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appens When the Second Male Lead Powers Up RAW novel - Chapter (920)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920화(920/920)
다섯 번째 계절 (12) (完)
“······그대는 해군 제독 엠마 코를레오네 제독의 오른팔로서, 그녀를 보좌하여 백전불패의 유례없는 대기록을 달성하였으며, 황태자와 쥘리에트 궁주와 더불어 제국의 여러 첩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황태자의 스승이자 당시 제국의 유일무이한 추기경급 성기사로서 대륙 각지에서 맹활약하였으며, 짐의 세작으로서 신국의 여러 사정과 지리 정보를 제공하였고······.”
“······태자와 궁주를 보필하여 성실히 임무를 완수하였다. 또한 전투 마법사로서 뛰어난 무공을 세워, 대전투에서 여러 차례 적을 섬멸하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폐하의 말을 경청하는 친구들을 보는데, 자꾸만 뿌듯하고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우쭐거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오늘의 가인 씨와 요한 경은 평소보다 열 배쯤 곱고 단정하게 차려입어서 아주 근사했다.
물론 디오프 공자도······.
진짜 그냥 저렇게만 다니면, 어린아이들도 지금보다 훨씬 공자를 좋아할 텐데.
가슴팍 내놓고 금목걸이 하고 다니는 아저씨는 역시 좀 무섭다고.
“······이러한 공을 치하하고자, 짐은 그대에게 팔라디나주 대훈장을 수여하며, 완전무결한 제국의 후작 위와 봉토를 내리고 영원한 가호를 약조한다.”
우와, 가인 씨가 드디어 후작······!
“영지명은 ‘오트클레르(Hauteclere)’라고 하며, 이는 그대가 지키는 바다와 그대가 품은 바다를 모두 이름이다.”
“아······.”
“맑은 바다와 같은 영주가 되거라.”
감격한 가인 씨가 고개를 반짝 들었고, 폐하께서는 씩 입꼬리를 올리시며 그녀의 양어깨에 뒤랑달의 서약을 내려 주셨다.
나는 나탈리로부터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분의 결정이 얼마나 대단하고 뜻깊은 것인지를 깨달았다.
폐하께서 가인 씨에게 내리신 봉토는, 과거의 사르네즈 공작령이었다.
“짐은 그대에게 팔라디나주 대훈장을 수여하며, 완전무결한 제국의 백작 위와 봉토를 내리고······.”
이어서 요한 경에게도 작위가 내려졌다.
“영지명은 ‘제피르(Zephyr)’라고 하며, 이는 그대가 서편에 있는 제국의 바람을 받들어 선정을 베푸는 나날을 의미한다.”
요한 경의 영지는, 구 페네티안 영토에 있었다.
나는 굳이 지도를 살펴보지 않고도 폐하께서 그곳을 그에게 맡기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그 땅에서, 더는 그와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앞으로는 헤릿과 같은 아픔을 지닌 아이들이 숨어 지내지 않도록.
요한 경은 차분한 얼굴로 고개 숙여 폐하께 절했다.
나는 그가 훌륭한 영주님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끝으로······.
“짐은 그대에게 팔라디나주 대훈장을 수여하며, 완전무결한 제국의 백작 위와 봉토를 내리고 영원한 가호를 약조한다. 영지명은 ‘랑슬로(Lancelot)’라고 한다.”
“······.”
디오프 공자는, 어쩐지 조금 초연한 표정으로 폐하의 뜻을 받들었다.
그가 인장 반지를 낄 즈음에야 시선이 마주쳤다.
손뼉 치던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축하합니다, 공자. 정말 잘됐어요. 마르그리트 공녀에게도 좋은 일이 될 거예요.
“······.”
그러자 그는 와락 미간을 좁히며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왜? 제대로 못 알아들었나? 좋은 말만 했는데!
“다음.”
그 순간 폐하께서 뚝뚝하게 말씀하셨고, 알현실은 애물단지들이 접시라도 깬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시드르 잔 바닥의 체리 조각을 바라보며 한 잔 더 마시고 싶다고 생각······.
“······다음.”
“세레니테.”
-탓!
“어?”
순식간에 체리 조각 잔을 빼앗겼다. 이따가 포크로 긁어먹을 건데!
나는 억울한 눈빛으로 옆자리 짝꿍 놈을―
“내려가.”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무시무시하게 속삭였다.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 나도? 저요?”
저도 뭐 주셔?
“다음. 네 번째는 없다.”
“헉! 네, 갑니다!”
억! 하마터면 층계를 내려가다 발목을 삐끗할 뻔했지만, 태자의 신속한 낚아채기 덕분에 겨우 사회적 체면을 구기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얌전하게 내려가 폐하께서 주시는 훈장과 작위를 받았다.
