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917)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917화(917/920)
다섯 번째 계절 (9)
‘쿵······!’
형용하기 어려운 예감이, 황제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으뜸아······!’
그것은 선지자(先知者)의 부름이다.
-벌컥!
“이브?”
“혹시 모르니 여기 있어, 오렐리!”
욕실에서 나온 반려가 놀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으나, 프레데리크는 뒤랑달을 패용한 채로 성큼성큼 문을 박차고 나갔다.
추기경의 시중을 들던 시종들은 당혹하여 숨을 들이켰다.
황제는 그 길로 빠르게 숙박소 로비까지 내려가 상황을 확인했다.
한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었던 지상층은, 썩 번잡스러운 분위기였다.
황실 근위대는 언제나처럼 질서를 유지하였으나 그들의 상관들은 바삐 사방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거대한 숙박소에 머무르는 다른 손님들 일부가 맨발로 뛰어나와 지배인을 찾았다. ‘창밖에서 주신의 빛이 쏟아지고 있소!’ 누군가는 황야의 예언자처럼 소리쳤다.
그즈음 황제를 발견한 엘리자베트가 사색이 되어 쏜살같이 달려왔다.
“폐하, 어찌 이곳까지······!”
“이란의 영령.”
힘들 만큼 달린 적도 없건만 이상하게 숨이 찼다.
“예?”
“그 신물이 짐을 불렀다. 영령에게서는 아직 소식이 없느냐?”
엘리자베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명백히, 그 소명(召命)은 황제 외에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폐하, 그렇지 않아도 영령님이 계시는 방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그분 주변에 자리를 잡은 우리 군의 막사 또한 거대한 광원에 휩싸여······!”
“보마(寶馬)를 대령하라!”
“예, 폐하!”
황제가 우렁찬 목소리로 명하기 무섭게, 소리 없이 그녀의 뒤를 쫓아온 근위대 기사들이 깍듯이 절하고 흩어졌다.
프레데리크는 즉시 엘리자베트에게 명령했다.
“왕자와 왕녀를 데려와 황실의 말에 태워라. 지금 당장.”
“존명!”
주인의 명을 받은 엘리자베트가 바람처럼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머지않아 프레데리크가 숙박소 입구로 나와 실베스트르의 안장에 올랐을 때는, 잠옷 차림의 코르넬리서와 예서 왕자 또한 급히 등자를 딛고 있었다.
왕녀는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이었으나 그 오라비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예리했다.
더불어 숙박소 바깥의 상황은 안쪽보다 훨씬 소란스럽고 심각했다.
-파아아아······!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응? 하늘에서 별똥별이라도 떨어졌는가?!”
“모두 밖으로 나와서 대기하라! 반복한다, 모든 주민은 건물 밖으로 나와 대기하라―!”
“아빠, 저기 무지갯빛!”
“가면 안 돼! 이리 와, 함부로 가면 안 돼!”
“지하로 들어가지 마시게! 모두 야외로! 밖으로 나와 있어!”
가벼운 천이나 가운을 두른 주민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와 혼란을 쏟아내고 있었고, 어스름에 묻혀 있던 마을은 한편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환하게 빛났다.
프레데리크는 애마의 고삐를 틀어쥐며 두 눈을 높이 들었다.
마을의 서쪽,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란의 영령이 자리한 곳에서부터 오색찬란한 빛살이 작렬하고 있었다.
이는 주민들이 터뜨린 탄사 그대로였다.
‘별똥별이 떨어진 듯한’, ‘성스러운 무지갯빛의 광휘’―
-화아아아······!
“영령님의 열매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황제 폐하!”
“뭐라?”
갈래갈래 찢어지는 누군가의 처절한 외침에, 황제는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마을 밖에서부터 말을 타고 들이닫는 조그마한 체구의 여인―일행은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빛과 어둠이 정신없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신관의 주변으로 뿌연 모래 먼지가 일고 있었다.
눈물범벅이 된 마르티어 제일스트라 경이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얼굴로 부르짖었다.
