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88)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88화(888/920)
#888 일, 신앙, 균형?! (1)
―한편, 정현서와 정은서로 말할 것 같으면.
-콰콰콰콰콰콰콰······!
“와, 씨! 미쳤다! 오빠! 정예서 미쳤나 봐!”
-싸아아아아아아······!
“정은서! 이쪽으로 와, 자꾸 튀어 나가지 말고―!”
그들의 사정도 만만치 않게 복잡한 편이었다.
일단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은 아니었으니까.
오늘 밤을 이루는 모든 것이.
-우르르르르릉······!
“우와아!”
달이 없어 꺼멓던 하늘이 별안간 대낮처럼 밝아지며 어마어마한 굉음을 토해냈고, 피를 뚝뚝 흘리는 것처럼 보였던 칠흑의 구멍은 압도적인 빛에 뒤덮여 그림자를 상실했다.
남매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이는 바람은 열대저기압의 강풍을 방불케 했다.
현서는 머리 꼭대기까지 흥분한 막냇동생을 단단히 붙든 채로 베란다 바깥을 내다보았다.
‘쏴아아아앗······!’ 둘째와 요한 헤인스 경을 감싼 광휘가 빠른 속도로 스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팟!
하늘에서 완벽히 모습을 감추었다!
“······.”
“하, 이게 말이 되나······.”
-휘우우우······
게다가 놀랍게도, 그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는 고요했다.
과연 정예서와 신물들의 에테르가 시공간을 왜곡하여 모두의 감각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 분명했다.
늦은 시각까지 잠들지 않은 몇몇 집의 불이 켜져 있을 뿐, 바깥 풍경은 여느 밤과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현서는 한숨을 토해내며 지상의 상황을 살폈다.
주차장을 순찰하는 경비 선생님의 손전등 불빛이 보였지만, 그 또한 위급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은서는 이제 베란다 난간을 붙드는 대신 큰오빠의 딱딱한 팔뚝을 퍽퍽 때리고 있었다.
아이의 까만 머리카락이 혼란스러운 밤의 한 자락처럼 이리저리 흩날렸다.
“오빠! 이거 놔 봐, 저기! 저기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잖아!”
“뭐?”
현서가 멈칫하고 팔의 힘을 풀자마자, 은서는 후닥닥 난간 쪽으로 달려가 바깥으로 양팔을 뻗었다.
“정은서! 밖으로 몸 내밀지 마!”
“아니, 저거 봐! 쟤가 팔다리 휘저으면서 우리한테 오고 있어······!”
-휘이잉······!
‘빨리 와, 네가 팔 더 기니까 네가 받아줘!’ 꼬마가 다급히 소리쳤다.
동생에게 떠밀린 정현서는 이 모든 상황이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명색이 작가라는 놈이 본인의 세계관에 이토록 회의적인 건 반성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덥석!
-뀨!
“허어얼! 도마뱀이다! 귀여워!”
“······.”
······자신의 손아귀에 잡힌 도마뱀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반사적으로 헛숨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독자님들도 참······.
골때리는 거 좋아하신단 말이지. 예, 뭐. 저도 싫어하진 않습니다.
-켓!
“얼씨구.”
놀란 불도마뱀이 땡그래진 눈으로 딸꾹질했다.
녀석의 입에서는 손톱만 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은서는 오빠의 지시로 재빨리 베란다 바깥 문을 닫으며 종알거렸다.
“오빠, 얘 걔 아니야? 구구! 팬픽 속 묘사랑 똑같이 생겼는데? 하늘 구멍에서 떨어진 것도 그렇고, 입에서 불 뿜는 것도 완전 구구잖아!”
-톡, 톡톡
꼬마 도마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현서의 손등을 꼬리로 두드렸다.
놓아달라는 뜻이 분명했으므로 남자는 신물을 조심스레 거실 바닥에 내려주었다.
어쩌면 이런 사건에도 슬슬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지 몰랐다.
다른 세계의 신물이나 신수가, 둘째 녀석과의 인연을 구실로 걸핏하면 집에 들어와서 공짜 숙박과 보호를 요구하는 지금 같은 상황 말이다.
딱히 피할 방법도 없는 데다 좌우지간 손바닥만 한 애들이니. 게다가 일단은······.
모두 현서에겐 자식 같은 존재들이기도 하고.
“집에 불 지르면 이놈 한다. 필요한 거 있으면 아저씨한테 와서 얘기하고.”
-······톡!
