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19)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19화(19/125)
#19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나는 멈칫했다. 내 생각처럼 들려온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룩스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룩스가 있는 곳을 보니 슈가가 앙증맞은 손으로 룩스의 턱을 잡아 올리고 있었다.
‘쟤네 뭐 해?’
내 의문은 금세 해결되었다.
―앞으로는 최대한 널 챙기지.
―으아앙! 아빠, 찍!
“나, 나 그러케 운 적 업거든?” (나, 나 그렇게 운 적 없거든?)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기어이 못 참고 터트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모함이야! 오히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겁했는데!
―악! 애니가 작고 가냘픈 생쥐 괴롭힌다, 찍!
당당히 날조하는 게 얄미워 손끝으로 살짝 밀자 룩스가 찍찍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엄살 부리기는.
―괜찮아?
―흑흑, 역시 날 걱정해 주는 건 누님밖에 없어, 찍!
둘이 노는 행태가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리는데 문득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얘네는 어떻게 대공이 한 말을 따라 하는 거지?
‘슈가, 룩스.’
―응?
―찍?
‘너희, 혹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이 쓰는 언어 말이야.’
―네 말은 알아들을 수 있어!
‘다른 사람이 쓰는 말들은?’
―몰라!
‘그럼 너 방금은 어떻게 듣고 따라 한 거야?’
―방금?
‘대공이 한 말. 앞으로 날 챙기겠다고 했잖아?’
―어? 그러게? 나 어떻게 알아들었지? 원래는 안 들려야 하는데?
―누님이 똑똑해서 그런가 봐, 찍!
―와! 나 천재야?
―……는 거짓말이야! 나도 대공이랑 애니 말 알아들었는걸! 갑자기 들린 거지만, 찍!
―이, 이 나쁜 놈! 날 놀려?
―으악! 왜 이래, 누님, 찍!
슈가가 룩스를 향해 달려들었고, 룩스가 살려 달라며 찍찍 울었다.
장난 같아 보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룩스와 슈가 사이에 손을 넣어 둘을 진정시켰다.
‘슈가야, 우리 봐주자. 착한 슈가가 한 번만 참자.’
―흥! 정말! 내가 착해서 봐주는 줄 알아!
―히잉, 너무해, 찍…….
‘이거 먹고 마음 풀어.’
가까이 있던 간식 바구니에서 씨앗을 집어 룩스와 슈가에게 건네자 둘이 냠냠 잘도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까 전에 한 대화를 떠올렸다.
‘갑자기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지?’
이것도 혹시 내게 생긴 능력 때문인 걸까?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통해 동물들이 다른 사람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다거나……?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갑작스레 되니 의아해졌다.
좀 더 고민해 보고 싶었지만, 하녀 언니들이 욕조에 물을 다 받았다며 날 불러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룩스와 슈가에게 손을 뻗었다.
‘자, 너희도 씻으러 가자.’
―씻기 싫어, 찍!
‘발이랑 몸에 흙 묻었잖아.’
―걱정하지 마! 우리는 스스로 털을 정리할 수 있어! 이렇게, 이렇게 핥으면 깔끔하지!
슈가가 제 팔을 들더니 열심히 혀로 털을 골랐다.
‘나는 괜찮은데, 하녀 언니들은 너희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간식을 안 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
―씨, 씻어야지! 룩스는 목욕 좋아해. 누님도 좋아하지, 찍?
―으응. 그럼! 목욕이 얼마나 좋은 건데!
진즉 이럴 것이지.
나는 남몰래 웃으며 어서 씻겨 달라고 하는 둘을 안은 채 욕실로 향했다.
* * *
다음 날, 나는 아침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바로 벨로크 대공이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는 소식을!
“가족은 함께 식사하는 거라며 아가씨를 모셔 오라고 하셨대요!”
그 말을 하며 하녀 언니는 내게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어제 대공에게 아빠 운운하는 걸 본 사람인 만큼 내가 기뻐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정작 당사자인 내겐 충격적인 소식일 뿐인데 말이다.
‘최대한 챙겨 주겠다더니, 진심이었어?’
어제 무심코 한 말이 이런 파문을 불러올 줄 알았다면 절대 안 그랬을 텐데!
그래도 괜찮아. 룩스와 슈가도 데려가면 될…….
―난 여기 있을 거야, 찍.
―나, 나도!
뭐야? 내가 언제 쟤네 둘에게 대공과 밥을 먹어야 한다고 알려 줬나? 아닌데……?
아!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나랑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지.
―난 그 남자 인간 무서워, 찍!
―맞아!
그러며 둘은 간식이 든 바구니 위로 엎어졌다.
이토록 강경하니 우기기도 어려울 것 같아 나는 혼자 가기로 했다.
대공이 보낸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기다린다는 다이닝 룸으로 가는데 왜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영영 도착하지 않았으면.’
내 바람과 별개로 목적지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만큼 나는 금방 대공과 마주했다.
“왔군. 앉아라.”
대공이 제 맞은편을 눈짓했다.
