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21)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21화(121/125)
#121
바로 마리 언니와 이리스가 날 찾아 함께 대공저로 온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입구 앞을 서성이는 이들의 모습이 왠지 낯익어 마차를 세웠더니 저 두 사람이 있어 어찌나 놀랐던지!
이리스는 말할 것도 마리 언니 또한 그동안 대공저에 직접 찾아온 적 없었으니 말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며 응접실로 안내한 나는 조금 뜸 들이다 물었다.
“언니가 찾아올 줄은 몰랐네. 여기에 어쩐 일이야?”
“그게, 최근 보육원을 찾아오는 귀족들이 갑자기 늘었어. 이상해서 물으니 네가 약혼한다는 거 있지? 넌 분명 대공령에 갔을 텐데…….”
마리 언니가 날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차마 묻지 못하는 티가 역력하다.
“언니가 들은 게 맞아. 정신이 없어서 언니한테도 말하는 걸 잊었네. 미안.”
“그럼 정말 약혼하는 거야?”
“응.”
“……네가 원한 거야?”
언니의 물음에 나는 멈칫했다. 원한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마리 언니가 한 질문의 의도는 목적이 아닌 ‘애정’의 유무일 테다.
‘아니라고 하면 걱정하겠지.’
나는 살짝 웃었다.
“응. 내가 원한 거야.”
“…….”
언니는 내 말을 영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긴, 대공령으로 내려간다던 애가 갑자기 약혼했으니 쉬이 믿기 힘들겠지.
“원래 아빠가 반대하셨거든. 그런데 미하, 아니, 내 약혼자가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마음을 바꾸셨대.”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다행히 수긍하는 눈치다.
으, 그나저나 미하엘 경을 약혼자라고 직접 말하긴 처음이라 어색하네.
“그런데 이리스 양은 어쩌다 함께 온 거야? 보육원에 안 온 지 꽤 됐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동안 아파서 못 왔던 거래. 너랑 이리스 아가씨가 친했던 것 같아서 가는 길에 내가 먼저 같이 가자고 했어.”
“아팠다고? 지금은 괜찮아?”
“몸살을 심하게 앓아서요. 지금은 괜찮아요.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다니 다행이야.”
룩스가 마수라는 걸 알고 무서워서 일부러 피한 줄 알았는데 아파서 못 왔던 거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안부를 묻는 편지라도 보낼 걸 그랬네.
확실히 마지막으로 봤던 때보다 훨씬 수척해 보이는 모습이 신경 쓰인다.
“사실 룩스 때문에 일부러 피한다고 생각했어.”
“아니에요. 물론 룩스가 마수라는 걸 알고 놀라긴 했지만, 룩스가 얼마나 착한지 아는걸요. 그냥 제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구나 싶었어요.”
옅게 웃는 이리스를 보니 양심에 가책이 온다.
이리스는 저렇게 생각했다는데 나는 괜한 의심이나 하고 말이야.
“늦었지만, 약혼 축하드려요. 실베스터 공자님과 약혼이라니 좋으시겠어요. 다들 공녀님을 부러워할 거예요.”
이리스의 말에 나는 고맙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 또래 영애들 사이에서 미하엘 경은 인기가 많았지.
그래 봤자 저쪽에서 꿍꿍이가 있어 한 약혼이라 신경 쓸 건 없지만.
“참, 언니랑 이리스 양도 약혼식에 올래?”
“네?”
“응?”
이리스와 마리 언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리 초대장을 안 보낸 건 내 잘못이긴 한데,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괜찮아. 내가 갈 만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저도 같은 의견이에요.”
“그런 게 어딨어?”
“하지만 공작가와 약혼한다며. 분명 많은 귀족이 올 텐데 내가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폐를 끼치게 될…….”
“언니.”
나는 마리 언니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언니는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야. 게다가 어릴 적부터 날 돌봤잖아. 혹여나 그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만 해. 내가 해결할게.”
진심이었다. 누구든 마리 언니한테 그런 말을 하다 걸려 봐라. 가만 안 둘 테니.
하지만 이런 내 포부에도 마리 언니는 퍽 불안한지 선뜻 그러겠노라고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리스와 마리 언니에게 초청장을 쥐여 주며 고민해 보고 오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와 주면 정말 기쁠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 * *
며칠 뒤, 나는 슈가와 함께 실베스터 공작가로 향했다. 먼젓번에 본 집사가 날 반겼다.
아직 미하엘 경이 황궁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응접실에 기다려달라는 그의 말에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사실 노린 바이기도 했다.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으니까.’
집사는 날 응접실까지 데려다준 뒤, 하녀를 시켜 차를 갖다 주겠노라고 하며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숄을 들쳤다.
‘이제 나와도 돼.’
―푸하!
내내 내 품속에 숨어 있던 슈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슈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기가 거기야?
“맞아. 뭐 느껴지는 거라도 있어?”
―없는 것 같아.
역시 단번에 찾긴 힘들겠지.
우리는 침착하게 다음 계획을 시행하기로 했다.
바로 이 저택에 있는 동물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
물론 정보를 알아내는 건 슈가가 맡을 예정이었다. 내가 돌아다니는 건 너무 눈에 띄니까.
