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21)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21화(21/125)
#21
빨라도 너무나 빠른 내 적응성에 자괴감을 느끼며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 안의 풍경을 본 나는 굳어 버렸다.
반면에 하녀 언니들은 놀란 내 얼굴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이게 다 뭐야?”
“아,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위해 보내 주신 선물이에요.”
안에는 누가 봐도 내가 입을 옷들과 어린이용 신발, 모자, 장난감 등으로 가득했다.
‘대공이 보내 준 거라고?’
방금 만났을 때까지도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뜻밖의 선물에 놀란 나와 달리 하녀 언니들은 신나 보였다.
“그리고 생쥐님과 다람쥐님의 것도 있답니다.”
연이어 그녀들은 중앙에 얇고 동그란 니켈 판이 달린 붉은색과 푸른색 끈을 각기 들어 보였다.
목줄인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슈가가 외쳤다.
―다람쥐가 아니라 하늘다람쥐!
며칠 전에 갑자기 대공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후부터 룩스와 슈가는 계속 사람 말을 알아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에 한해서인 듯했지만.
다른 동물들도 가능할지 궁금해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저택 안에서 다른 동물을 찾기란 어려웠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 마구간을 생각해 냈지만 갈 수 없었다.
집사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하녀 언니들에게 마구간 위치를 물어볼 때 날 찾아와 대화를 들을 것까진 괜찮았다.
집사 할아버지가 한 말이 문제였을 뿐.
‘아직 아가씨께서는 어리시니 커다란 말을 타는 건 힘드실 겁니다. 그러니 전하께 아가씨가 탈 만한 조랑말을 요청하겠습니다.’
실로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다.
아무리 대공이 편해졌다 한들 어디까지나 처음에 한해서일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대공의 악명과 악행에 두려움과 경각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니 집사 할아버지 딴에는 날 생각해 준 거란 걸 알아도 기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마구간에 관한 관심을 접어야 했다.
대신 그만큼 룩스와 슈가를 관찰하며 최대한 내 능력을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알아낸 거라고는 딱 그뿐이었다.
룩스와 슈가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
―누님이 참아. 인간들은 바보라서 그런 거 잘 몰라, 찍.
―정말이지 이런 것도 분간 못 해서 어떻게 사나 몰라? 네 말대로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야지.
“이 판에 그려진 문양 보이세요?”
그러든 말든 하녀 언니는 내게 니켈 판에 양각된 문양을 보여 줬다.
이전에 대공가의 기사가 내 경계심을 풀어 주겠다며 보여 줬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대공가의 상징인 그믐달과 델피니움이에요. 선대 황제 폐하께서 내려 주신 문양이라고 해요.”
아, 저게 그믐달이랑 델피니움이라는 꽃이었구나.
새로운 깨달음에 내가 신기하게 판을 바라보는 동안 하녀 언니들이 내게 리본을 쥐여 주었다.
룩스와 슈가에게 묶어 주라면서.
겨우 동그란 니켈 판이 달린 리본을 묶어 줬을 뿐인데도 둘은 훨씬 더 귀여워 보였다.
―불편해, 찍.
―나도.
귀여움과 편함은 별개 같지만.
‘잘 땐 풀어 줄게.’
내가 둘에게 말을 전하는 동안 하녀 언니들이 날 보며 눈을 번뜩였다.
“아가씨도 한번 입어 보세요.”
“맞아요. 마음에 드는 거로 고르시면 저희가 입혀 드릴게요!”
“꼭 입어야 해?”
“그럼요!”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온 대답에 나는 퍽 당황했다.
내 앞에 있는 것들은 정말 귀족들이나 입을 법한, 레이스와 리본이 잔뜩 달린 드레스였으니까.
말롱 부인의 시중을 들며 한 번쯤은 저런 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회가 찾아오니 입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내게 안 어울리는 것을 탐하는 느낌.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나중에 입을래…….”
“죄송하지만, 그건 안 돼요. 주인님께서 꼭 입히라고 명하셨어요.”
엑! 어째서?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하녀 언니들이 설명해 줬다.
“이따 아가씨를 황궁에 데려갈 거라고 하셨거든요.”
황궁에? 나를? 왜?
머릿속에 물음표가 수십 개 떠올랐다. 짚이는 이유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단 하나도.
“그래서 어떤 옷이 좋으세요?”
하녀 언니들이 불쑥 드레스들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가장 가까이 있던 드레스를 가리켰다.
* * *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하녀 언니들은 손놀림이 능숙하고 빨랐다.
말롱 자작 부인에게 이것도 제대로 못하느냐며 항상 혼났던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마치 ‘하녀’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모범적인 표본 같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니 대공가에서 일할 수 있는 거겠지?
