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45)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45화(45/125)
#45
* * *
완자는 인형을 씹고 뜯고 맛보며 즐겼다.
인형을 밟은 완자의 발이 움직일 때마다 분홍빛 젤리가 얼핏 보인다.
‘그러니까, 분명 날 깨문 순간부터 말이 통했지?’
나는 아까 저 작은 발로 내 손을 쳐 내며 무엄하다고 외치던 완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동물이 깨물면 말이 통하나?’
조금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룩스와 슈가는 날 깨문 적이 없으니까.
‘공통점을 찾자면 접촉인가?’
하지만 명료한 답을 내리긴 어려웠다.
룩스와 슈가를 만난 게 벌써 몇 달 전이었다.
그중에 만난 동물은 완자까지 겨우 셋인 만큼 확신하기도 어렵고.
여기에 황태자의 불새까지 더하면 더욱 확신이 없어지지만…….
‘불새는 예외로 두자.’
그건 평범한 동물이 아니니까.
―얘, 완자야. 너 몇 살이야?
―무례하다! 나를 대할 때 좀 더 공경심을 보여라, 멍!
―완자라고 부르는 게 어때서?
―완자님이라고 불러, 멍!
완자가 인형을 뜯다 말고 엉덩이만 치켜들며 외쳤다.
덩달아 솜털 같은 꼬리도 바짝 섰다.
―그래서 너 몇 살이야?
―2개월 대따, 멍!
―아기네?
―나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건 어머니뿐이얏, 멍!
―아기니까 아기라고 부르지. 아니면 그냥 완자라고 계속 불리든가.
슈가와 완자의 실랑이를 구경하는데 룩스가 내 어깨 위로 올라와 내 뺨을 꾹꾹 눌러 댔다.
―베리, 베리, 찍.
‘응?’
―예전에 ‘님’이라는 존칭은 내가 직접 말하면 부끄러운 거라고 하지 않았어, 찍?
‘으응, 그랬지.’
기억을 더듬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쟤 지금 부끄러운 짓 하고 있는 거 맞지, 찍?
‘그렇지?’
이름 뒤에 님을 붙이고 있으니까.
―부끄러운 완자, 찍.
룩스는 고개를 젓고는 신경 쓰기 싫다는 듯 간식 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에도 슈가와 완자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
―내 주인들도 날 완자님이라고 했다, 멍!
―이제 네 주인은 베리인데? 그리고 베리가 네 이름은 완자랬어!
정확히는 내가 읊조린 말을 들은 첼시가 완자로 땅땅! 결론 내린 건데.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화난 슈가는 나도 감당하기 어렵단 말이지.
―그러니까아, 나는 완자님이래도, 멍!
―완자가 싫다면 아기는 어때?
―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아아, 멍!
아무래도 이 신경전은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하다.
* * *
아침 식사는 늘 그렇듯 아빠와 함께였다.
이미 수십 번 함께한 만큼 새삼 어색할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용건이 있는 만큼 식사하는 내내 사소한 것조차 신경 쓰였다.
‘언제 말하면 좋을까?’
원래 계획은 아빠를 보자마자 바로 부탁거리를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말하려니 입이 떨어져야지.
“집사한테 듣기로 어제 네 방에서 안 잤다던데.”
“네. 마리 언니 방에서 언니랑 같이 잤어요. 대화가 길어져서요.”
말하다 보니 지금이 부탁할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가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 전에 서둘러 말했다.
“마리 언니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살 수 있으면 좋겠대요.”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던 아빠의 손이 멈칫했다.
긴장해 말을 빨리 잇던 나는 그 변화를 눈치 못 챘다.
“그래서 말인데요, 마리 언니가 보육원을 꾸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안 될까요?”
“어려운 부탁도 아니군.”
긴장했던 게 무색하게도, 아빠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해 주겠노라고 했다.
“정말요? 진짜, 진짜로 들어주시는 거예요?”
“그래.”
“와!”
이렇게 쉽게 허락받다니!
가장 난관이라고 생각한 걸 허락받고 나니 기분이 하늘을 날 것처럼 좋아졌다.
“감사해요, 아빠!”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대공을 끌어안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충동을 멈췄다.
대신 나는 손뼉을 치며 대공을 향해 밝게 웃었다.
머릿속에는 어서 마리 언니한테 이 소식을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득 품은 채.
그래서 나는 내 감사 인사에 순간적으로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 * *
식사가 끝나고 나는 폴짝폴짝 뛰듯 복도를 걸었다.
“아가씨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주인님과 식사 시간이 즐거우셨나 봐요.”
“응!”
샤비의 말에 나는 헤헷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마리 언니한테 아빠와 나눈 대화를 알려 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깜짝 놀라겠지?’
마리 언니의 반응을 상상하니 으흥흥,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잠깐. 지금 말고 보육원 계획이 완전히 정해진 뒤에 알려 주는 게 좋으려나?’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내 뒤를 따라오던 샤비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가씨?”
“음, 뭐 하나 물어도 돼?”
