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5)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5화(15/125)
#15
나는 여느 때보다 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분명 내가 낸 상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서웠다.
날 따라오며 돌과 흙을 던지던 아이들도 예기치 못한 이 사태에 놀란 것 같았다.
“죄, 죄송해요!”
아이들이 대공에게 말했다.
“아저씨를 맞히려던 게 아니었어요.”
“맞아요! 실수였어요!”
“그럼 누굴 맞히려고 했던 거지?”
서늘한 음성.
겨우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네?”
“누구한테 던진 거냐고 물었다.”
“그, 그게…….”
아이들이 머뭇거렸다.
저 아이들은 대공이 정말 몰라서 묻는다고 여기는 걸까?
“잡아라.”
뭘?
갑작스러운 말에 내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언제 온 건지 모를 기사들이 아이들을 붙들었다.
“왜, 왜 이러세요!”
“놓아주세요!”
무언의 위험을 감지한 건지 아이들이 외쳤다.
그러나 대공은 대꾸 없이 기사들을 보며 무성의하게 고갯짓했다.
“내게 상해를 입힌 자들이다. 법도대로 처리해.”
“명을 받듭니다.”
기사들이 아이들을 끌고 갔다. 끌려가는 아이들이 무어라 외쳤으나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대공의 시선을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침착하자. 침착하게 있는 거야…….’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려 했으나 뜻대로 안 된다.
어흑! 난 왜 이렇게 운이 없는 거야!
눈물이 핑 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오늘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벨로크 대공을 도와준 것이라고!
나는 냉기를 풀풀 풍기는 남자를 보며 꼴깍 침을 삼켰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외양이 매력적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공포일 뿐이었다.
아무렴 그를 둘러싼 소문과 내 눈앞에서 벌어졌던 학살을 떠올리면 당연할 테지만.
‘역시 대공을 돕는 게 아니었는데.’
사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지나쳤다면 대공이 다시 날 찾을 일은 없었을 터다.
‘날 죽이려는 거겠지?’
내 과한 망상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엔 이미 본 것도, 들은 것도 많은 참이었다.
게다가 그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날 찾을 이유도 없었겠지.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 댄다. 본능에 사로잡힌 뇌가 입을 움직였다. 지금이 빌어야 할 때라고.
“살…….”
“네 말이 맞더군.”
“……네?”
내 말이 맞아? 뭐가?
의외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대공이 제 오른팔이 건재함을 과시하듯 살짝 들썩였다.
“팔.”
“…….”
“덕분에 붙어 있다.”
그, 그렇군요.
“마법사에게 있어 팔은 목숨과도 같지. 팔이 날아갔다면 마법을 못 썼을 테고, 적의 습격을 받아 죽었을 테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쪽은 안 죽을걸요……?
나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봤던 대공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대공은 내가 열여덟 살 때까지 외팔이로 잘만 살아 있었다.
그러니 팔이 날아갔다면 죽었을 거란 건 꽤 비약적인 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대공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짧은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네 덕에 목숨을 구했으니 보상을 해야겠지.”
으, 응?
생각지 못한 서두에 당황한 나는 그대로 굳었다.
보상을 해 주겠다고? 무슨 보상?
잇따라 들려온 말은 더욱 상상 이상이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도록. 뭐든 들어주지.”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머, 머든지요?”(뭐, 뭐든지요?)
정말 대공은 내가 그의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니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거겠지?
헉! 잠깐, 나 방금 대공한테 질문한 거야?
너무 의외라서 나도 모르게 질문해 버렸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입을 놀려?
이 몹쓸 입! 이놈의 주둥이……!
자책하며 내 입을 때리던 때였다.
순간, 벨로크 대공의 얼굴 위로 무료함이 떠오르는 걸 본 나는 후다닥 손을 내렸다.
지금 벨로크 대공의 표정은 아까 그가 막 유진을 죽였을 때의 표정과 흡사했다.
‘여기서 더 머뭇거리면 나도 죽일지 몰라.’
지금이야 내 도움 덕에 목숨을 구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상대는 벨로크 대공이었다.
‘미친 살인귀’라는 별명을 가진.
침착하자. 생각해 보면 이건 내게 좋은 기회야.
지금의 난 날 지킬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유약한 평민 고아일 뿐이었다.
막연히 거리를 떠돌 뻔했는데 대공이 보상을 말하라니 얼마나 좋아?
대공에게 노여움을 사지 않을 만한 선에서 알차게 빼먹자!
결심한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
“하녀! 하녀로 일하게 해 주세요!”
우와, 아! 말했다! 비록 주눅 들어 말을 더듬긴 했지만.
