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3)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3화(13/125)
#13
경매장의 아래층에는 저조차도 지나친 뒤에야 눈치챘을 정도로 견고한 흑마법 결계가 쳐져 있었다.
아시드는 자신의 자만으로 이루어졌던 생각을 번복해야 했다.
‘이 목걸이가 없었더라면…….’
강력한 흑마법으로 이뤄진 결계는 대가를 요구했다.
마법 시전자가 어떤 걸 정해 뒀느냐에 따라 다 다르지만, 이 결계는 그의 팔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 목걸이가 없었다면 팔이 잘려 날아갔을 것이다.
마법사에게 팔은 생명과도 같았다. 마나는 심장에 쌓지만, 그 마나를 표출하고 마법진을 그리는 건 팔을 통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만약 숙달된 팔을 잃으면 반대편 팔로 다시 처음부터 마법을 익히고 단련해야 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드물었다.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 숙달했던 경지를 처음부터 새로이 시작해 예전 경지만큼 끌어올리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으므로.
‘그동안 약한 마법밖에 못 쓸 테니 위험에 노출되기도 쉽겠지.’
특히 적이 많은 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팔을 잃었어도 그에게는 직계 황족에게만 나타난다는 소환수인 ‘불새’가 있으니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미숙한 마력 응용은 그가 가진 방대한 마력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고 끝내 정신의 붕괴를 가져올 터였다.
스스로 멈출 수 없어 미쳐 날뛰다 제가 하려던 것이 무엇인지 잊은 채 죽을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아까 여자아이는 그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아시드는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동시에 밖에서 상황을 수습 중일 제 수하에게 전언을 보냈다.
조금 전 마주친 여자아이의 모습을 담아서.
수 초 뒤, 기다렸다는 듯이 수하의 목소리가 전언으로 돌아왔다.
―전하! 그러잖아도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의 모습을 왜 보내 주시는 건지…….
“찾아내.”
―찾으면 죽일까요?
“아니. 잡아 두기만 해. 내가 갈 때까지.”
―잡아 두란 말씀입니까? 실례지만, 이 아이가 누구이기에…….
의아하게 되묻는 수하의 물음에 아시드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내 은인.”
* * *
나는 대공이 박살 낸 벽을 통해 서둘러 나왔다.
무너질까 무서운 건 없었다. 벽은 천장도 없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으니까.
‘이제 개구멍만 찾아내만 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벌써 피로했다.
‘그래도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야.’
대공이 처리한 건지, 아니면 나보다 먼저 도망친 아이들을 잡느라 바빠서인 건지 모르겠다.
‘내가 먹인 키시안 뿌리 때문일지도.’
어느 쪽이든 내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도망치고 있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서두르자.’
서둘러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애니, 아까는 왜 그런 거야, 찍?
―맞아! 정말 겁도 없어! 그 수컷 인간, 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좋은 인간은 아닌 것 같았어!
줄곧 내 주머니 속에 숨어 숨죽이고 있던 룩스와 하늘다람쥐가 번갈아 말했다.
으, 그건 나도 반성하고 있는 거라 할 말 없다.
“미안. 놀랐어?”
―그걸 말이라고!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찍!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대공이 날 죽였다면 이 애들도 내가 죽는 걸 고스란히 보게 됐겠구나.
어쩌면 나 때문에 같이 죽었을 수도 있고.
생각할수록 대체 왜 그랬나 싶긴 하지만, 그건 나도 알 수 없는 터라 달리 변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인간은 왜 붙잡았어?
그러게. 왜 붙잡았을까…….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아니면 내 은인이라서?”
―은인? 그 남자가, 찍?
룩스는 내 궁금증보다는 내가 벨로크 대공을 칭한 호칭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날 구해 줬잖아. 덕분에 유진한테 안 맞았고.”
그래, 이거다.
우습게도 여태껏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해답은 룩스와 하늘다람쥐에게 대답해 주고 나니 찾아졌다.
생각해 보면 대공이 날 구해 준 건 이번만이 아니었다.
‘소르겐 백작한테서도 구해 줬지.’
황태자의 성인식 날, 황궁에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그때의 불쾌감과 공포가 생각났다.
소르겐 백작과 유진이 죽는 걸 봤을 땐 놀랐다.
하지만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그들의 업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널 구해 준 건 우연처럼 보였는데, 찍.
―맞아. 그 남자 인간은 별생각 없어 보이던데? 오히려 난 네가 죽을까 봐 걱정됐다고!
확실히, 이건 나도 동감한다.
나도 대공이 날 죽일 거라고 여겼으니까.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어쨌든 간에 안 죽였잖아. 그럼 날 구해 준 것만 남는 거고.”
―그건 맞지, 찍…….
―너, 많이 낙관적이구나.
