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16)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16화(116/125)
#116
“응? 그거 언니 건데?”
“집사님께 여쭤보니 대리 운영인도 있어서 명의만 다시 바꾸면 된다더라고.”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마리 언니가 빠르게 덧붙였다.
“네가 날 신경 써준 건 고맙지만, 그래도 내가 가질 건 아닌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언니는 가질 자격이 충분한걸. 그리고 보육원 운영하려면 돈 들잖아.”
“어차피 대공가와 다른 귀족가에서 주는 후원금도 풍족한걸. 여기에 더 필요한 건 없어.”
“아니지, 언니. 그게 언제 끊길 줄 알고? 오늘 보니까 보육원에 다른 귀족들이 없던걸. 다들 안 온 지 좀 됐지?”
“그, 그건…….”
마리 언니가 당황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확신이 들었다. 역시 내 소문이 한몫했다는 걸.
나는 도로 서류 봉투를 언니 쪽으로 밀었다.
“갖고 있어. 대공가 후원도 안전한 게 아니야. 언니만의 재산이 있어야 보육원도 유지하기 편하지.”
“하지만…….”
“예전에 언니가 그랬잖아. 애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갖고 있어.”
마리 언니는 머뭇거리다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게. 하지만 네가 돌려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돌려줄 테니까.”
“언니, 잊었어?”
“응?”
“나 벨로크 대공가의 공녀야. 돈 많다고. 언니가 받은 상권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나는 일부러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게 위화감을 산 모양이다.
마리 언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날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언니?”하고 불러 보지만, 마리 언니는 더욱더 힘주어 날 끌어안을 뿐이었다.
“우리 베리, 아직도 이렇게 작고 어린데…….”
“나 안 어리거든? 내년이면 나도 성인이라고.”
“알지. 그래도 나한테는 여전히 아기 같은걸.”
세상에, 아기라니!
아무리 마리 언니가 내가 아기일 때부터 보고 업어 키웠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기 같다는 건 좀 아니지!
나는 황당함으로 물든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따졌다.
“아기 아니거든? 나 언니랑 같이 안 잘래. 혼자 잘 거야.”
“혼자 잔다고? 정말로?”
“……아니.”
재빨리 말을 번복하자 마리 언니가 쿡쿡, 숨죽여 웃는다.
으, 정말!
언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나는 내 말을 철회하지 못했다. 대신 속으로 부끄러움을 삼킬 뿐.
다시 서류를 갖다 놓은 언니가 이불을 들어 제 옆자리를 톡톡 쳤다.
나는 “또 애 취급이지!”라고 말하면서도 순순히 언니한테 안겼다.
오늘만 애 하지, 뭐.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보육원을 나와야 했다.
마지막으로 언니와 포옹하는데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마리 언니한테까지 내 망명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게 미안할 뿐이었다.
‘하지만 언니가 더 엮여서 좋을 거 없을 거야.’
마리 언니는 거짓말을 못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드러났으니까.
물론 이 보육원이 대공가의 후원을 받았고, 언니가 나와 친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꽤 있으니 완전히 무사하진 않겠지만……. 결국 무고하다는 게 알려지면 금방 잠잠해지겠지.
하지만 계속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와 룩스의 소문 때문에 귀족들의 후원과 발길이 뚝 끊긴 것도 그렇고.
언니는 애초에 ‘나’라는 존재 때문에 귀족들이 몰린 거였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게다가 마리 언니와 대화하다가 나온 이리스에 관한 이야기도 마음에 걸렸다.
“넬레 아가씨? 그 아가씨라면 안 오지 좀 됐어.”
“좀이 언제야?”
“음, 몇 주 됐을걸? 아마 네가 마지막으로 온 뒤부터 못 봤나? 그랬던 것 같아.”
언니의 말을 들으니 문득 이전 일이 떠올랐다.
룩스가 능력을 쓴 지 얼마 안 있어 이리스가 나타났던 일이.
‘역시 그때 본 걸까?’
그래서 소문이 돌자 두려워져서 보육원에도 안 오기 시작한 걸까?
룩스 때문에 날 피하고 싶은 거라면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게 오히려 싫을 수도 있겠네.
무거운 마음으로 대공저에 돌아오자 집사가 다른 사용인들과 함께 날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아빠는?”
“주인님은…….”
내 물음에 어쩐지 집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덧붙였다.
“어제저녁에 나가신 뒤로 아직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언제 들어온다는 말은 없으셨어?”
“금방 오실 거라고 말씀하시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돌아오지 않았다고?
“뭐 때문에 나가셨는지 알고 있어?”
“죄송합니다, 아가씨. 주인님께 그것까진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집사 탓은 아니지.”
손사래 치며 부정한 것과 별개로 머릿속이 혼잡하다.
설마하니 내가 오늘 대공령으로 떠난다는 걸 모르시는 것도 아닐 테고…….
나랑 마지막 인사도 안 하려는 건가? 그럴 리 없을 텐데.
