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890)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890화(890/920)
#890 일, 신앙, 균형?! (3)
-척, 척척!
족히 수백은 되는 듯한 군사들의 기척이 들렸다.
기나긴 행군을 마치고 발맞추어 정지하는 이들의 발소리.
창틀 바로 아래 제국군 병사들의 소리는 아니었다.
벽에 매달린 레서판다들이 조용히 귀를 팔랑거리고 있었다.
신수들도 방금 창밖을 울린 외침이 심상치 않은 내용이라는 건 알았으니까.
“······.”
“······.”
“문을 여시오! 교황청에서 왔소이다―!”
“예비 교황 성하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정보를 듣고 왔소. 지배인!”
꿀꺽. 우리가 앉아 있는 창문과는 정반대 방향, 기골트 카라반사라이의 정문 쪽에서 누군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창틀 아래 기사들이 빠르게 시선을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새벽의 푸른 공기와 건조한 모래 냄새가 극의 서막을 장식하듯 코끝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이 시간에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머리를 팽팽 굴렸다.
꼭두새벽부터 동네 사람들 다 깨우는 소란을 피우면서, ‘예비 교황’을 데리러 여기까지 왔다고?
그게 누군데?
“예서 씨, 저쪽.”
그즈음 왕자님이 손가락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나는 퍼뜩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응? 그냥 텅 빈 사막인데요······.
“······아.”
찰나, 어떠한 깨달음이 찌르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놀란 두 눈이 크게 뜨이고 입이 둥글게 벌어졌다.
아직 어두워 또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왕자님이 짚은 방향은 아마도 ‘경계의 신전’, 그러니까 교황청이 있는 방향이었다.
한데 그쪽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깨끗했다.
그래, 유난히도.
“······연기가······.”
“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근방을 온통 자색으로 물들였다는, 교황청의 보랏빛 연기가······.
-휘이이이······
“······그쳤네요.”
이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그게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다고 했었는데.
달그림자를 지나서 아주 드높은 곳까지 뭉게뭉게 흘러간다고, 온 대륙에서 보라 연기를 볼 수 있다고······.
어젯밤에 숙박소로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코르넬리서와 이설이 그런 얘기를 해주었는데.
나도 커다란 산맥 너머로 그걸 목격했던 기억이 난단 말이야. 바로 ‘그날’에.
“······어라.”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어제는 어땠지? 설마 그 무렵부터 연기가 멈춘 건가?
간밤에는 차원을 건너오느라 경황이 없었던 탓에 또렷이 기억 나는 장면이 없었다.
나는 까닭 모를 싸함을 느끼며 괜스레 팔뚝을 문질렀다. 바로 그때였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야? 예비 교황 성하라니, 설마 진짜로 대륙에 교황이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런가 봐. 마을 입구까지 교황청 병력이 쭉 깔렸어!”
“허억!”
담장 너머에서 낯선 말소리들이 삐죽빼죽 솟아났다.
기강 잡힌 제국군 병사들은 아닌 듯하고, 아무래도 잠에서 깬 기골트 마을 주민들 같았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기겁하여 굴러떨어질 뻔했으나 기적적으로 몸뚱어리를 수습하여 거실 안쪽 벽에 기댔다.
그러자 창틀에 걸터앉은 왕자님이 나를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어어? 이분이······?
“왕, 왕자님, 잠시만요, 아무리 넝쿨로 묶여 있다고 해도 그렇게 움직이시면······!”
“쉿. 당신에게 날개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예에?”
저를 이용해서 탈출하시려고요? 당장 갑작스러운 변수가 생겼는데도요?
내가 입을 벙긋거리며 더듬더듬 창턱에 매달리는 동안, 월궁항아처럼 고운 왕자님은 사르르 미소 짓더니 훌쩍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으아악정은서맙소사―!
“왕자님! 왕자님!”
-끼야······
마음 같아서는 큰소리로 그를 불러대고 싶지만, 그랬다간 제국군은 물론이고 옆 객실 친구들까지도 발칵 뒤집힐지 모르니 최대한 공기 섞인 소리를 냈다.
