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Villainous Grand Duke RAW novel - Chapter (50)
악당 대공의 딸이 되었을 때-50화(50/125)
#50
그러나 첼시가 새로 그은 선과 한 달 전에 마리 언니가 그어 준 선은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쥐꼬리만큼 자랐잖아.”
―내 꼬리는 길어, 찍!
―야, 눈치 챙겨!
슈가가 황급히 룩스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다 들었다.
그래. 룩스의 꼬리는 저거보다 훨씬 길지.
쥐꼬리가 아니라 쥐 발톱 정도 자랐다고 하는 게 더 맞겠네.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 그래도 크셨네요. 금방 더 자라실 거예요.”
내가 실망을 금치 못하자 첼시가 날 다독였다.
하지만 내 미래의 모습을 아는 만큼 속상하기만 했다.
여태껏 영양 문제인 줄로만 알고 잘 먹으면 될 거라고 정신적으로 승리를 해 왔건만, 아니었다니!
터덜터덜 원래 자리로 돌아오자 때마침 멜로이도 내게 다가왔다.
“키 재고 오셨어요?”
“응.”
“어때요? 자라셨죠?”
“으, 응.”
자라긴 했지. 쥐 발톱만큼.
“거봐요. 제 눈은 정확하다니까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멜로이가 내게 치즈를 주고는 돌아갔다.
―치즈! 맛있는 치즈! 치즈 좋아, 찍!
―치즈 좋아!
고소한 치즈 냄새에 룩스와 슈가가 달려들 기세로 외쳤다.
그래, 치즈나 찢어 주자.
내가 말랑말랑한 치즈를 찢어 둘에게 주자 둘이 좋아하며 먹는다.
남은 치즈들도 잘게 찢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응?’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어떤 남자아이가 내게서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게 보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흐릿한 인상의 회색 머리 남자아이는 혼자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어 함께 어울렸으니까.
장난감을 가지고 놀든, 종이접기를 하든, 저들끼리 대화를 하든 어떠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과 달리 그 남자아이만이 날 보고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왜 그래?
‘아, 누가 날 쳐다보는 것 같아서.’
―저기 있는 어린 수컷을 말하는 거야?
슈가가 치즈를 먹다 말고 내가 보던 남자아이를 봤다.
―엇! 또 봤다가 눈 피했어!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아직 어려서 그런가? 소심하네! 자고로 구애란 눈 마주치고 몸을 한껏 흔들어야지!
‘……구애?’
―자꾸 보고 있다는 건 마음에 든다는 뜻 아니야?
‘음, 아닐걸.’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일단 나는 겉보기에 아홉 살의 어린 여자아이였다.
사랑을 논하기에는 너무 어린걸.
―그럼 다행이고. 나도 저런 소심한 수컷은 반대야. 자고로 수컷은 용감해야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옴뇸뇸, 쩝쩝.
―룩스? 대답 안 해?
―찍?
슈가가 툭툭, 건드리기 전까지 정신없이 치즈를 흡입하던 룩스가 뒤늦게 동조했다.
―마, 맞아! 줄 수 없지, 찍!
그러더니 먹던 치즈를 뒤로 쏙 숨긴다.
―치즈는 왜 숨겨?
―찍? 치즈 주자는 거 아니었어, 찍?
―넌 좀 맞자.
―으악! 도와줘! 누님이 나 때리려고 해, 찍!
룩스가 내 손을 타고 올라와 순식간에 옷 속으로 숨어들었다.
―장난이야. 이리 와.
―거짓말! 누님이 하면 장난 아니야, 찍!
―어머, 난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하늘다람쥐란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슈가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인간들을 괴롭힐 수 있다며 좋아하던 모습이나 그간 봐 온 슈가의 모습은 평화와는 비교적 멀었다…….
“베리.”
뒤돌아본 나는 익숙한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띠었다.
“마리 언니.”
전체적으로 단아한 복장과 달리 언니의 목에는 프릴이 잔뜩 달린 리본이 부풀어 오르듯 매여 있었다.
마리 언니의 검소한 성격상 절대 하지 않을 만큼 화려한 리본이었다.
그런데 언니가 저 리본을 맨 이유는 하나였다.
‘카드릭이 선물한 마법 목걸이를 가리기 위해서.’
마법 물품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눈에 띄어 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언니는 저런 식으로 목걸이를 숨겼다.
‘저 목걸이만 아니었다면 언니가 스스로 저런 리본을 맬 일은 없었겠지.’
