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25)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25화(25/125)
#25
“입 벌려야지?”
싫어!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뜻대로 되질 않았다.
내 턱을 움켜쥔 말롱 부인은 내 양 뺨을 짓누르며 강제로 입을 벌리려 들었다.
“자, 착하지? 딱 한 방울만 삼키면 된단다. 한 방울만…….”
기울어진 병 끝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맺힌다.
안 돼! 싫어!
공포감이 덮쳐 왔지만, 꼼짝도 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으려던 때였다.
바로 코앞으로 붉은빛의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악!”
짧은 비명에 이어 내 몸을 잔뜩 압박하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뭐야……? 방금 지나간 거 뭐였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깜빡이는데 뒤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 궁에서 웬 시녀가 귀족 여자애를 독살하려고 하다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곳에는 화사한 은색 머리카락을 뽐내는 어린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재밌네.”
선명한 붉은 눈이 담긴 눈매를 매끄럽게 휘어 웃으면서.
‘내 궁?’
나는 멍하니 남자아이가 한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의식하고 그랬다기보단 나도 모르게 한 되뇜이었기에 금세 잊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고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던 것도 있으나 그보다는 날 구해 준 ‘것’의 정체가 너무 뜻밖이었다.
나는 남자아이의 옆에서 고고하게 날갯짓하는 새를 바라봤다.
마치 화염으로 둘러싸인 듯한 붉은 새는 굉장히 낯이 익었다.
‘대공의 옆에 있었던 새와 똑같이 생겼어.’
내 머릿속에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째질 듯한, 기분 나쁜 비명을 질렀던 새.
하지만 그때 본 새보다는 크기가 작은 듯했다.
“화, 황태자 전하…….”
잠시 불새를 보는 동안 옆에서 들려온 읊조림에 나는 깜짝 놀랐다.
‘황태자라고?’
그러고 보니 남자아이의 눈 색도 루비처럼 붉은색이었다.
불새의 축복을 받은 직계 황족만 가질 수 있다는.
‘그리고 저 은발.’
아까 본 황제의 머리색과 똑같다. 생김새는 조금 다르지만.
황제와 같은 은발, 붉은 눈과 불새.
마지막으로 당당하게 황궁을 자신의 궁이라고 칭하는 것까지.
‘정말 황태자인가 봐.’
뜻밖의 인물에 다소 얼빠져 있던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룩스를 보고는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룩스! 괜찮아?”
내가 조심스레 룩스를 손으로 감싸 들었다.
그러자 늘어져 있던 룩스가 눈을 깜빡이더니 완전히 떴다.
―베리, 찍…….
“어디 다쳤어? 많이 아파?”
―걱정, 할 정도는 아니야. 갑자기 던져져서 놀랐어. 나의 순발력으로 멋지게 착지했다고, 찍!
전혀 아닌 거 같은데.
나는 내가 줍기 전까지 축 늘어져 있던 룩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딱히 외관상 이상이 있어 보이는 건 없어 지금으로선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프면 말해야 해. 알겠지?”
―알겠, 어어? 저 여자 인간 도망가, 찍!
타다닥, 다급한 발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말롱 부인이 도망치고 있었다.
잡아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미처 고민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잡아.”
여리지만 서늘함이 깃든 목소리와 함께 불새가 붉은 빛을 흘리며 재빠르게 날아갔다.
삽시간에 말롱 부인보다 앞서 날아간 불새는 바닥을 긁었고, 불새가 지나간 자리 뒤로 불길이 확 솟구쳤다.
“뭐, 뭐야!”
말롱 부인의 어깨높이까지 치솟은 불길은 마치 벽처럼 견고하게 앞길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솟아난 불기둥에 말롱 부인이 기겁하며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불새가 더 빨랐다.
마찬가지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그것도 모자라 불새는 한 바퀴 원을 그림으로써 말롱 부인을 완전히 불길 속에 가둬 버렸다.
“아, 안 돼! 가야 해!”
무어라 읊조린 그녀가 결심한 얼굴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설마 저걸 뚫으려는 거야?’
놀란 내가 헉, 숨을 참을 때였다.
“아악!”
말롱 부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나더니 제 어깨를 감쌌다.
손가락 틈새로 새까맣게 타들어 간 옷과 피부가 보인다.
분명 스친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그녀가 입은 화상은 정말 심각해 보였다.
나는 황급히 룩스를 내 치마에 티 안 나게 달린 작은 주머니 속에 넣었다.
―왜 넣어, 찍?
‘잠깐 거기서 쉬고 있어.’
보기에 별로 좋은 장면은 아니니까.
“아, 흐윽…….”
