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25)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25화(125/125)
#125
희미하지만, 귀에 익은 소리였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룩스?”
왠지 룩스의 외침이 들린 것만 같아 말해 놓고도 믿기지 않는다. 룩스는 카드릭과 함께 황궁에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여기에 올 수 있을 리 없는데.
쿵!
쿠웅!
땅을 타고 울리는 진동이 점점 커진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돌진해 오는 듯했다.
그런데도 두렵다기보다는 무언의 기대감이 생겼다.
이윽고 엉망진창이 된 문짝 너머로 익숙한 형체가 드리웠다.
일반적인 마수와 다르게 목과 발에 억제 마도구를 달고 있는 새하얀 털의 마수는 룩스였다.
―베리이이이!
거대한 산처럼 커다랗던 룩스가 단박에 몸집을 줄이며 문 안으로 쏙 들어왔다.
몸집을 줄였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저택의 문을 통과할 정도만이라 다른 마수들에 비하면 여전히 컸다.
캬아아악!
‘룩스, 조심……!’
마수들이 룩스를 향해 보라색 연기를 내뿜었다.
다른 사용인들이 저 연기를 마시고 쓰러진 걸 봤던 만큼 룩스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룩스는 얼음 기운을 내뿜어 되레 마수들과 연기를 통째로 얼렸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다.
―베리이이이!
언제 마수들을 향해 힘을 행사했냐는 듯 룩스가 달려왔다.
내게 안길 기세로 격렬히 뛰던 룩스가 코앞에서 멈칫하더니, 내 다리를 보며 기겁했다.
―피! 피 냄새! 왜 다쳤어?
“물렸어.”
―어떤 게 그랬어? 말만 해! 내가 찢어줄게!
찢겠다니, 우리 룩스는 마수를 찢어…….
뜻밖의 룩스의 발언에 잠시 멍해지려던 나는 급히 정신을 차렸다.
“그럴 필요 없어. 지금은 우리 편이…….”
……어야 했을 텐데.
감응한 마수가 있는 곳을 봤던 나는 마저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마수는 처참하게 물어뜯긴 채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죽었어.’
감각도 전부 끊겨 있다. 룩스를 보고 기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끊길 줄도 몰랐다.
마수가 룩스와 꽤 닮은 생김새라 그럴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룩스의 죽음이 절로 그려진다.
―베리!
―어, 누님이다!
내 머리에 올라탄 따뜻한 무언가에 퍼뜩 정신이 든다.
―룩스? 너 돌아왔구나! 그런데 베리한테서 왜 이상한 냄새 나지?
―다쳤어! 뭐에 물렸대!
―뭐어? 어떤 게 베리를 물었어! 어떤 새끼야?
날뛰는 슈가를 진정시키며 나는 룩스를 쳐다봤다.
“룩스, 미안한데 저기 쓰러진 사람들 보이지? 저쪽에 가서 상태를 봐줄 수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끝말은 속으로 전달했다. 오로지 룩스와 슈가한테만 들릴 내 의지였다.
―꼭 봐야 해? 살아 있는데?
이렇게 바로 대답이 돌아올지 몰랐지만.
‘살아 있다고?’
―응! 잠깐 잠든 것뿐이야!
―어떻게 알아?
―그냥 느껴지는데? 누님도 느껴지지 않아?
―다, 당연히! 느꼈지!
―그렇지? 나도 아는 걸 누님이 못 모를 리 없지!
단순히 잠든 거라니 다행이다. 혹시나 독 같은 거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아가씨, 저는 요한나를 불러 오겠…….”
“슈가 님! 히익!”
누군가 슈가를 부르다 말고 기함했다. 소리가 들린 곳을 보니 첼시와 샤비가 서 있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잘들 왔네. 자네들 중 아무나 요한나를 데려와 주게.”
“주치의 선생님 말씀이시죠? 제가 불러올게요!”
집사의 말에 첼시가 냉큼 대답하고는 돌아섰다.
내내 재촉했는지 주치의 선생님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상황을 마주한 그녀는 쓰러진 사람들을 보더니 재빨리 다가가 살폈다.
“기절한 것뿐, 이상은 없어 보이는군요.”
“그렇다니 다행이군. 그보다 아가씨의 상처 좀 봐주게.”
“아가씨의 상처요? 어디 다치셨습니까?”
“마수한테 다리를 물리셨네.”
“네에?”
“마수한테요?”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아니, 아니지. 우선 상처부터 보여주시겠습니까?”
주치의 선생님의 재촉에 나는 상처를 보여줬다.
대강 묶어둔 천을 풀고 상처가 드러났다. 동시에 주변에서 탄식이 터졌다.
“세상에, 이걸……. 치마에 가려져서 못 봤어요.”
“심각하군요. 상처가 이렇게나 깊은데 어째서 말씀 안 하셨습니까?”
“안 아프셨어요?”
“아프긴 한데…….”
마수를 통해 다른 통증을 겪고 나니 상대적으로 덜 아프게 변했다고 해야 하나, 둔해졌다고 해야 하나.
“일단 치료하고, 주인님께서 돌아오시면 부탁드리거나 신관을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치료받는 동안 슈가가 울먹였다.
