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13)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13화(113/125)
#113
일순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이긴 하나 당사자, 그것도 아시드의 앞에서 저럴 줄 몰랐으므로.
실베스터 공작인 그를 설마 죽일까 싶으면서도 아시드가 미치광이 살인귀라는 걸 고려하면 간과할 수 없기도 했다.
“게다가 소르겐 백작이 죽었던 연회에 벨로크 공녀도 참석했었지요. 우연치고 기이하지 않습니까?”
“지금 그딴 걸 말이라고…….”
“추론이 심하군, 공작. 그 건에 대해 내 조카는 결백하니 말이야. 형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하세요.”
황제, 델러노가 아시드의 손등 위에 제 손을 올려뒀다.
쿵―
흘러들어 온 델러노의 마력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강제로 살기가 누그러진다.
분노가 증발한 자리로 이성이 돌아왔다.
하지만 강제로 자정된 기분이 구역질 날 정도로 역했다.
아시드가 진정한 동안 델러노가 덤덤히 말했다.
“또한, 벨로크 공녀에 대한 조치는 이미 했네. 경들이 걱정할 건 하나도 없을 거야.”
“이미 조처하셨단 말입니까? 역시 황제 폐하이십니다.”
순식간에 여론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아시드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어떤 조처를 했다는 거지?”
기껏 진정시켜 놓은 게 무색하게도 아시드는 다시 살벌하게 들끓었다.
그 시선이 매서운데도 델러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형님과 따로 대화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예, 폐하.”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아시드의 분을 감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빠져나가고 회의장에 단둘만 남게 되자 델러노가 입을 열었다.
“성질 좀 죽이시죠. 조카님 덕분에 얌전해진 줄 알았더니 날이 갈수록 예민해지시는군요.”
“대답이나 똑바로 해.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지?”
“별거 아닙니다. 조카님과 마수를 분리하라고 명했을 뿐이니까요. 그 마수는 황궁 마법사들이 안전하게 데리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수를 분리했다고?”
“아무렴 조카님을 붙잡아 가둘 순 없잖습니까?”
“저딴 말도 안 되는 소문에 휘둘려 이런다고? 민가에서 발견한 사체가 우리 짓이라는 증거가 어딨지?”
“그럼 아니라는 증거를 내놓을 수 있습니까?”
아시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증거를 내놓을 수 있을 리가.
솔직히 말해 아시드도 확신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베로니카를 습격했던 이들의 시체일 거라 확신했다.
핏자국이 질질 끌린 흔적이 있어 추적했으나 중간에 끊겨 찾지 못했으니까.
아마 민가에서 발견됐다는 사체는 그자일 테다.
“저도 압니다. 형님도 억울하시겠지요.”
델러노가 안타깝다는 듯 읊조렸다.
“그래서 생각해둔 방법이 세 가지 있는데 들어보겠습니까?”
“뭐지?”
“첫째는 지금처럼 황궁에서 마수를 특별 관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녀를 마수 관리병으로 임명하는 것이지요.”
“마수 관리병이라니? 그딴 게 언제부터 있었지?”
“이제 만들어야지요. 조카님에게서 가능성을 봤으니 다른 테이머들을 모집해 양성할 계획입니다. 마수 군사라니, 멋있지 않습니까?”
“닥쳐. 내 딸을 그딴 식으로 이용할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말씀하시면 병사들이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요.”
“마지막 세 번째나 말해.”
“조카님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겁니다. 당장 눈앞에 안 보이면 지금보다야 조용하겠죠.”
“그게 낫겠군. 나도 내려가서 올라오지 않겠다.”
“내려가는 건 조카님뿐입니다. 형님은 안 됩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아십니까?”
“그건 내 알 바가 아닐 텐데.”
“아우의 고충을 외면하지 마시지요.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형님이 힘들 때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글생글 웃고 있으나 협박이다. 화염의 검으로 정화를 해주지 않겠다는 협박.
“이번 기회에 조카님은 얼마나 버틸지 시험해봐도 좋을 듯하군요. 아무렴 마수를 길들인 조카님이니 레일라 누님 때보단 오래 버티시겠군요.”
“너…….”
아시드가 참지 못하고 델러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놓으시죠. 어차피 이 이상 하지도 못할 것을.”
“정말 못할 것 같나?”
아시드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방출하기도 전에 역으로 솟구친 마력에 그의 입에서 피가 역류했다.
소용없는 짓이다.
알면서도 계속해서 마법을 시도하는 그를 보며 델러노가 입을 열었다.
“놓으시죠, 형님.”
지금껏 한 말과 다르게 이질적인 힘이 들어간 말이었다.
그의 몸 주변에 붉은빛이 일렁임과 동시에 아시드의 손에서 강제로 힘이 풀렸다.
“예우도 갖추는 게 좋겠고.”
이윽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아시드를 짓눌렀다.
날 적부터 불새라는 소환수에 얽매인 황족의 직계로서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
쿵―
강제로 무릎이 꿇은 아시드가 델러노를 노려봤다.
