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05)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05화(105/125)
#105
실베스터 공작이?
단 한 번도 직접 대면한 적 없는 사람이지만, 명칭을 듣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졌다.
“뭐 때문에요?”
“……신경 쓸 거 없다. 별일 아니니.”
별일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빠와 실베스터 공작이 엮이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니까.
특히나 회귀 전을 떠올리면 아빠와 실베스터 공작가 사이에 모종의 무언가가 있는 건 분명했다.
‘아직 1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접점이 이뤄진다니…….
물론 회귀하기 전에도 이쯤에 접점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래도 마음을 놓고 있었던 만큼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다.
“혹시 룩스를 데려갈 마음은 없으세요?”
“네 마수를?”
“왠지 걱정돼서요. 감이 안 좋아요.”
“별걱정을 다 하는군.”
아빠가 옅게 웃었다.
“내가 위험해질 일은 거의 없지. 고작 실베스터 공작과 만난다고.”
으, 회귀 전 일을 말해줄 수도 없고.
솔직히 아빠가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나도 확신이 없는 만큼 말해주기도 어려웠다.
아빠가 걱정되는데. 둘이 어떤 대화를 할지도 궁금하고.
무사히 돌아온다 해도 대화 내용을 내게 말해주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내가 네 마수를 데려가면 누가 널 호위하지?”
“기사들을 데려가면 되죠.”
“기사와 하녀를 따돌린 적이 몇 번이더라?”
“크흡! 몇 번밖에…….”
“밖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으므로.
페리드 경이 말롱 부인에게 협조한 사건 이후로 호위기사를 믿지 못하게 된 것도 한몫했지만, 어쨌거나 변명이긴 했다.
‘그러고 보니 페리드 경을 닮은 영애도 펠리시타스에 봉사하러 오지 않나?’
이리스 넬레였던가?
갑자기 떠오른 이리스 생각에 약간 불편해진 것도 잠깐이었다.
“어쨌든 내 걱정은 할 것 없다. 먼저 나가마.”
“앗! 다녀오세요!”
나는 아빠를 배웅했다.
* * *
“안녕하세요, 공녀님.”
―착한 인간! 좋은 인간!
“어서 와, 리리카.”
내가 인사하기도 전에 룩스가 먼저 꼬리를 붕붕 흔들며 주변을 맴돌았다.
리리카가 웃으며 그런 룩스의 턱을 간질였다.
“룩스는 여전히 귀엽네요. 오랜만이야, 룩스.”
―간식 줘! 간식!
“여전히 애교가 많네요.”
“으, 응. 룩스는 널 좋아하니까.”
“정말요? 기뻐라.”
―간식!
정확히는 파르지 남작가에서 주던 특제 간식인 뼈다귀를 좋아하는 거지만…….
리리카가 룩스의 속내를 듣지 못해서 다행이라니까.
“그런데 못 보던 동물도 있네요. 다람쥐인가요?”
―다람쥐 아니야! 나는 하늘다람쥐라고!
“처음 보지? 하늘다람쥐고 이름은 슈가라고 해.”
“세상에나! 너무 귀여워요!”
―흥, 보는 눈은 좀 있는걸?
―좋은 인간이라니까!
확실히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슈가와 룩스까지 거들어 떠들면 정신이 없네.
특히 슈가가 리리카를 처음 만나서인지 평소보다 더 시끌벅적하다.
“공녀님은 정말 동물들을 사랑하시네요. 이 다람쥐도 공녀님께 딱 붙어 있고……. 너무 귀여워요.”
―글쎄, 하늘다람쥐래도.
“어릴 적부터 같이 해서 그래. 그보다 정말 같이 가도 괜찮겠어?”
“네? 아, 보육원에 가는 거 말씀이죠? 당연히 괜찮죠. 거들어드릴 수 있다니 기쁜걸요.”
리리카가 밝게 웃었다.
원래 보육원에는 나 혼자만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리리카가 파르지 남작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에 날 보고 싶어 했다.
서로가 괜찮은 날을 맞추다 보니 남는 게 오늘이었다.
보육원 방문을 다음으로 미루려던 참에 리리카가 함께 가자고 말해줘서 이렇게 된 거였다.
조금 떠들던 우리는 룩스와 함께 마차에 탔다. 가는 내내 룩스는 리리카의 옆에 누워 몸을 이리저리 배배 꼬았다.
뼈다귀 간식을 달라며 항의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리리카는 룩스가 자신을 이렇게 편해하는 줄 몰랐다며 좋아했다.
불쌍한 리리카…….
“베리!”
마차에서 내리자 마리 언니가 날 반겼다.
“어떻게 알고 나와 있었어?”
“오랜만에 화단을 정돈하고 있었거든. 때마침 네가 왔네.”
마리 언니의 말대로 언니의 몸 곳곳에 흙과 이파리가 묻어 있었다.
“이 추운 날에?”
“그러니까 내가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을 시킬 수 없으니까.”