“역시 아가씨는 뭘 입으셔도 귀엽네요.”
“자, 햇볕에 피부 상하지 않게 보닛도 씌워 드릴게요.”
순식간에 내 머리에 커다란 왕리본이 양옆에 포인트처럼 달린 모자가 씌워졌다.
이윽고 하녀 언니들이 전신 거울을 보여 줬다.
안 어울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귀여웠다.
대공저에서 살면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걸까?
거울을 보는데 하녀 언니가 내게 무언가를 안겨 주었다.
꽤 커다란 토끼 인형이었다.
“인형도 드릴게요. 가시는 길에 심심하거든 갖고 노세요. 조물조물하는 법 아시죠?”
얼떨결에 인형을 안게 된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걸 들고 가라고?’
난 애가 아닌데? 아니구나. 지금은 아홉 살이지.
으, 그래도 이건 좀…….
“준비가 끝났으니 이만 내려갈까요? 마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웬 마차? 마법으로 슝 이동하는 거 아니었어?
“왜 마차를 타?”
궁금증을 못 참고 물어보자 첼시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어떤 걸 타시려고요?”
“마법으로 가는 거 아니야?”
“황궁에서는 황제 폐하께 허락받은 사람 말고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마차를 타고 가셔야 해요.”
듣고 나니 예전에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내가 죽기 전에 대공은 황궁에서도 마법을 썼던 것 같은데……. 옆에 불새도 날아다녔고.
“아빠도 허락을 못 바든 거야?”(아빠도 허락을 못 받은 거야?)
“그렇답니다.”
“어째서?”
“그게……. 거기까진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거짓말.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여기서 그만두기로 했다.
가르쳐 주지 않는 걸 보면 말하기 곤란한 걸 테니까.
“어서 마차 타러 가요.”
“룩스랑 슈가도…….”
“그게, 황궁에 미리 허가받지 않은 외부 동물은 데리고 갈 수 없어서요. 아가씨만 가셔야 해요.”
그런 조항이 있단 말이야?
황궁에 가 본 적이 있긴 해도, 워낙 갑작스레 말롱 자작 부인을 따라간 데다 그녀는 동물을 키우지 않아 몰랐다.
“생쥐님과 다람쥐님은 제가 잘 돌볼 테니 다녀오세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룩스와 슈가가 있을 간식 바구니에 손을 뻗다 말고 도로 거뒀다.
―그럼 그 황궁이란 곳에 너 혼자 가는 거야?
‘응. 다녀올 테니까 잘 놀고 있어.’
―알았어. 잘 다녀와!
슈가의 인사에 나는 살짝 손을 흔들어 준 다음 방을 나섰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뭔가 빠진 기분이 드는데…….
“왜 그러세요, 아가씨?”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내저은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빠뜨릴 게 뭐가 있다고. 내 착각이겠지.
아래로 내려오자 내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아주 커다랗고 화려한 마차가 보였다.
그리고 날 기다린 듯 그 앞에 서 있는 대공의 모습도.
“가 보세요, 아가씨.”
대공을 발견하자마자 하녀 언니가 나를 살짝 떠밀었다.
설마 날 밀어 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만큼 나는 쉽게 떠밀렸다.
얼떨결에 대공에게 달려간 모양새가 되었지만, 내 나름대로 열심히 발에 힘을 줘서 다행히 대공에게 안기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놈의 반사 신경이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대공의 바짓자락을 붙잡아 버린 것이 문제였다!
“뭐지?”
아하하, 그러게요.
제가 왜 그쪽을 잡았을까요. 넘어지더라도 잡지 말아야 했는데.
서늘한 낯의 대공을 보고 있자니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는 듯했다.
조금 전 그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게 우스울 정도였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날 구제해 준 것은 대공의 옆에 서 있던 집사 할아버지였다.
“마차에 타게 올려 달라는 것 같습니다. 아가씨에게 마차 턱은 높으니까요.”
“확실히 그렇군.”
마차 문 밑에 달린 발디딤과 날 번갈아 본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날 번쩍 들어 올려 마차에 태웠다.
앞선 대화로 이럴 거라 짐작은 했지만, 갑자기 높아진 시야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곧이어 마차에 올라탄 대공이 내 맞은편에 다리를 꼬며 앉았다.
“출발하지.”
“다녀오십시오, 전하.”
마차의 문이 닫히고 마차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이런 분위기가 하루 이틀인 것도 아니고 딱히 새삼스럽진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편한 것도 아니었지만.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간간이 대공의 눈치를 살피던 때였다.
창밖을 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할 말이 있는 건가?”
고개를 저으려던 나는 그대로 멈췄다.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게 있긴 했다.
“정말 황궁에 가요?”
“그건 누구에게서 들었지?”
대공의 반문에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