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24)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24화(124/125)
#124
‘오늘도 안 계시네.’
혹여나 소리 소문 없이 돌아와 계시진 않을까 기대했던 나는 실망하며 문을 닫았다.
아빠가 황제의 부름을 받은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해야 실베스터 가에서 고대 무기를 빼낼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마땅한 수가 없었다.
이미 미하엘 경이 눈치챘으니 다시 실베스터 공작가에 방문하기도 어려웠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감시가 붙을 게 뻔하다.
‘어쩌면 고대 무기를 보관하던 장소도 옮겼을지 모르고.’
슈가를 통해 정보를 알아보려 했던 계획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쓰러지는 바람에 중간에 돌아오긴 했으나 그전까지 공작가에서 어떤 동물도 만날 수 없었다나?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낸 결과 어느덧 내일이 약혼식인데, 아빠까지 돌아오지 않으니 심란했다. 걱정도 되고.
‘어디 다치신 건 아니겠지?’
아빠는 강하니까 그럴 일 없겠지? ……라고 여기며 편히 안심할 순 없었다.
아빠가 강한 것과 별개로 예기치 못하는 사고는 늘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래도 약혼식 전에는 돌아올 줄 알았는데.’
대체 황제는 아빠한테 어떤 걸 시켰기에 이렇게까지 안 돌아오시는 거지?
카드릭한테 부탁해서 알아봐야 하나? 껄끄럽긴 해도 이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카드릭뿐이니까. 그러고 보니 룩스는 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집사와 마주쳤다.
“또 전하의 방에 다녀오신 겁니까?”
“응. 혹시 돌아오셨나 싶어서. 그런데 안 오신 것 같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내일 약혼식 전까지는 돌아오실 겁니다.”
집사의 위로에 나도 “그렇겠지?”하고 대꾸하긴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인 만큼 퍽 불안하다.
그래도 집사한테까지 티 내고 싶진 않아 아무렇지 않게 내 방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쿠웅!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커다란 진동에 나는 벽을 짚었다.
“괜찮으십……!”
쿠콰콰콰쾅! 쿠콰쾅!
집사가 날 걱정하자마자 굉음이 매섭게 고막에 꽂혔다. 한순간 귓속이 얼얼하다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게 큰 소리였다.
“갑자기 무슨…….”
당황한 우리는 소리가 들려온 창밖을 쳐다봤다.
늘 푸르렀던 하늘 가운데 거대한 검은 구멍이 생겨 있었다.
신이 하늘에서 창을 내리꽂기라도 한 것처럼 구름 한가운데가 뚫린 모습은 장관이라기보다는 섬뜩했다.
“저건 대체……? 마치 재앙 같군요.”
집사의 말대로였다. 검은 구멍은 정말 재앙처럼 보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재앙 말이다.
“저쯤이면 황궁인 듯한데, 대체 무슨 일이…….”
“황궁이라고?”
구멍을 따라 시선을 쭉 내리자 정말 황궁이 있는 곳이었다.
검은 먹구름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덩어리라고 해야 할지 모를 무언가에 일부가 잠식된 모습이 보인다.
“설마 아빠가 황궁에 계신 건 아니겠지?”
“아마, 아닐 겁니다…….”
집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어쩌면 아빠가 황궁에 있을지 모른다고.
그리고 저 정체 모를 이상 현상도, 어쩌면…….
“확인해 봐야겠어.”
“예? 황궁에 가시겠다는 건 아니지요?”
“아빠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고 올게.”
“안 됩니다, 아가씨! 위험할지 모르잖습니까!”
집사가 드물게 내게 언성을 높였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아차 싶었는지 허겁지겁 덧붙인다.
“황궁에는 황제 폐하도 계시고, 마법사들도 있지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금방 해결될 겁니다. 전하께서도 무사히 돌아오실 테고요.”
“…….”
“별일 아닐 겁니다. 분명 그럴 테니 아가씨께서는…….!”
집사가 말하는데 갑자기 시야가 조금 어두워진다. 마치 그림자가 진 것처럼.
느낌이 이상해 다시 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참이었다.
쨍그랑!
창문이 깨지며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쿵!
