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31)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31화(31/125)
#31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것.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가슴이 간질거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벨로크 대공이 이런 말을 하다니…….
아이러니하다고 여기면서도 원하는 게 떠올랐다.
‘마리 언니를 찾고 싶어.’
그래서 언니의 안위를 보장해 주고 싶었다.
언니가 아무 걱정도 하지 않도록. 이전처럼 죽지 않도록.
궁금한 것도 많았다.
왜 말롱 부인이 언니의 머리끈을 가지고 있었는지.
원장이 죽은 뒤로 언니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가 황궁에서 본 사람이 정말 언니가 맞는지.
‘하지만…….’
대공에게 말해도 될까? 언니를, 부탁해도 될까?
만약 대공이 내 부탁을 귀찮아한다면?
그가 보인 작은 호의에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린다고 여기면 어떡하지?
벨로크 대공은 나를 은인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믿지 못했다.
“베로니카 나비드 벨로크.”
“네, 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상념에서 깨어났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얼굴을 찡그린 벨로크 대공이 보인다.
“내가 네 나이 때에는 이미 내 소유의 별장이 있었지.”
“별장이요?”
“그래. 바다가 보이는 데다 수도와 가까워 외가 쪽 방계 전부가 탐내던 별장이었다.”
와, 그런 별장을 가졌다고?
대공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 방조차 없이 살아온 내게는 굉장히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지금은 너도 ‘벨로크’지.”
“……?”
여전히 대공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쓰다듬는다.
“네 이름에 ‘벨로크’가 붙은 이상, 네가 못 가질 것은 없다는 거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 뭐든 해 줄 테니.”
“…….”
“그래도 생각나는 게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고 원하는 게 생기면 말하도록.”
흐트러진 분홍색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듯 덮는다.
“피곤해 보이니 오늘은 책 읽는 걸 건너뛰는 게 좋겠지.”
내 머리를 엉망으로 망가뜨린 대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자라.”
무뚝뚝한 인사.
닫힌 방문을 보며 나는 대공이 쓰다듬고 간 내 머리를 매만졌다.
‘이상해.’
어쩐지 속이 울렁였다.
* * *
며칠 뒤, 창밖을 구경하던 나는 여느 때보다 대공저가 북적인다는 걸 깨달았다.
‘뭘 하는 거지?’
대공저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용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외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조각상과 그림을 나르고 있었다.
―인간 많다, 찍!
―으, 인간들 많은 건 싫은데! 갑자기 왜 저렇게 많아진 거야?
‘그러게. 왜지?’
나는 뒤돌아 내 전담 하녀 언니들을 찾았다.
때마침 바로 뒤에서 하녀 언니가 이불을 정리하고 있었다.
“샤비 언니.”
“네, 아가씨.”
나는 바깥에서 조각상을 옮기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은 원래 여기 있던 사람들이야?”
“인부들이네요. 대공저에서 일하는 이들이 아닌데, 아가씨의 생일 연회 때문에 온 것 같아요.”
“내 생일 연회?”
반사적으로 읊조린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대공이 내 생일 연회에 관해 말하긴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아무 언급이 없길래 잊고 있었는데.
“네, 집사님께 들었어요. 다다음 주쯤에 연회를 열 거래요.”
“그렇게나 빨리?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내가 알기로 연회는 준비 기간이 꽤 걸렸으니까.
“보통은 더 걸리죠. 그런데 주인님의 뜻이 강경하셔서요.”
으음, 역시 내가 아는 대로구나.
말롱 부인의 밑에서 일할 때 가장 빨리 열린 연회의 준비 기간이 한 달이었다.
지금 연회는 2주 만에 열리는 거니까…….
‘엄청나게 빨라!’
이거 가능한 계획인가?
“주인님이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되게 만들라고 하셨대요!”
으, 응?
“하루라도 일찍 아가씨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으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주인님은 아가씨를 정말 아끼시니까요.”