최근 들어 아빠랑 아무리 서먹해졌다고 하지만, 별일 없으면 꼬박꼬박 함께 밥을 먹은 사이였다.
어제도 평소처럼 인사했고.
그런 아빠 성격상 마지막 인사를 안 해줄 리 없는데.
“그리고 조금 전에 룩스 님이 도착했습니다.”
“정말?”
―룩스가 왔다고? 어디?
나에 이어 슈가가 호들갑을 떨었다.
―걔 어때? 건강하대? 응?
“룩스 상태는 어때 보였어?”
“잘 지내신 듯했습니다.”
“다행이다.”
슈가의 물음을 대신 전달하며 돌아온 대꾸에 나는 안도했다.
“그래서 룩스는 어디 있어?”
“응접실에 있습니다. 황궁에서 오신 분이 아가씨를 뵙기 전까진 룩스 님만 두고 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황제가 날 보고 오라고 했나?
의외긴 해도 영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닌지라 나는 룩스가 있다는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무언가 나를 향해 껑충 뛰어들었다.
―베리이이!
―뭐야! 갑자기 뛰어들면 어떡해! 나 떨어질 뻔했잖아!
―하지만 보고 싶었는걸! 누님도!
―징그러워! 떨어져!
슈가, 쟤는 룩스가 보고 싶다고 읊조리더니…….
막상 보니 성질내는 하늘다람쥐를 보고 있자니 입이 근질거린다.
룩스한테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안녕, 베리.”
어라, 이 목소리는……?
슈가와 룩스한테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퍼뜩 정면을 바라봤다. 남자가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로브 모자를 벗었다.
곧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검은 머리카락에 짙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다.
‘얘가 왜 온 거야?’
나는 소년을 보며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카드릭이 웃는다.
“잘 지냈어?”
“너, 너! 왜 또 변장했어? 여긴 왜 온 거고?”
“왜 왔냐니, 섭섭한걸. 네 마수를 데리고 있다가 갖다 주기까지 했는데.”
“룩스를 네가 데리고 있었어? 황실 마법사들이 아니라?”
“원래는 그랬는데 내가 데려왔어.”
―맞아! 저 인간이 날 데려왔어! 말도 안 통하고 별로 착하진 않지만, 그래도 착해!
착하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어쨌든 생각보다 탈 없이 잘 지낸 것 같아 나는 룩스를 끌어안은 채 말했다.
“돌봐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는 왜 봐야 한다고 한 거야?”
“보고 싶었으니까.”
자주 듣던 말인데,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이전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넘겼으나 이제는 아니란 걸 아니까.
―나도! 나도 보고 싶었어!
다행히 룩스의 외침에 계속 얼 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그렇대도 네가 올 필요는 없었잖아. 적당히 시종을 보내면…….”
“그랬으면 나한테 또 말도 없이 대공령으로 갔겠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보라색으로 변장한 눈이 내게 묻는 듯했다. 제 말이 틀리냐고.
뒤늦게 황후가 내게 한 질문이 떠오른다. 카드릭한테는 말했느냐던 그 물음이.
“몇 년 전에 도망쳤듯, 또.”
“도망치긴……!”
“정말 아니야?”
평상시 말투와 다를 게 없는 듯한데 어쩐지 간담이 서늘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어쩐지 내 속내를 꿰뚫고 추궁하는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나자 카드릭이 내 손목을 감싸 쥐었다.
“또 도망치려고 하지.”
“아, 아닌…….”
“넌 항상 그래. 겁도 없이 나한테 먼저 다가온 주제에 또 혼자 도망치려고 하지.”
그래봤자…….
카드릭이 작게 읊조린다. 벙긋거리는 입 모양은 완전한 문장을 이루지 않았다.
말을 하다 말고 속으로 삼켜버린 듯 끊겼으니까.
“오해야.”
“내가 뭘 오해했는데?”
“도망치는 게 아니라……. 황제 폐하께서 먼저 제안하신 거랬어. 난 룩스를 돌려받기 위해 선택한 것뿐이야.”
“다른 선택지도 있는데?”
“어떤 선택지? 나한테는 이 방법뿐이었단 말이야.”
“정말 방법이 그것뿐이었어?”
“그럼?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하다 보니 목소리가 따지듯 뾰족하게 올라갔다.
나라고 해서 무력하게 아빠랑 떨어지고, 룩스랑 떨어지고 싶은 줄 알아? 나도 싫은데 어쩔 수 없단 말이야. 싫다고…….
당장이라도 하소연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억지로 그 충동을 눌러 삼키는데 카드릭이 말했다.
“내가 있잖아.”
“네가 뭘 어떻게 하는데?”
“어떻게든.”
카드릭이 내 손목에 제 뺨을 비비며 날 올려다봤다. 손목에 닿는 촉감이 낯설고 간지럽다.
“그러니까 한마디만 해. 도와달라고.”
“…….”
“그럼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