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5)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5화(5/125)
#5
뭐……?
생각지 못한 말에 절로 몸이 굳었다.
내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말롱 부인이 원장에게 눈짓했다.
“뭐 해? 어서 준비시키지 않고.”
“아? 네, 그럼 이 아이는 부인이 데려가시는 거로 하고, 소리야에서 오신 분께선…….”
“난 그다지.”
원장과 남자가 무어라 말하는 듯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대체 왜 날 데려가려고 하는 거야? 귀가 안 들리는 하녀를 원한 것 아니었어?’
원장은 욕심이 많고, 돈 쓰길 아까워하는 사람이라 보육원에 딱히 경비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굳이 꼽아 보자면 원장이 애지중지하는 금고와 사냥개인 블러드 하운드 정도일까.
하지만 말롱 부인은 다르다.
말롱 자작저는 꼴에 귀족 저택이라고 보육원보다 서른 배는 훨씬 컸다.
또한, 저택을 수비하는 병사만 백여 명이었고 하인과 하녀는 30여 명 정도가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다면 어지간해서 도망치기란 쉽지 않았다.
설사 도망친다 해도 말롱 부인은 개인 영지를 비롯해 근처 영지까지 수배령을 내릴 정도의 힘은 있었다.
부친이 셰인트 백작이니까.
그리고 이게 내가 내내 말롱 부인의 하녀로 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절대 부인에게 끌려가면 안 돼.’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툭. 툭.
초조함에 아랫입술만 꾹 깨물고 있던 때였다.
내 앞으로 정체 모를 것들이 반짝거리며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자 그 조각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뭐지?’
사실상 부스러기에 가까운 그것을 검지 끝으로 콕 찍으며 천장 쪽을 올려다볼 때였다.
―으헤헤, 맛있다, 찍! 역시 훔쳐 먹는 사탕이 제일 달다니까, 찍!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위에서, 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마치 천장에 뭐가 있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유심히 본 끝에 나는 네모난 우물 모양으로 있는 반자틀에서 작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움냐, 움냐.
반자틀 아래 조금 길게 늘어진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인다.
‘저건…… 생쥐?’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기다란 핑크빛 꼬리나 연한 회갈색의 털로 볼 때 맞는 듯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마리, 애니의 짐을 챙겨 주렴.”
팔이 잡아 당겨진다.
내 팔을 붙잡은 사람이 원장이란 걸 알아차린 나는 다급히 말했다.
“잠까마뇨! 아직 제 칭구한테 인사를 못 해떠요!”(잠깐만요! 아직 제 친구한테 인사를 못 했어요!)
“천장에 네 친구가 있다니?”
원장이 신랄하게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내게 조금도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건 따로 있었으니까.
나는 말롱 부인을 바라봤다. 내가 이목을 집중시킨 까닭일까, 그녀는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담?”
말롱 부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원장에게 물었다.
“천장에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저게 뭐지?”
“네?”
“뭔가 기다란 게 살랑거리고 있는데…….”
“제 칭구예요!”(제 친구예요!)
내 외침에 원장이 날 미친년 보듯 쳐다봤다.
“부인, 아무래도 얘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입양하는 건 좀 더 고려해 보시는 게 어떠실지요?”
“아주 기여워요! 회갈색 털비체 엄청 기다란 꼬리를 가진 기여운 생쥐예요!”(아주 귀여워요! 회갈색 털빛에 엄청 기다란 꼬리를 가진 귀여운 생쥐예요!)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를……!”
―찍?
“생쥐라고?”
말롱 부인의 얼굴 위로 짙은 혐오감이 떠올랐다.
그 모습에 나는 쾌재를 불렀다.
‘됐어! 이거야!’
일반적으로 생쥐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는 많다.
생쥐는 더러운 곳에 산다, 전염병의 원인이다, 등.
근거 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몸집이 작고 재빨라 위협적이지 않은데도 하녀 중 많은 이들이 질색하고는 했다.
“다시 말해 보렴.”
그리고 말롱 부인은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특별 계층으로 태어나 고생이라고는 전혀 해 보지 않고, 부친의 사업에 보탬이 될 가문의 남자와 결혼하여 험한 일 한번 해 보지 않은.
그런 그녀가 생쥐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없을 거란 게 내 계산이었다.
“정말 저기 있는 게, 생쥐라고……?”
말롱 부인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내가 생각한 대로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
결심한 나는 배시시 웃으며 힘차게 외쳤다.
“네! 절 무척 조아하는 생쥐예요! 그래서 매일 가티 잤어요! 어제도!”(네! 절 무척 좋아하는 생쥐예요! 그래서 매일 같이 잤어요! 어제도!)
“가, 같이, 자기까지 했다고……?”
말롱 부인이 숨을 헐떡였다.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녀는 이제 나를 비롯해 이 보육원에 있는 사물과 아이들까지 전부 오물 보듯 쳐다봤다.
하지만 이걸로는 안 된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해야 했다.
그녀가 날 데려갈 생각을 아예 안 하도록.
