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49)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49화(49/125)
#49
7.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도토리 찾았다!
―나도, 찍!
바스락거리는 낙엽들 사이로 슈가가 고개를 뿅 내밀었다.
연이어 룩스도 고개를 내밀며 외쳤다.
―바보야. 그건 도토리가 아니라 솔방울이잖아.
―찍? 이상하다! 분명 도토리였는데, 찍!
―어쨌든 이번에는 내가 이겼네? 어서 또 찾자!
슈가의 말에 룩스도 덩달아 신난 몸짓으로 다시 낙엽들 사이를 쏘다녔다.
‘잘 노네.’
두 설치류가 뛰어놀 때마다 낙엽이 흩날렸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었다. 그리고 마리 언니와 재회하고, 브리엔츠 보육원을 활용할 계획을 세운 지 넉 달이 지났다.
그동안 두드러지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보육원이 완공되어 마리 언니가 떠났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완자가 제법 자랐다는 것이다.
나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완자를 바라봤다.
언제 봐도 보들보들해 보이는 데다 목에 강렬한 붉은색의 커다란 리본을 맨 완자는 인형 같았다.
‘완자야, 안아 줄까?’
―나는 아무에게나 안기지 않는다, 멍.
새초롬하게 대꾸한 완자는 제 엉덩이를 내게 붙이며 앉았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걸까.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완자가 털이 풍성한 꼬리로 내 손을 탁탁 때리며 말했다.
―이건 어쩔 수 없어!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인간은 너뿐이라 그런 거야, 멍!
‘페리드 경이 있잖아?’
나는 묵묵히 서 있는 호위 기사인 페리드 경을 흘긋 봤다.
처음에는 페리드 경을 불편하게 여겼던 샤비와 첼시도 이제 익숙해졌는지 잠깐씩 자리를 비웠다.
지금처럼 날이 생각보다 쌀쌀해 내가 덮을 담요를 가지러 간다든가 할 때뿐이지만.
―그러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멍!
‘어떤 오해?’
―내가 너를 좋아할 거란 오해! 나는 첼시가 제일 좋다, 멍!
‘응, 그래.’
어릴 때 첼시와 샤비가 데려가 키워서인지 완자는 나보다 첼시와 샤비를 더 좋아했다.
그중 간식을 자주 챙겨 주는 첼시를 더 잘 따랐다.
완자가 어느 정도 자라자 첼시와 샤비는 다시 내 방에서 완자를 재우려고 했지만…….
―여기 싫다! 꺼내 줘! 첼시, 어디 있어, 멍!
밤새 낑낑거리며 문을 긁는 완자 때문에 잠을 못 자게 되자 그대로 둘이 돌보게 했다.
하지만 첼시와 샤비는 내 전담 하녀였다.
아무리 완자를 챙기려 해도 온종일 챙기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지금처럼 내 옆에 있어야 하는 때가 있었다.
‘그보다 완자야. 넌 안 뛰어다녀도 괜찮아? 낙엽 밟으면 기분 좋을 텐데.’
―어머니가 왕자님은 뛰지 않는 거라고 했다, 멍.
완자가 고고하게 머리를 들어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덩치만 자란 게 아니라 발음도 마찬가지로 좋아졌다.
‘완자가 왕자라는 걸 알았을 때는 충격이었지.’
지금도 종종 어째서 처음부터 못 알아챘을까 싶긴 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왕자님이란 걸 유추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완자의 이름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완자’가 익숙해져서였다.
나뿐만 아니라 첼시와 샤비처럼 내 주변도.
“아가씨!”
―첼시다, 멍!
내 옆에 앉아 있던 완자가 쏜살같이 내려가 첼시 쪽으로 달려갔다.
‘왕자는 뛰는 거 아니라더니.’
웃겼지만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러려니 했다.
―첼시! 안아 줘, 멍!
“우리 완자 착하지? 이 담요는 완자 게 아니라 아가씨가 덮을 거예요.”
