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26)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26화(26/125)
#26
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뒤에서 다시 황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태우고 뭐 하는 거지?”
살짝 짜증이 서린 음성이었다. 그에 불새가 다시 날갯짓하며 움직이려 했다.
안 돼!
“멈춰!”
급한 마음에 외치니 아까처럼 불새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로 인해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불새는 내 말을 듣는다는 걸.
“피닉스, 태워.”
“멈춰!”
“피닉스!”
“멈춰! 멈춰!”
황태자와 내가 번갈아 가며 외칠 때마다 불새가 움직였다가 우뚝 멈추길 반복했다.
―삐이, 이!
상반된 명령이 반복되자 불새는 답답한 듯 크게 울며 내 주위를 한 바퀴 휙 돌더니 사라졌다.
하아, 다행이다.
겨우 막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때였다.
황태자가 내 팔을 붙들었다.
“너……. 뭐야?”
붉은 눈이 날 매섭게 노려봤다.
“어째서 피닉스가 내 명령이 아닌 네 말을 듣는 거지?”
“모, 몰라.”
“모른다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두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정말인데. 나도 모르는데.
“그럼 이건 말해 줄 수 있겠지.”
“……?”
“왜 막았어?”
“왜, 왜냐니?”
“황궁에서 난동을 피우면 황족의 권한으로 즉시 처분할 수 있어. 그런데 네가 그걸 막았잖아.”
그, 그랬어?
나는 깜짝 놀랐다. 황실 예법에 대해선 무지했던 터라 그런 줄 몰랐으니까.
그사이 황태자가 내게 더 바짝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워지더니 어딘가 스산한 느낌이 드는 황태자의 얼굴만이 보인다.
회귀 전, 나는 황태자의 성인식이 있던 날에 죽었다.
여자의 성인 기준은 열여덟이고, 남자의 기준은 스물이었으니 황태자는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을 터였다.
그러니 열한 살 주제에 이런 위압감을 풍긴다는 건데…….
‘열한 살 맞아?’
마치 대공과 마주했을 때와 같은 느낌에 절로 목울대가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
“왜 막았어?”
“사, 사람을 어떻게 산 채로 태워 죽이려고 해?”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말롱 부인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말린 건 오로지 마리 언니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사정을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이자 황태자인 저 아이에게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보통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둘러대려고 했는데…….
“단지 그것뿐?”
황태자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물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날 막았다고?”
덧붙여지는 물음에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 미친놈!’
대공과 황제에 이어 황태자까지 제정신이 아니라니.
아무래도 이 황실의 핏줄에는 이상한 게 흐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아, 알아내야 할 게 있어!”
“…….”
“저 사람이 지금 죽으면, 알아내지 못한다고! 그러니 안 돼……요!”
말하다 말고 뒤늦게 황태자한테 반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급히 내 말투를 고쳤다.
감히 황태자에게 반말하다니!
힐끔, 눈치를 살폈으나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그저 내 팔을 잡은 채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요히 날 바라만 볼 뿐.
‘뭐, 뭐야?’
이쯤 되니 슬슬 무서운데.
꼴깍, 침을 삼키는데 황태자가 옆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뭘 알아내면 되는데?”
“어? 아니, 네?”
“저 여자한테 알아내야 할 게 있으니 죽이지 말라며. 그것만 알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 묻는 황태자의 음성에선 묘한 압박감이 묻어났다.
‘더는 방해하지 말라는 거야.’
순간,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만큼 황태자는 건드리면 안 될 상대처럼 여겨졌다.
사실 안 될 건 없었다. 내게 있어 말롱 자작 부인은 정말 끔찍한 사람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처음 보는 황태자에게 내 사정을 알리는 게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란 건 알지만…….
‘적으로 돌리는 것보단 나을 거야.’
비록 나중에 대공이 황태자를 죽이지만,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였다.
“말할게요.”
나는 결정을 마쳤다.
그리고 말롱 부인의 머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머리끈의 원래 주인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요.”
“머리끈의 원래 주인?”
그렇다고, 막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였다.
순식간에 주위가 바뀌더니 방금까지 일렁이던 불길과 황태자가 사라졌다.
대신 처음 보는 방의 풍경이 들어왔다.
‘마법?’
앞서 이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겪어 본 만큼 나는 어렵지 않게 경위를 유추할 수 있었다.
누군가 마법을 써서 날 여기로 이동시켰다는 걸.
‘대체 누가?’
주위를 둘러보던 끝에 나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서 있는 대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살짝 비틀거리는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까 황제에게 반발했을 때처럼.
“……아빠?”
