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19)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19화(119/125)
#119
슈가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건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어떤 기분이야?”
―음, 도로 땅속에 묻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들어도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네. 상종하기 싫다는 건가?
평소에도 슈가가 아빠한테 낯을 가리는 편이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질색하는 건 처음이지 않나?
―아무튼 이상해!
나는 느낄 수 없는 동물의 촉, 뭐 그런 건가?
이 정도로 반응하는 슈가를 보니 찝찝하다.
‘어제 아빠가 만난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야겠어.’
이따 저녁 먹을 때 물으면 되겠지? 근데 아빠 성격에 순순히 알려주려나 모르겠네.
……라고 걱정한 게 무색하게도, 아빠는 내 물음에 담백하게 대꾸했다.
“실베스터 공자와 만났다.”
이걸 이렇게 알려준다고?
너무 순순히 나오는 대답에 나는 조금 얼이 빠졌다. 비밀이라든가, 나는 알 것 없다는 말을 들을 각오도 했는데.
“그럼 미하엘 경과 단둘이 만난 거예요?”
“그래. 건방진 것이 일부러 날 불러내 말하더군. 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 약혼을 허락해달라고.”
아빠를 불러내서 절절하게 날 사랑한다며 고백하는 미하엘 경이라니?
‘와…….’
정말 상상 안 된다.
그 미하엘 경이?
하지만 그걸로 마음을 바꾼 아빠 역시 이해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내게는 절대 안 된다고 했으면서, 미하엘 경의 말에 설득되어 허락했다고?
“약 한 달 뒤에 약혼식을 열기로 했다. 약혼식 준비는 실베스터 가에서 어느 정도 해뒀다더군. 조만간 실베스터 가에 함께 방문할 거고.”
쏟아지는 이야기들이 급작스럽다.
약혼했다니 나오는 게 당연한 것들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미하엘 경을 만나야겠어.’
그를 만나고 아빠가 저렇게 된 거니까.
왠지 슈가가 말한 ‘썩은 씨앗을 보는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식사가 끝났다.
* * *
“약혼이라니, 말도 안 돼요!”
방으로 돌아오자 첼시가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당황하긴 했지만, 그녀가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궁금한 나는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집사님께 들었어요. 내일 의상실에 연락해 아가씨께서 약혼식 때 입을 드레스를 새로 주문하라고요.”
대답한 건 샤비였다.
“아가씨께서 대공령으로 안 가게 된 건 좋지만, 그래도 약혼식이 한 달 뒤라니 너무 빠르잖아요! 게다가 아가씨는 아직 어리신데 약혼이라니…….”
“그만해, 첼시. 아가씨도 혼란스러울 거야.”
첼시는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말을 아꼈다.
샤비가 한 말처럼 갑작스러운 약혼은 정말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으니까.
다소 촉박한 일정에 샤비와 첼시가 내일부터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으니 쉬라며 나갔다.
드레스를 새로 맞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금전적인 거야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아직 성년이 아니기에 수수하게 입는 쪽으로 굳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형태가 잡혀갈 때쯤 나는 아빠와 함께 실베스터 공작가를 방문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미하엘 경의 옆에 있는 금발의 남자와 마주한 나는 멈칫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실베스터 공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인상이 좋네?’
도저히 암흑가의 사람으로는 안 보인다랄까.
게다가 미하엘 경이 순한 인상은 아니다 보니 그의 아버지인 실베스터 공작 또한 비슷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마주한 둘은 옅은 금발이란 것 말고는 닮은 곳이 없다.
“오셨군요, 대공 전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작이 아빠를 향해 우아하게 예를 표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빠의 반응을 살폈다.
아빠는 실베스터 가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아는 아빠라면 불쾌함을 보일 텐데…….
“환대로군.”
“곧 사돈 될 사이인데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법 유한 분위기에 확신이 들었다. 저들이 아빠한테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옆에 있는 아가씨가 따님인가 보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공작님.”
“사랑스러운 아가씨라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만, 정말 그렇군요. 제 아들이 반해 정신을 못 차리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또 저 소리다.
아빠한테서도 이미 들었지만, 공작까지 저러니 미하엘 경 쪽을 안 볼 수 없었다.
늘 그렇듯, 미하엘 경은 동요가 없었다.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무심한 표정이다.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날 사랑해서 약혼을 청했다고? 아빠를 설득하고?
미하엘 경에게서 시선을 떼는데 순간 실베스터 공작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쩐지 섬뜩한 눈빛.
‘아.’
나는 저런 눈빛을 잘 알았다. 말롱 부인이나 그녀를 찾아오던 자들의 눈빛이 꼭 저랬으니까.
물론 공작의 눈빛은 그들보다 좀 더 은밀했지만, 암흑가 사람들이 가진 섬뜩한 눈빛이라는 것에는 변함없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약혼식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참, 저희가 일을 보는 동안 아이들은 약혼반지를 고르게 하려는데 어떻습니까?”
“둘만 따로 보내자는 건가?”
“보석상을 저택에 불러뒀으니 별다른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순순히 허락하는 모습이 낯설어 아빠를 멍하니 보는 사이 가까이 온 미하엘 경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공녀.”