처음과 달리 샤비 언니는 살짝 흥분한 기색이었다. 정작 나는 떨떠름하기만 했지만.
‘내 생일이 뭐라고 돈을 펑펑 써 가면서 연회를 서두르지?’
대공이 날 챙겨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달갑지 않달까.
나는 대공이 일으킬 미래와 최후를 알고 있으니까.
잠깐 보류해 뒀지만 살려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러니 내가 배를 곯지 않도록 적당히 신경만 써 주고 무심하면 좋겠건만…….
‘내 생일 연회가 뭐라고 저렇게 돈을 쓰는 걸까?’
내게는 그럴 가치가 없을 텐데.
‘돈 자랑을 하고 싶어서? 아니면 이것도 은혜 갚기인가?’
전생에서 대공이 사치스럽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없었다.
‘미친 살인귀’라는 소문이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대공이 돈 자랑에 욕심이 없다고 보긴 어려워.’
내가 봐 온 귀족들이란 보통 그랬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싶어 했고 그걸 내보이고 싶어 했다.
특히 말롱 부인은 그런 욕망에 더 노골적이었다.
보석 가게와 옷 가게에 새로운 장신구와 드레스가 들어오면 부친인 셰인트 백작을 졸라 누구보다 빠르게 사들였으니까.
그리고 한껏 치장한 다음 살롱을 비롯해 다과회와 무도회에 입고 가고는 했다.
그런다고 해서 말롱 부인이 사교계의 꽃이 된다거나 유행의 선구자가 되는 일은 없었지만.
오히려 늘 다른 영애와 부인에게 사교계의 꽃 자리를 빼앗겼다며 화냈다.
그 분풀이는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고.
이제는 맞을 일이 없는데도 그때의 고통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떠올리지 말자. 이제 나는 그 여자의 하녀가 아닌걸.’
심장이 꽤 빠르게 뛴다.
―베리, 괜찮아, 찍?
‘응?’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정신을 퍼뜩 차리자 어깨와 머리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살짝 눈을 굴려 보니 내 어깨에는 룩스가, 머리 위에는 슈가가 올라와 있는 게 보인다.
‘너희 언제 올라왔어?’
―방금!
―숨이 좀 빨라진 것 같길래 올라왔어. 괜찮아, 찍?
룩스가 눈앞에서 앙증맞은 분홍빛 발을 흔들었다.
마치 내가 정신이 붙어 있는지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 호흡도 빨라졌나 보네.
이런 미세한 반응도 알아차리다니 놀랍다. 동물이라 그런 걸까.
‘난 괜찮아. 잠깐 옛날 생각을 해서 그래.’
빈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어차피 황태자가 말롱 부인을 죽였을 테니까.
날 괴롭히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과거를 떠올리며 이토록 떨 건 없지.
말롱 부인이 죽어 아쉬운 점은 마리 언니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 단지 그뿐이었다.
“저어, 아가씨.”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샤비 언니가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외출 생각은 없으세요?”
“외출?”
“황궁에 다녀온 때 빼고 나가신 적이 없잖아요. 저택에만 있는 게 답답하진 않으세요?”
그러고 보니 황궁에 다녀온 걸 빼면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네.
“……나가도 돼?”
이전에 도망치려 한 것 때문에 하녀 언니들에게 폐를 끼쳤던 만큼 조심스러워졌다.
지금은 그렇게 무작정 도망칠 생각은 없지만.
“그야 물론이죠.”
걱정한 게 무색하게도 샤비 언니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바람도 쐬고, 사탕 가게에 가서 새로운 사탕도 사요. 갖고 싶으신 것도 사고요. 집사님이 그래도 된다고 하셨어요.”
―사탕! 나 사탕, 찍!
“응. 갈래.”
“그럼 첼시를 불러서 채비할게요!”
뒤에서 폴짝폴짝 뛰며 아우성치는 룩스와 슈가의 열렬한 외침에 나는 망설임을 집어던졌다.
