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06)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06화(106/125)
#106
‘미하엘 경?’
저 남자가 왜 여기 있어?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으나 얼핏 보이는 금발과 얼굴선, 그리고 체형은 미하엘 경이 틀림없었다.
―응? 잡을까?
‘아니, 일단 내버려 둬.’
―그래!
룩스가 꼬리를 흔들며 내게 찰싹 붙었다. 내버려 두라고 했으나 지금의 조우는 꽤 당혹스러웠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만약 미하엘 경이 미리 보육원을 방문했다면 작든 크든 이야기가 들렸을 터다.
하지만 들은 게 없으니까 막 왔다는 뜻인데.
‘설마 날 보러 온 건가?’
그럴 리가.
불쑥 치솟은 생각에 바로 반박이 이어졌다.
펜던트도 돌려준 마당에 미하엘 경이 더는 날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갑자기 봉사라도 하고 싶어졌나 보지.’
그런데 많고 많은 보육원 중에 하필 여기에?
게다가 귀족들이 여길 오는 이유는 나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안에 들어오지 않고 화단 앞에 서 있는 것도 이상한데.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중증만 심해지는 느낌이라 나는 머리를 세차게 털어냈다.
생각이 많아도 내 발은 꿋꿋하게 화단에 도달했다.
무어라 먼저 말할 줄 알았던 것과 달리 미하엘 경은 날 빤히 보기만 했다.
“여기서 볼 줄 몰랐네요.”
“…….”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지, 왜 여기 있어요?”
“그러는 공녀께서는.”
“저는 할 일이 있어서요.”
나는 화단을 힐긋 봤다. 마리 언니의 흔적으로 보이는 바구니와 가위가 보인다.
“공녀가 이걸 왜 합니까?”
“예전에 자주 했는데요. 그러는 미하엘 경도 예전에 같이 했…….”
무심코 말하던 나는 멈칫했다. 잠깐, 언제 같이 미하엘 경과 화단을 손질했지?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 미하엘 경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빤히 그를 바라보는데 그의 이마에 난 붉은 상처가 보였다.
“다쳤어요?”
“……?”
“이마요. 피 나는 거 같은데.”
내 말에 미하엘 경이 손으로 제 이마를 쓸었다.
‘저렇게 세게 만지면 덧나지 않나?’
생각하기 무섭게 그의 이마에 핏방울이 몽글 맺혔다.
헉! 나 때문에 상처가 터진 거야?
당황한 나는 미하엘 경에게 손짓했다.
“들어와요. 치료하는 게 좋겠어요.”
내가 돌아서려던 때다. 미하엘이 내 손을 붙들었다.
의아해하며 돌아보자 미하엘 경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별거 아니니까.”
“별거 아니어도 제가 신경 쓰여서 그래요. 잠깐만 여기 있어요. 연고 들고 금방 다시 나올 테니까.”
나는 미하엘 경의 손을 살짝 쳐냈다.
‘룩스, 잠깐 미하엘 경 좀 잡아둘래?’
―그래!
룩스가 미하엘 경의 소매를 덥석 물었다.
그가 멈칫한 사이 나는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 연고를 달라고 했다.
갑자기 연고를 찾자 마리 언니는 내가 다친 줄 알았는지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둘러댄 끝에 연고를 가지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잘 잡아 뒀네.’
―응! 나 잘했지!
‘잘했어.’
꼬리를 흔드는 룩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나는 뚜껑을 열어 연고를 손에 덜어냈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발라 주려 했는데…….
‘손이 안 닿네.’
있는 힘껏 팔을 뻗으며 애쓰는데도 잘 닿지 않는다.
이럴 때는 평균보다 작은 키가 원망스럽다니까.
저쪽이 무식하게 큰 것도 한몫하…… 어?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 다시 정면을 보니 갑자기 가까이 있는 미하엘 경의 얼굴이 보였다.
당황해 반사적으로 물러서는데 치맛자락이 구두에 밟혀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균형을 잃은 몸이 뒤로 넘어갔다.
눈을 질끈 감았으나 덮쳐오는 고통은 없었다. 대신 누군가가 나를 받쳐준 느낌만 들 뿐.
‘룩스겠지? 룩스여야 하는데.’
―나 아닌데? 저 남자 인간이 잡아줬어!
내게만 들리는 해맑은 음성이 머릿속을 가득 울린다.
‘나도 알아.’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 허리를 단단히 받친 손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사람의 손이었고, 여기서 나 말고 타인은 미하엘 경밖에 없으니까.
조심스레 눈을 뜨자 아니나 다를까. 아까보다 더 가까워진 미하엘 경의 얼굴이 보인다.
내리깐 긴 속눈썹 아래 무심하게 날 응시하는 황금색 눈동자가 정말 예쁘다.
왜 내 또래의 영애들이 모이기만 하면 미하엘 경의 미색을 찬양했는지 알 것만 같다.
‘아, 또야.’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뛴다. 이전부터도 꽤 뛰고 있긴 했지만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뛰는 박동이 곤혹스럽다.
놀랐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표현할 수 없는 감각.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똑바로 선 뒤 거리를 벌렸다.