거절하기도 그래서 손을 잡은 순간이었다.
흠칫.
깜짝 놀란 내가 그의 손을 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소리가…….”
“……?”
말을 하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분명 찢어질 듯한 이명을 들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미하엘 경을 비롯해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이.
‘나만 들은 건가?’
다시 미하엘 경의 손을 잡자 잠잠하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 * *
‘일단은 따라오긴 했는데 잘한 짓인지 모르겠네.’
미하엘 경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내내 경계심을 풀지 못했다. 당연히 그가 내밀었던 손도 어느 순간 놓은 상태였다.
“여기입니다.”
“감사해요.”
문을 연 그는 내가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줬다.
까딱,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자 보석상이 우리를 반겼다.
“기다렸습니다, 공자님.”
“반지는?”
“이쪽으로 오시지요. 말씀해 주신 것들을 전부 가져왔습니다.”
보석상이 자랑스럽게 물건들을 보여줬다. 분명 응접실인데, 상점처럼 전시해뒀다.
“공녀의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십시오.”
미하엘 경의 말에 나는 반지들을 쭉 살폈다.
“전부 진주네…….”
“약혼반지는 탄생석으로 맞추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공녀님의 탄생석인 진주로 만들었답니다.”
작은 읊조림이었는데 들렸는지 보석상이 바로 설명했다.
“전부 최상급 품질을 보장합니다.”
그렇구나.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반지를 봤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거나 고르려는데 가장 끝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반지가 보였다.
‘진주가 아니잖아?’
혼자 다른 보석인 게 신기하다. 계속 보니 미하엘 경의 눈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마음에 드십니까?”
“네? 네.”
미하엘 경의 질문에 깜짝 놀라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보석상이 너스레를 떨었다.
“세상에! 실베스터 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임페리얼 토파즈를 고르시다니! 두 분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보이네요.”
어째 이상한 오해를 산 것 같은데…….
당황해 무어라 하기도 전에 보석상이 말했다.
“하지만 바로 끼기엔 유행이 지난 느낌이 있어서요. 공녀님께 어울리도록 저희가 더 세련되게 세공해야 할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게 해.”
저 말을 한 건 미하엘 경이었다. 보석상은 아예 수정안도 보여주겠다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법 실력 있는 디자이너였는지 그녀는 금방 수정안을 보여줬고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척척 진행되는 상황에 휩쓸려가던 때다.
갑자기 미하엘 경이 인상을 찡그렸다.
“……?”
내내 무표정하던 얼굴이 바뀐 게 의아해 그를 쳐다보던 때다. 미하엘 경이 갑자기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이 목걸이도 같이 하지.”
“역시 공자님의 안목이 좋으시네요. 그 진주가 정말 작지만, 엘피다에서 들여온 최상급 진주들이랍니다. 작은 진주알을 엮어 왕관처럼 만든 게 특징이지요. 다른 목걸이와 함께 걸어도 잘 어울리고요.”
보석상이 좋아하며 열심히 설명을 곁들였지만, 미하엘 경은 내게만 시선을 둔 상태였다.
“걸어드리겠습니다.”
굳이?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놓고 온 게 있네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보석상이 빠르게 응접실을 나갔다. 순식간에 둘만 남겨지자 적막이 흘렀다.
“머리카락을 걷어주십시오.”
“아.”
나는 머리카락을 그러쥐어 살짝 들어 올렸다.
꽤 서늘한 손가락이 목을 스치자 절로 움찔거리게 된다.
‘차가워.’
그리고 제법 거칠다.
큰 손으로 작은 목걸이를 잠그는 게 쉬운 일은 아닌지 제법 헤매는 게 목 뒤에서 느껴진다.
잠깐이야 괜찮았지만 계속 그러니 기분이 이상해지려고 한다.
“……며칠 전에 경께서 저희 아빠를 만났다고 들었어요.”
내 물음에 미하엘 경의 손이 멈칫했지만, 곧 다시 움직였다.
“맞습니다.”
“어떻게 설득한 거예요? 돌아오시더니 저희의 약혼을 허락했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대공 전하께서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듣긴 했는데 안 믿겨서요.”
말하고 나니 심장이 빠르게 요동친다.
얼굴을 보기 전까진 그래도 유하게 넘길 수 있었는데 직접 추궁하니 절로 의식되었다.
특히 지금처럼 가까이 닿아 있는 상태에서 더욱.
“그동안 그런 낌새 없었잖아요. 조금도.”
“제 딴에는 계속 표현한 듯합니다만.”
언제?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기이한 행동들이 떠오른다.
순간 나도 모르게 흐름에 휩쓸려갈 뻔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이성을 다잡았다.
“경이 아빠한테 어떤 수를 쓴 게 아니고요?”
“무얼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빠가 경을 만나더니 갑자기 약혼을 결정했어요. 그전까진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했는데 말이에요. 이상하지 않아요?”
“공녀의 추측대로라면 절 조심해야 하지 않습니까.”
목덜미 위로 낮은 숨결이 미약하게 닿는다.
“늘 공녀를 지켜주던 마수도 곁에 없는데.”
“…….”
“제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