설마, 마법을 써서 날 이동시킨 사람이 대공이야? 어째서?
아니, 그보다 괜찮은 건가?
대공의 안부를 물으려던 때였다.
“너.”
대공이 매서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 위압감에 내가 움찔하는 동안 그가 이어 물었다.
“몰골이 왜 그 모양이지?”
“아.”
짧은 순간, 말롱 부인에게서 도망치느라 고생한 일들이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모자는 물론, 인형까지 버린 데다 여러 번 굴렀으니 내 몰골은 굉장히 꼬질꼬질할 터였다.
그래도 대공이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는데.
“혹시 그놈이 이런 건가?”
그놈?
“날 강제로 재우더니 이딴 짓을 벌이다니.”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 스며 있었다.
“당장 그놈을 죽…….”
대공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심상치 않은 낌새에 나는 다급히 외쳤다.
“아, 아니에요! 황제가 그런 거!”
“……아니라고?”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헛, 나도 모르게 폐하 호칭을 빼먹었잖아?
뒤늦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러나 당장은 이런 것보다 대공의 화를 가라앉히는 게 중요했다.
지금 그의 모습은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봤던 모습과 비슷해 보였으니까.
눈에 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그 모습 말이다.
반역까진 아니어도 사달을 낼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바짝 긴장했다.
“그럼 누가 널 이 꼴로 만들었지?”
“말롱…….”
말롱 부인이 그랬어요, 라고 말하려던 나는 그대로 멈췄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 와 버리면 마리 언니는?
황태자의 인성을 생각건대 지금쯤 말롱 부인은 죽었을 테다. 말리던 내가 사라졌으니까.
말롱 부인이 죽었다면 마리 언니의 행방을 알 방법은…….
‘없어.’
정신이 멍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대공의 옷깃을 붙잡았다.
내 살길 찾는다는 이유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로 마리 언니에 대한 생각을 일부러 외면해 왔다.
그런데 언니의 행방을 알 기회가 왔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말할 필요 없다. 그놈을 족치면 자연스레 알 수 있을 테지.”
예?
갑자기 들려온 대공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제야 상황이 와닿는다. 이렇게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만약 대공이 황제에게 간다면 아까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거야.’
어쩌면 반역이 더 빨리 일어날 수도 있고, 황제가 이런 게 아니란 걸 알게 되면 왜 말을 안 했냐며 모든 분노의 화살이 내게 향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모두 내 죽음으로 이어지겠지.
“너, 너머졌어요!”(너, 넘어졌어요!)
“…….”
“혼자 놀다가, 못 보고 쿵.”
기껏 변명했건만, 대공은 날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방긋 웃기!
설마 웃는 얼굴에 대고 뭐라 할 수 있겠어?
“그래서, 보닛을 잃어버리고 인형도 없고 치마 밑단까지 다 터졌다?”
……하네.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수 없는 관계로 나는 웃음을 유지한 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발뺌이 불가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지 못할 게 뭐가 있다고!
헤헤, 계속 웃어 점점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나던 때였다.
대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멍청하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설마 제 몸조차 제대로 못 가눌 줄이야.”
헉, 이게 역효과였다고?
나는 잔뜩 겁먹었다.
귀엽게 넘어가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날 귀찮아하는 느낌이었으니까.
걸리적거린다며 날 죽이면 어떡하…….
“돌아가면 최대한 빨리 호위 기사와 선생을 붙여야겠군.”
응?
예상과 다른 말에 나는 눈을 깜빡이며 대공을 바라봤다.
‘내게 뭘 붙일 거라고?’
설명을 바라는 얼굴로 대공을 바라봤으나 더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그저 말없이 내게 손을 뻗더니 날 번쩍 안아 들 뿐.
맨 처음, 황궁에 와 황제를 만나러 갈 때처럼.
“혼자 걸을 수 있어요.”
갑자기 높아진 시야와 가까워진 대공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아까처럼 또 뒤처지면 그걸 챙기는 게 더 귀찮다.”
그, 그렇다면 뜻대로 하셔야죠.
나는 얌전히 안겨 있기로 했다. 올 때와 달리 품에 인형이 없으니 절로 허전함이 든다.
그래도 별 탈이 없는 게 어딘가 싶지만.
주머니 속에서 룩스가 연신 꾸물거렸다. “불편해, 찍!”이라고 말하면서.
조금만 참으라며 토닥이는 동안 대공이 움직였고, 이젠 꽤 안정적인 품 안에서 나는 소심하게 그에게 기댔다.
여러모로 지치는 하루였다.
* * *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대체 왜?’
말롱 자작 부인은 화상을 입은 어깨를 부여잡으며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