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02)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02화(102/125)
#102
“미하엘 실베스터?”
“네? 아, 네. 맞아요.”
“실베스터가 널 도왔다고?”
끄덕끄덕.
“그걸 빌미로 네게 뭔갈 요구한다거나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고?”
“딱히 그런 건 없었는데……. 어쨌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증인도 있으니 확실히 처벌받겠죠.”
“황실에서 내릴 처벌이야 뻔하지. 감히 그딴 짓을 벌이고도 살아있을 게 분명한데.”
아빠가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나직이 덧붙였다.
“그놈을 죽여 널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삼는 게 낫겠다.”
“안 돼요, 아빠! 죽이면!”
“살려 두라고?”
“그, 음, 손 정도는 잘라도 괜찮을 것 같…… 헉! 아니, 아니에요! 일단 황실의 처분을 기다려보고 결정해요! 네?”
워낙 쌓인 게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내가 튀어나오네.
다행히 황급히 수습한 게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네가 원하니 기다려 보지.”
여전히 아빠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으나 주변에 일렁이던 붉은 빛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한숨 돌렸다는 생각에 안도하는데 아빠가 내 손목을 붙잡더니 손바닥을 살폈다.
장갑 위로 비친 말라붙은 핏자국이 유독 눈에 띄었다.
맞다, 손바닥이 까졌었지. 치료해야 하는데.
“손은 어쩌다 다쳤지?”
“아, 넘어졌는데 그때 다쳤나 보더라고요.”
“소르겐 백작 때문에?”
“맞, 헙!”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나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못 알아들으셨겠지? 그래야만 하는데?
당장이라도 소르겐 백작을 죽이겠다고 할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빠는 조용히 내 손에서 장갑을 벗겼다.
“꽤 까졌군.”
아빠의 말대로 손바닥에 난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안 아팠나?”
“조금 따끔거리긴 했어요.”
이 정도로 상처가 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뿐.
쯧, 혀를 내두른 아빠가 내 손바닥 위에 제 손을 올리자 붉은 빛무리가 함께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아빠가 다시 손을 떼었을 때 내 손바닥은 언제 까졌냐는 듯 말끔히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이제 안 아프겠지. 그리고.”
“……?”
“그놈은 역시 죽이는 게 나을 것 같다.”
못 알아들으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아니었어.
그 뒤로 나는 다시 아빠를 말리느라고 진땀을 뺐다.
* * *
황후궁에 들어서자 답지 않게 주위가 소란스럽다. 황후를 닮아서인지 황후의 시녀들도 제법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도 말이다.
‘무슨 일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가자 날 발견한 부인들이 반갑게 인사해 주고는 흩어졌다.
분명 뭔가 시끄럽게 얘기하는 눈치였는데…….
내가 오니 흩어지는 걸 보자 괜히 어제 테라스에서 어떤 남매 귀족이 떠들던 대화가 떠올라 껄끄러워졌다.
평소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사람이란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연회장에서 웃고 떠들다가도 발코니에서는 아빠와 나에 대해 험담하듯.
의심이 피어나려던 때, 다른 시녀들과 달리 가지 않고 내 근처에 있던 데보라 부인이 날 보며 말했다.
“베로니카 양이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니 신경 쓰지 말아요. 어제 연회 일 때문에 그런 거니까요.”
“……?”
“베로니카 양도 연회에 참석했으니 들었을지 모르겠네요. 어제 사람이 죽었대요.”
“사람이 죽어요?”
순간,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야. 아빠는 나와 계속 있었던 데다 약속했는걸?
“누군지 아세요?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요.”
“글쎄요. 지방에서 올라온 귀족이라고 들었는데,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술을 많이 마셔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모양이에요.”
이어진 부인의 말에 그제야 나는 안도했다. 아빠가 오해받는 일은 없겠구나.
어제 죽은 사람은 안타깝고 미안하지만, 아빠 생각부터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베로니카 양은 아직 어리니 다들 말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걸 거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신경 쓰는 게 눈에 밟혀서 말해주는 거구나.
“이해했어요. 감사해요, 부인.”
“무얼요. 오늘도 엘피다 사절단을 만나러 가죠?”
“네, 맞아요.”
“파르지 남작님이 일찍 오셔서 베로니카 양에게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어요. 오늘까지만 별궁으로 가면 된다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오늘까지만이요?”
“듣기로 협약 조정이 어제 다 끝났다나 봐요. 그래서 내일 전부 돌아간대요.”
