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0)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0화(10/125)
#10
유진은 제 얼굴 한쪽을 다 가릴 정도로 커다란 화상을 가리키며 계속 떠들어 댔다.
대공의 불새가 자신을 공격했는데 결계에 막혀 못 죽였다나?
공격당해 화상을 입었으면서 결계만 아니었다면 불새를 죽일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하던 그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던지.
유진은 오히려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이렇게 반응이 없을 수가 있냐면서.
그러다 내가 소리를 못 듣는다는 걸 알고는 이죽거렸다.
‘귀머거리라 내 얘기를 듣고도 반응이 없었던 거였군?’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입 모양을 읽어 알아들었으나 관심이 없어 대꾸를 안 한 것뿐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이토록 유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데 바로 알아보지 못한 건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회귀하기 전, 내가 본 유진은 얼굴 한쪽을 다 가릴 정도로 커다란 화상 자국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은 반들반들하기만 했다.
거기에 꽤 높은 직급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이렇게 아이들을 다루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어 이름을 들은 후에도 둘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한결같은 게 있긴 하네.’
바로 저 몰상식한 성격.
어쨌거나 유진의 정체를 기억해 낸 이상, 나는 더욱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유진은 출세하기 전까지 리슬리란테 경매장에서 일했다.
내가 알기로, 리슬리란테 경매장에 오는 사람들은 변태뿐만 아니라 도박업자와 마법사 등 직업이 다양했다.
주로 검투사와 마법 실험체로 쓸 아이들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난 겉보기에도 그렇고 실제로도 유약한 여자아이니 검투사로 팔릴 걱정은 없지만…….
그 외의 것으로 팔려 나갈 확률이 높았다.
‘둘 다 싫어.’
차라리 길거리에서 굶어 죽고 말지!
한차례 진저리를 친 나는 어제 룩스가 물어 온 정보들을 토대로 짰던 탈출 계획을 되뇌었다.
룩스 덕분에 탈출로를 알아내긴 했지만, 갇혀 있는 지금 나 혼자서 거기까지 가기란 불가능했다.
‘이 철창에서도 나가야 하고, 유진의 눈도 피해야 해.’
그런 관계로 나는 룩스를 통해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룩스한테 계속 의지하고 위험한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 방법뿐인걸.’
나는 유진이 뿌린 빵을 뜯었다.
―빵! 빵 냄새다, 찍!
익숙한 소리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근처에 룩스가 도도도 달려오는 게 보였다.
―빵, 찍!
‘줄게. 잠깐만.’
막 뜯은 빵 쪼가리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룩스가 그 위에 올라탄다.
―빵 좋아, 찍!
‘잘 먹네.’
난 딱딱해서 먹기 힘들던데.
룩스는 아주 빠른 속도로 빵을 먹어 치우고는 널브러졌다.
―배부르다. 역시 움직인 다음에 먹는 음식은 맛있는 법이지, 찍.
꽤 만족스러운지 양발을 앞으로 휘적거리는 룩스를 보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일은 어떻게 됐어?’
―다들 협력해 준대, 찍!
‘정말?’
―그래, 찍!
‘다행이다.’
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외부 도움이 꼭 필요했으니까.
내가 룩스에게 부탁한 것은 이 근방에 있는 다른 동물들에게 도움을 청해 ‘키시안’의 뿌리를 캐 감시자들이 먹을 음식에 넣는 거였다.
비교적 흔히 볼 수 있고 생긴 게 못나서 잡초로 치부하는 키시안은 알뿌리를 가진 식물로, 뿌리에 강한 독성이 있었다.
강하다고 표현하긴 했으나 사람을 죽이는 독은 아니었다.
복통을 일으키고 설사를 유발하는 정도?
문제는 그 복통이 굉장하다는 것이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걱정될 만큼.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는…….
‘나도 알고 싶지 않았지.’
보육원에 있을 때, 나는 주린 배를 잡은 채 참아야만 하는 날이 잦았다. 제 배를 불리기 바쁜 원장은 아이들 따위 알 바 아니었고, 배식을 권력처럼 휘둘렀으니까.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내게 감자가 보였다.
실은 감자가 아니라 마리 언니가 원장의 지시를 받아 보육원 앞에 난 잡초들을 제거하다 섞인 키시안의 뿌리였지만.
이를 알 리 없는 나는 배고픈 마음에 몰래 키시안의 뿌리를 가져다 그걸 먹었더랬다.
결과는 뭐…….