“잘할 수 있겠어?”
―그럼! 내가 누군데!
슈가가 가슴을 쭉 들이밀며 말했다.
―이 저택 안에 있는 동물들쯤이야, 다 내 아래지!
‘룩스가 있었다면 옆에서 맞장구쳐줬을 텐데.’
‘맞아! 누님이 최고지!’ 하고 외칠 룩스의 모습이 선연하다 못해 그립다.
―그럼 다녀올게!
내가 창문을 열자 슈가가 잽싸게 밖으로 나간다.
슈가가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하는 걸 확인한 나는 하녀가 오기 전에 창을 닫았다.
* * *
‘생각보다 늦네.’
나는 창문과 문을 번갈아 봤다. 슈가도, 미하엘 경도 둘 다 오지 않고 있었다.
찻주전자 안에 있던 차를 다 마실 때까지 말이다.
‘미하엘 경이야 사정이 있어 늦는다 쳐도 슈가는 걱정되네.’
생각해 보면 위험 요소는 많았다. 사용인이 지나가다 신기하다고 잡을 수도 있고, 고양이 같은 다른 덩치 큰 동물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결국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녀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산책하고 싶은데, 정원이 어디쯤 있었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괜찮아. 혼자 걷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위치만 알려 줄래?”
하녀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하녀답지 않은, 마치 날 관찰하는 듯한 묘하게 날카로운 눈빛에 괜히 긴장되던 때였다.
“……알겠습니다.”
조금 늦게 수긍을 담은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하녀로부터 정원 위치를 알아낸 나는 홀로 저택 밖으로 나왔다.
‘조심해야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하녀는 평범한 이가 아닌 듯했다.
실베스터 가문이 암흑가인 걸 생각하면 영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순 접대마저 시킬 줄이야.
‘실베스터 가에 있어 나는 주의해야 할 대상이니 당연한가?’
순순히 보내 주긴 했으나 지금도 내 뒤를 몰래 쫓아오고 있을지 몰랐다.
‘어서 슈가를 찾아야 하는데.’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경관을 즐기는 척 속으로는 슈가를 부르며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걱정만 깊어지던 찰나였다.
―……가!
멈칫.
순간 머리가 쨍할 정도로 끔찍한 이명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뭐지?’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선연하다. 마치 비명 같은 이명이었다.
다행이라면 슈가의 소리는 아니라는 것일까.
그런데 전에도 이 비슷한 소리를 들었는데 어디서였지?
―…히……!
“윽.”
다시금 들려온 소리에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머릿속에 울리는 이명인 만큼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취한 행동이었다.
‘대체 어디서 들리는 거지?’
양손으로 귀를 막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왠지 이쪽인 것 같은데.’
근거 없지만, 이쪽으로 가면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런 확신이 들었다. 무언가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기묘한 이끌림.
홀린 듯이 감각에 의존해 걷던 내가 멈춘 건 내 앞을 가로막은 벽 때문이었다.
눈 내린 설산을 등지고 넓은 들판에 고고하게 서 있는 황금 사슴 그림이 걸려 있는 벽.
“아.”
그림 속 사슴과 눈이 마주친 뒤에야 뒤늦게 정신이 퍼뜩 들었다.
마치 꿈을 꾸다 깬 기분이다.
‘언제 안으로 들어왔지?’
스스로 들어와 놓고 기억이 없다니.
당황한 나는 돌아서다 말고 다시 벽을 쳐다봤다.
‘이 그림 액자, 낯익어.’
나는 손을 들어 액자를 건드렸다. 액자에 문양을 새긴답시고 양각과 음각이 져 있는 거야 흔했지만, 내게는 퍽 낯익었다.
말롱 부인이 따로 만들었던 비밀 통로에 걸려 있던 액자와 비슷했으니까.
‘이렇게 생긴 걸 누르면 들어가던가?’
달칵.
튀어나와 있던 양각이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갔다.
내가 누른 그대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양각을 보며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뒤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것을.
이명이 들렸던 것, 하필 내 걸음이 멈춘 곳에 이런 장치가 있다는 것.
결코 우연히 아닐 테다.
‘어쩌면 이곳에 실베스터 가에서 숨긴 고대 무기가 있을지 몰라.’
긴장감과 흥분감으로 뒤섞여 심장이 빠르게 뛴다.
두근두근, 뛰는 고동을 느끼며 나는 액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확한 조합을 눌러야 열릴 텐데 나는 그 조합을 몰랐다.
그렇다고 무작정 여러 번 누르자니 언제 다른 사람이 올지 몰랐다.
게다가 이런 장치는 몇 번 틀리면 스스로 잠겨 한동안 안 열리고는 했다.
‘유독 닳은 곳도 없네.’
많이 사용했다면 닳은 흔적이 있을 텐데 액자는 새것처럼 반들반들했다. 주기적으로 장치를 갈고 있다는 뜻이리라.
‘말롱 부인이 쓰던 조합을 해볼까?’
될 리 없지만, 그래도 우연의 일치로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막 손을 들어 다른 양각을 누르려던 때다. 등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조금 어두워진 시야에 돌아보기도 전에 장갑을 낀 커다란 손이 내 손등을 잡아 눌렀다.
이윽고 낮은 음성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