그러자 그는 창문 위쪽에서 고개를 쏙 내밀며 슬쩍 눈꼬리를 접었다.
실례지만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괜찮습니다. 왕성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별것 아니니 염려하지 마세요.”
“네? 왕성요?”
남자가 내게로 손을 뻗으며 소곤거렸다.
나는 어버버하면서도 어쨌든 그의 팔을 단단히 붙들었다.
별수 없어, 방금 디오프 공자 방안에서 문 닫는 소리가 났다고. 다 씻고 나온 게 분명하다고!
“아니, 왕성에서도 이렇게, 평소에 이런 행동을 자주 하셨어요? 하지만 난봉꾼 소문은 국서가 퍼뜨린 거짓······.”
“하나, 둘, 셋, 영차.”
“끄허으억.”
나는 해괴한 소리를 내며 건물 외벽으로 철썩 달라붙었다!
데미와 페리도 금방 나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세상에.
“왕자님, 왕자님, 여기 밑에 발 디딜 곳이 전혀 없는데요. 우리 이제 진짜 큰일 났습니다.”
“작전대로만 하세요. 두 아이가 발아래 디딜 곳을 만들어 줄 겁니다.”
“아, 그랬죠, 참. 제가 너무 긴장했네요.”
차분한 그의 목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좀 들었다.
그래, 빨리 움직이자. 해 뜨기 전에 친구들 상황만 확인하고 후딱 돌아오는 거야.
정말로 그것뿐이야. 침대 이불 속엔 두툼한 라플레시아도 네 송이나 숨겨놨고, 요람의 티테는 레아가 잘 돌봐줄 테니 한 시간 정도는 문제없어.
아무렴 내가 짝꿍 신관인데, 돌아오자마자 친구들의 상태를 살피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크라운 에테르가 골치 아픈 기술이라는 점은 잘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네, 저 준비됐습니다. 움직이시죠.”
“눈빛이 훌륭하네요, 예서 씨.”
······회포를 풀기는커녕 첫날부터 각방 신세라니 말이나 되냐고!
게다가 다들 몸이 만신창이라며!
-보스락보스락, 뽀득뽀득······
“이쪽으로.”
“네.”
나는 자연스레 앞장서는 왕자님의 뒤를 따라, 데미와 페리가 키워주는 단단한 줄기를 밟으며 더듬더듬 벽을 타고 이동했다.
안전띠처럼 허리를 묶은 넝쿨은 실내로 이어져 있고, 혹시나 발이 미끄러지더라도 나에게 날개가 있으니 안심······.
“뭐야? 이게 다 무슨 일인가?”
헉, 누가 봐도 숙박소 직원들이다. 왕자님과 나는 숨을 들이켜며 벽에 착 달라붙었다.
곧 입구 쪽에서 나타난 직원 두엇이, 후문 쪽에서 걸어오던 사람과 만나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까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부지배인님. 교황청에서 추기경님들이 오셨답니다. 우리 숙박소에 예비 교황 성하께서 계신다면서······.”
“예비 교황 성하라니? 설마 그분들이 호선(互選)을 마치고 오셨다는 건가? 교황청이 말단 부서까지 모조리 마비된 와중에도?”
“그건, 그건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 제로민 지배인님이 잠옷 차림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중 한 분께서는, ‘어젯밤 이곳에 후광을 두른 이가 나타났으니 교황 성하의 예비가 틀림없다’라고 하시면서······.”
“······후광? 맙소사, 그렇구먼! 그러고 보니 그것이······.”
‘아아!’ 나이 지긋한 지배인이 턱을 짚으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상대적으로 어린 직원들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 눈을 끔뻑거렸다.
나도 아마 거울을 보면 비슷한 표정이겠지.
“음, 자네들은 어려서 잘 모르나? 주신의 간택을 받으신 교황께서는, 힘을 개방하실 때면 머리 위로 황금빛 후광을 두르신다네. 화가들 그림 속에나 있는 가짜가 아니라는 말일세. 내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이레너 성하의 후광을 영접하신 적이 있지.”