이제 보육원 원장이니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될 텐데.
조금 미련하긴 하다. 나야 이런 언니라서 좋아하지만.
“그보다 옆에 계신 분은…….”
“아, 내 친구야. 리리카, 이 사람은 내가 말했던 마리 언니.”
“안녕하세요, 리리카 파르지예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공녀님의 친언니 같은 분이라고요.”
“베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지만……. 말 편히 놓으세요. 저는 평민이라 공대 듣는 게 불편합니다.”
“그럴 수 없죠. 공녀님의 친언니 같은 분인데요.”
리리카와 마리 언니가 옥신각신하자 나는 둘을 중재했다.
“우선 들어가서 얘기할까? 춥잖아.”
* * *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이들이 룩스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와! 멍멍이다!”
“멍멍이 안녕! 오랜만이야!”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마리 언니가 난색을 보였다.
“미안. 보육원에서는 동물을 안 키우다 보니 애들이 동물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 저번에도 보육원 담을 넘어온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되냐고 얼마나 성화던지…….”
“괜찮아.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닌걸. 룩스도 익숙할걸?”
“멍멍아! 물어와!”
―멍!
한 아이가 공을 던지자 룩스가 기다렸다는 듯 튀어 나가 물어왔다.
야, 너 개 아니잖아…….
다들 즐거워하는 중에 나만이 그 모습을 황당하게 보고 있을 무렵이다.
“오랜만이에요, 공녀님.”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소녀가 보였다.
“넬레 영애?”
“절 기억하시는군요. 기뻐요.”
이리스가 활짝 웃었다.
“아는 사이인가요?”
리리카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넬레 남작가의 이리스 넬레입니다.”
“리리카 파르지예요.”
“파르지 가문이라면 외교로 유명한 그 파르지 가문이요?”
“저희 가문을 아세요?”
“그럼요. 엘피다와 외교 건으로 유명하잖아요. 남작님과 남작 부인의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 얘기도요.”
“저희 부모님 얘기가 그렇게 유명하진 않을 텐데…….”
“그게, 이번에 다녀간 엘피다의 어느 공자가 참 잘생겼다고 해서요.”
리스테안 얘기인가 보네.
엘피다에서 온 사절단 중 내 또래라고는 리스테안뿐이었으니까.
“엘피다에서 온 공자다 보니 다들 아쉬워하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엘피다 인이라고 포기할 일은 아니라고, 파르지 남작가가 예시라고요.”
이리스가 부끄러운 듯 손을 꼼지락거렸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저는 저런 이야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제 또래들은 참 좋아해서 듣게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특히 모임에 오는 몇 귀공녀들은 연회에 참석하다 보니 더욱 그래요.”
“아, 무슨 느낌인지 알아요. 다들 그런 거 좋아하죠.”
리리카가 드물게 동조했다.
아마 지방에 있을 때 평소 함께 어울리던 이들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늘 사이에 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만큼 이리스의 이야기가 퍽 공감되는 듯했다.
“저어, 베리?”
“응? 왜, 언니?”
“이리스 아가씨와 친해 보여서 그런데 여기 잠깐만 있을래? 넬레 아가씨는 자주 오셨으니 뭘 할지 물어보면 친절히 말씀해주실 거야.”
“언니는 어디 가게?”
“화단을 마저 정리해야지.”
맞다. 그러고 보니 언니는 화단을 정리하고 있었댔지.
“얼마나 남았는데?”
“금방 다 해. 화단 한 칸 정도만 남았거든.”
말이 화단 한 칸이지, 최소 반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아는 나는 언니를 만류했다.
“내가 할게. 언니는 쉬어.”
“그럴 순 없어! 날이 얼마나 추운데!”
“날씨가 이러니 내가 해야지. 그래도 내가 언니보다 훨씬 어리고 건강하잖아.”
“그래도 너한테 그런 걸 시킬 순 없어. 네 옷도 더럽혀질 테고.”
“옷 걱정할 거면 어떻게 여기에 오겠어? 그리고 나도 어릴 땐 화단 정리 자주 했는데, 뭘.”
“그때랑 지금은 다르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똑같아. 그리고 언니보단 내가 더 빨리하고 올걸?”
나는 마리 언니를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언니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내 고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느덧 친해진 듯한 리리카와 이리스를 부탁한 나는 아이들과 놀던 룩스를 불러 함께 나왔다.
아무리 보육원 안이라 해도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가장 좋아한 건 룩스였다.
―베리! 베리! 나 막 뛰어다녀도 돼?
“응. 물건만 부수지 마.”
―좋아!
룩스가 먼저 달려가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달려가길 반복했다.
우다다닥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에 저렇게 좋을까 싶어 절로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번에도 앞서서 먼저 달려가던 룩스가 갑자기 우뚝 멈췄다.
―냄새!
“응?”
―그 남자 인간 냄새나! 잡을까?
남자 인간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면을 유심히 보던 나는 곧 룩스가 말한 ‘남자 인간’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