스승님께서는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계셨고, 시종장 로라의 이마에는 올록볼록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죄송합니다······.
“후후후······.”
곁문 너머에서 예서 왕자님이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커다란 꽃다발과 아기를 안고 있는 그를 보며 입술을 감쳐물었다.
창피해서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결국은 나도 바보처럼 웃고 말았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
모든 서훈이 끝나고, 우리는 황제궁 정원에 동그랗게 모여 섰다.
가인 씨는 우리가 발을 하나씩 앞으로 내밀 것을 주문했다.
“세레니테 공작님, 왼발 아니고 오른발로 부탁드립니다.”
“아, 죄송합니다. 오트클레르 후작님.”
“데미 님, 뒷발 말고 앞발로 부탁드립니다.”
-끼아, 꾸우
꽃다발을 안은 나는 예복 차림으로 뒤뚱거리며 반대 발을 꺼냈다.
데미 역시 하동지동 엉덩이를 돌려 자세를 바꾸었다.
그러자 가인 씨가 나의 핸드폰을 들고는 요리조리 카메라를 움직여 보았다.
프랑수아는 내내 그 광경을 넋 놓고 구경했으며―안 쓰는 공기계라도 하나 가져다드려야 할까?―하난 폐하께서는 당신의 다리가 짧아서 역부족이라며 투덜투덜하시더니, 결국 동그라미 한가운데 서셨다.
왕자님은 앙증맞은 양말을 신은 세리즈의 발을 최대한 카메라에 가까이 대었다.
와중에 가나엘과 엘리자베트 경은 사이좋게 약혼반지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가인 씨가 눈을 빛내며 나를 돌아보았다.
“공작님, 저희도? 저희도 인장 반지 샷 같이?”
“좋습니다.”
“아, 아니다. 여기 인장 반지 너무 많다.”
‘제비랑은 안 찍고 싶어요.’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또 소리내어 웃어 버렸다.
그러자 랑슬로 백작 지브릴이 곧장 맞받아쳤다.
“이봐, 나도 잉어랑 반지 기록 남기고 싶진 않거든?”
“후작님, ‘사진’이라는 것은 언제쯤 끝납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붙어 있어야 합니까?”
“이제 찍을게요, 나비(Nabi) 백작님. 죄송.”
카미유 군에게 곰살맞게 대답한 가인 씨가, 곧바로 우리의 발 사진을 촬영했다.
-찰칵, 찰칵! 찰칵찰칵!
“하, 됐다. 한 장쯤은 손 안 떨고 찍었을 거예요. 이제 황제궁 셀카 고.”
나는 그녀의 농담에 또다시 킥킥거렸다.
이번에는 카메라가 하늘 높이 올라갔고, 코르넬리서는 두 눈을 깜빡이며 렌즈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지나가던 시종과 귀족들이 우리를 보고 수군거렸다.
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단체 사진 찍기에 여기보다 좋은 장소가 있는데.
“······저, 우리 다 같이 소풍 갈까요?”
“응? 소풍?”
카메라를 보며 여러 얼굴 각도를 시험하던 조안도, ‘이따위 짓 좀 그만하고 싶군.’이라고 이마에 써 붙인 세드리크도, 헤릿에게 팔라디나주 망토를 둘러 준 요한 경도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파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정현서는 나를 무슨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래서, 내일 소풍을 가기로 했다고? 쥘리에트 궁 뒷산으로?”
“응!”
“일요일 소풍 가는 거 짐 싼다고 토요일 밤에 다시 집에 들어온 거라고?”
“어!”
“지금 열두 시 다 돼가는 건 알고? 아니, 방금 열두 시 넘었다!”
“이병 정예서!”
나는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그사이 티테를 안은 세드리크는 아주 당당한 태도로 우리 집 소파의 ‘상석’을 차지하고 앉았다(헤릿과 뚝심이도 살며시 붙어 앉았다).
데미와 레아와 페리는 벌써 거실 한복판에서 술래잡기를 시작했고, 로피는 어느새 김치냉장고 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가인 씨는 정현서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도 망설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형은 그런 그녀를 지적하려다가 입만 벙긋벙긋했다.
그간 친구들의 방문에 완벽히 익숙해진 은서는, 폰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셀카. 애물단지들하고 셀카 백 장 찍어야지······.”
“······뭐가, 뭐가 필요한데. 형한테 말을 해야 싸주지.”
“역시 우리 형밖에 없어. 고마워. 사랑해.”
“닥쳐.”
정현서는 세상에서 제일 참담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게 또 너무 우스워서 나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웃었다.
