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39)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39화(39/125)
#39
‘왜 웃는 거지?’
혹시 상대가 화내는 걸 즐기는 변태인가?
“아, 역시.”
생각이 번잡한 가운데 황태자가 내게 다가왔다.
“대공이 너를 감싸고도는 이유를 알겠어.”
“……?”
대공이 날 감싸고돌아?
어쩌다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몰라도 단단히 오해한 듯싶은데.
“나도 네가 좋아질 것 같아.”
방금……. 무슨 말이 지나간 거지? 제대로 들은 거 맞나?
내 귀를 의심하는 동안 황태자가 입을 열었다.
“마리를 내 시녀로 삼은 건 사실이지만, 네가 원하면 보내 줄게. 조건이 붙지만.”
“어떤 조건인데요? 아니, 어떤 조건인데?”
공대했다가 황급히 반말로 바꾸는 내 모습이 재밌는지 황태자가 얄궂게 웃으며 말했다.
“대공한테 허락받고 와. 마리를 네 곁에 둬도 된다고.”
“그거면 된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상하다? 분명 이걸 빌미로 약점을 잡는다거나 빚을 짊어지게 할 줄 알았는데.
“하나 더 있어.”
그럼 그렇지.
이번에 나는 조금 긴장했다.
“허락받은 다음에 대공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 만나러 올 것.”
이어 들려온 말은 긴장했던 게 우스울 만큼 별것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지만.
“이러면 보내 줄게. 마리도 네 옆에 있고 싶은 눈치니까.”
객관적으로 황태자가 제시한 조건은 퍽 간결했다.
그러나 마지막 조건만큼은 내게 있어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다.
얘는 대공이 자길 싫어하는 걸 알고 저러는 걸까?
“꼭 내가 널 찾아가야 해? 서신을 써서 아빠가 허락해 줬다고 보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못 만나잖아.”
“꼭 만나야 해?”
“응.”
“왜?”
“이유라면 이미 말했는데.”
말했다고? 언제?
“네가 좋아질 것 같다고.”
내 의문을 헤아린 것처럼 황태자가 내 손을 잡더니 제 얼굴을 바짝 밀어붙였다.
바로 코앞에서 은색 속눈썹이 닿을 듯 말 듯 깜빡인다.
예쁜 루비색 눈 끝으로 황태자의 눈꼬리가 얄궂게 휘어졌다.
“그러니까 이건 내 순수한 호의야, 베로니카.”
황태자가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다음에 보자.’
작은 속삭임이 들려온다.
이명이 머릿속에 들려오는 건지, 그의 목소리가 내 귀를 통해 들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나는 멍하니 황태자가 사라진 방향만 좇았다.
‘내가 좋아질 것 같다고?’
무심코 황태자가 한 말을 떠올린 나는 몸을 떨었다.
그가 던지고 간 말은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켰다.
왜, 왜지?
대체 왜 날 좋아하게 될 거 같다는 건데?
황태자와 만난 건 어디까지나 마리 언니 때문이었다.
즉,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알고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소리다.
병아리 눈물만큼도!
하지만 언제까지고 충격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대공은 내가 황태자를 만나고 온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늦었군.”
그 한마디가 전부였으니까.
할 말이 없던 나는 헤헷, 웃으며 대공의 옆에 앉았다.
돌아오니 연회장의 분위기는 내가 나가기 전과 제법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제법 연회다웠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가신들이 인사하러 오더니 갑자기 그들의 어린 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아마 친구를 만들도록 배려해 준 듯했으나 내게 그다지 즐거운 자리는 아니었다.
황태자가 요구한 것 때문에 생각이 복잡하기도 했지만, 내 또래처럼 보이는 아이들은 평범한 어린아이들이라는 이유가 더 컸다.
“제 오빠인 하인트는 정말 멋져요. 저보다 세 살 많은데 잘생기고 키도 크고 똑똑하거든요.”
“음? 친오빠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네! 우리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요!”
“그럴 리 없어요. 몇 년만 지나면 엄청 싫어질걸요? 나중에는 지금을 부끄러워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말한 여자아이가 제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천연덕스레 연기했다.
“아, 그때는 왜 친오빠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을까?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
“뭐, 뭐? 그 말 취소해! 우리 오빠는 진짜 멋있단 말이야!”
어린 나이여도 말투 교정을 받은 아이들은 처음에는 제법 점잖은 말씨를 구사했다.
금방 제 본색들을 드러내며 소란스러워졌지만 말이다.
‘귀족 집안에서 자랐어도 애들은 애들이구나.’
어쩐지 보육원에 있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다.
싸움은 금방 종결됐다. 두 아이 중 한 명이 울음을 터트려서였다.
“너, 너어, 나빠아아! 흐어엉!”
아이가 울자 부모로 보이는 어른들이 달려와 서둘러 데려갔다.
하지만 어색해진 분위기가 수습될 리 없었다.
