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42)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42화(42/125)
#42
“예. 얼굴 쪽 손상이 심하지만 하고 있던 장신구나 옷차림이 부인과 같다고 증언했습니다.”
“시체는 어디 있어?”
“친정인 셰인트 백작가에서 거둬갔습니다. 얼굴 쪽 손상이 워낙 심해서…….”
“백작의 반응은 어땠지?”
“조금 소동이 있긴 했으나 진압하니 얌전해져 돌아갔습니다.”
딸이 죽었으니 난동을 부리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오히려 덤덤했다면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은 다른 요인에 있었다.
황궁 지하 감방은 어지간해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화재 사고는 카드릭이 태어난 이래로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난 것도 모자라 하필 자신이 거둔 죄수가 죽었다니.
그것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불에 타서?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카드릭은 셰인트 백작가의 동향을 주시할 이를 심으라고 명했다.
이 모든 게 어제까지 일어난 일들이었다.
원래는 베로니카에게 마리를 보내 주며 전부 말하려 했다.
어째서인지 말롱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확실해지면.’
어쩌면 괜한 기우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섣불리 들쑤실 필요는 없지.’
카드릭은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셰인트 백작가에서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바로 캐내 처리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 * *
잘못 대답해 황태자의 방문을 허락한 뒤로 나는 절망했다.
‘아니야. 어쩌면 괜찮은 기회일지도 몰라.’
황태자가 내게 잘해 준다면 미래를 도모하기도 좋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빠가 반역에 실패했을 때, 그동안 쌓아 온 정으로 나는 살려 준다든가?
……는 그 전에 죽고 없겠구나.
아빠는 미래에 황제와 황태자를 죽이니까.
“저기 있네.”
과거의 기억에 빠져 있던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황태자의 목소리에 정신 차렸다.
정면을 보니 커다란 짐 가방을 든 마리 언니가 보였다.
화원에 있는 꽃을 구경하는지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지만.
“마리 언니!”
나는 언니를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언니가 방긋 웃으며 양팔을 살짝 벌려 날 반겼다.
나는 단번에 그 품에 안겼다.
보드라운 치마폭이 살짝 낯설다. 내 기억 속 마리 언니의 옷은 감촉이 부드러웠던 적이 없으니까.
보육원에 있을 때도, 말롱 부인의 하녀가 되었을 때도.
‘뭐 어때.’
이런 옷을 입어도 언니는 언니인데.
마리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다독여 줬다.
답지 않게 어리광을 부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부끄러워졌다.
나는 후다닥 몸을 떼어 내며 언니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냈어?”
―응, 전하께서 잘 살펴봐 주신 덕분에.
“황태자가?”
반사적으로 작게 읊조린 나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매일 속으로 황태자라고 불렀더니 이런 실수를!
슬쩍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황태자를 살폈으나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못 들은 모양이네. 다행이다.’
하지만 황태자가 보고 있어 우리끼리 얘기를 할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황태자는 수어를 모를 테니, 그걸로 대화하면 되긴 했지만…….
지금은 그저 황태자가 있다는 게 신경 쓰였다.
아빠도 기다리고 있으니 여기보다는 자리를 옮겨 회포를 푸는 게 나을 테고.
“가져갈 건 그게 다야?”
―응.
“그럼 가자.”
나는 마리 언니의 손을 잡았다.
언니의 손은 잡일을 많이 해 부르트고 거칠었지만, 그래도 이 손을 아주 그리워했던 터라 마냥 좋기만 했다.
‘언니의 꽃길은 내가 책임진다!’
다른 건 몰라도 아빠가 약속했으니 앞으로 언니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 줄 수 있겠지.
어서 이 말을 해 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내가 언니와 돌아갈 낌새를 보이니 황태자가 다가와 물었다.
“벌써 가려고? 서로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돌아가서 하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리 언니와 할 말이 없을까.
많은데 참고 있는 것뿐이지.
내 속내를 눈치챘는지 황태자는 별말 없이 우리에게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 줬다.
황태자 궁의 입구가 보인다. 그 옆에 다소 무료한 듯, 서 있는 아빠의 모습도.
“안내해 줘서 고마워. 여기부턴 혼자 갈게.”
“고마운 건 그것뿐?”
황태자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다.
그리고 내가 눈치 못 챌까 걱정된 건지, 친절하게도 마리 언니 쪽을 흘긋 보기까지!
“……마리 언니를 돌봐 준 것도 고마워.”
생색내는 태도가 얄밉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그렇게 언니와 함께 아빠에게 가려던 찰나였다.
“넘어가는 건 이게 마지막이야.”
나직이 들려온 한마디에 나는 몸을 돌려 황태자를 바라봤다.
“뭐가?”
“내 이름이 아니라 황태자라고 부르는 거.”
그에 나는 아까 황태자가 못 들은 게 아니라 못 들은 척해 준 거란 걸 깨달았다.
귀도 밝지.
“또 황태자라고 부르면 그것도 빚으로 달 거니까.”