두 눈을 두렷두렷 굴린 구구는 알아들었다는 양 꼬리로 바닥을 한 번 치더니, 새로운 구역을 탐색하는 고양이처럼 슥슥 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남매가 ‘정예서’의 혈족이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주신의 파편이기 때문인지, 구구는 딱히 두 사람 앞에서 낯을 가리거나 그들을 어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은서는 한참이나 신물의 오렌지빛 등짝을 바라보다가 불쑥 말했다.
“근데 쟤가 차원의 문으로 넘어온 거는 그렇다 쳐도······. 그게 왜 없어졌지?”
“뭐가 없어져?”
도마뱀이 올라갈 수 있도록 소파 스툴을 옮겨준 현서가 되물었다.
그러자 구구는 잿빛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스툴 대신 그의 팔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키가 큰 인간에게 붙어 있으면 집안 구경이 쉬우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큰오빠를 돌아보았다.
“아니, 아까 정예가 분명히 그 문에다가 대고 그랬잖아. 너 계속 여기 있으라고.”
“······.”
‘[신께서 두 세계의 결속을 소원하시니, 너는 문으로서 영원할 것이다.]’
‘[영구히 사라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으며, 오직 주신의 바람을 잇는 통로로써 존재할 것이다.]’
‘[성반의 주인, 신의 대리자, 불사조의 권속이자 주신의 마지막 파편으로서 네게 명한다!]’
‘-콰르르르릉······!’
······흠.
“확실히.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그 문장들이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의 독자님들은 정예서가 그곳과 이곳을 자유로이 오가기를 소망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데 지금 하늘 깨끗하지 않아? 아까 구멍이 싹! 하고 없어지는 거 오빠도 봤잖아.”
“······아무래도 위치가 안 좋긴 하니까.”
생각에 잠겨 있던 현서가 대답했다.
구구는 동의한다는 듯이 위아래로 머리를 까닥거렸다. 은서가 두 눈을 끔뻑였다.
“뭔 소리임?”
“사람이 매번 베란다 밖으로 다이빙할 필요는 없잖아. 독자님들도 정예가 십이 층에서 뛰어내리는 거 그만했으면 하시는 눈치던데.”
“아, 공감······. 나도 그건 진짜 별로야. 아무리 날개 달렸어도 일반인 눈에는 아슬아슬해 보여. 아까도 조마조마해서 죽는 줄 알았어. 안 들킨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아파트 주민분들 신경 쓰이고.”
“그러면 없어졌다기보다는.”
안경을 벗은 현서가 콧대를 꾹꾹 주물렀다.
그의 날카로운 흑색 시선이 유리문 너머를 겨누었다.
“······자리를 옮겼다고 보는 게 맞겠네. 너와 독자님들 바람대로.”
-우우웅······
그가 말을 맺음과 동시에, 화분들이 조르르 놓인 베란다가 호수 표면처럼 일렁거렸다.
막내는 자신의 생활복 소매를 괴롭히다 말고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어어어! 내 잔디 인형 넘어진다! 야, 조심해!”
“지금 그게 문제냐?”
반쯤 넋이 빠진 현서가 동생의 뒤통수에 대고 대꾸했지만, 은서는 이미 제 화분이 쓰러질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베란다로 튀어 나간 참이었다.
남자는 픽 헛웃음을 뱉고서 손에 쥔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동생 놈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고릿적 마법 핸드폰, 그리고 태블릿 PC.
“······어쩔 수 없이 주말 연재도 해야겠네. 베란다에 열린 차원 문짝 간수하려면.”
-킷
어느새 그의 어깨까지 올라온 구구가 동의한다는 듯 목을 울렸다.
현서의 눈길이 슬쩍 옆으로 굴렀다.
“너, 집 밖으로는 절대 못 나간다. 그건 명심해라.”
-톡
“집안에서도 아저씨가 부르면 재깍재깍 나오고. 쪼끄매서 찾기 힘들어 보이니까.”
-토독
“착하게 있으면 해양 다큐멘터리 틀어줄 거야.”
-······톡톡톡!
‘해양’이라는 단어에 구구의 꼬리가 열렬하게 반응했다.
현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서 씻을 준비를 했다.
동생 놈이야 뭐, 월요일까지는 자력으로 돌아올 터였다.
두 집 살림하기로 결심했으니 어련히 알아서 본인이 균형 잡겠지.
*
-저벅
내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사아아아······!
“오! 주신이시여!”
“보라색 튤립이다! 주신께서 천사님을 보호하신다!”