“저는요, 늘 가족이 가꼬 시퍼떠요. 그리고 돈이 만코, 대단한 집안이었으면 조켔어요.”(저는요, 늘 가족이 갖고 싶었어요. 그리고 돈이 많고, 대단한 집안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일부러 양팔을 크게 뻗어 과장된 몸짓을 했다.
“그래야 제 칭구와 오래오래 함께 살 수 이뜰 테니까요!”(그래야 제 친구와 오래오래 함께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여기서 친구란 생쥐였다.
이어서 나는 ‘헤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얼굴로 웃으며 천장에 시선을 줬다.
때마침 생쥐가 천장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찍?
작고 동그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내 눈에는 나름 귀여워 보였지만…….
“생쥐! 맙소사, 정말 생쥐라니!”
“꺄악!”
말롱 부인을 비롯해 몇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불결해! 이런 곳에 내가 발을 들이다니!”
“부, 부인, 부디 진정…….”
“진정? 감히 내게 진정하라고?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장난해? 도대체 시설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저 아이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제 시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원장이 간절하게 읍소했지만, 믿어 줄 리 없었다.
“거짓말은 당신이 하는 거겠지! 내 눈으로 생쥐를 봤는데 문제가 없어? 날 바보 취급하다니! 당장 아버지께 말씀드리겠어! 네년도 끝이야!”
흥분한 말롱 부인이 쩌렁쩌렁하게 외치고는 휙 돌아섰다.
본관을 빠져나간 말롱 부인이 막 바깥 땅을 밟았을 때였다.
돌연 멈춰 선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러더니 눈을 홉뜬다. 마치 봐선 안 될 걸 본 사람처럼.
“저, 부인? 무슨 문제라도……?”
원장이 조심스레 물었고, 그때까지 꿈쩍도 안 하던 말롱 부인이 입술을 달싹였다.
“바… 벌…….”
“네?”
“바, 바퀴벌레……! 꺄아악! 바퀴벌레가 있어! 아악!”
말롱 부인의 비명에 이어 원장도 잔해를 발견했는지 같이 비명을 질렀다.
“마리! 어서 저걸 치워!”
말롱 부인은 미친 듯이 제 구두를 바닥에 문질렀고, 원장은 비명을 지르며 마리 언니를 찾았다.
그들의 호들갑에 상황을 인지한 아이들이 원장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울음을 터트렸다.
마리 언니가 걸레를 가져와 허둥지둥 벌레의 잔해를 치우고, 말롱 부인의 구두 밑도 깨끗하게 닦아 줬다.
그러나 말롱 부인은 분이 안 풀리는지 원장에게 삿대질했다.
“당신!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알겠어?”
“부, 부인……!”
이번에야말로 말롱 부인은 시설을 빠져나갔다.
원장이 처절하게 “부인!” 하고 부르며 뒤쫓아 나갔다.
그러나 말롱 부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얘, 얘들아, 진정하자.
마리 언니가 필사적으로 주위를 진정시키고자 했지만, 그런다고 말을 잘 들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상황이 어수선하다.
‘지금 도망칠까?’
암흑 시장을 운영하는 것은 셰인트 백작 가문인지라 그의 고명딸인 말롱 부인에게 밉보인 이상 당분간 거래가 끊길 테지만…….
‘이 보육원에 있다가는 원장에게 보복만 당할 거야.’
말롱 부인이 날 데려가는 걸 막았으니 다음은 이 보육원에서 도망치는 거였다.
마침 원장도 자리를 비웠고, 상황도 어수선하다.
나 하나쯤은 사라져도 당장은 모르겠지.
‘그래도 먹고살려면 돈은 있어야 하니까.’
아무것도 없는 고아 소녀의 말로를 잘 알았던 나는 황급히 보육원으로 뛰어 들어가려고 했다.
원장의 서재에서든, 금고에서든 어쨌든 돈을 갖고 나올 요량이었다.
누군가 내 정수리 위에 손을 얹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원장이 데려왔던 외국인 남자가 보였다.
‘도대체 언제?’
의문에 이어 남자와 시선을 마주한 나는 움찔거렸다.
자수정처럼 진한 보라색 눈동자 위에 서려 있는 것은 명백한 ‘흥미’였으니까.
내내 무심하던 눈빛과는 다른 눈빛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설마, 방금 상황으로 인해 오히려 내게 호감을 느낀 건가?
날 입양하려는 거야?
“……잘 봤다.”
내 예상과 달리 남자는 무심히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기만 할 뿐, 곧바로 손을 거두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이.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멍하니 읊조렸다.
“뭐야……?”
그리고 조금 전 남자가 손을 툭 얹었다 뗀 부분을 문질렀다.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이번이 끝이 아닐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 * *
남자는 브리엔츠 보육원을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그를 주시하는 이가 없다는 걸 확인한 그는 마나를 운용했다.
보라색이었던 남자의 눈동자 색이 붉은색으로 변하자 주위가 변했다.
어둡고 퀴퀴하던 골목길에서, 호화스러운 어느 대저택의 방 안으로.
“오셨습니까, 전하.”
갑자기 나타난 남자로 인해 놀랄 법도 한데 노년의 집사는 침착하게 그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