그렇게나 빨리 돌아간다고? 며칠 더 머무를 줄 알았는데.
“전달해주셔서 감사해요.”
데보라 부인이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가 자기 할 일을 하러 가겠다며 돌아가려던 때 나는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저, 부인. 혹시 동물 반입을 허락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 * *
엘피다 사절단이 머무르는 별궁으로 향하며 나는 차분히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리스테안을 만나면 돌아갈 때 데보라 부인이 알려준 대로 행정부에 들러야지.
동물 반입을 맡으려는 건 어제 소르겐 백작과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룩스도 없는데 하필 황궁 안이라 아빠도 못 부르고……. 미하엘 경이 아니면 정말 위험할 뻔했지.’
다시 떠올려도 끔찍해 나는 몸서리쳤다.
돌이켜보면 소르겐 백작이 뭐라고 그렇게 겁먹어 굳을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아빠나 룩스가 없으면 나는 힘 없는 어린 소녀라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황궁도 안전하지 않고.’
무려 두 번째였다.
한 번은 어릴 적 말롱 부인, 또 한 번은 어제 소르겐 백작.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만큼 룩스와 함께 할 수 있게 허락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내가 황후의 시녀를 그만두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그걸 빌미로 황제가 또 아빠한테 무얼 요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내키지 않았다.
룩스를 데리고 다니는 건 황궁에서 겪은 일이 있으니 이걸 빌미로 뭐라 하진 않겠지?
황제도 그 정도의 염치는 있을 테니까.
……는 아닌가?
으으, 상대가 하필 ‘그’ 황제라 감이 안 잡히네.
‘하지만 이제 성년까지 2년도 채 안 남았어.’
아빠가 날 책임지겠다고 약조한 기간도 저것밖에 안 남았다.
고대 무기를 찾았다는 전제가 붙지만, 내가 아는 미래에 아빠는 반란을 일으키니 확정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언제까지고 아빠를 최후의 보루처럼 의지할 수 없었다. 느리게라도 천천히 바꿔나가야 했다.
지금처럼 습관적으로 아빠를 찾을 게 아니라 아빠가 없어도 나 혼자 할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을 하며 엘피다 사절단이 머무르는 별궁에 들어섰을 때다.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돌아간다더니 다들 짐 챙기느라 바쁜가 보네.’
사람들을 지나쳐 리스테안을 찾아가려던 때다.
“아, 오셨군요. 베로니카 양.”
“힉!”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내가 화들짝 놀라자 리스테안도 당황한 눈치다.
“죄송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괜찮아요.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온 줄 몰랐어요. 전해 듣기로 내일 돌아가신다고…….”
“이미 알고 계셨군요. 맞아요. 내일 동트자마자 엘피다로 돌아갈 것 같아요.”
“그렇게 일찍이요?”
“더 머무를 이유가 없으니까요. 일찍 출발해야 도착하는 날도 이를 테고요.”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리스테안이 워낙 착해 정든 탓이다.
“아마도 오늘이 베로니카 양과 만나는 마지막 날이네요. 그동안 베로니카 양 덕분에 좋은 기억을 만든 것 같아요.”
“저도요.”
으,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동안 내가 리스테안한테 한 행동들이 떠오른다.
엘피다에 관해 이것저것 물으며 귀찮게 굴었던 것 같은데 저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보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나요?”
“아, 네. 아빠가 일찍 돌아가자고 하셔서요.”
아빠가 아니라 내가 먼저 돌아가자고 제안한 거지만.
“다행이네요. 연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인사하려고 했는데 안 보여서 걱정했어요.”
걱정하다니 리스테안도 어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가?
쉽게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질 못하는데 리스테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도 오래 못 뵈어 아쉽더라고요.”
“저희 아빠를요?”
“네. 조금 무섭긴 해도 좋은 분 같았는데.”
“……?”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내가 빤히 바라보자 리스테안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 시선을 살살 피하는 게 왠지 곤란해 보인다.
동시에 지난밤 카드릭의 생일 연회에서 리스테안이 보인 행동과 감정이 떠오른다.
‘지금도 날 의식하는 거야?’
이렇게나 투명한데 그동안 왜 못 알아챘나 싶다.
아니, 도저히 그럴 줄 몰랐다는 게 맞겠지.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설마 날 좋아할 줄 알았겠냐고.
내 시선을 피하던 리스테안이 갑자기 날 똑바로 마주 본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단단한 눈빛이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며 몸이 뻣뻣해졌다.
설마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