“아, 이게요, 그······.”
발치에서는 보랏빛 튤립이 방글방글 피어났다.
나는 차분히 현상을 설명하려 했으나, 그보다는 벌겋게 상기된 사막 주민들의 말소리가 훨씬 빨랐다.
그로부터 채 몇십 초도 흐르지 않아, 나는 이미 땅에 닿자마자 불가사의와 기적을 일으키는 주신의 대리인쯤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절반은 사실인 데다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야 잘 알지만,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코앞에서 직접 소화하는 것은 그냥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내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보라 튤립은 끊임없이 피고 지기를 반복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제국군 기사들마저 그 광경에 매우 놀라서―리에스테르에서 보라색 튤립이 갖는 의미는 몹시 특별하니 말이다―나를 향하여 도미노처럼 우르르 절을 올렸다.
나는 무슨 박람회에 출품된 로봇처럼 삐거덕삐거덕 걸으며 뒤쪽에서 뚱땅뚱땅 따라오는 레서판다들을 흘끔했다.
“데미야, 너 이거 그만하면······.”
-끼어, 끼어, 끼어
“세 번 싫구나······. 그래, 알았어.”
우리 애물단지들 신났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브릴 디오프 공자의 에스코트를 받았다.
그의 로브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는 해도 찢어진 등짝을 가리기엔 적당했다.
어느덧 왕자님과의 거리가 줄어들자, 미인은 부드럽게 미소하더니 우리를 기골트 마을 방향으로 인도해 주었다.
낯선 사람들의 절이나 기도를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닌지라 짝꿍들과 요한 경이 곁에 있었으면 했는데―보통은 그들의 아름다움 덕에 시선이 꽤 분산된다―다들 나의 크라운 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따로 제국군의 시중을 받았다.
나는 티테를 안은 채로 열심히 웃으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천사님, 부디 저희 기골트 마을에 자비와 은총을······!”
“뒤로 다섯 걸음씩 물러나시게! 안전을 위해서일세, 너무 앞으로 나왔으니 물러나시게!”
“오오, 신이시여······.”
“야, 이제는 후광이 없으시다! 이리 보니 정말 인간과 똑같이 생기셨어!”
“쉿! 수그려!”
“저분이 그냥 천사가 아니야! 아까 기사님들에게 듣기로는, 제국 황실의 궁주님이시라고······. 후작위도 있으시고 영지는 엄청나게 부유하다는구먼!”
“뭐? 아니, 잠깐만, 그렇지! 예전에 그런 소문이 싹 돌지 않았나? 응?”
눈물을 흘리며 신앙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로, 당연하게도 여러 말들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럴 거라고 막연히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하늘의 달이 돌아오면서 대륙 사람들의 잃어버린 기억 또한 복원된 모양이었다.
“허? 제국의 쥘리에트 궁주는 예서 페네티안 왕자 전하 아니신가? 그분이 분명 부활하셨다고 했는데······. 그래! 저분 말일세!”
“아이고, 목소리 좀 낮추고 수그리래도!”
“뭐야? 뭐가 어찌 된 게야? 어찌 한 사람이 둘이 된 건가?”
“······.”
나는 너무 어색한 낯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옆에서 걷던 왕자님이 온화한 눈길로 나를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러한 오해는 황실이 공문을 발표하면 머지않아 정정될 겁니다.”
“······네······.”
딱히, 걱정하는 건 아니었는데.
물론 사람들 사이에 불필요한 혼란이 생기는 일은 막아야겠지만, 그게 못 견디게 불편하거나 싫은 건 아닌데.
잠깐만, 설마 왕자님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나네.”
“아.”
나는 멍한 얼굴로 옆을 보았다.
나의 손을 받친 디오프 공자가 무심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멀쩡히 걷는 데 집중해. 왕자가 페네티안 왕도로 전갈을 보냈으니 조만간 폐하께서 회신하실 거야.”
“음,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저기······.”
그러고 보니 지금이 아니면 인사를 전하기 힘들 것 같아서, 나는 냉큼 기회를 잡았다.
“공자, 지난번에 핸드폰을 충전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
“정말이에요.”
남자는 그제야 나를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애매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뭐라고 덧붙일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일단 마을로 가서 요기를 하시죠. 배가 고프실 것 같네요.”
“······아! 네!”
좋습니다! 나는 왕자님의 제안에 활짝 웃으며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럼 그렇지, 역시 우리 왕자님은 뭘 좀 아신다니까! 나도 잘 아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