나는 급하게 빈 소원치고는 제대로 된 걸 말한 것 같아 뿌듯해졌다.
여기서 어른이 될 때까지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달라고 해 봤자 내겐 그걸 지킬 힘이 없다.
어쩌면 대공이 돈은 많지만, 금전에 쪼잔한 성격이라 내 요구를 불쾌해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집을 달라고 하기도 그랬다.
지금 내 외양이 어리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관리할 건데?’
어린애 혼자 집에 산다는 게 소문나면 분명 안 좋은 일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하녀는 다르다.
하녀는 기본적으로 고용된 곳에서 숙식까지 보장해 주니까.
예외는 늘 있지만, 벨로크 대공가는 그 예외에 해당하지 않을 터였다.
비록 벨로크 대공이 반역을 일으키긴 하지만 그건 내가 성인이 된 이후였다.
‘그 전까지만 일하다 추천장을 받아 다른 곳으로 가면 돼.’
회귀하기 전까지 말롱 자작 부인의 하녀로 지냈던 터라 나는 하녀 일에 제법 자신이 있었다.
벨로크 대공 가문 정도면 봉급을 많이 주겠지? 이력도 될 거고.
대공이 미친 살인귀인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최대한 눈에 안 띄면 되지 않을까?
곱씹을수록 완벽했다. 숙식을 해결하고, 돈도 지키고, 성인이 된 이후를 위한 미래 설계까지!
이러니 되게 똑똑해진 기분인걸?
나는 홀로 우쭐거렸다.
“……하녀?”
벨로크 대공이 얼굴을 찡그리며 되묻기 전까지는.
‘내 주제에 안 맞는 소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엄밀히 따지면 사실이었다. 귀족 가문의 하녀는 보통 평민이었지만, 확실하게 신분이 보증된 사람만을 뽑았으므로.
그 영지에서 몇 대가 살아왔다든가, 부모가 어느 정도 신용이 있다든가.
이건 가문의 위상이 높을수록 더 심했다.
한낱 고아인 나로서는 평생을 일해도 대공가에 발조차 들일 수 없을 터였다.
그래도 명색이 목숨값인데 하녀로 고용해 달라는 건 귀여운 요구……는 아닌가?
자신감이 떨어진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원래는 대공가의 하녀로 일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변경할 필요성이 있었다.
“꼭 대공가에서 일하게 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휘하 가문에서 일하게, 아니!”
“…….”
“아무 일이나 시키셔도 조아요! 저, 잘할 자신 이써요!”(아무 일이나 시키셔도 좋아요! 저, 잘할 자신 있어요!)
……라고 애절하게 외쳤지만, 내 바람은 사실상 하나였다.
‘그냥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해 줘!’
대공은 험악하게 구긴 인상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처음에는 하녀로 일하게 해 달라더니, 이제는 아무 일이나 괜찮다?”
뭐야, 나한테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거야?
아까는 뭐든지 들어준다면서!
이 거짓말쟁이!
“내 목숨값이 고작 그 정도인가?”
헛, 그쪽이었어?
실수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대공은 이미 이채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삶은 이렇게 끝인 거야? 말도 안 돼.
억울한 마음과 달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입술 한번 벙긋 못 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
“가족이 갖고 싶다고 했던가?”
실로 종잡을 새 없이 튀어 버린 화제였으나 선뜻 부정할 수 없었다.
대공의 위압에 짓눌린 것도 있었지만, 그가 한 말은 내가 오래도록 염원해 온 것이었으니까.
딱 하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대공이 어떻게 아는 거지?’
나는 그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애초에 저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도 몇 번 없었는데?
회귀하기 전에는 일찍이 말롱 자작 부인에게 끌려갔고, 이번에는 이 꼴이 되었으니까.
‘그냥 찔러 본 질문이었나?’
만약 내게 가족이 있다면 다 죽여 버릴 심산으로?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 눈앞에 있는 남자라면 그럴 법했다. 아니, 그러고도 남겠지.
눈물이 핑 돌았다.
또 한 번의 삶을 얻은 이후로 얼마나 살아남으려고 애썼는데 이렇게 또 허무하게 죽을 운명이라니…….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확정된 죽음에 허무함마저 들었다.
“왜 대답이 없지?”
“저, 저 가족 가튼 거 업서요. 고아여서요. 진짜예요.”(저, 저 가족 같은 거 없어요. 고아여서요. 진짜예요.)
“알고 있다. 그래서 가족을 갖고 싶었던 거 아닌가?”
“마자요…….”(맞아요…….)
“내가 네 아빠가 되면 되겠군.”
“네…….”
예정된 죽음에 체념한 채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던 때였다.
나는 놀라 번쩍 얼굴을 들었다.
방금,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