“열매가, 열매 껍데기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지금 당장 와 보셔야 합니다! 왕자 전하!”
“두 분 전하는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제일스트라 경은 길을 잡아주십시오!”
“예!”
엘리자베트가 소리쳤고, 마르티어는 그 길로 다시 방향을 틀어 내달렸다.
‘가자, 하!’ 황제가 박차를 가하기 무섭게 명마 실베스트르는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마을을 질주했다.
기겁한 기사들이 우르르 길을 트고 마을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황제 일행은 순식간에 마을을 벗어나 제국군 막사가 늘어선 사막 지대로 나왔다.
건조한 바람이 빛과 모래의 돌풍을 일으키며 그들을 맞이했다.
-휘우우웅······!
“이러!”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이곳은 현재, 리에스테르의 본대(本隊)가 머무르는 땅이었다.
그중에서도 황제가 이끄는 전위대는 한꺼번에 귀향하기에는 그 숫자부터가 압도적이었으므로―현재 제국군 마법사의 육 할은 마나 휴지기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이에 따라 사막의 임시 포털 가동은 주요 인물의 이동 시에만 제한적으로 승인되었다―이들은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
대륙의 새로운 세계수, 이란의 영령을 에두르는 전위대의 임시 병영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다.
전선의 최전방인 왕도에서는 여전히 철군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군사들은 끊임없이 사막으로 나아왔다.
황제는 막사 기둥 몇 개가 꽂혀 있는 병영 외곽을 신속히 통과했다.
곧 하늘의 문까지 자라난 세계수의 위용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싸아아아아······!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고 있어.’
대낮처럼 황홀한 빛줄기를 흩뿌리는 나무의 중심에, 영령이 양손으로 떠받친 존재가 보였다.
프레데리크는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이랴! 다들 물러서라!”
“어이쿠!”
-다각, 다각, 다각!
‘황제 폐하 납시오!’ 우르르 막사 밖으로 나온 제국군이 황제의 등장에 엎드러졌고, 그녀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영령의 턱밑까지 내달렸다.
앞장선 마르티어의 등이 유독 작아 보였다.
그들이 안장에서 내릴 즈음에는 쏟아지는 빛으로 한 치 앞을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았는데, 병영 군사들은 모두가 밖으로 나와 영령의 이적을 목도하고 있었다.
프레데리크는 간신히 열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이대로는 시력을 상실할지도 모르겠다는 위협을 느꼈다.
-파아아, 파아아아······!
“폐하! 프레데리크 폐하······!”
바로 그때, 서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황제 일행은 의외로운 등장에 퍼뜩 눈길을 돌렸다.
-싸아아아앗······!
“예서입니다! 태자님과 크리스텔 경도 있습니다!”
“저희 왔습니다, 폐하!”
세 마리의 말에서 내린 청년들이, 황급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제는 황궁에 있어야 할 아들이 이곳까지 제 짝을 호위했다는 사실에 헛숨을 터뜨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도 긴박한 일이 있었다.
“예서, 너희에게도 영령의 목소리가 들렸느냐?”
황제가 하문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예서가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손을 꼭 맞잡은 청년들을 바라보며 프레데리크는 비로소 턱을 까닥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리에스테르의 운명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뒤, 그녀는 뒤랑달의 가죽띠를 풀어 아들에게 맡겼다.
그러고는 홀로 빛의 신비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녀를 인도했다.
‘-어서 오렴, 어서······.’
‘-아이가 눈을 뜨고 있어!’
-파아아아앗······!
-저벅, 저벅······
원초적인 두려움이 그녀의 발목을 붙들지 않았다고 거짓말한다면, 선황들을 뵐 낯이 없으리라.
그러나 프레데리크는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 리에스테르의 가주답게 행동했다.
몰아치는 빛살과 눈알을 찌르는 사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걸어 나갔다.
영령은 결코 그녀를 해코지할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숙명은 여기에서 기꺼이 뿌리내리고,’
‘-이 아이의 운명은 비로소 피어나는구나.’
