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11)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11화(111/125)
#111
“경이 여길 어떻게…….”
언제 적인가 이 비슷한 일을 겪은 듯한 기시감이 들며 심장이 빠르게 요동친다.
‘또 나를 도왔어.’
아까에 이어 지금까지,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다.
오늘만이 아니다. 이전에도, 전에도 몇 번 더 그랬지.
감시는 카드릭이 아니라 미하엘 경이 하고 있던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번 날 찾아와 도와주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혹시 이 습격과 연관 있는 건가?
―베리! 괜찮아?
“응, 난 괜찮아.”
룩스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제법 많은 수를 상대했을 텐데도 룩스의 털에는 핏방울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너는? 다친 곳 없어?”
―저런 거로 다칠 리가! 다 처리한다고 한 건데 하나가 샜어! 얼음 바람도 다 써 버려서 못 쓰는데 말이야!
룩스의 뒤편을 보니 괴한들의 신체 일부 곳곳이 얼어붙은 게 보인다.
“죽인 건 아니지?”
―응! 살아는 있어!
“고생했어.”
나는 룩스를 꼭 안았다. 날카로워 보이는 털은 신기하게도 막상 안으면 부드러웠다.
그 감촉에 긴장감이 탁 풀렸다. 룩스의 목덜미를 쓰다듬던 때다. 미하엘 경이 우리를 힐긋 보고는 혼자 움직였다.
가려는 건가? 아직 못 물어본 게 많은데?
“저기, 미하엘 경……!”
푹―
“아악!”
다급히 그를 부름과 동시에 미하엘 경이 검을 들어 괴한 중 한 명을 찔렀다.
사지가 얼어붙은 괴한은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비명만 지르며 꿈틀거리다 이내 축 늘어졌다.
그 뒤로도 그는 모든 괴한을 차례차례 찔러 죽였다.
잔혹한 광경에 샤비가 견디지 못하고 기절했다.
당황해 그녀를 받아 들었으나 지금 상황에 겁먹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말의 자비도 없는 잔혹한 손속은 회귀 전 봤던 그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제 수하를 주저 없이 베어 버리던 그 모습을 말이다.
과거를 상기시키는 모습과 겹쳐 보이는 탓에 미하엘 경의 행동이 더욱 잔인하게 여겨졌다.
동시에 두렵다. 저 검날의 끝이 내게도 향할까 봐.
피가 꽤 튀었는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이라 그런지 티가 잘 안 났다.
그러나 냄새까지 숨길 순 없었다.
일을 끝마친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으므로.
내가 겁먹은 걸 느꼈는지 룩스가 이를 드러내며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런 룩스를 본 미하엘 경은 더 다가오는 대신 그 자리에 멈췄다.
“자비를 베풀지 마십시오.”
경고를 담은 음성이 차갑다. 온몸에 피가 식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나는 기절한 샤비를 바닥에 눕힌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꾸했다.
“무조건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배후도 알아내야 하고.”
“저들을 심문해서 배후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방심과 자비는 후회로 돌아올 겁니다.”
냉정한 충고에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알고 있어.’
저런 사람들을 살려 둬 봤자 좋은 거 없다는 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룩스를 시켜 사람을 죽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우습게도 내가 직접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으니까.
“그 마수만 믿지 말고 호위 기사도 데리고 다니십시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있을 테니까.”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라고요? 경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역시 지금 일과 관련 있는 거죠?”
순간 그가 눈살을 찡그렸다. 아주 짧은 동요였지만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번 습격은 실베스터 가문에서 꾸민 일이라는 것.
나는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룩스를 뒤로 물리며 물었다.
“경과 약혼하면 위험해질 거랬잖아요. 약혼을 거절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제 실수입니다. 거절하는 쪽이 더 안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지금이라도 약혼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면 당분간은 안전할 테니까.”
미하엘 경이 돌아서려 한다. 나는 다급히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것도, 필요해서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번에 필요하니까 약혼을 청하는 거랬잖아요. 경이 날 따라다닌 것도, 이러는 것도 전부 필요하기 때문인가요?”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도대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한 건데?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돌발적인 행동에 혼란스러울 즈음.
“아니.”
나직이 한 마디를 뱉은 그가 날 직시했다.
“네가 안 다쳤으면 좋겠어.”
“…….”
“그뿐이야.”
그의 눈빛만큼이나 건조하고 단조로운 음성이다.
그런데도 가슴이 떨린다. 고작 저 몇 마디에.
옷자락을 붙든 손에 힘이 탁 풀린다.
‘이상해.’
당신이 날 왜 걱정해?
어째서 당신이 그런 걸 바라?
그리고 나는 왜 자꾸만 당신한테…….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날 감싸 안았다.
‘누구?’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익숙한 음성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물러서라.”