말롱 부인은 다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꽤 아픈 듯, 한껏 고통을 호소하는 그녀를 보던 나는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말롱 부인의 땋아 올린 머리카락을 묶고 있는 연한 푸른색 끈을.
‘저건, 마리 언니의……?’
끄트머리에 조금 해진 레이스가 달린 것까지.
몇 번을 봐도 확실했다. 마리 언니가 애지중지하던 머리끈이었다.
‘그럼, 아까 본 사람이 정말 마리 언니였던 거야? 착각이 아니라?’
뒤이어 나는 지금 말롱 부인이 입고 있는 옷이 아까 내가 본 마리 언니의 옷과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말롱 부인답지 않게 조금 초라한 옷차림이다 싶더라니.
그런데 마리 언니는 어떻게 황궁에 있는 건데?
왜 말롱 부인이 마리 언니의 머리끈을 하고 옷을 입고 있는 거고?
혼란이 날 덮쳤다.
그러나 그에 깊이 빠져 있을 새는 없었다.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
황태자가 천천히 움직여 말롱 부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더니,
“다른 곳도 아니고, 내 궁에서 이런 짓을 벌이려고 하다니.”
불길 속으로 발을 내딛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안 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던 건지 모르겠다.
나는 순식간에 황태자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 그의 팔을 덥석 붙잡고 매달렸다.
황태자가 날 돌아봤다.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없었으나 시선이 마주친 순간, 황태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뭐야?’라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으니까.
“부, 불이잖아요!”
“그게 왜?”
내가 다급히 설명했지만, 황태자는 되레 날 이해 못 하는 눈치였다.
“왜, 왜냐니? 화상 입잖아!”
어떻게 지금 말롱 부인의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저 어깨에 있는 화상이 안 보이나?
“쓸데없는 걱정이네.”
하지만 남자애는 짧은 한마디로 내 우려를 일축했다.
나는 살짝 분개했다.
저게 걱정해 준 사람한테 할 소리인가?
“화상 같은 거 안 입어.”
황태자가 덧붙였다.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렇게 뜨거운 불길이 솟구치는 데다 눈앞에서 말롱 부인이 다치는 것까지 목격했다.
그런데 화상을 안 입는다고?
나는 황태자의 팔을 더욱 꼭 붙들었다.
“화상 입어! 다친다고!”
“…….”
“다친다니까!”
누차 강조했으나 황태자는 뒤로 물러나는 것 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걸음을 떼었다.
“어, 어? 잠깐……!”
붙들고 매달린 게 무색하게도, 황태자는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나까지 끌고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 돼! 분명 우리 둘 다 화상을 입을 텐데……!
“어?”
왜 불길이 우리 뒤에 있지?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내 앞과 뒤를 번갈아 가며 확인했다.
하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황태자는 내 앞에 있었고, 불길은 내 뒤에 있었다.
‘저 불길을 통과했다고?’
우리가?
혹시 너무 놀라 내가 통증을 못 느낀 새 화상을 입은 게 아닐까?
나는 허겁지겁 다른 손으로 내 뺨을 만져 봤다.
보들보들한 피부가 느껴진다.
눈으로 손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어딜 봐도 화상을 입은 곳은 없었다.
“멀쩡, 하네…….”
―푸후!
내 읊조림에 우리 위에서 날고 있던 불새가 아주 작은 불길을 길게 내뿜었다.
저거, 설마 날 비웃는 거야?
멍하니 불새를 보는데 옆에서 황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좀 놓지?”
“아! 앗, 미안! 미안해요!”
내가 아직도 잡고 있었구나.
다급히 황태자를 잡았던 손을 놓으며 사과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저 내게 시선을 거두더니 여전히 고통스러워 보이는 말롱 자작 부인을 보며 입을 열 뿐이었다.
“피닉스, 태워.”
……뭐?
놀란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자 위에서 날갯짓하고 있던 불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안 돼!”
마리 언니의 행방을 알아야 한단 말이야!
왜 말롱 부인이 마리 언니의 옷을 입고, 머리끈을 가졌는지도!
그러나 황태자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불새가 말롱 부인 쪽으로 부리를 돌리고는 하강하려는 듯이 날개를 접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말롱 부인을 향해 떨어졌다.
분명 말롱 자작 부인에게 날아가는 불새의 속도는 아주 빨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그 과정들이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새가 완전히 자작 부인에게 닿기 직전.
“아, 안 돼! 멈춰!”
비명처럼 나도 모르게 외친 말에 불새가 우뚝 멈췄다.
그러더니 당황한 것처럼 날 바라봤다.
―삐이?
“어?”
당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멈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