“감사해요.”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억울했지만 어째서인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카드릭이 이랬을 때는 잘만 따졌는데.
애먼 입술만 계속 잘근잘근 씹는데 미하엘 경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애써 거리를 벌린 게 무색하게도 다시금 가까워진 얼굴에 절로 몸이 움찔거린다.
“안 발라주십니까?”
“아……. 잠깐만요.”
나는 허겁지겁 연고를 확인했다. 조금 전에 넘어질 뻔했을 때 떨어졌는지 손에 묻은 연고가 없다.
다시 뚜껑을 열어 연고를 편 나는 반대편 손으로 그의 이마를 덮은 옅은 금색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부드럽네.’
가문을 생각하면 당연한가?
상처는 생각보다 작아 연고를 더 바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남아돌아 탈이었다.
“됐어요.”
치덕치덕 발라둬서 그런지 내가 손을 떼자 그의 머리카락이 내려앉으며 엉켰다.
그 꼴이 제법 너저분한데도 미색이 퇴색되지 않는 걸 보면 얼굴만큼은 확실히 잘났다.
그런데 뭔가 차가운 게 닿는 느낌인데?
하늘을 올려다보자 싸라기처럼 아주 작은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경도 들어가요. 봉사하러 온 거 맞죠?”
“아닙니다.”
응? 아니야?
“공녀를 보러 왔습니다.”
“……저를요?”
설마 했는데 진짜 나를 보러 왔다고? 왜?
“조심하십시오.”
“네?”
뭘 조심하라는 거지?
내가 의문을 표했으나 미하엘 경은 그대로 떠나려는 듯 걸음을 옮겼다.
‘룩스! 잡아줘!’
―어? 응!
룩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바람이 순식간에 미하엘 경의 발을 얼렸다.
“헉.”
얼리라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괜찮아요? 발도 얼었어요?”
“구두만 얼어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은 거 맞나?
꽤 놀랄 일인데도 여전히 무심한 얼굴을 보니 그답다고 해야 하나.
그가 툭툭 발을 몇 번 굴리자 얼음이 파삭 떨어졌다. 제어 도구 때문에 얇게 얼린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뭘 조심하라는 거예요? 혹시 오늘 우리 아빠가 실베스터 공작님을 뵈러 간 것과 관련 있어요?”
“…….”
돌아온 대답은 없었지만, 왠지 긍정처럼 여겨졌다.
‘아빠가 실베스터 공작을 만나러 가는 걸 말렸어야 했는데.’
하다못해 룩스를 같이 보냈어야 했나?
“아빠가 위험한가요? 그래서 조심하라는 거예요?”
“내가 조심하라고 한 건 공녀, 당신입니다. 대공이 아니라 당신부터 걱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나?
나는 왜?
내가 눈을 깜빡거리자 미하엘 경이 입을 뗐다.
“조만간 우리 가문에서 정식으로 벨로크 가에 약혼을 청할 겁니다.”
“우리 아빠한테요?”
미하엘 경이 눈썹을 찌푸렸다. 음, 표정을 보아하니 확실히 아니라는 걸 알겠다.
하긴. 실베스터 가문은 자식이라고는 미하엘 경뿐이니 우리 아빠한테 약혼을 청할 리 없지.
그렇다면 남은 건 나뿐인데.
“설마 저요?”
끄덕.
미하엘 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긍정이었으나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라 나는 계속 물었다.
“정말 저와 경을 약혼시키려 한다고요?”
“이상합니까?”
“당연히…….”
이상하지!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였던 지라 나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경의 가문은 왜 우리를 약혼시키려는 거예요?”
“필요하니까.”
정략은 필요 때문에 하는 거라지만, 그래도 저런 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보아하니 자세히 얘기해 줄 마음은 없는 듯하네.
“만약 경과 약혼하면 제가 위험해지나요? 그래서 조심하라는 거예요?”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암흑가라서 적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건가?
하지만 아직 약혼한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찾아와 말할 일인가?
의중을 헤아리기 어려워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미하엘 경이 돌아섰다.
―가는데 잡아?
‘아니. 내버려 둬.’
잡고 더 물어봤자 말해줄 거 같지도 않으니까.
그보다는 미하엘 경이 말해 준 약혼 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상해.’
그냥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저쪽을 경계해야 하는 걸 아는데…….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뛰지?
―그런데 우리 언제 들어가?
“어? 가야지. 잠깐만.”
룩스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마리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눈이 더 오기 전에 빠르게 정리하고 들어가는 게 나을 듯했다.
가위와 바구니를 챙겨 들던 때다. 룩스가 내 머리 위를 향해 서리를 내뿜었다.
“뭐 있었어?”
―눈 많이 오길래! 맞지 말라고! 나 잘했지!
“응, 잘했어.”
능력을 잘 못 쓰다가 오랜만에 써서 신났나 보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녹을 테니 상관없겠지.
나는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쳐다봤다. 갈아진 나뭇가지 사이사이 얽힌 얼음이 꼭 겨울에 피어난 나뭇잎 같았다.
“……공녀님!”
“헉.”
깜짝이야!
갑자기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자 날 향해 뛰어오는 이리스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