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1)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1화(11/125)
#11
―애니, 찍!
―괜찮아?
연달아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들자 날 힐끔 보고는 뛰어나가는 검은색 머리 여자아이가 보였다.
지난 며칠간 내내 구석에 앉아 있던 아이였다.
날 밀친 아이가 도망치자 연이어 두어 명이 그 뒤를 따라 더 도망쳤다.
‘안 돼!’
이렇게 우르르 나가면 들키는데……!
당황한 내가 허겁지겁 일어나 뒤따라가려던 때였다.
“우리도! 우리도 나가게 해 줘!”
“열어 줘!”
다른 칸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묶인 손으로 쇠창살을 잡고 마구마구 흔들어 댔다.
철컹! 철컹!
사방에서 쇠창살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쳤다.
이렇게 마구마구 들려오는 소리는 생전 처음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그대로 굳었다.
귀가, 터질 것만 같아서.
―애니, 찍?
―뭐 하니? 도망쳐야지.
“어? 아, 응.”
룩스와 하늘다람쥐의 재촉에 나는 겨우 정신 차렸다.
맞아, 도망쳐야…….
“열어 줘! 이쪽도 열어 달라고!”
“여기도 열어 주고 가!”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
이번에는 아까처럼 굳진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철창 쪽으로 시선을 주게 됐다.
필연이었던 걸까.
쇠창살 너머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 남자아이였다.
말롱 자작 부인의 저택에서, 날 잡고 도와 달라고 했지만 내가 외면해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
‘도와주세요! 도와…… 악!’
‘이 자식이! 감히 도망을 쳐?’
떠오른 옛 기억에 일순 숨이 턱, 막힌다.
“꺼내 줘! 제발!”
날 향해 소리치며 손을 뻗는 남자아이 위로 이전 모습이 떠오른다.
절실했다가 내가 도와주지 않으니 점점 원망과 증오로 변해가던 그 눈빛이.
“아…….”
아니야. 환각일 뿐이야. 저 아이는 지금 맞고 있지 않은걸.
외면하고 나가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도와달라던 그 아이의 입 모양이, 지금 열어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함께 겹쳐 계속 들려온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은 나는 열쇠를 꽉 쥔 채 하늘다람쥐를 바라봤다.
‘이거 저 철장 안으로 던져 줄 수 있어?’
―음?
‘부탁할게.’
―으! 알겠어. 인간들은 싫지만, 어리니 봐준다.
‘고마워. 밖에서 기다릴게.’
나는 서둘러 하늘다람쥐에게 열쇠 꾸러미를 걸어 주었다.
내게 열쇠를 갖다줄 때처럼 하늘다람쥐는 날렵하게 또 다른 철창 안으로 활착했다.
‘이게 내 최선이야.’
나는 철장 너머 날 보는 남자아이를 보다 고개를 돌렸다.
사실 예전에 남자아이를 외면한 걸 후회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중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만약 마리 언니였다면 저 아이들이 있는 철창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 줬을 테지만…….
‘내게는 이게 최선이야.’
열쇠는 주었다. 나가는 건 저들의 몫이다.
나는 문을 향해 달려 무사히 나왔다.
―나왔다, 찍!
‘아직 안심하면 안 돼. 개구멍으로 완전히 나가야 해. 룩스, 개구멍이 어디야?’
―어……? 나 모르는데.
“뭐?”
나도 모르게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미안. 누님 쥐가 안내해 줄 줄 알아서…….
“내 자못이네.”(내 잘못이네.)
하늘다람쥐에게 열쇠 전달을 부탁했으니.
―아니야! 누님은 금방 나올 거야, 찍!
‘그래. 조금만 기다려 보자.’
나는 리슬리란테의 구조를 몰랐다. 함부로 움직였다가 출구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갈지 몰랐다.
먼저 나간 아이들은, 글쎄.
‘무사히 도망쳤거나 다시 붙잡혔거나.’
나를 밀치고 달려 나간 아이들의 안위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건물 옆, 그늘진 곳에 숨은 나는 입구를 최대한 주시했다.
하늘다람쥐가 나오면 부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하늘다람쥐는 금세 밖으로 나왔다. 도망치는 다른 아이들과 섞여서.
―누님! 여기야, 찍!
내가 말하기도 전에 룩스가 하늘다람쥐를 불렀고, 하늘다람쥐가 내게 날아왔다.
―어우, 이런 심부름이나 시키고.
‘미안.’
나는 소중히 하늘다람쥐를 안으며 물었다.
‘개구멍으로 나가야 하는데, 어딨는지 알아?’
―그럼! 나만 믿……! 뒤, 뒤!
―피해, 찍!
연달아 들려온 외침에 놀라 막 고개를 들려던 찰나.
“이런 쥐새끼 같은 게……!”
“윽!”
유진이 험상궂은 얼굴로 내 멱살을 쥐어 잡았다.
대체 어디서?
순식간에 몸이 허공에 들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식한 건 찰나였다.
“악!”