“아빠?”
내 키를 웃돌 정도로 커다란 불길이 미하엘 경의 주변을 감쌌다. 크게 원을 그린 불길은 그를 가둔 것처럼 보였다.
설마 미하엘 경이 습격했다고 오해한 건가?
“누가 시켰지?”
“아니에요, 아빠!”
“아니라고?”
“네!”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자 위협적으로 미하엘 경을 향해 좁혀가던 불길이 멈춘다.
그 사이 미하엘 경이 불길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미쳤어!’
경악이 절로 나온다.
놀란 게 무색하게도 미하엘 경의 옷은 멀쩡했다. 옷뿐만 아니라 피부도 마찬가지로 불에 덴 곳이 없어 보였다.
말끔한 모습에 안도하는 동안 미하엘 경이 내 쪽을 흘긋 보고는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저렇게 보내도 되나?’
작은 의문이 스쳤지만, 붙잡는다고 해서 달리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해서인지 아빠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내 얼굴을 비롯해 몸 이곳저곳을 살필 뿐.
“다친 곳은?”
“저는 없어요. 샤비도 다친 곳은 없고요. 그냥 놀라서 기절했나 봐요. 그런데 마부가…….”
죽은 거 같던데.
나는 끝말을 삼켰다. 나 때문에 애먼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자책감이 찾아와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그건 내가 수습하지.”
“저도 도울래요.”
“됐으니 먼저 돌아가 있어라. 네 하녀를 챙겨야지.”
아빠의 말이 옳다고 여긴 나는 고집을 접기로 했다.
대신 샤비의 곁으로 간 나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그녀를 받쳐 들었다.
“네 마수는 덩치를 줄이라고 하는 게 좋겠군.”
―변했어!
내 품 안에 쏙 안길 수 있을 정도로 크기를 줄인 룩스가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아빠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자 붉은 빛무리가 발끝부터 맴돌며 머리끝까지 감쌌다.
“돌아가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묻지.”
눈을 깜빡이자 우리는 내 방에 와있었다.
때마침 방에 있던 첼시가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다급히 다가왔다.
“아가씨! 무사하셨군요! 그런데 샤비는…….”
“잠깐 기절한 것뿐이야.”
“하아, 다행이에요. 갑자기 기사들이 움직여서 놀랐어요. 주인님도 급히 나가셨다고 그래서 또 아가씨께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고 걱정했어요.”
―맞아! 이 인간이랑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사들이 말을 타고 나가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런데 이 냄새는 뭐야?
-내가 베리를 위협하는 인간들을 혼내줘서 그래! 잘했지?
-잘했어! 감히 누굴 위협해!
“그런데 아가씨 옷에……. 이거 피 맞죠?”
“그런 것 같긴 한데 일단 샤비부터 눕히자.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도 데리고 와 줄래? 기절한 거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네, 네!”
우리는 함께 샤비를 내 침대에 눕혔다. 그 뒤 첼시가 주치의를 데려왔고, 별 이상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했지만 재차 확인받으니 안도가 된 나는 그제야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내 옷에 피가 묻었듯, 룩스 또한 털 곳곳에 검붉은 얼룩이 있어 목욕을 피할 순 없었다.
룩스의 젖은 털을 빗질하는데 하인이 아빠가 돌아왔다고 전해줬다.
첼시한테 빗질을 넘긴 나는 급한 대로 숄을 챙겨 방을 나섰다. 하인이 알려준 대로 이제 막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아빠는 굉장히 피로해 보였다. 잔뜩 지친 얼굴에 나는 조금 기대했다.
‘피곤하니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지 않으실까?’
숨길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안다. 그래도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아까 못다 한 이야기가 있었지. 따라오도록.”
어디까지나 내 희망 사항이었다는 것만 다시금 깨달았지만 말이다.
* * *
왠지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빠를 뒤따라간 끝에 도달한 곳은 아빠의 집무실이었다.
내가 들어오며 문을 닫자마자 질문이 매섭게 날아왔다.
“아까 그 녀석은 누구였지?”
“……미하엘 경이에요.”
“미하엘 실베스터?”
끄덕.
미하엘 경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인상을 찌푸렸던 아빠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 녀석이 어떻게 알고 거기에 있었지?”
“잘 모르겠지만 우연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게 경고도 해 주더라고요. 앞으로 이런 일이 몇 번 있을 거라고.”
“둘 중 하나겠군. 실베스터가 꾸민 일이거나, 아니면 어디서 소식을 입수했거나.”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실베스터 쪽에서 꾸민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나는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아빠가 오기 전에 한 번 각오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상당히 고비였다.
내 결심을 들은 아빠의 반응이 너무나 예상되었으니까.
하지만 말해야만 했기에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약혼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