연이어 무언가가 유리 파편과 함께 복도에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던 나는 빠르게 ‘그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깃털처럼 뾰족하게 솟아난 하얀 털의 마수였다.
“……룩스?”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던 때였다.
마수가 고개를 번쩍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마수와 시선을 마주한 나는 확신했다.
‘룩스가 아니야.’
대체 어디서 마수가 튀어나온 거지? 갑자기 왜?
혼란스럽지만, 지금은 이 마수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마수가 유리 파편을 파삭파삭 밟으며 나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캬악!
크기는 대형견 정도였지만, 이빨과 발톱 때문에 꽤 위협적이었다.
‘만약 룩스와 같은 종이라면 룩스처럼 특수한 능력을 쓸지도 몰라.’
룩스는 내 친구였던 만큼 나나 타인을 해치지 않았지만, 이 마수는 달랐다.
붉은 안광을 띠는 눈에는 오로지 적의만 있었다.
도망치기엔 너무 가깝고,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해도 마수는 순순히 돌아가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테이밍하는 것.
‘마수는 룩스 이후로 처음인데 될까?’
아니, 되어야만 해.
여기서 이 마수를 그냥 보내면 애꿎은 사용인들이 다칠 게 뻔했다.
운 좋아 기사들에게 가면 나을지 몰라도 당장은 이 마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솔직히 그때 어떻게 길들였는지 잘 기억 안 나긴 하지만, 그래도…….
굳세게 마음먹은 나는 마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움직이자 집사가 그러지 말라는 뜻을 담아 고개를 젓는 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마수에게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언제 저 마수가 날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공포감에 심장이 빠르게 요동친다.
내가 가까이 다가선 뒤에도 마수는 가만히 서서 날 주시하기만 했다.
‘살짝만 닿아도 돼. 살짝만.’
마수에게 손을 뻗어 만지려는 순간,
“악!”
마수가 내 다리를 깨물었다. 섬뜩한 감각이 종아리를 매섭게 파고든다.
한 번, 두 번, 내 다리를 아작내겠다는 듯 물어뜯는다.
“아가씨!”
놀란 집사의 비명이 들린다. 통증에 정신이 나갈 것 같지만, 나는 어떻게든 마수를 붙들었다.
‘닿았어.’
다행히 마수를 만지자마자 감각이 연결됐다.
나를 찢어발길 기세로 매섭게 노리던 마수의 흉포함이 순식간에 잠잠해진다.
‘됐어.’
붉은 안광 대신 푸른 빛을 띠는 마수의 눈을 보며 나는 속으로 명령했다.
‘내 다리를 놓고 물러나.’
마수가 내 다리를 놓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고작 잠깐 물렸을 뿐인데 바닥이 온통 피범벅이다.
“아, 아가씨 다리가……! 저 마수가 감히!”
“괜찮아. 이젠 내 편이야.”
“아가씨께서 길들이신, 아니, 그보다 다리가……. 요한나를, 아니, 신관을 불러야…….”
내게 다가온 집사가 기겁하며 발을 동돌 굴렸다.
아무리 오랜 시간 집사로 일하며 노련해진 그라도 뜻밖의 사태에 많이 놀랐으리라.
아무렴 나도 내 다리를 보기 겁날 정도이니 집사는 오죽할까 싶지만.
“이거 뜯어줘.”
나는 마수를 향해 내 치맛자락을 내밀었다.
마수가 내 치마 끝을 물고 길게 뜯었다. 조악하기 짝없지만,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나으리라.
“집사, 미안한데 이걸로 다리 좀 감아 줄래?”
“예, 예. 그러겠습니다.”
집사가 찢어진 치맛자락을 붕대처럼 내 다리를 감쌌다.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해볼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사실 자신 없다. 지금도 너무너무 아팠으니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오는 걸 애써 무시하며 나는 집사의 부축을 받았다.
“윽!”
“안 되겠습니다. 제가 요한나를 불러올 테니 아가씨는 이곳에 계십시오.”
“괜찮아. 마수를 타면 돼.”
나는 구석에 가만히 있는 마수를 가리켰다.