“어떻게 받아 낼 건데?”
“글쎄. 매일 찾아갈까?”
“……농담이지?”
“직접 겪어 보면 농담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겠지.”
“부를게! 이름!”
“약속한 거야.”
못을 박다 못해 아예 퇴로까지 막아 버리는 철저함에 나는 질린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황태자, 아니, 카드릭은 이런 내 꼴이 웃긴지 싱긋 웃고는 돌아섰다.
“다음에 보자.”
그 한마디를 남기고.
* * *
카드릭과 헤어진 우리는 바로 대공저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아빠는 카드릭이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는지 물었다.
내가 별일 없었다고 하자 그는 “그렇군.”이라고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관심을 거두었다.
마리 언니는 내 전담 하녀들의 옆방으로 배정되었다.
내 방과 비교해 크기만 작을 뿐, 내 눈에는 비슷하게 좋아 보이는 방이었다.
마리 언니가 가져온 짐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카드릭이 준 목걸이가 든 보석함을 매만졌다.
‘이것도 줘야 하는데.’
언니를 데리러 가기 전날부터 주려고 따로 빼 둔 마법 목걸이였다.
어서 언니가 정리를 끝내길 기다리는데 슈가의 납작하고 긴 꼬리가 내 이마를 탁탁 쳤다.
―저 인간이 메리? 마리? 어쨌든 예전에 네가 말한 인간이야?
얘는 언제 내 머리 위로 올라왔대?
조금 전까지 룩스와 함께 내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사이에도 슈가는 계속 자기 꼬리로 내 이마를 내리쳤다.
워낙 털이 보송보송해 아픈 건 아니었지만, 조금 거슬려 나는 슈가의 꼬리를 옆으로 슬쩍 밀어내며 답했다.
‘응, 마리 언니야.’
―인간치고 착해 보이네.
―맞아! 착해, 찍!
―에? 넌 저 인간이 착한 줄 어떻게 알아?
―우리를 보고도 소리 안 지르잖아! 여기에 베리랑 같이 있어도 된다고 했고, 찍!
―흠, 그건 맞네.
―그리고 누님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베리랑 있던 곳에서 빵도 뿌려 줬어, 찍!
‘마리 언니가 직접?’
―직접은 아니고, 그냥 구석구석에! 그게 우리 먹으라고 두는 거지, 찍!
그랬구나. 하긴, 마리 언니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평소 보육 기관 근처에 사는 야생 고양이와 강아지를 보면 시선을 떼지 못하고 최대한 챙겨 주려고 했으니까.
내가 룩스의 턱을 한번 간질여 주고는 침대 위에 내려 줄 때였다.
마리 언니가 서랍을 닫고는 내게 다가왔다.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
“으음, 별로.”
나는 도리질을 쳤다.
짐이 간소하다던 말대로 언니는 금방 정돈을 끝냈으니까.
이 정도를 오래라고 칭할 사람이라면 극도로 인내심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마리 언니가 내 옆에 앉고,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어색해서라기보다는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서일 터였다.
―그 목걸이 준다며, 찍?
그랬지. 참.
“언니, 이거.”
나는 마리 언니에게 보석함을 내밀었다.
잠시 살펴보던 언니는 곧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 전하께서 주신 거지?
“응, 언니가 써 줬으면 좋겠어.”
―내가?
“언니한테 필요한 거니까. 불편하면 안 써도 되고.”
마리 언니는 머뭇거리다 목걸이를 받았다.
―보석함은 가져가. 이거까지 받을 수 없어.
“걱정하지 마. 여기서 언니 걸 훔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내 말에 마리 언니가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앗, 애답지 않은 말이었나.
나는 모르는 척 언니를 재촉했다.
“어서 걸어 봐. 궁금해.”
―그래.
언니는 목걸이를 차려 했지만, 잠금쇠 부분에서 자꾸 손이 미끄러지는 듯했다.
“도와줄까?”
―그래 주면 고맙지.
마리 언니는 내게 목걸이를 준 뒤 등을 돌리고 앉더니, 긴 금갈색 머리카락을 한데로 그러모았다.
나는 수월하게 언니에게 목걸이를 걸어 줄 수 있었다.
“어때? 목 조이진 않아?”
―전혀. 딱 맞아.
“전혀. 딱 맞……!”
언니가 한 수어에 이어 낯선 여자의 음성이 공기 중에 울린다.
그에 나는 물론 마리 언니도 멈칫했다.
방금, 그거.
“언니가 한 말 맞지?”
마리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왜 말로 안 해?”
―어색해서.
“많이 말하면 금방 익숙해지지 않을까?”
―그, 럴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목소리, 이상하진 않아?”
“아니! 전혀! 언니랑 잘 어울려!”
부드럽고 상냥한 음성이었다. 그래서 잘 어울렸다.
만약 언니가 원장의 악행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정상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면 이런 목소리였겠구나 싶을 정도로.
‘와, 이게 되는구나.’
실로 감탄스러웠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