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22)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22화(22/125)
#22
혹시 내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였던 건가?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디 가는 거냐고만 물어봤어야 했는데.
“자, 잘 모르게써요.”(자, 잘 모르겠어요.)
“…….”
나는 하녀 언니들이 준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지금 내가 기댈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원래는 가는 동안 심심하면 조물조물하라고 쥐여 준 인형이었는데…….
대공은 이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물을 것도 없겠군. 네게 그런 걸 알려 줄 이들은 하녀들뿐일 테니.”
이어진 말에 내 가슴이 벌렁거렸다.
어떡하지? 아니라고 부정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는데 대공이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황궁에 가는 게 맞다. 널 내 딸로 입적하겠다고 했더니 황제가 데려오라고 하더군. 보고 싶다고.”
순순히 돌아오는 대답에 의외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뒤이어진 말에 나는 퍽 놀랐다.
‘황제가 그랬다고? 왜 나를……. 아, 벨로크 대공과 황제는 이복형제랬지.’
곧 떠오른 사실에 나는 내 나름대로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황위 교체는 내가 갓난아기일 적에 일어난 일인 데다 타인의 일에는 큰 관심이 없어 굳이 알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말롱 자작 부인의 시중을 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알게 되는 정보쯤은 있었다.
벨로크 대공이 선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난 아들이고, 지금 황제는 전 황후가 사망한 뒤에 들인 두 번째 황후, 즉 지금의 황태후 사이에서 난 아들이란 걸.
사람들이 벨로크 대공에 관해 얘기할 때마다 그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황위 계승에서 이복동생에게 밀린 뒤 더 미친 것 같다고.
‘그래서 반역을 일으킨 거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대공이 반역을 일으킨 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을 모르는군.”
순간 나는 대공에게 감탄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보통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상대방의 이름부터 물어볼 텐데.’
이렇게 말해도 대공가의 그 누구도 내게 이름을 묻지 않아 대공이 최초이긴 하지만.
“이름이 뭐지?”
“애니예요.”
“애니?”
고개를 끄덕이자 대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잘것없는? 그딴 게 네 이름이라고?”
그, 그딴 거라니!
비록 뜻은 좀 그렇지만 계속 그렇게 불려 온 제 이름입니다만.
“누가 이름을 지어 줬지?”
“원장 엄마가요.”
아까와 달리 이번에 나는 냉큼 대답했다.
하녀 언니들과 달리 원장을 보호해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차피 죽은 사람이라 별로 신경 쓸 것도 없고.
“……너무 편하게 보냈군.”
응?
작은 읊조림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대공이 뭐라고 한 것 같은데?
하지만 대공은 눈살을 찌푸린 채 창밖을 바라봤다.
나한테 한 말이 아니었나?
의아한 얼굴로 대공을 응시하는데 그가 다시 날 바라봤다.
“베로니카.”
“……?”
“베로니카 나비드 벨로크.”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공이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벨로크가 대공가의 가문명인 건 알겠는데……. 그 앞에 붙은 베로니카랑 나비드는 뭐지?
그 의문은 금방 해결됐다.
이다음 대공이 툭 내뱉듯 덧붙인 말로 인해서.
“네 새로운 이름은 그게 좋겠군.”
“제 이름이요?”
“그럼 내 딸을 그따위 이름으로 부르게 둘 줄 알았나?”
아……. 그렇구나.
하긴, 난 좋든 싫든 대공가에 입양된 상태였다.
내 이름 뒤에도 대공가의 성이 붙게 될 텐데 그 앞에 있는 이름이 ‘보잘것없는’이라면 가문의 격이 떨어지겠지.
“아니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도리도리.
나는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내 이름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던 대공이니 이상한 이름으로 짓진 않았겠지.
“베로니카는 승리를 가져다주는 자라는 뜻이다. 나비드는, 좋은 소식이란 뜻이고.”
생각보다 거창한 뜻을 가진 이름에 나는 움찔했다.
내 주제에 이런 이름을 받아도 되는 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어서 대공이 한 말 때문이었다.
“애칭은 ‘베리’가 적당하겠군. 마침 네 눈동자도 블루베리색이고.”
설마 내 눈이 블루베리색이라서 ‘베리’라고 하는 거야?
멋졌던 이름이 순식간에 앙증맞다 못해 하찮게 변해 버렸잖아!
“표정이 왜 그렇지? 마음에 안 드나?”
“아, 아니요. 마음에 들어요.”
나는 황급히 헤헷 웃었다.
충격적인 애칭에 잠시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표정 관리도 못 하다니.
다행히 대공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짧은 안도 끝에 나는 대공이 지어 준 내 새로운 이름을 입 안으로 굴렸다.
‘베로니카 나비드 벨로크.’
비록 애칭으로 부르면 하찮아지지만…….
‘그래도 처음이야.’
누군가 진지하게 내게 이름을 지어 준 것.
그것도 그런 멋진 뜻을 담아서.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지금만큼은 대공이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었다.
그저 그가 지어 준 내 이름이 너무 좋았다.
‘승리, 좋은 소식. 베로니카 나비드 벨로크.’
몇 번이고 속으로 읊조릴 만큼.