그때는 고생도 많이 하고 마리 언니에게 혼나기까지 해서 서러웠지만, 지금은 그 경험이 고맙기만 했다.
이렇게 써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키시안의 뿌리를 캐서 남자 인간들이 먹을 음식에 넣는다! 그다음, 누님 쥐가 열쇠를 가져오고 도망친다! 이거 맞지, 찍?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손이 묶여 있는 관계로 참아야만 했다.
룩스의 말대로, 내 계획은 이랬다.
어제 온종일 지켜본 결과 유진을 비롯해 다른 감시자들은 우리와 달리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 같아 결정한 것이었다.
복통에 시달려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탈출을 감행할 생각이었다.
열쇠를 훔치는 역할을 맡은 ‘누님 쥐’ 역시 결국은 쥐라서 룩스처럼 작을 텐데 어떻게 열쇠를 들고 오려는 건지 걱정되지만…….
나와 달리 룩스는 걱정하지 말라며 아주 자신 있게 외쳤다.
―괜찮아! 누님은 날 두 번 합친 것만큼 크거든! 가져올 수 있어, 찍!
라고 말이다.
‘룩스의 두 배라면 될 것 같아 믿어 보기로 했지.’
누님 쥐로부터 열쇠를 건네받으면 문을 열고 이곳을 나가 개구멍을 통해 무사히 도망치면 끝!
……라고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실은 나도 안다.
아주 허술하며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당장은 이 방법뿐이야.’
유진의 말에 따르면 바로 내일이 경매일이었다.
경매장 특성상 밤에 시작될 테니 나는 그 전에 탈출해야 했다.
‘그런데 룩스, 그 누님이라는 쥐도 협력해 준다고 한 거 맞지?’
―물론이지, 찍.
‘설득하는 데 어렵지 않았어?’
―오히려 좋아하던데, 찍.
‘좋아했다고? 날 돕는 걸?’
―응! 정말 멋진 계획이라며 감탄했어. 평소 여기 인간들한테 엄청나게 괴롭힘당했다고 하더라고, 찍.
하긴, 어린아이도 막 대하는 사람이 동물에게 잘해 줄 확률은 비교적 낮겠지.
―그래서 우리 계획을 듣고 다들 인간들을 골탕 먹일 기회라면서 좋아했어, 찍!
룩스가 덧붙였다.
―그럼 나도 키시안을 캐러 다녀올게. 내일 아침까지 캐서 점심에 섞으면 되는 거 맞지, 찍?
‘응. 힘들겠지만, 최대한 많이 부탁한다고 전해 줘.’
―우리만 믿어, 찍!
나는 멀어지는 룩스를 보며 벽에 몸을 기댔다.
제발 잘해 줘야 할 텐데.
* * *
걱정했던 것과 달리 룩스와 동물 친구들은 정말 잘해 줬다. 기대 이상으로.
나는 점심을 먹은 뒤로 내내 인상을 찡그리고 앉아 있는 유진을 힐끔 바라봤다.
“으…….”
얼마 안 있어 그가 제 배를 움켜쥔 채 일어났다.
―푸핫! 저 남자 또 나간다!
내 머리 위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말대로였다.
유진이 저렇게 허둥지둥 밖으로 나간 게 이번이 세 번째였으니까.
탁―.
‘하나, 둘, 셋…….’
문이 닫힌 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도망치려면 유진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 알아야 했고, 시계가 없는 관계로 내가 일일이 세어야 했다.
―밖에 있는 다른 인간들도 지금 다 저러고 있겠지? 쌤통이다! 으하핫!
다시금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나는 계속 숫자를 세며 고개를 들었다.
구석진 벽 위쪽에 하늘다람쥐가 숨어 있는 게 보인다.
룩스보다 두 배는 더 큰 덩치를 지닌 저 하늘다람쥐가 바로 그저께 룩스가 만났다던 ‘누님 쥐’였다.
룩스와 같은 생쥐일 줄 알았는데 하늘다람쥐가 날 찾아왔을 때의 심정이란.
어쨌거나 룩스 말고는 다른 동물들과 대화할 기회가 없어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나는 하늘다람쥐와도 대화할 수 있었다.
―네가 그 인간?
‘으, 응?’
갑자기 내 어깨 위로 올라와 말을 거는 하늘다람쥐의 모습에 놀라기도 잠시.
―흐음? 이걸로는 말이 통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너, 내 말 알아듣고 있는 거 맞아?
‘응. 알아듣고 있어.’
―와!