―왠지 네가 위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왔더니……. 룩스, 너는 베리가 이렇게 될 동안 뭐 했어?
‘진정해. 룩스가 오기 전에 물린 거야.’
―맞아! 나도 베리가 위험할 것 같아서 왔어!
‘그러고 보니 룩스, 넌 어떻게 온 거야?’
―그냥 왔는데?
‘막는 사람은 없어? 카드릭은? 함께 있지 않았어?’
―인간들이 막긴 했는데 무시했어! 맞아! 오면서 다른 인간들도 구해줬다? 나 잘했지!
‘구해주다니? 무슨 일 있어?’
―오는 길에 쟤네 같은 게 잔뜩 있었어!
룩스가 얼어붙은 마수들을 향해 턱짓했다.
‘마수가, 오는 길에 잔뜩 있었다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오는 내내 있던데? 여기도 있잖아!
‘여기만 나타난 게 아니라 거리와 황궁에도 나타났다는 거야?’
―응!
‘기사들은? 마수를 막는 사람은 있었어?’
―딱히? 다들 도망치기 바쁘던걸?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에 절로 표정이 굳는다.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붕대를 세게 감았나요?”
“아, 아니야. 잠깐 다른 생각을 해서 그래.”
“그럼 다행입니다만, 당분간 거동은 자제하셔야 합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나는 주치의 선생님의 시선을 피했다. 마수들 때문에 지체되었지만, 황궁에 가봐야 했으니까.
그리고 룩스의 말대로라면 바깥에도 다른 마수들이 널려 있을 확률이 높았다.
‘마리 언니가 위험할지 몰라. 다른 사람들도.’
아빠의 배려로 보육원에 호위기사가 배치되어 있긴 하나 그들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마 힘들겠지.
“아가씨?”
―베리?
나는 요한나에게 치료받는 동안 앉아 있었던 계단에서 일어나 마저 내려가 얼어붙은 마수들에게 다가갔다.
얼음 속에서도 마수들의 눈이 움직인다. 날 보는 눈빛에 담긴 건 명백한 적의였다.
―저것들이!
캬악!
룩스가 울부짖자 단박에 적의가 사그라들었지만. 나는 마수의 몸 중에 얼리지 않은 부분을 찾아 손을 갖다 댔다.
뻣뻣한 털들 아래 차가운 피부와 닿자 감각이 연결된다. 붉은 안광 대신 잔잔한 푸른 빛 눈이 날 응시한다.
‘더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상대로 나는 다른 마수들을 전부 길들일 수 있었다.
테이밍을 마치고 뒤돌아보자 다들 긴장한 기색으로 나와 마수들을 보고 있다.
“이제 이 마수들은 우리 편이야. 그래서 얼음을 부술까 하는데……. 괜찮을까?”
머뭇거리던 그들은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그리고 첼시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전 괜찮아요.”
“저도 괜찮아요.”
한 명을 시작으로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허락에 나는 룩스를 보며 말했다.
‘룩스, 이것 좀 부숴줄래?’
―그래!
신나게 뛰어온 룩스가 얼음을 어느 정도 부수자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된 마수들이 스스로 얼음을 깨고 나왔다.
그중 한 마리는 끼이잉, 울며 내 다리를 핥았다. 덕분에 치마와 묶어놓은 붕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주치의 선생님이 다가와 새로 붕대를 갈아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붕대를 새로 감기 위해 풀던 때였다. 주치의 선생님이 멈칫했다.
“……?”
“왜 그래?”
“상처가…….”
그사이 금세 덧났나? 마수의 침이 안 좋게 작용했다던가?
안 좋은 기분이 들어 함께 상처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다 나았어?’
다리에는 상처가 전혀 없었다. 언제 다쳤냐는 듯이.
붕대에 핏물이 묻어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본 사람들이 여럿이지 않았다면 내가 다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다리의 상처가 말끔히 아물어 있었다.
“마수한테 이런 능력이 있었군요. 어쨌거나 다행입니다.”
“그러게.”
덕분에 거동에 불편함이 사라졌다. 다리를 이래저래 움직여본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마수 두 마리를 두고 갈 테니 여기 있어.”
“네? 아가씨는요?”
“나는 황궁에 다녀올게.”
―나는? 나는?
‘룩스, 너도 같이 가자고 하려고 했어.’
―좋아!
“하지만 아가씨, 바깥에도 마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응, 룩스한테 들었어. 밖에도 마수가 많다고.”
“그런데도 가시겠다고요?”
“아빠가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다행히, 나는 마수를 다룰 수 있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집사는 이전과 달리 나를 강력하게 말리지 않았다. 말려서 소용없다는 걸 눈치챈 까닭이 크리라.
“다녀올게. 가자, 룩스.”
나는 룩스와 다른 두 마리 마수들을 불렀다. 룩스의 등에 올라타고 나가려던 그때였다.
―나도! 나도 같이 가!
내 어깨 위로 올라온 슈가가 방방 뛰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슈가를 붙들었다.
‘슈가, 넌 여기 있어. 위험할지 몰라.’
―맞아, 누님은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하지만……!
‘괜찮아. 금방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줘. 응?’
―……알았어.
나는 슈가를 샤비에게 넘겼다. 그리고 룩스와 함께 황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