―그런 거에 관심 없어! 안아 줘, 멍!
“완자야, 이따가. 지금 말고 이따가 놀아 줄게.”
첼시는 완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텐데도 완자를 달래 가며 내 쪽으로 왔다.
“아가씨, 글레나 부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아파서 오늘은 수업을 못 할 것 같다네요.”
“많이 아프대?”
“감기라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환절기라 걸렸나 봐요.”
첼시가 내 어깨에 담요를 덮어 줬다. 글레나 부인이 쾌차하길 바라는 마음과는 별개로 기분이 들떠 올랐다.
원래 교양 수업이 끝난 뒤 보육원에 가려고 했었으니까.
“그럼 지금 마리 언니를 보러 가도 돼?”
“준비할까요?”
“응!”
* * *
보육원이 완성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쯤이었다.
그러니까 브리엔츠 보육원을 사들이고 건물을 보수하고 완공하기까지 석 달이 걸렸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건물을 보수하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나 싶어서.
막상 완공된 새 보육원을 보니 그 기간이 이해됐지만 말이다.
‘설마 건물을 새로 지을 줄은 몰랐지.’
내가 아예 새로 지은 거냐고 물으니 아빠는 단 한마디로 반박했다.
‘골조는 그대로다.’
……라고 해도 내 눈에는 새로 지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브리엔츠 보육원과 비슷한 부분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마리 언니도 내 의견에 동의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 완공된 보육원은 이전보다 크고 좋았다.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도 훨씬 좋아지고 세심해졌다.
아이들이 뛰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바닥과 벽, 그리고 모서리 부분이 푹신한 것으로 뒤덮여 있는 게 그 예였다.
이것 말고도 아빠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신경 써 줬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원래 브리엔츠 보육원에 있던 아이들을 다른 곳에서 보호하다 데려와 준 것이다.
그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마리 언니였다.
건물이 바뀌었듯 보육원 이름도 바뀌었다.
브리엔츠에서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펠리시타스로.
사실 맨 처음 마리 언니는 보육원의 이름을 내 이름 그대로 ‘베로니카’라고 지으려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될 뻔했다.
마리 언니의 계획을 들은 아빠가 말한 한마디로 인해서.
‘그것도 나쁘진 않군.’
마리 언니야 그렇다 쳐도 아빠가 동조할 줄 몰랐던 까닭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결국 내 반대로 무산됐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다.
내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보육원이라니!
‘정말 그렇게 됐다면 꽤 이상했을 거야.’
펠리시타스 보육원은 시끌벅적하니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이 많은 곳이라면 당연한 풍경이었으나 이곳이 브리엔츠였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만큼 새로웠다.
예전 원장은 아이들이 손님들 앞에서 망아지처럼 굴지 않길 원했다.
자세한 이유야 죽은 원장만이 알 테지만, 아마 아이들이 얌전해야 손님이 사 갈 확률이 높아져 그랬던 게 아닐까.
많은 사람이 얌전한 아이를 좋아하니까.
이외에도 브리엔츠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아이들끼리 싸우는 일이 드물다는 거였다.
대공가에서 펠리시타스를 후원해 물질적으로 풍족한 덕분이었다.
“어머, 베로니카 아가씨?”
아이들 사이에서 마리 언니를 찾는데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다가왔다.
마리 언니와 함께 보육원에서 일하는 보모였다.
“안녕, 멜로이.”
보육원이 완공되기 전부터 몇 번 보고, 완공된 후에도 한 번 만난 터라 나는 낯가림 없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첼시와 페리드 경도 그녀를 경계하지 않았다.
“부쩍 키가 크신 것 같아요.”
“정말?”
“그럼요. 이따 재 보세요. 분명 더 컸을걸요?”
겉치레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회귀 전에 나는 늘 삐쩍 마르고 작았으니까.
“저어, 대공 전하는 함께 안 오셨나요?”
“응. 나만 왔어.”