하늘다람쥐가 크게 감탄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인간이랑 말이 통한다고?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찍.
―대단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놀란 만큼 하늘다람쥐도 놀라워했지만 그뿐이었다.
우리에게는 ‘탈출’이라는 더 중대한 일이 있었으므로.
짧은 대화 끝에 하늘다람쥐는 내가 세운 계획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 도움 중 하나가 지금 이 상황인 거고.
―누님, 신나 보여, 찍.
―그럼 내가 안 신나겠어?
동그랗고 까만 두 눈을 깜빡거리는 하늘다람쥐의 외양은 말할 것도 없이 정말 귀여웠지만…….
―인간들이 당하는 걸 볼 수 있다니! 키시안을 더 넣을 걸 그랬어!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괴로워했을 텐데!
속은 전혀 귀엽지 않달까.
―그보다 너, 애니라고 했지?
돌아보는 시선에 나도 모르게 몸이 흠칫 떨린다.
그러나 하늘다람쥐는 내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연달아 물었다.
―난 언제 열쇠를 훔치면 돼?
그리고 열쇠 꾸러미가 걸린 탁자에 시선을 준 채 제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 있는 익막을 펄럭인다.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지금? 지금 가면 되는 거야? 빨리 탈출하자!
‘아직이야. 조금만 기다려 줘.’
―으으, 빨리 날고 싶어! 날개가 근질거려!
나는 하늘다람쥐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꿋꿋하게 숫자를 세었다.
“망할, 대체 요리를 어떻게 한 거야? 썩은 고기로 조리했나.”
‘……723, 724. 대충 12분 정도인가?’
중간에 하늘다람쥐가 말을 걸어 잠깐 헷갈리고 안 세었던 거까지 합하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점점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
나는 돌아온 유진을 보며 일이 잘되어 가고 있음에 안도했다.
키시안의 뿌리가 잘 먹혔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리고 저 복통은 지금보다 더 잦아지고 그를 괴롭히는 시간은 더욱 길어질 게 분명했다.
‘밧줄은 이 정도면 됐고.’
나는 룩스가 이틀에 걸쳐 갉아 준 밧줄을 점검했다.
조금만 힘을 주면 쉽게 뜯어질 만큼 밧줄은 헐거워진 상태였다.
‘이다음에 또 자리를 비우면 계획대로 하자. 잘 부탁할게.’
―드디어!
내 말에 하늘다람쥐가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룩스도 얕게 찍! 소리를 낸 걸 봐선 기쁜 모양이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유진이 다시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그가 다시 배를 움켜쥐고 일어났다.
―나가려나 봐, 찍!
―훔쳐 올까?
룩스와 하늘다람쥐가 동시에 말했지만, 나는 그 둘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탁―.
유진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지금이야.’
내가 하늘다람쥐를 보며 속으로 말하자마자 하늘다람쥐가 벽에서 떨어지더니 유하게 쇠창살 사이를 날아 나갔다.
빠르게 탁자 근처까지 날아간 하늘다람쥐는 탁자 다리를 타고 올라가 모서리에 걸려 있던 열쇠 꾸러미를 건드렸다.
철그럭!
생각보다 큰 소리에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다람쥐……?”
그중에는 하늘다람쥐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바로 열쇠들이 걸린 고리에 머리를 끼우고 책상에 올라가 다시 뛰어내리는 모습을.
―성공!
―역시 누님이야! 멋져, 찍!
하늘다람쥐는 순식간에 내가 갇힌 철창 안에 활착해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갇힌 아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빨리 나가야 해.’
몇몇 아이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읽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갇혀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도망치는 건 나 혼자여야만 했다.
이목을 끌면 그만큼 경비도 삼엄해질 테니까.
손에 힘을 줘 벌리자 헐거워진 밧줄이 뜯기며 단번에 풀어졌다.
―이거 가져가!
‘고마워.’
나는 하늘다람쥐가 목에 걸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잡아 빼냈다.
고리에는 꽤 많은 열쇠가 걸려 있었지만, 내가 갇힌 곳의 열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틀 동안 유진이 어느 열쇠를 쓰는지 봐 둔 덕분이었다.
쇠창살 사이로 손을 한껏 뻗어 올려 좀 헤맨 끝에 나는 겨우 열쇠를 꽂아 넣을 수 있었다.
‘이제 돌리기만 하면…….’
철컥.
‘됐다!’
살짝 밀어 보니 철창 문이 열렸다. 정말 해낸 거야!
“비켜!”
“악!”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철퍼덕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