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48)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48화(48/125)
#48
베로니카에게는 벨로크 대공이 좋은 아빠라고 말해 주었으나 소문에 의하면 그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혹여나 저로 인해 베로니카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닐지, 밉보이는 건 아닐지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
“저 때문에 보육원을 지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가씨께서 말씀하셨군요.”
“네. 원래도 폐를 끼치고 있었는데 더 폐를 끼친 건 아닌지…….”
마리는 차마 벨로크 대공이 베로니카에게 해코지할까 걱정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저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나 베로니카는 행복하길 바랐다.
더스틴은 이런 마리의 걱정을 읽었다.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아가씨를 많이 아끼고 계십니다.”
“하지만 베리를 아끼는 것과 제게 해 주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주면 좋겠군요. 전하께도 세간의 소문과는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고요.”
“…….”
“이해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전하께서는 아가씨에게 큰 애착을 보이십니다. 아가씨께서 보통의 아이처럼 자라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셨지요. 생일 연회가 그 연장선이라면 조금 믿길까요?”
마리는 베로니카의 생일 연회를 떠올렸다.
크고 화려한 생일 연회.
처음 황태자를 따라 연회에 왔을 때는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대공가의 부를 보여 주는 자리라고만 여겼는데…….
‘그러고 보니, 그날 연회의 중심은 베리였어.’
단순히 재력을 뽐내기 위해서였다면 오로지 어른들만을 위한 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회에는 베로니카 또래의 여아들도 있었고, 선물은 온통 베로니카를 위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들은 말도 있었다. 대공이 된 뒤로 사교 활동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던 그가, 고작 평민 수양딸을 위해 직접 연회를 열었다고.
그래서 두렵지만, 호기심 반, 대공에게 연줄을 대 보려는 욕심 반으로 많이들 왔다고.
“사실 생일 연회는 전하의 고집이셨습니다. 저희는 아가씨가 원하는 걸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거든요.”
“베리가 말을 안 하던가요?”
“워낙 의견을 직접 표출하지 않으시는 분이라.”
“아…….”
“전하 딴에는 아가씨를 위해 노력하셨습니다만, 아가씨가 직접 부탁한 게 아닌 만큼 아쉬워하셨습니다.”
더스틴은 인심 좋아 보이지만, 엄숙한 얼굴로 마리를 응시했다.
“그러던 중에 아가씨가 요청한 겁니다. 마리 양을 위해 보육원을 지어 달라고요.”
“저를, 위해…….”
“솔직히 전 마리 양이 더 남아 줬으면 해요. 아가씨는 어리고, 전하께서는 아가씨를 아끼지만 늘 옆에 있어 주지 못하시거든요.”
“…….”
“잠시라도 좋으니 마리 양처럼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 준다면 좋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마리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에 더스틴은 이렇다저렇다 대답하는 대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설득은 해도 대답하고 결정하는 건 그가 아니었다.
마음을 정하는 건 마리, 오로지 본인이어야 했다.
누군가가 떠맡긴 각오는 그만큼 흩어지기도 쉬우니.
“괜찮다고 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 될 거예요.”
더스틴은 캐모마일차를 마리에게 주었다.
이번에 마리는 차를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고민이 많은 얼굴로 찻잔을 들었다.
짧은 침묵 끝에 드디어 마리가 입을 열었다.
* * *
마리 언니가 나가겠다고 선언한 뒤 울적해진 나는 멍하니 병아리 인형을 조몰락거렸다.
이전에 황궁에서 토끼 인형을 잃어버리고 돌아오자 하녀들이 새로이 쥐여 준 인형이었다.
멍하니 인형을 만지는데 슈가가 인형 위로 날아왔다.
그러더니 입에 물고 있던 걸 뱉는 게 아닌가.
―자! 먹어!
인형 머리 위에서 떨어질 듯 굴러가는 걸 받아 확인하니 사탕이 있었다.
―맛있는 거 먹으면 행복해져!
―맞아, 찍!
언제 침대 위로 올라온 건지 룩스도 덩달아 동조했다.
―아마 완자, 걔도 여기 있었으면 동의했을걸?
완자는 지금 내 방에 없었다.
슈가가 완자를 놀릴 때마다 완자는 힘차게 반박했는데, 그 소리를 헛짖는다고 오해한 샤비와 첼시가 데려가서였다.
“아직 새끼라서 사람 손을 많이 타나 봐요. 당분간 저희가 돌보면서 훈련할게요.”라며.
―하나로 모자라? 더 줄까?
―이번엔 내가 줄래, 찍!
“고맙지만 하나면 돼.”
나는 슈가가 준 사탕을 굴렸다.
동글동글한 사탕을 쥐고 있으니 아까보다는 기분이 좀 낫다.
