> 개막 공연에 와주신 관객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때, 한 중년인이 무대 위로 난입했다. 나는 말을 하다 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를 5번 박스석까지 안내했던 오페라 극장의 주인, 앙드레 자작이었다.
심각한 나와 달리 그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아탈 오페라단은 여러분의 고결한 눈과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너무 긴장을 했는지 배우의 절반은 여태 화장실에 있답니다. 아, 나머지 절반은 아직 기절한 상태지요. 이렇게 깨우기 어려워서야!”
“하하하하!”
귀족들이 부채를 팔랑이며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저 말의 어디까지가 농담일지 궁금했다. 자작이 말을 이었다.
“그럼,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만나보기 전에 저희 무용수들의 근사한 춤부터 감상하시죠. 3막에 나오는······.”
그녀가 챙겨온 대본을 팔랑팔랑 넘기며 활짝 웃었다.
얇은 입꼬리와 목소리 끝이 미묘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명백한 시간 끌기였다.
“코르 드 발레의 군무입니다. 전부 공짜랍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발레복을 차려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고, 황자가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우연처럼 누군가 박스석의 문을 두드렸다.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다비드가 빠르게 손님을 맞았다.
복도의 불빛이 박스석을 비추었다. 문가에는 머리가 희끗한 직원 하나가 서 있,
-스릉!
“황자님.”
나는 식겁해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혜검을 뽑은 황자가 곧장 낯선 이의 목을 겨누었다!
“황족을 농락한 네놈들의 죄를 알 것이다.”
“저, 전하. 그것이, 그것이······.”
남자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리스텔은 어느새 감자튀김을 끌어안고 열심히 소스 발린 부분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말릴 생각이라곤 뚝심이 뱃살만큼도 없어 보였다. 결국 내가 나섰다.
“황자님, 진정하십시오. 일단 극장 측 이야기를 들어보긴 해야 합니다. 죄가 밝혀지면 그때 처벌해도 늦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됐다.
만약 마수의 존재를 알면서도 공연을 강행하고 황족까지 초청한 거라면 죄질이 너무 나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데다, 저 남자는 이곳의 책임자가 아니었다.
“밖에는 엘리자베트 경도 있습니다. 근위대가 근위대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황자는 직원을 즉석에서 태워버릴 듯이 쏘아보더니,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나는 작게 숨을 돌렸다. 그때였다.
-똑똑
열린 문에 노크한 또 다른 손님이, 머리를 숙여 박스석 안쪽을 살폈다.
민트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헤인스 경?”
“안녕하세요, 왕자님. 전하. 크리스텔 공녀의 가방을 가져다주러 왔어요.”
하얀 머리칼이 산들거렸다. 그가 미소하며 작은 손가방을 흔들어 보였다.
감튀를 삼킨 크리스텔이 그제야 ‘맞다!’ 하는 소리를 냈다.
······이 멤버로 마수 잡을 수 있겠지?
*
당연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언을 듣고 급히 극장으로 들어온 엘리자베트 경이, 데려온 근위대원의 대부분을 객석에 투입했다.
어차피 우리에겐 호위가 필요 없었다.
관객들은 깔깔대며 무용수들의 춤을 감상하느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프레데리크 황제 치세가 태평성대라더니, 걱정 없어서 좋겠다.
“전부 저의 죄입니다, 전하.”
극장의 뒤편, 널찍한 사무실 바닥에 극장주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비 모양으로 접은 흰색 크라바트가 파르르 떨렸다.
황자 대신 입을 연 것은 부근위대장인 엘리자베트 경이었다.
“쥐디트 앙드레 자작님. 극장 안에 마수가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것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년인이 허리를 살짝 세우며 대답했다.
자작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긴 했으나 무척 침착했다.
극장을 운영하며 다양한 사건사고를 겪은 연륜이 느껴졌다.
물론, 오늘처럼 황공한 경우는 그녀로서도 처음이겠지만.
“공연 시작을 미룬 것은 주연배우 두 명이 모두 의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마수 탓인지는······.”
둘 다? 이거 진짜 수상한데.
“그런 루머가 있지 않았습니까. 유령이 나타나서 배우들의 영혼을 빼먹었다는 소문요.”
내가 물었다. 앙드레 자작은 나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왕자님의 지적은 타당하십니다. 실제로 리허설 중 몇몇 배우가 의식을 잃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이들이 기절한 것으로만 여겼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그럴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 정신을 차리면 모두 아픈 곳 없이 멀쩡했습니다.”
극장주가 설명했다. 크리스텔이 말을 받았다.
“그럼 왜 유령이 있다는 소문이 돈 거죠? 그냥 판촉이었습니까? 그런 것 없이도 공연은 매년 매진이라고 들었는데요.”
“그건······.”