룩스와 하늘다람쥐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두 번이나 대공에게서 도움을 받아 살았는데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방금 날 살려 준 건 변덕에 가까운 것 같고, 또 누군가한테 대공은 죽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난 나대로 은혜를 갚은 것뿐인걸. 무엇보다 앞으로 볼 일 없는 사람이고.’
대공은 내가 회귀하기 전에 죽기 직전에 처음 봤을 정도로 만나기는커녕 멀리서 우연히 보기도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겠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룩스와 하늘다람쥐에게 물었다.
‘개구멍 말인데,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해?’
―저기 모퉁이 보여? 거기서 왼쪽으로 돌아서 더 가면 돼. 아니다, 그냥 날 따라와!
내 주머니에 있던 하늘다람쥐가 폴짝 뛰어내렸다.
분명 나보다 작은데 뛰는 속도는 정말 빨라서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 뒤를 따라갔다.
―여기야!
다행히 하늘다람쥐는 생각보다 금방 멈췄다.
“여기가, 허억, 개구멍이라고?”
그런 건 안 보이는데?
―응! 이 판자 뒤에!
벽면의 절반만 한 나무판자 위에서 하늘다람쥐가 콩콩 뛰었다.
아, 판자 뒤에 있구나.
그런데 판자가 이렇게 크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옮길 수 있겠지? 아니, 옮겨야 해. 그래야 나가지.’
나는 내 키보다 살짝 더 큰 판자를 보며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판자 옆으로 가 낑낑거리며 밀었다. 다행히 판자는 잘 밀렸다.
‘보기보다 가벼워서 다행이야.’
조금씩 밀리는 판자를 완전히 밀치자 숨겨져 있던 구멍이 드러났다.
―이게 내가 말한 구멍이야! 여기로 나가면 돼!
“어…….”
구멍을 보고 방방 뛰는 하늘다람쥐와 달리 나는 되레 막막해졌다.
판자를 치우니 구멍이 있긴 했다. 다만…….
‘못 나가겠다.’
―찍?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나가기엔 작은 것 같아.’
예상보다 너무 작을 뿐.
―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찍?
―맞아. 일단 몸을 넣어 봐.
아니, 이렇게 작은 구멍으로 어떻게 나가겠냐고.
그래도 둘의 성화에 못 이겨 엎드린 나는 다리를 넣어 봤다.
그런데 꽤 들어간다?
이렇게 구멍이 작은데 여기로 나갈 수 있다고? 내가 작아진 것도 아니고……. 하긴 어려졌지, 참.
무의식적으로 회귀하기 전의 내 체구를 생각했던 나는 그제야 해답을 찾아냈다.
회귀하기 전에도 내 체구는 여자치고도 아담한 편이었다.
그래도 어린아이와 성인 간의 격차는 분명 존재했다.
이 괴리도 거기서 오는 거겠지.
―땅을 조금만 파 보자! 그럼 어떻게든 나갈 수 있을 거야!
‘땅을?’
―구멍 아래로 땅을 파면 구멍이 넓어지니까, 찍.
아, 그 말이구나.
납득한 나는 땅을 팔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
‘삽 없나?’
두리번거렸지만 그런 건 안 보였다. 애초에 별 기대도 안 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주먹보다 더 크고 날카로워 보이는 돌멩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쉬운 대로 돌을 주워 구멍 앞에 쭈그려 앉은 나는 룩스를 바라봤다.
‘누가 오는지 봐 줄 수 있어?’
―물론이지, 찍!
―나도 이 위에서 보고 있을게!
‘고마워.’
룩스는 구멍 너머로, 하늘다람쥐는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든든한 보초 아래에서 나는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붙인 뒤 엎드려 본격적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행히 땅은 물러 수월하게 팔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나는 크게 심호흡한 뒤 구멍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기어 나가기 시작했다.
‘으, 이거 생각보다 힘들잖아?’
그렇게 조금씩 개구멍 밖으로 몸을 빼던 때였다.
―애니! 다른 인간이 와, 찍!
“뭐?”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몸을 빼냈다. 아니, 빼려고 했다.
“왜, 왜 안 빠뎌!”(왜, 왜 안 빠져!)
―서둘러! 상당히 가까워!
―빨리 나와, 찍찍!
둘의 재촉에 이어 정말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느낄 정도라는 건 상당히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기에 절로 다급해졌다.
‘안 돼! 이렇게 잡힐 수는 없어!’
필사적으로 벽을 밀며 발버둥 치자 조금씩 몸이 빠져나온다.
―빨리 나와, 찍!
―어떡해? 사람 와!
“조금만, 조금만 더 나가면…… 대따!”(조금만, 조금만 더 나가면…… 됐다!)
애쓰던 끝에 구멍에 끼어 있던 몸이 쏙 빠졌다.
―서둘러!
허겁지겁 나와 일어나려던 때였다.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여러 개 드리워졌다.
꼭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설마……?’
미처 고개를 들기도 전에 들려온 음성에 나는 굳었다.
“여자애,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