곧바로 바닥에 내던져졌으므로.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동안 이런 깜찍한 짓을 잘도 벌였어. 원래 흠을 내면 안 되지만, 넌 안 되겠다.”
유진이 여봐란듯이 제 팔꿈치를 잡고 어깨를 돌렸다. 그의 행색이나 주먹을 보건대 이다음 일어날 일은 너무나 뻔했다.
질끈 눈을 감은 그때였다.
콰앙!
귀가 터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바로 옆에 있던 벽이 부서져 무너졌다.
조금만 더 가까이 있었다면 나도 그 잔해에 깔렸을 만큼 아주 가까이 있던 벽이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끼었다.
“뭐, 켈록! 뭐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유진이 손을 휘저었다.
주위에 자욱하게 낀 먼지를 없애려는 듯했다.
먼지가 너무 많아 무의미해 보였지만.
―지금이야! 빨리 도망치자!
―일어나, 찍!
“아, 응.”
덩달아 놀랐던 나는 뒤늦게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하늘다람쥐와 룩스의 말이 맞았다.
‘지금이 기회야!’
이 상황을 피할 유일한 기회.
자욱한 연기 때문에 앞이 안 보였지만 나는 유진을 피해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앗!”
신발코에 무언가 걸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쿵!
“아야, 아…….”
나는 반사적으로 날 넘어지게 한 걸 확인했다.
내 발끝에 벽이 부서지며 쌓인 잔해가 보였다.
유진을 피해 달린다고 달린 게 밖이 아니라 건물 안쪽이었나.
손바닥과 무릎이 화끈거린다. 보나 마나 까졌겠지.
‘멍청이. 바보.’
달려도 하필 이쪽으로 달리다니! 아무리 앞이 안 보였어도 그렇지.
서둘러 일어나려던 때였다.
“……찾았다.”
갑작스레 들려온, 처음 듣는 묵직한 음성에 나는 일어서다 말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새 먼지가 가라앉아 시야가 맑아졌다.
내 쪽뿐만 아니라 맞은편에 있는 벽도 무너진 게 보인다.
하지만 날 놀라게 만든 건 관통돼 무너진 벽이 아니었다.
잔해를 밟고 서 있는 남자.
그는 정확히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경직됐다.
‘벨로크 대공!’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서웠다.
저 형형한 붉은 눈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심지어 대공의 얼굴은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얼굴과 거의 똑같았다.
말롱 자작 부인도, 유진도 모두 내가 알던 얼굴보다 훨씬 젊어졌는데 그는 고작 두어 살 더 어려 보일 뿐이었다.
“너, 넌 뭐야?”
유진이 벨로크 대공을 향해 잔뜩 경계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대공은 묵묵히 무너진 벽과 폭발 잔해들을 밟으며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뭐냐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발을 들이……!”
“시끄럽군.”
대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겨우 손짓 한 번이었다.
“커헉!”
유진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
본능적으로 알았다.
죽었다는 걸.
쿵, 쿵.
울리는 심장 소리와 더불어 어떠한 기억이 떠올랐다.
붉은 피, 무너진 벽, 그 사이로 나타나 내게 다가오던 벨로크 대공.
“아…….”
며칠 동안 떠오르지 않던 과거가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애니, 괜찮아, 찍?
룩스가 내게 물었지만, 대꾸할 정신 따윈 없었다.
이미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날 죽일 거야.’
과거에는 못 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을까.
몸이 심하게 떨렸다. 조금 전 유진에게 맞을 위기에 처했을 때보다 더.
대공이 내게 한 발짝씩 다가올수록 내 긴장도 커졌다.
마침내 우리 사이의 거리가 한 발짝밖에 남지 않아 내가 눈을 감으려던 순간.
‘어?’
대공이 나를 지나쳤다. 망토 끝자락이 부드럽게 내 팔을 훑고 지나간다.
그의 뒷모습을 좇으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이렇게 그냥, 지나쳐 간다고?’
사실 내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이대로 죽임당할 거라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맥이 풀리는 거지? 날 보면서 ‘찾았다’라고 말해서인가?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잠깐만.’
그러고 보니 벨로크 대공은 외팔일 텐데?
어째서 지금은 양팔이 멀쩡하지? 설마, 오늘이 대공이 팔을 잃는 날인가?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저, 저기!”
벌떡 일어난 나는 남자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행동이었으니까.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어째서 이 남자를 잡은 거야?
아까는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도 않더니 왜 하필 이 순간에?
곧바로 망토를 놓긴 했지만, 이미 대공은 내가 그를 잡아당긴 걸 느낀 후였다.
냉혹한 빛을 띤 붉은 눈이 날 돌아본다.
마치 뇌가 정지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더 머뭇거리면 사달이 날지 모른다는 본능 때문이었을까.
반사적으로 대공의 멀쩡한 양팔을 확인한 내가 다급히 말했다.
“그냥 가면 주거요! 아, 아니, 죽능 게 아니라 날아가요! 팔!”(그냥 가면 죽어요! 아, 아니, 죽는 게 아니라 날아가요!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