“형, 삼각대랑 셀카봉 어디 있어? 친구들하고 소풍 가서 사진 찍을 거라.”
“거실 티브이장에. 너 내일, 아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고 이러냐?”
“오늘? 일요일?”
내가 서랍을 열며 되묻자, 형은 요한 경에게서 물컵을 받으며 턱을 까닥였다.
둘은 정말 죽이 척척 맞는구나.
“엄마랑 이모 이사는 다음다음 주고······. 우리 여름휴가는 7월 말이고······. 지금은 아직 6월 말인데. 뭐지?”
나 오늘 친구들 외에 일정 없는데. 아, 찾았다. 삼각대랑 셀카봉!
“공모전 마지막 날이라니까.”
“······어?”
······뭐가 마지막이라고?
“네가 올리는 팬픽. 너희 이야기. ‘지상최대 팬픽션 공모전’이 오늘까지야. 내일부터는 심사 기간이고.”
“아······! 그렇지!”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만 같았다!
벌떡 일어나는 나를 본 친구들이 덩달아 대화에 집중했다.
“그러면, 그러면 뭐라도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나?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친구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지낸다고······.”
“그걸 믿으시겠냐. 너희는 그냥······.”
금세 얼음물을 다 마신 형이, 우리를 둘러보며 피식했다.
“······그냥 앞으로도 잘 지내.”
‘그거 하나 바라시는 분들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그가 시크하게 덧붙였다.
나는 냉큼 머리를 주억였다.
“응. 우리 그런 거 완전 잘해.”
“말이나 못 하면.”
“아, 또 이래!”
그때, 폰을 쥔 은서가 느닷없이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우리는 놀라서 꼬맹이를 돌아보았다.
“정은, 왜?”
“내 폰······. 애들이랑 셀카 찍고 싶은데 먹통 어게인······.”
“또? 산 지 얼마나 됐다고. 어디 떨어뜨렸어?”
은서의 폰은 내 폰과 제조사가 달라서 다루기 쉽지 않지만, 나는 녀석을 위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막내가 오만상을 쓰며 찡찡거렸다.
“아니, 접때······. 내가 ‘아로정’ 너머로 폰 던진 날 있었잖아. 실수로. 그때 얘가 좀 맛이 갔나 봐. 맨날은 아닌데 가끔 아예 아무것도 안 눌러짐.”
“아이고.”
“이거 봐. 여기 파일 앱······.”
-톡!
앗, 눌렸다······!
“······엉?”
그런데, 액정을 확인한 은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녀석은 벌떡 허리를 일으키더니 금붕어처럼 입을 뻥끗거리기 시작했다.
“왜?”
“은서야, 왜. 해킹당했어?”
“오빠, 여기, 여기······. 파일······. 내 폰에 처음 보는 파일······.”
“뭐?”
······아주 기묘한 예감이, 짜릿짜릿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나는 허겁지겁 막내의 폰을 들여다보았다.
거의 동시에 정현서도, 가인 씨도, 세드리크와 요한, 헤릿과 신수들도 와르르 액정 앞으로 모여들었다.
‘퇴사했더니 이계 공녀_What If.hwp’
“······.”
“······.”
“······.”
몇 초 동안,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말도 흐르지 않았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전율에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가인 씨는 아예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두 눈을 회동그래 뜨고 있었다.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언어보다는 웃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하아, 있어······.”
“······.”
······그곳이, 아직 있어.
“형, 동산 세계선이······. 동산이 남아 있는 거야. 어떻게,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은서 폰에, 은서 폰으로······.”
-발딱!
깜짝이야! 나는 별안간 솟구치는 동생 때문에 놀라 뒤집어졌다.
우뚝 선 정은서는 이제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처럼 무시무시한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뭐야? 얘 뭐야?
“이것도 올려.”
“······네?”
“공모전에 이것도 올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며. 아직 안 끝났잖아.”
“······네? 네?”
나는 천하의 멍청이처럼 세 번이나 물음표를 던졌고, 그사이 은서는 성큼성큼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형과 친구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할 즈음에는 나 역시 안도와 행복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잠깐만, 은서야.”
“나만 믿어. 아니, 주신을 믿어!”
“진정, 우선 진정하고······.”
“나 이래 봬도 라지 한 조각이야!”
-끼앗!
아니, 그래도 일단 우리끼리 파일 확인을 좀 해보고······!
“이거 올리면 동산 애들도 살아남! 진짜임! 신성한 느낌이 팍 와!”
하하하. 나는 동생의 뒤통수에 대고 기나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못 말리겠다니까.
“정은서!”
<서브 남주가 파업하면 생기는 일>,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