-휘이이이잉······!
-자박, 자박, 자박······
-리에스테르의 불모(不毛)는 이로써 끝을 맺는다.
‘맺는다, 맺는다, 맺는다······!’ 영령의 신언(神言)이 온 사막에 울려 퍼지면―
-쏴아아아아아······!
-톡!
마침내 프레데리크의 손끝이 열매에 닿았다.
동시에 생명을 지닌 것처럼 하늘거리던 빛줄기가 움직임을 우뚝 멈추었고―
-슈우우우웃!
-쩌억!
그들 모두가 눈을 한 차례 깜빡이기도 전에, 구석구석 갈라지고 있던 열매의 한복판에 굵다란 금이 갔다.
기겁한 코르넬리서가 숨을 들이켜며 오라비의 다리에 매달렸다.
-쩌적, 쩌저적, 쩌저저적······!
“어떡해······!”
-바스락, 바사삭······
균열은 열매 전체에 빠르게 잔뿌리를 내렸고, 이내 그것의 광채는 완전히 잦아들었다.
그제야 영령의 해사한 웃음과 눈빛이 그들 모두를 담아냈다.
오라비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있던 코르넬리서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그예 붉은 껍데기가 우수수 모랫바닥으로 떨어지며, 그간 꼭꼭 숨어 있던 ‘알맹이’가······.
-후드득······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아니, 갓난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신 맙소사!”
“신앙의 후견인 에스테르시여!”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대경한 제국군 기사들이 곳곳에서 탄성을 내뱉었다.
경외지심으로 제자리에 무릎을 꿇은 병사가 수천에 달하였으며,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병사가 또 그만큼이나 존재했다.
반면 황제 일행은 한참이나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열매에서 어떠한 생명이 ‘태어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야 많았고, 그것이 ‘아기’일 가능성 또한 지대하였건만, 그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충격은 실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영령은 그런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아, 따뜻이 안아주렴.
“······.”
“응애, 응아, 응아······!”
프레데리크의 품에, 잎으로 싼 아기를 내려 주었다.
황제가 받아안자마자 갓난아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그녀는 잠시 당혹하였으나 이내 익숙한 자세로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응아, 응, 우······.”
“······.”
포동포동한 뺨, 조그마한 입. 그녀의 아들처럼 어두운 머리카락, 그리고······.
“제일스트라 경.”
“······.”
프레데리크는, 가장 먼저 전투 신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일행의 구석에 서 있던 여인이 비로소 눈을 들었다.
“······윽······. 윽······.”
마르티어는, 숨을 참아가며 오열하고 있었다.
매일 환상통에 시달리는 어깨를 떨며,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머리를 내저으며.
한때 주인에게 충성을 서약했던 의지로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서.
“이쪽으로.”
“······.”
황제가 눈짓하자, 청년들이 즉시 길을 내주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찬 그녀는 황명을 받들어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머나먼 시간을 휘돌아 마침내······.
“므, 우······.”
“아아, 아아아······.”
사파이어를 담아놓은 듯한 아기의 푸른 눈동자가, 신관을 다시 마주했다.
아기를 안은 마르티어는 비로소 목을 놓아 울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후에는 예서 왕자가 다가와 아기를 안아보았고, 코르넬리서가 잘 볼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어 주었다.
그러자 아기는 처음으로 몸을 틀고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두 남매는 소리 없이 눈물을 쏟으면서도 서로 이마를 맞대며 활짝 웃었다.
그들을 폭 감싼 예서 궁주는 물론이요, 크리스텔과 엘리자베트도 치받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포옹은 내내 따스하였으며 아기의 숨결에는 실체가 있었다.
-자박, 자박
“······.”
그즈음, 오렐리가 지브릴의 호위를 받아 영령의 집에 당도했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로 아기를 축복하고 그 자리에서 세례를 주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르메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러자 빛에 이끌려 나온 사막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따라 절했다.
*
한편, 대한민국 서울.
정 남매의 집.