자작이 검은 재킷 주머니에서 행커치프를 꺼내 이마를 닦았다.
“배우들이 의식을 잃을 당시, 항상 목격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헛소문이 돌지 않았을까 합니다.”
“자작님. 그때 꼬마 하나가,”
“에리크!”
조금 전 박스석에서 황자 앞에 무너졌던 중년 남성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가 자작에게 호통을 들었다.
나는 눈을 기름하게 떴다. 뭐가 있긴 있네.
“에리크라고 했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보십시오.”
엘리자베트 경이 덤덤하게 말했다.
부근위대장 모드가 켜진 그녀는 눈매가 날카롭게 서고 목소리는 반 톤 정도 낮아져서, 아주 근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남성이 그녀의 앞에 허리를 숙였다.
“예, 그······. 리허설 중 세 번인가, 배우가 실신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중 두 번은 목격자가 없었고 한 번은······. 새로 들어온 사환 아이 하나가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계속하세요.”
“분장실에 의상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두 남녀가 입을 맞추는 걸 봤답니다. 너무 사적인 분위기라 서둘러 문을 닫았는데······. 문틈으로, 여자 배우가 쓰러지고 남자 배우가 변신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추임새를 넣던 내가 갸웃했다. 에리크가 우물쭈물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것은 압니다만. 여배우에게 키스한 남배우가, 여배우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사환 꼬마는 소리소리 지르며 복도를 내달려 제게 왔지요.”
“그 애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사흘 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왕자님.”
듣고 있던 자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확실히 극장의 이미지에 좋을 것 없는 비화이긴 했다.
황자의 얼굴을 살핀 엘리자베트 경이 손짓하자, 근위대원들이 앙드레 자작과 에리크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시종 세 사람은 슬며시 소파에 자리 잡았다.
우리의 대화가 길어질 것을 직감한 듯했다.
나, 크리스텔, 황자, 엘리자베트 경과 헤인스 경이 원을 그리고 섰다.
“마수가 있다고 상정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엘리자베트 경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여러분은 느끼지 못하고 마도구만이 겨우 감지할 정도로 약한 놈입니다. 입맞춤을 하고 모습을 바꾸었다는 걸로 봐선, 마나를 빨아들여 제 것으로 삼는 듯싶고요.”
에테르는 아닐 것이다. 마수에게 신성한 에테르는 독과 같으니까.
하지만 목적이 뭐든,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 체내의 마나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
“굶주린 것일 수도 있겠어요. 아니면 다쳤거나, 어리거나.”
나는 크리스텔의 추측을 들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마수 대백과>에서 이와 비슷한 마수를 본 적이 있었다.
뚝심이가 혹시 둔갑한 마수인가 싶어 책을 뒤지던 시점이었다.
외형을 바꿀 수 있는 마수는 극히 적었는데, 그중 포켓몬을 닮은 녀석 하나가 이놈과 얼추 비슷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네요. 까맣고 동그랗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마수인데 생명체의 마나를 흡수합니다. 숲속 깊은 곳에 산다고 읽었습니다.”
그게 이름이 뭐더라. 상태창이나 기억 스킬이 없는 게 오랜만에 엄청 답답했다.
저자 선생, 왕자를 진심으로 돕고 싶으면 나도 뭐 하나 달라고!
“‘에스프리’로군요. 신국의 산골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마수예요. 본체는 아주 취약해서 일반인도 잡을 수 있죠.”
헤인스 경이 상냥하게 말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맞아요. 제가 본 게 그거였습니다. 다른 마수가 남긴 먹이나, 마수의 사체를 먹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깊은 숲에 사는 마수가 왜 황도에 있지?”
묵묵히 있던 황자가 입을 열었다. 너도 모르는데 난들 알겠냐.
“서식지가 파괴되었거나 무리를 잃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최근에 산에서 큰 토벌이 있진 않았나요?”
그렇게 말하며 헤인스 경이 빙그레 웃었다. 네 쌍의 눈빛이 동시에 황자를 향했다.
주황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내 과실이라는 거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황자가 마수 대토벌에서 남부의 산등성이를 초토화한 건 분명 잘한 일이었는데, 이런 후폭풍이 생길 줄은 몰랐다.
살아남은 마수가 거기서 홀로 상경할 줄이야.
“사람을 해치진 않는다니 다행인데, 그럼 어떻게 잡을 수 있습니까?”
엘리자베트 경이 물었다. 우리 넷의 시선이 이번에는 헤인스 경에게 모였다.
그가 눈을 휘며 답변을 내놓을 때만 해도, 나는 30분 뒤의 미래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니까 황자와 크리스텔이 키스 직전까지 가거나, 드디어 진도를 왕창 빼리라고는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카메라가 있었어야 하는 건데! 정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