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14)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14화(114/125)
#114
‘룩스는 잘 있겠지?’
아까 헤어진 뒤 내내 룩스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데리고만 있는 거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싶으면서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룩스의 정체를 꼭꼭 숨겨야 했는데.’
그랬다면 지금 같은 사태가 일어났어도 다들 의심하지 않았겠지. 이런 일도 없었을 거고.
그러니 전부 내 탓이다. 룩스의 정체를 알린 탓, 죽이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대처한 탓.
하다못해 실베스터 가문의 혼담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책하기보단 룩스를 돌려받을 방안을 생각하는 게 생산적이란 걸 안다.
하지만…….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룩스를 돌려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카드릭에게 부탁……하는 건 안 된다.
부탁 한 번 들어준 거로 협박이나 할 못난 애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카드릭이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한들 나는 두고두고 이번 일을 빚처럼 여길 터였다.
그럼 카드릭이 들이댈 때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겠지.
“베로니카 양.”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쉬는데 데보라 부인이 날 불렀다.
“잠시 나오겠어요? 대공 전하께서 오셔서요.”
“아빠가요?”
내 물음에 데보라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날 찾아왔다고? 황후궁까지? 혹시 또 다른 일이 더 있는 걸까?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데보라 부인을 따라가자 황후와 함께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폐하, 베로니카 양을 데려왔습니다.”
황후는 데보라 부인을 보며 고생했다고 말하고는 날 봤다.
“공녀, 오늘은 대공과 함께 일찍 돌아가도록 하세요.”
혹시 일부러 아빠를 부른 건가? 내가 충격받은 듯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충격받은 건 맞지만, 아빠를 부를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폐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연이어 들려온 말에 나는 놀란 눈으로 아빠를 봤다.
아빠가 저렇게 예를 차릴 줄 몰랐으니 말이다. 막 대하는 건 황제 한정이었던 걸까.
들어가서 쉬라는 황후의 배웅을 받은 우리는 마차에 탔다.
“저 때문에 일부러 와주신 거예요?”
“황궁에 온 건 델러노가 불러서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널 보러 온 거고.”
“회의요?”
“너와 마수 때문이라더군.”
“민가에서 발견된 사체 때문에요?”
“알고 있었나?”
“데보라 부인이 말해줬어요. 황제 폐하의 명으로 룩스가 끌려간 뒤에요.”
룩스를 생각하니 또 침울해지려 하네.
“혹시 회의장에 실베스터 공작도 있었나요?”
“그건 왜 궁금하지?”
“이것도 실베스터 가에서 벌인 일인가 해서요.”
“네 짐작이 맞을 거다. 공작은 아니라고 했지만, 헛소리지.”
아빠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나도 아빠의 생각에 동의했다.
습격자를 보낼 때부터 단순히 신변 위협으로 끝낼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굴 속셈이었겠지.
소중한 것을 빼앗고, 내가 안달 나서 제 발로 걸어오게 만들어 옭아매기 위해서.
이제야 미하엘 경이 한 말들이 이해된다. 그나마 자기 곁에 있어야 안전할 거라던 말이 이런 뜻이었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있을 거라는 것도.
“신경 쓰지 마라.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니까.”
“아빠 탓이라니요?”
“습격자 중 하나를 놓쳤다. 확실히 처리했어야 했는데……. 민가에서 발견됐다는 사체는 아마 그거겠지.”
“그게 어떻게 아빠 탓이에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저 실베스터 가문이 미우면서도 대단하게 여겨질 뿐.
지금이라도 약혼을 받아들이면 그들이 해결책도 내주지 않을까, 그런 일말의 희망을 품게 만들고 있으니까.
‘물론 아빠는 허락 안 하겠지만…….’
아빠를 설득하는 건 포기했다. 하려면 아빠 몰래 혹은 아빠의 의사를 무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하엘 경을 찾아가 실베스터 공작을 만나 의사를 표명하면 되지 않을까?
내 의사만 있다면 공작이 어떻게든 약혼을 몰아붙일 테니 아빠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러면 당분간은 모두가 괜찮을 텐데.
“베로니카.”
“네, 네?”
상념에서 깬 나는 가슴을 졸이며 아빠를 쳐다봤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여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으면 어쩌나 싶어서.
“네 마수 말인데…….”
다행히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지만.
“다시 데리고 오고 싶겠지?”
“그럴 수 있어요?”
방법이 있는 건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거다.”
“지방이라면……. 대공령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델러노가 그러더군. 당장 지방으로 떠나 눈앞에서 안 보이면 조용해질 테니, 네 마수도 돌려줄 수 있다고.”