집사의 부축을 받아 마수의 등에 올라타 마수를 움직이는 데 집중하던 때였다.
미세한 진동이 울린다. 마치 무언가 단체로 다급히 뛰어오는 듯한…….
쾅!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허겁지겁 문을 잠그는 하인의 모습이 보인다.
눈에 띄게 이상한 행동에 주변 사용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를 응시했다.
“무슨 일인가?”
“집사님, 그, 그게, 히익! 마, 마수!”
하인이 내가 탄 마수를 가리키며 기겁했다.
뒤늦게 다른 사용인들도 내가 탄 마수를 보고 숨을 삼켰다.
몇은 “룩스 님이잖아. 왜 그렇게 놀라?”라고 말했으나 진정시키긴 무리였다.
결국 집사가 강하게 말했다.
“이 마수는 공녀님이 길들였으니 괜찮네. 지금도 자네에게 덤비지 않지 않나.”
“하, 하지만…….”
“정신 차리게! 그보다 대체 무슨 일인가?”
“바, 밖에도 마수들이……! 마수들이 막!”
“마수들?”
쿵!
집사가 반문하자마자 무언가가 문을 강하게 들이박았다.
잠긴 문은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리며 살짝 열린 틈새 사이로 짐승의 털 같은 게 보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하인이 ‘히익!’ 숨을 들이 삼키며 엉덩방아 찧었다.
‘이 마수로 끝이 아니라 계속 오는 거였어?’
나 또한 당황한 사이 창문 쪽으로 짐승의 모습이 비치는가 싶더니 유리창이 깨졌다.
챙그랑!
“히익!”
“꺄악!”
깨진 유리 파편처럼 사용인들의 비명 또한 사방으로 퍼졌다.
어느덧 문짝도 나가떨어지며 마수들이 저택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셋, 아니, 넷인가……?’
같은 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이란 게 눈이 보일 정도로 마수들은 생김새가 달랐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안 잡힌다.
내가 내려가서 저 마수들을 테이밍 해야 하나?
하지만 다리가 이런데? 사용인들이 다치기 전에 내가 닿을 수 있을까?
잠깐 상념에 빠진 사이 마수들이 제일 가까이 있던 하인과 하녀를 응시했다.
이를 드러낸 마수 중 하나가 사용인들을 향해 안개 같은 걸 내뿜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보라색 연기에 하녀와 하인이 기침을 토하다 힘없이 픽픽 쓰러진다.
“아가씨, 우선은 피하시는 게 좋겠……!”
집사가 날 붙들며 서둘러 이끌었다. 이성적으로는 집사의 말처럼 피해야 하는 게 옳다는 걸 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저 사람들을 내버려 두면 그 뒤가 어떨지 뻔히 알아서.
쓰러진 사용인들을 향해 다가가는 마수들을 보며 나는 다급히 명했다.
‘막아.’
나를 태우고 있던 마수가 빠르게 달려 나가고, 그 위에서 떨어진 나는 바닥을 굴렀다.
“아가씨!”
집사가 날 붙들며 내 다리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수와 감각이 끊기질 않게 조정하기 바빴다.
캬악!
재빠르게 달려간 마수가 사용인들을 위협하던 마수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캬아아아악! 캭!
찢어질 듯한 동료의 비명에 다른 마수들이 황급히 사용인들을 포기하고, 곧바로 내 마수를 향해 덤벼들었다. 여기저기 피가 튀어 오른다.
숫자에 밀린 마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리고 그 통증과 감정은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
‘아파. 아파. 아파.’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
내가 목을 움켜쥔 채 숨을 헐떡이자 집사가 “아, 아가씨, 이걸 어떻게…….”라고 말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지만 아픔보다 이 뒤의 일이 더 막막했다.
저 마수가 죽으면 어떡하지? 다른 마수들을 막을 수 있나?
‘룩스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마수들이 뭉쳐 정신없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싸우던 때였다.
갑자기 마수들이 일제히 멈칫거리더니 황급히 내 마수를 놓았다. 그리고는 바깥쪽을 돌아보며 잔뜩 털을 세웠다.
‘뭐지? 왜 갑자기…….’
―으허엉, 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