나는 내 품에 있는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4. 황궁, 그리고 기묘한
“어서 오십시오, 대공 전하.”
마차에서 내리자 젊은 시종이 우리를 반겼다.
‘정말 황궁이네.’
나는 묘한 기분으로 황궁을 바라봤다.
말롱 자작 부인을 따라왔던 때 봤던 그대로였다.
순간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겪은 일들이 떠오른다.
살짝 무서워진 나는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시종과 대공을 뒤따라갔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금방 사라졌다.
‘다리 아파…….’
욱신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였으나 점점 속도가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눈에 띌 정도로 뒤처지자 대공이 돌아봤다.
“왜 그러지?”
“힘드러요…….”(힘들어요…….)
의식해 발음을 똑바로 하려 해도 혀가 풀려 발음이 뭉개진다.
근래 발음이 또렷해졌다고 좋아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정말 불가항력이었다. 지금 안고 있는 토끼 인형조차 짐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더 못 걷겠다는 건가?”
“거, 걸을 수 이써요.”(거, 걸을 수 있어요.)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사실 정말 한계였지만, 대공의 눈빛을 보니 도저히 못 걷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억지로 발을 내디딘 때였다. 순간, 구두 밑에 무언가가 밟히더니 그대로 미끄러졌다.
‘아, 토끼 인형.’
바닥에 끌리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휘청이며 몸이 고꾸라진다.
하지만 바닥에 엎어졌단 느낌은 물론, 통증조차 없었다.
‘왜 안 아프지?’
이상해 살며시 눈을 뜨자 대공이 내 팔을 붙들고 있는 게 보였다.
연이어 쯧, 작게 혀를 찬 그가 날 들어 올려 자기 팔에 앉혔다.
어라……?
“누굴 닮았는지 고집하고는.”
혼잣말하듯 작게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울컥했다.
내가 고집부리고 싶어서 부린 게 아닌데!
“그리고 다음에는 그런 걸 들고 오지 말도록.”
대공이 내가 들고 있는 토끼 인형을 힐끔 쳐다봤다.
방금 이거 때문에 넘어질 뻔해서 그런가?
“허가받지 않은 것은 원래 황궁에 데려오면 안 되니까.”
인형도 허락받아야 하는 거였어?
나는 꽤 놀랐다. 동물은 그렇다 쳐도 인형까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줄 몰랐으니까.
‘다음에 황궁에 오게 된다면 인형은 안 들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제재당하니 살짝 분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런 악독한 황실 법 같으니!
인형조차 못 들고 오게 하고!
이런 인형 정도는 봐줄 수 있잖아! 인형을 들고 오는 게 무슨 죄라고!
나는 대공의 품에 안긴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공은 능숙하고 안정적으로 날 안아 들고 움직였다.
내 엉덩이와 허벅지를 받쳐 들고 다른 팔로는 내가 넘어가지 않도록 내 등을 받쳐 준다.
보통 처음 누군가를 들어 안게 되면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안기 마련일 것이다.
그런데 대공의 품은 아늑하고 편안했다.
그래서 이상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처음 날 들었을 때도 어색하거나 불편한 감 없이 잘 들어 줬지.
‘타고난 걸까?’
대공이 누구를 이렇게 안아 볼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인형을 꼼지락거리는데 문득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느낌이 이상해 두리번거리던 끝에 나는 금갈색 머리를 가진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리 언니……?’
언니가 어떻게 황궁에? 내가 꿈꾸는 건가?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납득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믿기지 않아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고 다시 눈을 떴다.
‘사라졌어.’
분명 마리 언니였는데…….
‘내가 잘못 본 걸까? 그냥 언니와 닮은 사람을 보고 나 혼자 착각한 건가?’
확실히,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쪽이 더 신빙성 있었다.
마리 언니가 황궁에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런데 왜 착각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나는 애써 생각을 떨쳐 냈다. 내가 잘못 본 게 틀림없다고 되뇌며.
* * *
대공은 지친 기색 없이 날 안고 걸었다.
긴 복도를 걸은 끝에 시종이 어느 문 앞에서 예를 올릴 때까지.
“제게 허락된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걸어가야겠지?
대공에게 안겨 있던 동안 나는 제법 체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만 내려갈 준비를 했는데…….
‘왜 안 내려 주지?’
나는 계속 걸음을 옮기는 대공을 바라봤으나 그는 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 바람에 내 당혹감은 더 커졌다.
‘설마 이러고 황제를 만나려고?’
내 신분이 신분이었던 만큼, 내가 살면서 황제를 본 거라고는 건국제 때뿐이었다.
그것도 ‘황제 폐하는 은발을 가지셨구나.’라고 간신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먼 곳에서.
아무렴 평민 고아에, 자작가의 하녀 따위가 황제를 볼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무려 제국의 통치자인데!
그런 황제를, 이렇게 대공에게 안긴 채로 만난다고……?
내가 아무리 배운 게 없다 해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다.
대공이 날 내려 줄 생각이 없다면 내가 내려가야지.
때로는 소신이 필요한 법이었다!
“저, 걸을 수 있어요.”
“또 비실거려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있도록.”
넵.
소신? 그게 뭐죠? 먹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