긴장한 얼굴로 내 주위를 살피던 멜로이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그런가 봐.”
근래 아빠는 또 저택을 비웠다.
넉 달 동안 처음 있는 일은 아니고……. 이전에도 많이 비웠다.
한번 나가면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2주까지도.
이전에 샤비와 첼시가 말한 대로였다. 아빠는 대공저를 비우는 날이 잦았다.
이유는 잘 모른다.
집사에게 그저 일 때문이고, 이해해 달라는 말만 들었을 뿐.
어쩌면 그 일이 반역과 관련된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이내 그 가능성은 버렸다.
반역이 일어나는 황태자의 성인식은 아직 9년이나 더 남았다.
‘벌써 준비하고 있을 리 없지.’
다만, 때때로 궁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빠는 황가를 지독하게 싫어하지만 본인이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내 욕심이 컸다.
아빠가 반역하는 이유를 알아내서 반역을 막는다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나라고 고생길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이전엔 아빠가 무섭고 반역하고 죽임당할 걸 알아 도망치려고 했던 거지.
하지만 이제 아빠도 나한테 은근 물렁물렁하겠다, 배를 곯거나 누군가 나를 때리는 일도 없다.
게다가! 물질적으로 풍족하기까지 하다!
자라나고 사는 데 이만큼 좋은 환경이 흔할까.
아빠의 살인귀 같은 면모와 소문들이 걸리긴 하지만…….
말롱 부인의 하녀일 적에도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꽤 겪었다.
대공저를 나간다고 해서 편안하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럴 바엔 이쪽이 나을 거란 게 요즘 내 생각이었다.
대공가에서 펠리시타스 보육원을 후원하는 것도 있고.
‘황제와 황태자를 생각하면 피곤하긴 하지만, 지난 넉 달간 별 소식도 없어서 의외로 살 만한걸.’
어쨌거나 분명 아빠가 마음을 바꿔 반역을 결심하게 될 만한 커다란 계기나 사건이 있을 터였다.
문제는.
‘그게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몇 달 동안 머리를 싸매고 찾아도 알 수 없는 이유였던 만큼 나는 고민을 털어 냈다.
이유를 찾아보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쳐야지.
“마리 언니는 어디 있어?”
“원장님은 앞서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세요.”
멜로이가 원장실 앞에 잔뜩 설레하며 서 있는 여자아이 쪽을 보며 말했다.
“두 번째 방문이에요.”
“아하.”
마리 언니가 원장을 맡은 펠리시타스에는 철칙이 있었다.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은 일정 기간에 걸쳐 보육원을 다섯 번 이상 방문해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했다.
양부모가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고 사랑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아이가 입양되길 원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 우유와 치즈를 좀 드릴까요? 우유는 아침에 배달 왔고, 치즈는 금방 만든 거라 맛있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려 했다. 잠깐이라면 먹을 거 없이도 기다릴 수 있으니까.
―나! 치즈, 찍!
―나도!
물론, 나 혼자 왔을 때의 이야기다.
“……치즈만 조금 부탁해.”
룩스와 슈가의 재촉에 마지못해 말하자 멜로이가 웃었다.
이어 그녀는 첼시와 페리드 경에게도 먹을 건지 묻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멜로이가 치즈를 가지러 간 동안 나는 커다란 종이가 붙은 벽 앞에 섰다.
종이에는 특이하게도 짧은 선이 뒤죽박죽으로 그어져 있고, 날짜와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키 재 보시려고요?”
“응.”
“제가 그어 드릴게요.”
첼시가 키를 표기할 연필을 찾는 동안 나는 종이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베리, 베리……. 여기 있다!
내가 한 달 전 날짜와 내 이름이 적힌 선 앞에 서자 첼시가 내 정수리 끝에 연필을 대고 선을 그었다.
“다 됐어요. 몸 떼셔도 돼요.”
몸을 뗀 나는 기대 어린 눈으로 벽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