살기 가득한 시선에 움츠러들 법도 했으나 델러노는 조금도 그런 기색 없이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했다.
“그러게 쥐새끼 하나 빠져나가지 않게 조심하셨어야죠.”
“네가 아니라고 하면 됐을 일이다.”
“그럴 리가요. 제가 폭군도 아니고 어찌 백성의 불안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
“아까 이야기가 나왔듯 그날 우리 조카님을 본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공가에서 기사단을 움직이는 걸 본 사람들도 있고요.”
델러노가 아시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독였다.
“형님께서 일 처리를 잘못한 결과물입니다.”
“내 잘못이라.”
아시드는 끝내 조소했다.
늘 이런 식이지.
저는 좋은 사람인 척.
그리고 저 말을 듣는 자신은 나쁜 사람인 듯 양 모든 게 제 탓인 양 몰아간다.
하지만 분한 건 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황제가 가진 화염의 검으로 정화 받지 않으면 자신은 미쳐버릴 테니까.
어차피 반항해도 지금처럼 복종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번은 형님이 이해하시고 돌아가서 조카님이나 달래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을 테니.”
델러노가 아시드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 뒤 먼저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 뒤에야 아시드의 어깨를 짓누르던 힘이 풀렸다. 그제야 아시드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몸에 입은 내상에 비틀거리며 회의장을 빠져나와 복도를 걷던 때였다.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런. 편찮아 보이시는데 괜찮으십니까, 대공 전하?”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그에게 말을 건 남자는 실베스터 공작이었다.
“부축이 필요하십니까?”
실베스터 공작이 손길을 내밀었으나 아시드는 그 손을 바로 쳐냈다.
“뻔뻔하군. 잘도 내 앞에서 얼굴을 들이밀어.”
“제가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내 딸에게 누명을 씌운 것도 모자라 주동까지 한 주제에 모른 척이라?”
“억울하군요. 공녀가 데리고 다니는 마수에 대해 소문낸 건 제가 아닙니다.”
“다른 건 했다는 뜻이군.”
“속단하지 마시지요. 대공 전하께 원한을 품은 이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실베스터 공작이 어깨를 가벼이 으쓱였다.
“그러게 순순히 약혼을 받아들이면 좋지 않습니까? 그랬다면 저희 가문이 기꺼이 힘이 되어드렸을 텐데요.”
“필요 없다.”
“필요하실 겁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곤란한 상황에서는요. 딸 때문에 곤란해졌지만, 딸을 둔 덕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명확히 있잖습니까?”
“이미 말했을 텐데. 나는 약혼시킬 생각이 없다.”
“저희 가문 말고 공녀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출신도 불분명한 데다 마수로 사람까지 해친 공녀를 누가 데려가겠습니까?”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짖는군.”
“제가 아무리 잘 짖는다 한들 감히 전하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하…….”
아시드가 실소했다.
면전에 대놓고 자신이 황제의 ‘개’라는 걸 비꼬다니.
미친 건지, 아니면 겁을 상실한 건지.
그러나 비참한 건 저 말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란 거였다.
“진지하게 재고해보시지요. 정말 저희의 도움이 필요 없는지를요. 저희 가문이 합세한다면 지금 사태쯤은 금세 가라앉게 할 수 있습니다.”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을 왜 자꾸 재고해보라는 거지? 이러는 저의를 모르겠군.”
“제 아들이 공녀를 사랑한다는데 어찌합니까?”
“…….”
“공녀와 꼭 약혼하고 싶다는데 들어줘야지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니까요.”
그럼 이만.
실베스터 공작은 흠잡을 곳 없는 자세로 예를 표한 뒤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아시드는 공작이 한 말을 곱씹었다.
사랑?
“되지도 않는…….”
핑계를.
베로니카를 사랑한다는 말을 의심하진 않는다. 탐탁지 않지만, 그럴 수는 있겠지. 제 딸은 사랑스러우니까.
그러나 약혼은 다른 문제다. 하물며 상대는 ‘미하엘 실베스터’였다.
아시드는 미하엘을 봤던 때를 떠올렸다. 짧은 마주침이었으나 눈빛이나 몸놀림을 보고 느꼈다. 자신과 동류라는 걸.
끔찍한 현장에 침착한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메마른 눈빛마저 무시하긴 어려웠다. 그만큼 이런 환경에 익숙하다는 뜻이니까.
심지어 불길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던 움직이기까지.
보통 ‘평범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범주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베로니카를 사랑하기에 약혼하게 해달라 청했다고?
겨우 저런 이유로?
그저 다른 속셈이 있으리라. 자꾸만 제 딸과 엮으려는 꼴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뿐만 아니라 베로니카마저 이용하려는 속셈이겠지.
‘베로니카는 안 돼.’
이건 자신의 싸움이었다. 상관도 없는 그 아이를 끌어들이는 것만큼은 안 된다.
하지만 주변에서 자꾸 그 아이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쩔 수 없나. 그 수밖엔.’
무언가 굳게 결심한 아시드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