˙ 이제 못헤어짐. 무조건 세같살이다. 주신의 파편으로서 세같살 아니면 인정 못함. (884화)
“······예에. 덕분에 우리 둘째가 두 집 살림을 하게 됐네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피식 웃은 현서가 핸드폰 액정을 톡톡 건드렸다.
그의 일천한 작가 경력이 말해주는바, ‘세같살’이란 문자 그대로 ‘세 사람이 같이 살아.’라는 의미였다.
동생 녀석의 세계선을 지켜보는 신성하신 분들께서 하나같이 같은 결과를 바라셨으니, 결국은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그들을 위하여 운명은 복선을 자아냈고 개연(蓋然)은 날개옷을 지었다.
남자는 실로 오래간만에 일요일 밤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침대 위로 편안하게 늘어진 몸은 잠옷 차림이었고, 허리 아래 대충 베개를 끼워 기댄 자세는 달콤하기 짝이 없었다.
<낙화검무>와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 원고는 물론이고, 오늘 자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의 업로드 역시 무사히 마무리했다.
사적으로는 오랫동안 가족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어머니의 병환이 기적적인 차도를 보였으며, 작년부터 주치의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단약(斷藥)을 시작한 막내는 이제 여느 스무 살짜리와 다를 바 없는 꾸러기가 되었다.
평생을 단정한 모범생처럼 지내던 둘째 녀석은, 처음으로 ‘말썽’을 피우고 형에게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현서는 그러한 모든 변화가 진심으로 달가웠다.
콘텐츠 플랫폼 ‘카나리아’의 화면이 몇 번 바뀌었다가, 이내 또 다른 댓글에서 멈추었다.
˙ 세같살은 이루어졌으니 이제 네같살… 아니 다섯같살….. 8ㅁ8 (915화)
“······그게 그거 아닙니까?”
현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게 그거’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예서는 그 세계선의 풀잎 한 포기까지 좋아하는데 이걸 ‘다섯같살’ 정도로 표현할 수나 있을까.
‘천같살’, 아니, ‘만같살’이라고 불러도 모자랄 지경이다.
˙ 이제 정말 하나하나 남은 이야기 보따리를 다 풀어가시는 것 같아서 즐거우면서도 눈물이 줄줄 나요… (913화)
“······.”
현서는 설핏 입꼬리를 올리며 오래도록 화면을 바라보았다.
주신께서 그렇게 느끼신다면, 그것은 곧 세계의 진리이며 진실이 된다.
언제나 이야기의 끝을 헤아리는 것은 기록하는 이가 아닌 독해하는 이의 몫이다. 그러니······.
˙ 씨앗까지 태어나면 정말로 완결일것만 같아서 눈물이 나.. (913화)
음?
“······씨앗? 아아. 그 씨앗.”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 되는군. 현서는 어느 댓글에 동의하듯이 턱을 까닥였다.
바로 그때였다.
-톡!
-톡톡!
-톡톡톡!
별안간 현서의 방 앞으로 와르르 몰려온 구구들이, 그를 보며 다급히 꼬리를 치고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들이 드나들기 좋게 문을 활짝 열어두었던 터라 거실에서부터 밀려오는 불도마뱀들의 행렬이 아주 잘 보였다.
남자는 묘한 예감을 느끼며 허리를 일으켰다. 동시에······.
“형, 나 왔어. 방에 있어?”
흠칫.
“······뭐야.”
문밖에서 소곤소곤하는 정예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밤 열한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니 가족들이 쉬고 있을까 봐 저러나 싶었는데, 불사조의 날카로운 본능이 ‘그건 아니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대체 뭐야······?
“어, 왔냐. 씻고 일찍 자. 내일 또 출근하려면.”
“잠깐 보여줄 게 있어서. 아, 세드리크도 호위해 준다고 같이 왔어.”
“여기가 네 집인데 무슨 놈의 호위가 필요······.”
아니, 보여주기는 뭘 보여줘. 썩 방으로 꺼지지 못하겠냐.
그런 문장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짠. 우리 아기야.”