“대공령으로 가기만 하면 돼요? 다른 조건 없이요?”
“나는 수도에 남으라고 하더군. 내려가는 건 너뿐이라고.”
나는 멈칫했다. 대공령으로 가는 거? 상관없다.
마리 언니를 못 보게 되는 건 아쉽지만, 편지도 있으니까.
아빠는 계속 수도에 있고, 나만 내려가는 것도 괜찮다. 마찬가지로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고, 정 보고 싶으면 아빠가 날 보러 대공령으로 와도 되는걸.
그뿐인데, 분명 그뿐인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이상한 생각 하시는 거 아니죠?”
“…….”
“아빠.”
왜 대답을 안 하시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기만 해도 되는데.
나는 괜히 아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아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속을 알 수 없는 붉은 눈으로 한참이나 날 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데요?”
“이전에 한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닐 거야. 그게 아닐 거야.
“어떤 약속이요? 전 모르겠는걸요.”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주겠다는 약속 말이다.”
모른 척해도 끝까지 제 할 말을 하는 아빠가 잔인하다.
“대공령으로 내려가면 실베스터 공작가를 뒤엎을 예정이다. 그러니 넌 대공령으로 내려가자마자 바로 떠날 준비를 해.”
이것 봐, 항상 자기 멋대로 결정하고 행동하지.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나는 겨우 물었다.
“왜요? 갑자기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신 거예요?”
“갑자기 그런 건 아니지. 계획보다 조금 당겨졌을 뿐.”
“그러니까 왜요? 왜 계획을 당기는데요? 저 때문이에요?”
“널 지키기 위해서다.”
“그게 어떻게 절 지키기 위해서인 건데요. 아빠는 그냥, 그냥…….”
복수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렇게, 이 삶을 빨리 끝내고 싶은 것뿐이잖아요.
목 끝까지 차오른 말만큼 눈물도 차오른다.
진짜, 이게 뭐야.
다 알면서 아빠의 딸이 된 거였잖아. 이것도 예상했잖아.
그런데 왜 또 어리광부리는 거야.
스스로 아무리 다독여도 과열된 감정은 가라앉을 기미를 안 보였다.
기어코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추하게 우는 모습까지 보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공작의 꼴을 보아하니 앞으로도 널 가만두지 않겠지. 델러노도 마찬가지고.”
“…….”
“이용당하는 건 나만으로도 족하다. 내 일에 너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매번 이런 식이다. 나와 아빠는 결국 분리된 존재라는 걸, 우리의 벽은 존재한다는 걸 이런 식으로 일깨운다.
나는 손등으로 눈 끝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아빠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 갈래요.”
“뭐?”
“대공령에 안 갈 거예요. 계속 아빠랑 같이 있을래요.”
“지금 무슨 말을…….”
아빠가 퍽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빡인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는 듯.
그렇겠지. 여태껏 나는 아빠가 벽을 세우면 그대로 물러났으니까.
“아빠가 복수하는 건 막을 생각 없어요. 또 룩스도 저한테 소중하지만, 아빠도 소중해요. 이런 식으로 헤어지긴 싫어요.”
“고집 피워서 될 일이 아니다. 지금 상황이…….”
“저도 알아요. 고집인 거. 그리고 아빠한테 전 짐 덩이밖에 안 되는 것도요.”
“그건…….”
“다 알지만, 그래도 싫어요. 떠나는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도망치는 것도, 알아서 잘할 수 있어요.”
사실 자신 없다. 룩스가 없으면, 아빠가 없으면 나는 그냥 무력하니까.
여전히 테이밍 능력도 잘 다루지 못하는 데다, 무력을 쓸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마법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빠가 절 진짜 딸로 여기지 않아도 좋아요. 그저 책임져야 하고 은혜 갚아야 할 존재여도 상관없어요. 저한테 아빠는, 아빠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 난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그저 숨이 턱턱 막히고 눈가가 뜨겁다.
제대로 쏟아내며 울지도 못하고 끅끅, 울음을 삼키는데 문득 눈앞이 어두워졌다.
뒤늦게 나는 아빠가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는 걸 깨달았다. 커다란 손은 내 얼굴쯤은 우습다는 듯 다 덮었다.
“잘 듣도록. 넌 하나뿐인 내 딸이다. 널 딸로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그렇게 여기지 않은 적 없다.”
“그러면……!”
“그래서 안 된다.”
“…….”
“위험할 걸 뻔히 알면서 내버려 둘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