똑똑―.
‘마리 언니인가?’
어쩌면 아까 한 말이 후회돼서 취소하러 온 걸지도 몰라!
마리 언니가 돌아간 지 제법 시간이 지난 만큼 꽤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잠깐만. 문 열어 주고 올게.”
잠시 룩스와 슈가에게 양해를 구한 나는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문 쪽을 향해 달려갔다.
“아가씨.”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보인 사람은 집사였다.
“이걸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고르는 데 필요하실 듯하여.”
집사가 내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받고 나니 아까 식당에서 본 종이들이었다.
“다 좋은 곳이니 마음 가는 거로 고르면 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십시오.”
“고마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마리 언니를 생각하며 좋았는데 지금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집사는 내게 종이를 준 뒤에도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
더 할 말이 있나?
“그러고 보니 아까 마리 양이 절 찾아왔었습니다. 대공저에서 나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집사의 말에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언니가 벌써 말했구나.
“그래서 아가씨의 임시 전담 하녀이자 보모 일을 권했습니다. 하겠다고 하더군요.”
어?
놀란 나는 집사를 올려다봤다. 그는 늘 그렇듯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정말? 언니가 하겠대?”
“아직 아가씨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나 보군요.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아, 아니야! 말해 줘서 고마워!”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집사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하고는 할 일이 있다며 돌아갔다.
‘어떻게 언니를 설득했지?’
내가 아무리 이런저런 말을 해도 끄떡도 안 하던 언니였다.
그런데 집사의 말에 남겠다고 했다니, 궁금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다.
중요한 건 언니가 자신이 한 말을 철회했다는 거니까.
나는 집사가 주고 간 종이 뭉치들을 껴안고 속으로 외쳤다.
집사 할아버지 최고!
* * *
마리 언니는 정말 대공저에 남았다. 집사가 말한 대로였다.
하지만 언니가 남기로 한 것과 별개로 결심한 게 있었다.
‘보육 기관 설립을 빠르게 진행해야 해.’
이를 위한 방안은 간단했다.
새로 짓는 걸 포기하고 기존 건물을 활용하면 됐다.
‘아빠도 반대하진 않을 거야.’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새로 지어 올리는 것보단 더 싸게 먹힐 테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전에 있던 보육원을 그대로 쓰게 해 달라고?”
아빠가 내게 읽어 주려고 들고 있던 책을 덮으며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왜 싫어하는 거 같지? 그럴 리 없을 텐데?’
나로서는 생각지 못한 반응이라 당황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안 돼요?”
“이해할 수 없군. 네게 있어 그곳은 안 좋은 기억이 담긴 곳 아닌가? 굳이 거길 활용하겠다고?”
실로 생각지 못한 이유였다.
아빠답지 않은 걱정……은 아닌가?
예전부터 세심한 데다 자상한 구석이 있었으니.
“그 보육원을 방문할 때마다 옛 기억이 떠오를 텐데?”
뒤이어 들려온 말도 내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생각지 못한 게 있었다.
내게 있어 가장 끔찍한 기억은 말롱 부인의 밑에 있던 때라는 것.
그렇다고 브리엔츠 보육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절대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덜 와닿을 뿐.
“괜찮아요.”
“괜찮다고?”
“네.”
아빠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거기에 원장 엄마는 없잖아요. 아빠가 무찔렀으니까! 그러니 괜찮아요!”
나는 헤실헤실 웃었다.
이렇게 웃고 있으면 뭐라고 더 못 하겠지?
자, 잠깐! 그러고 보니 아빠는 웃어도 그냥 안 넘어가는 위인이잖아!
이전에 말롱 부인에게 위협을 받아 엉망이 된 걸 넘어져서 그렇다고 둘러댔을 때, 칼같이 모순을 지적해 오던 게 떠오른다.
명백한 내 실책이었다.
“……그렇군. 네 말대로 그 보육원을 사들이지.”
어?
이전과 다른 모습에 나는 웃다 말고 눈을 크게 뜨고 아빠를 바라봤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나?
“하지만 건물을 그냥 쓰는 건 안 돼. 이전에 가서 봤을 때 낡고 더러워 못 봐 주겠더군.”
원장이 보수를 게을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남들 눈에는 괜찮아 보일 텐데.
“관리할 사람들도 여러 명 들여야겠는데, 이것도 싫나?”
“아니요! 좋아요!”
싫을 리가.
내 대답을 들은 아빠는 손끝으로 내 이마를 아프지 않게 툭 건드렸다.
그러고는 책을 펼쳐 읽어 주기 시작했다.
아빠가 읽어 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남몰래 웃었다.
‘얼른 완성되면 좋겠다.’
마리 언니와 함께 보육원을 보러 갈 날이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