“제가 도움이 될까요?”
“응. 의견이 듣고 싶은 거라서.”
나는 망설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에 누군가 샤비를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 그러면 미리 말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니면 나중에 선물을 주면서 놀라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글쎄요. 받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선물을 주며 말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샤비가 덧붙였다.
“미리 말해 주면 설레긴 해도 막상 받았을 때 놀라진 않을 것 같아서요.”
음음, 일리 있는 말이야.
“무엇보다 깜짝 선물이잖아요?”
“응.”
“미리 말해 주면 깜짝 선물이 아니지 않을까요?”
어, 그러네?
날카로운 지적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았다.
“선물을 주면서 말해 줘야겠다. 고마워!”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깜짝 선물은 나중에 말하기로 결정했지만, 여전히 내 기분은 좋았다.
나는 신난 마음으로 마리 언니 방의 문을 두드렸다.
“언니, 있어?”
돌아오는 답이 없다.
뭐지? 잠깐 나갔나?
고개를 갸웃거리자마자 안에서 우당탕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린다.
“아, 있었……어, 언니?”
순식간에 언니의 품에 가둬진 나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실로 격렬한 포옹이었다.
“마리 언니? 왜 그래?”
재차 묻자 그제야 언니가 날 놓아줬다.
“무슨 일 있었어?”
언니는 초췌해진 얼굴로 날 보다가 손을 움직였다.
―네가, 갑자기 없어져서.
‘아.’
그러고 보니 새벽에 말도 없이 돌아왔구나.
“미안. 언니가 불편해 보여서 내 방으로 돌아갔어.”
―괜찮아. 그냥, 조금 놀라서 그래. 누굴 잡고 물어도 다들 수어를 할 줄 몰라서…….
“목걸이 써 봤어?”
내 말에 마리 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미처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다는 듯이.
‘그럴 만도 하지.’
언니는 아직 목걸이가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얼마나 놀랐으면 이럴까 싶어 더욱 미안해진다.
이럴 때 ‘언니가 좋아할 만한 소식이 있어!’라며, 보육원 설립 얘기해 줘야 하는데.
하지만 이건 깜짝 선물인데…….
“마리 언니.”
언니가 고개를 들어 날 본다.
“나랑 이것저것 구경하러 가지 않을래?”
―이것저것?
“며칠 전에 내 생일 연회가 있었잖아. 그래서 선물이 많이 들어왔대. 아직 못 봤는데 언니랑 같이 구경하고 싶어.”
응? 갈 거지? 가자, 가자!
나는 눈빛에 감정을 담아 신호를 보냈다.
언니는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와아아!”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벌렸다.
여길 봐도 번쩍번쩍, 저길 봐도 번쩍번쩍!
사방이 처음 보는 것들로 번쩍번쩍했다.
예전에 황제에 의해 갑자기 이동한 방도 이만큼 번쩍번쩍하긴 했다.
하지만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갑자기 이동되어 낯선 곳에 떨어졌다는 두려움이 더 커서 그랬나?’
그저 빠져나가야겠다는 마음만 들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화려한 물품들에 눈이 팽팽 돌아갔다.
“이게 다 나한테 온 선물이야?”
“네. 찻잎이랑 보석 소금 같은 식재료도 들어왔는데 그건 다 식품 창고로 들어갔어요.”
샤비가 뿌듯해 보이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정리하느라 고생했겠는걸.’
왜 샤비와 첼시가 며칠씩이나 정리했는지 알 것 같다.
‘나중에 몇 개 슬쩍해도 알아차리기 어렵겠네.’
몇 개 몰래몰래 빼돌려 처분해서 도주 자금으로 챙겨 두기 좋겠다.
선물을 받을 때는 정신이 없어 별 감흥 없었는데 훗날을 도모할 내 자금이라 생각하니 구경하는 맛이 쏠쏠했다.
눈에 띄는 것들 몇 개를 보는데 마리 언니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베리, 이거 봐 봐.
수어를 마친 언니는 가까운 진열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여자아이 형상을 띤 도자기 인형이 있었다.
인형은 등 뒤에 천사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제법 귀여웠다.
그런데 어째 저 인형, 날 닮은 것 같다……?
―베리 닮았어.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마리 언니가 손짓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구나.
“그게 마음에 드세요? 오르골이니 꺼내서 한번 돌려 보세요.”
“오르골?”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나오는 장난감이에요. 아마 인형 부분을 잡고 돌리면 소리가 나올 거예요.”
그런 게 있단 말이야?
듣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마음에 나는 진열장으로 손을 뻗어 오르골을 꺼냈다.
오르골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첼시가 가르쳐 준 대로 받침대를 잡고 인형을 돌리자 맑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소리 좋다.
“그러게.”
통통 튀는 멜로디가 신비로우면서도 좋았다.
오르골을 내려놓으려는데 문득 받침대 밑바닥에 그려진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 사슴?’
나뭇가지처럼 커다랗게 뻗은 두 뿔과 우아한 형태를 지닌 동물은 사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