의자에 앉기 위해 무심코 다가가 의자를 잡았던 나는 멈칫했다.
‘높잖아?’
성인에게 맞춰 제작된 고풍스러운 의자는 지금의 내겐 너무나 크고 높았다.
게다가 내가 앉을 걸 대비해 의자에 두툼한 쿠션이 방석처럼 놓여 있었다.
내 앉은키와 식탁 높이를 고려한 나름의 배려인 듯했지만…….
‘의자에 올라갈 수 있어야 저기에도 앉을 텐데.’
방석 때문에 더욱더 높아 보이는 의자를 보고 있자니 막막하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그동안 식사는 혼자 방 안에서 해결했기에 이곳까지 올 일이 없어 몰랐는데 이런 문제가 있을 줄이야.
“왜 그러지?”
“아, 아니에요.”
나는 황급히 의자를 붙잡았다.
‘대공이 더 신경 쓰기 전에 올라가야 해.’
결심한 나는 의자에 올라가기 위해 낑낑거리며 다리를 올렸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는 참혹했다.
“아……!”
쿠당탕!
“헉!”
떨어지듯 뒤로 넘어지며 부딪친 부분이 아프다. 하지만 통증은 신경 쓸 거리가 아니었다.
내 근처에 있던 사용인들의 반응이 더 신경 쓰였다. 경악한 채로 날 보고 있었으니까.
‘흐엉, 창피해.’
걱정 섞인 시선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의자에 올라가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하고 떨어지다니!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괜찮나?”
익숙한 음성.
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벨로크 대공이 내 앞에 있었다.
‘언제 온 거지? 분명 저기에 앉아 있지 않았나?’
뻣뻣하게 굳어 있는 동안 대공이 손을 뻗어 내가 감싸고 있던 머리를 가볍게 훑었다.
‘어?’
안 아프잖아?
방금까지 느껴지던 통증이 싹 사라졌다.
‘대공이 해 준 건가?’
맞겠지?
그렇지 않고야 대공의 손이 닿자마자 아픈 게 없어질 리 없으니까.
“지금도 아픈가?”
도리도리.
내가 고개를 젓자 대공이 날 들어 의자에 앉히고는 읊조렸다.
“손이 많이 가는군.”
혼잣말인 듯했지만, 가까이 있던 나는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이럴까 봐 혼자 올라가려고 했던 건데.’
나는 대공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아직까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지만,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피하고 싶었던 만큼 나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대공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얼마 안 있어 요리가 나왔다.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운 음식이었으나 대공과 단둘이 마주한 채 식사하는 자리인 만큼 선뜻 손이 안 갔다.
그건 하인이 내가 먹기 좋게 고기를 잘라 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안 먹나?”
“머, 머거요!”(머, 먹어요!)
나는 급히 포크를 잡았다. 그리고 대공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입에 들어온 고기는 사르르 녹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하고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감탄할 새는 없었다.
오히려…….
‘체할 것 같아.’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게 이렇게 압박으로 다가올 줄이야.
게다가 하필 긴 세로형 탁자에서 우리가 앉은 자리는 마주 앉는 거리가 짧은 쪽이었다.
그 바람에 대공의 모습이 더욱 잘 보여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누구야!
누가 대공한테 가족은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말해서 날 이렇게 고통받게 만드는 거야!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건가?”
“아니요. 마시써요.”(아니요. 맛있어요.)
“거짓말할 필요 없다.”
순간, 대공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금방 사달이 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무서운 눈빛.
“계속 잘 못 먹는 걸 보니 마음에 안 드는 것 같군. 당장 요…….”
대공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언제 깨작거렸냐는 듯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욱여넣고 외쳤다.
“아, 맛이따! 너무너무 마이따!” (아, 맛있다! 너무너무 맛있다!)
한 번으로는 약한 것 같아 나는 양손으로 뺨을 감싼 채 연달아 외쳤다.
그제야 대공이 손을 내리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어떻게든 넘겼단 생각에 안도하던 때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생쥐와 친구로 지내 왔지?”
“……?”
고기를 씹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가 데리고 다니는 생쥐 말이다.”
아, 룩스를 말하는 거구나.
“얼마 안 돼써요. 열흘 정도…….”(얼마 안 됐어요. 열흘 정도…….)
“그럼 그때 생쥐와 친구라는 것도 전부 연기에 포함된 거였나 보군.”
그때? 연기?
고개를 갸웃거리자 대공은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대공의 외형이 변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붉은 기가 짙은 금발이었다.
뒤이어 달라진 이목구비와 갈색 피부가 보인다.
늘 냉기를 풀풀 풍기던 대공이었는데 지금은 야생적인 느낌이 강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지만, 나는 저 남자가 대공이란 걸 알았다.
눈앞에서 변했을뿐더러 변한 외형과 달리 그의 눈동자 색은 여전히 붉은색이었으니까.
‘왜 모습을 바꾼 거지?’
어째서인지 변한 모습이 낯익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기억 못 하는 모양이군.”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대공이 다시 한번 손을 움직이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