가겠다고 하자 어쩐지 샤비 언니가 기쁜 듯한 얼굴로 방을 나갔다.
* * *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들를 곳은 사탕 가게였다.
내 전담 하녀 언니들과 호위 기사인 페리드 경도 함께였다.
사탕 가게에 가는 동안 하녀 언니들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는걸.’
그런 생각을 하며 사탕 가게에 들어선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러 색깔과 다양한 모양을 가진 사탕들이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전시되어 있었다.
“예쁘다.”
나는 알록달록한 사탕 천국을 보며 감탄했다.
―베리, 나 저거! 저거!
―난 저기 치즈 모양 사탕, 찍!
사탕 주제에 너무 예뻐 선뜻 손을 뻗지 못하는 나와 달리 슈가와 룩스가 방방 뛰었다.
물론 내 품 안에서만.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함부로 내 품을 벗어나지 말라고 일러둔 덕분이었다.
“아가씨는 어떤 사탕을 드시고 싶으세요?”
“고르기 어려우면 다 사셔도 돼요.”
“아니야. 이거랑 저기 지팡이 모양 사탕이면 돼.”
나는 룩스와 슈가가 말한 사탕들을 가리켰다.
“더 고르셔도 돼요.”
“괜찮아.”
“그럼 계산하고 올 동안 마차에 먼저 가 계시겠어요? 가게 안에 마땅히 앉을 곳이 없네요.”
“기다릴 수 있어.”
나는 고집스레 말했다.
‘잠깐 서 있는 것쯤이야.’
무엇보다 가게 안을 구경하는 건 나름 재미있었다.
더 살 생각은 없지만, 사탕들이 워낙 예쁘다 보니 전시된 걸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그럼 잠시 다녀올 테니 첼시와 페리드 경 옆에 계셔 주세요.”
“응.”
고개를 끄덕이니 샤비 언니가 점원과 함께 계산대로 이동했다.
그동안 나는 첼시 언니와 페리드 경의 눈길이 닿는 곳에서 가게 안을 구경했다.
‘가게 한 면 전체가 통유리네. 전시 효과를 위해서인가?’
유독 유리 벽 바로 앞에 예쁜 사탕이 많았다.
―베리! 이거 네 눈 색이랑 똑같아, 찍!
‘그러게.’
나는 투명한 유리통에 담긴 사탕을 응시했다.
연한 녹색부터 짙은 보라색까지 다양하고 알록달록한 색의 사탕이 담긴 유리통에는 룩스의 말처럼 내 눈 색을 닮은 사탕도 있었다.
‘블루베리 맛 사탕인가 봐.’
자세히 보니 모양도 블루베리라 괜히 기분이 묘해진다.
‘대공도 내 눈 색이 블루베리색이니까, 애칭은 베리가 좋겠다고 하며 지어 줬지.’
베리.
귀여운 애칭이다.
저게 내 애칭만 아니라면.
‘살까?’
계속 보고 있다 보니 왠지 그냥 갖고 싶다.
이 정도는 사도 괜찮지 않을까?
하녀 언니들이 다 사도 된다고 했는데 하나만 더 추가하는 거니까.
좋아. 사자.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빨랐다.
나는 내 뒤에 있는 하녀 언니에게 도도도 달려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첼시 언니.”
“그걸 살까요?”
“네에.”
역시 집사 할아버지가 내 전담으로 배정해 준 하녀라 그런지 눈치가 빠르다.
“점원을 불러올게요. 잠시만 여기 계세요.”
첼시 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순식간에 나는 호위 기사인 페리드 경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사근사근하고 자주 대화를 해 친근한 하녀 언니들과 달리 묵묵한 페리드 경은 어색하기만 했다.
‘사탕이나 더 구경하자.’
다른 사탕이 든 통을 구경하던 때였다.
투명한 통유리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금갈색 머리카락이 반짝거린다.
“어?”
단정하게 모아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 아담한 체구를 가진 낯익은 여성의 뒷모습.
“……마리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