“커헉, 콜록콜록! 쿨럭쿨럭쿨럭쿨럭―!”
검은 머리에 파란 눈을 지닌, 뽀얀 피부의 갓난아기······!
“너무 예쁘지. 조금 전에 영령님 열매에서 태어났는데, 프레데리크 폐하께서 ‘엘리즈’라는 이름을 내려 주셨어. 마르티어 제일스트라 경이 아기의 대모가 되어주기로 했고. 형한테도 꼭 보여주고 싶어서 허락받고 잠깐······.”
“칼락칼락! 쿨룩쿨룩쿨룩!”
“형, 괜찮아?”
너 같으면 괜찮겠냐? 동생 놈이 날벼락처럼 갓난애를 데려왔는데 괜찮겠냐고!
눈시울이 벌겋게 물든 예서가, 품에 안은 아기를 도닥이며 걱정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기척 없이 뒤따라 들어온 세드리크는 이제 아주 당당한 표정으로 현서를 겨누고 있었다.
너는 뭘 잘했다고, 인마······!
‘【형 진지해. 방금 5분 알람 맞추고 졸았는데 네가 조카 안고 돌아오는 꿈까지 꿨다.】’
‘【애 눈이 파란색이었는데······. 근데 머리는 나처럼 까맣고······.】’
“미친, 그거 예지몽······! 컬럭컬럭!”
“켓.”
-퐁!
그즈음 남자의 기침 소리가 옮았는지, 갓난아기 엘리즈도 조그맣게 기침했다.
현서는 따끔거리는 목을 감싸다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방금······?
“하하하. 봤어? 아기 입에서 불 나온 거.”
“······뭔······.”
······잠깐만. 진짜로 세드리크 놈의 불꽃을 물려받았다고?
남자는 한순간 멍한 낯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태자식의 콧대가 더더욱 높아졌다.
그사이 소란을 듣고 달려온 은서는,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로 사방에 물방울을 튀기며 난리 블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아기가 놀랄까 봐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숨소리로만 고래고래 말을 토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달밤의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여기는 불, 저기는 물······.
“하아, 내 팔자야······.”
“아아악! 너무 귀여워! 사진!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 나 개인 소장만 할게! 아무 데도 안 올리고 친구들도 안 보여주고 평생 나만 볼게! 두 장만 찍어도 돼?”
“응, 괜찮을 것 같아.”
“그럼 세 장만 찍을게에엑!”
예서 놈이 세상 행복한 낯짝으로 실실거리며 대답하자, 은서 놈은 또 좋다고 방으로 튀어가서 폰을 들고 왔다.
“어떡해, 그 열매에서 드디어 아기 나온 거야? 어떡해, 너무 이뻐. 아기 밥은? 밥은 뭐 먹어? 어떡해. 진짜 귀여워.”
“우······.”
“평범한 사람 아기가 먹는 거면 다 먹을 것 같아. 폐하께서 바로 유모를 붙여주신대. 아까 오빠가 주는 에테르를 먹기도 했고, 영령님의 양분을 듬뿍 받아서 지금은 괜찮아. 성기사 아기거든.”
“대박. 아기 울지도 않네. 낯을 안 가리나 봐. 천잰가.”
“너도 그맘때는 낯 안 가렸어. 조금 더 크면 낯 가려.”
현서가 고단한 목소리로 지적했으나, 은서는 이제 폰을 퍽퍽 때리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이놈의 폰 또 먹통이야. 왜 카메라 앱이 안 켜져······. 좀!”
“오빠 거 가져가서 찍어라, 멀쩡한 폰 부수지 말고. 정은, 오빠 걸로 해······.”
결국 큰오빠가 막내에게 핸드폰을 상납하면서, 평화로운 듯했던 일요일 밤은 다시 한번 시끌벅적하게 흘러갔다.
헛웃음을 흘리던 현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를 들여다보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래, 자식 복 터진 사주에 휴식은 무슨······. 분유 텀블러나 몇 개 챙겨 주자.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 9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