“우와······!”
“아하······.”
그렇구나. 나는 직원들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람이 머리 위로 금빛 후광까지 두를 정도면, 교황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힘들겠네.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을 테니 추기경들의 형식적인 투표도 필요 없겠어.
“······.”
“······.”
새로운 정보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득 왕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예서 씨.”
“예.”
“객실로 돌아가 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음? 저는 괜찮습니다. 아까는 괜히 긴장해서 그랬던 거고,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몇 번 해봐서 이 정도 높이에 매달리는 건 익숙······.”
정예서 잠깐 스톱.
‘-사아아······’
‘「······여러모로 쉬운 자리는 아닐세. 부디 행운을 빌겠네.」’
‘······감사, 감사합니다?’
찰나 순백의 성간에서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마치 어떤 영화의 짧은 예고편처럼.
-휘이이······
“······.”
“······.”
혹시.
“······혹시 저 후광 있었나요?”
“근사하게 어울리더군요.”
“······.”
왕자님은 ‘이제 알겠니?’ 하듯이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축축해진 손바닥으로 데미가 만들어 준 나무줄기를 꽉 쥐었다.
말도 안 돼.
“······잠시만요. 오 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원하시는 대로.”
그가 오른팔을 반대편으로 쭉 뻗으며 중얼거렸다.
설상가상으로 숙박소 1층에서는 교황청 기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패닉이 오기 직전의 머리를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이를 악물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정리를 해보면, 내가 단순히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취급을 받는 게 아니라······.
‘「여러모로 쉬운 자리는 아닐세.」’
“······교황?”
교오오오화아앙?
진심으로? 진짜?
아니, 진짜로?
“삼 초 정도 걸린 것 같네요.”
“내가? 제가요? 제가 대륙 주신교의 수장이 되어야 한다고요? 이거 뭔가 착오가······.”
“적어도 저들은 그렇게 믿는 모양입니다.”
-달캉달캉! 덜커덩!
왕자님의 오른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나는 그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어떠한 소음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몇 초가 더 흐른 뒤였다.
-벌컥!
“이봐, 궁주! 젠장. 이 왈짜가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헉!”
-낏!
미친, 공자 나왔다! 시간 끌다가 진짜 저 사람한테 잡히게 생겼어!
-똑똑똑!
“예서 왕자 전하! 쥘리에트 궁주 마마! 이른 시각에 대단히 황공하고 실례하옵니다. 교황청에서 긴급한 일로······.”
이어서 외부인이 우리의 거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함하며 왕자님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뭐가 이렇게 긴박하게 돌아가는 거야!
“미쳤다, 지배인이 벌써 우리 층까지 올라왔어요!”
“바로 들어갈까요?”
“네, 네!”
내가 머리를 주억거리자마자, 왕자님은 활짝 열린 옆 객실 창문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그를 쫓아 몸을 집어넣었다!
-탓!
-꿋!
-꾸!
“옳지, 잘했어! 나이스!”
-달카당, 달캉!
고장 난 것처럼 쿵쾅대는 심장으로도 용케 손 떨지 않고 창문을 걸어 잠그고, 신수들에게 칭찬해 주기까지 무사히 성공―
-덥석!
“······어?”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뒤쪽에서 내 허리춤을 빨대처럼 쉽게 낚아챘다.
나는 흉터투성이 손등을 내려다보며 잠시 넋을 놓았다. 이건······?
“······피난처를 잘못 찾아오셨군요, 궁주님.”
그릇의 바닥을 긁어 소리 내는 것처럼, 몹시도 낮은 음색이 들렸다.
온몸에 오소소 닭살이 돋고 순식간에 등골이 써늘해졌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를 깨달음과 동시에―
-휘이이익!
“어어어!”
“예서 씨!”
몸뚱이가 먼저 뒤로 홱 고꾸라졌다.
눈앞으로 길게 풀어헤친 백색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쿠웅!
“윽!”
―그리고 얼마간, 암흑이 나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