그 상태로 연회는 마무리되었다.
해가 지기도 전에 끝났으니 연회치고는 제법 빠른 종결이었다.
하지만 이미 정신적 피로감이 쌓인 나는 꽤 지친 상태였다.
‘대공이 방까지 안아서 데려다주면 좋겠다……. 헉, 내가 무슨 생각을!’
무심코 생각하고 그에 혼자 화들짝 놀란 나는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정신 차려! 상대는 벨로크 대공이라고! 아무리 날 자주 안아 주고 그 품이 편하기로서니 이런 생각을 하다니!
“피곤해 보이는군.”
언제 다가온 건지 대공이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날 단번에 안아 들었다. 나는 살짝 놀랐다.
‘뭐야? 내 속마음을 읽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생각하자마자 이렇게 날 안아 들 리가.
“친구는 만들었……을 리 없겠지.”
대공이 무얼 떠올리는지 눈치챈 나는 에헤헤, 멋쩍게 웃었다.
아무렴 싸우다 울고 가 버린 아이들과 친구가 되긴 어렵지.
내 정신 연령 때문에라도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긴 힘들 테지만.
“네 나이 때는 친구가 있는 게 좋다고 해서 허락해 줬거늘 네 기분만 상하게 했군.”
“그 애들 때문은 아니에요.”
살짝 가라앉은 듯한 대공의 음성에 나는 재빨리 부정했다.
“그러면 황태자 때문인가?”
여기서 황태자 얘기가 왜 나와?
“중간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부터 안색이 안 좋던데. 그 녀석이 네게 뭐라 했나?”
헉.
절로 숨이 들이켜졌다.
화장실에 간 게 아니라 황태자를 만나러 간 걸 알았단 말이야?
‘만난 적 없다고 거짓말할까?’
아주 잠깐 그런 고민이 들었지만 나는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다 아는 눈치인데, 거짓말해도 소용없을 거야.’
차라리 지금 실토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나을지도.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알고 있으니 됐다.”
대공은 생각보다 흔쾌히 날 용서했다.
“꽤 머리를 굴린 모양이지만, 애송이답게 마력의 파장을 완전히 감추진 못하더군.”
마력의 파장이라니.
나로서는 느낄 수 없는 분야인 만큼 대공의 말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보다 그 녀석은 왜 만난 거지? 협박당했나?”
“아니요.”
“협박당한 게 아닌데 그 녀석을 만나러 갔다고?”
대공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썹을 본 나는 그의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그 녀석을 좋아하나? 그래서 따라간 건…….”
“아니에요! 그런 거!”
무슨 그런 큰일 날 말씀을!
내가 파드득 몸서리치자 대공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진다.
“그럴 줄 알았다. 내 딸이 그런 녀석을 좋아할 리 없지.”
기분 탓인가? 왜 대공이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지?
“그래서 그놈을 만나야 했던 이유가 뭐지?”
나는 순간적으로 머뭇거렸다.
어차피 털어놓아야 할 일이긴 했다.
언제 말해야 할지 기회를 엿보며 끙끙 앓을 필요 없이 이렇게 물어봐 주니 고맙기도 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게 문제일 뿐.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말하기 어려울 거야.’
떨렸지만 나는 결심을 굳혔다. 하루빨리 마리 언니와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황태자가, 마리 언니를 데리고 있었어요.”
“마리?”
“아까 제 생일 선물이라며 준 보석함을 들고 있던 사람이요.”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마리 언니는 보육원에 있을 때 절 돌봐 줬어요.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게 더 좋다고 한 건가.”
“네?”
“신경 쓰지 마라. 혼잣말일 뿐이니.”
대공이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마저 얘기하지. 그래서 황태자를 찾아가 무슨 대화를 나눴지?”
“마리 언니를 제게 보내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빠한테 허락받으면 보내 주겠다고 했고요.”
“내 허락을?”
“언니를 데려온다고 해도 아빠의 허락이 없으면 같이 못 있을 거라고…….”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리 대공의 딸로 입적되었고, 그의 은인으로 취급받고 있다 해도 결국 우리는 남이었다.
그런 내 부탁을 들어줄까?
대공에게 실토하기 전에는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다 말하고 나니 자꾸만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치우쳤다.
“내가 허락 안 해 줄 것 같아 계속 얼굴이 어두웠던 건가?”
나는 머뭇거리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말해 줄 걸 그랬군.”
“……?”
뭘 말해?
“실은 내 나름대로 마리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아다녔다.”
“언니를요?”
“그래. 앓는 와중에도 울며 그 이름을 부르길래 네게 소중한 사람인가 싶어서.”
“아.”
며칠 전 얘기구나.
“하지만 찾으러 다녀도 행방을 알 수 없더군. 알려 줘 봤자 실망할 것 같아 말할 수 없었다.”
가만히 듣던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설마…….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셨던 거예요?”
“말에 어폐가 있군. 내가 해 주고 싶어서 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