맨 처음 마법 목걸이를 목에 걸고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놀라고 어색해하던 언니는 목걸이의 편리성과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렇게 꾸준히 목걸이를 착용한 결과, 지금은 자연스럽게 입을 움직였다.
“멜로이한테 들었어. 오래 기다렸다며.”
“아니야. 내가 멋대로 일찍 온 거니까. 그보다 도와줄 건 없어?”
나는 자연스레 말을 돌렸다.
사실 보육원을 방문한 건 마리 언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원장인 마리 언니는 보육원을 꾸리기 바빴다.
‘그런 언니더러 날 상대하라고 할 수는 없지.’
그래서 고안한 게 보육원의 잡일을 돕는 것이었다.
‘한 번도 내게 일을 시킨 적 없지만.’
아무리 괜찮다고, 자그마한 일이라도 돕게 해 달라고 해도 마리 언니는 그럴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오히려 맛있는 걸 해 주며 어떻게든 대접하려 했다.
그러니 내 방문이 언니에게는 퍽 귀찮은 일이란 걸 알아 최대한 안 오려 했지만…….
‘언니가 좋은걸.’
무엇보다 보육원이 완공된 뒤로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한 달 만에 다시 온 거면 그래도 양호한 편 아닐까.
“마구마구 시켜도 돼. 내가 할 줄 아는 거라면.”
“네가 도와줄 게 뭐가 있어? 온 김에 실컷 놀고…… 아.”
마리 언니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
왜 저러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언니가 입술을 여러 번 벙긋거린 끝에 말했다.
“사실 프테리디움 잎줄기를 잘라야 하는데…….”
프테리디움은 소독과 치료 효능을 가진 약초로, 키우는 법이 쉬워 의사를 부르기 어려운 평민들 사이에서 자주 쓰였다.
얼지 않도록 겨울이 오기 전에 마른 잎과 줄기를 잘라 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어쨌든 언니가 부탁하려는 일은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어려운 건 아니었다.
갑자기 말을 바꾼 건 이상하지만 할 일이 생기면 나야 좋으니까.
“얼마나 하면 돼?”
“어제 많이 뽑아 둬서 마무리만 하면 돼. 그래도 혼자 하긴 어려울 테니까 나와 같이, 아니, 테오와 함께 할래?”
“테오? 그게 누구야?”
“저 애가 테오야. 며칠 전에 새로 왔어.”
마리 언니가 가리킨 곳에는 아까 내 시선을 피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에? 어린 수컷?
―누님이 싫어하는 애다, 찍!
―싫어하는 거까진 아니야.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닌, 아니지, 다르지! 달라, 찍!
룩스가 열심히 슈가에게 변명하는 동안 마리 언니가 내게 말했다.
“넌 예전에 몇 번 해 봤으니까, 네가 가르쳐 주는 식으로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어려울까?”
“아니. 할 수 있어.”
그 정도쯤이야.
* * *
마리 언니는 내게 테오를 소개해 줬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얼굴을 보고 각자 인사 한마디만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그럼 부탁할게.”
어느 화단을 손질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마리 언니는 우리에게 바구니를 주고는 멀어졌다.
‘보육원 일이 많이 바쁜가? 평소 언니답지 않은데.’
내가 하겠다고 한 데다, 내 옆에는 페리드 경이라는 호위 기사이자 보호자가 있으니 언니가 가 버려도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아까부터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데.
하지만 콕 집어 이유를 말하기 어려웠던 나는 이상한 기분을 떨쳐 내려고 노력했다.
‘언니가 맡긴 것부터 하자.’
마리 언니가 준 바구니에는 면장갑과 전지가위가 들어 있었다.
나는 양손에 장갑을 낀 뒤 가위를 들었다.
‘최근에 기름칠했나 보네.’
부드럽게 잘 움직이는 걸 확인하는데 룩스가 내게 물었다.
―정말 할 거야, 찍?
‘하겠다고 했는걸. 그보다 너 정말 나랑 있을 거야? 슈가처럼 안에서 치즈 더 먹지.’
―배불러. 그리고 치즈보다 네가 더 소중해, 찍.
‘배가 안 불렀으면 같이 안 있어 줬겠네?’
―당연하지, 찍.
이 나쁜 생쥐 같으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는데 먹을 게 우선이라니!
괜히 심통이 나 룩스의 볼이라도 누를까 고민하는데 어쩐지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테오였다.
머리색과 똑같은 회색 눈이 내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페리드 경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그러나?
나는 페리드 경이 서 있을 뒤쪽을 힐끔거렸다.
첼시는 안에서 슈가를 돌보느라 나오지 않았으나 페리드 경은 내 호위 기사인 만큼 나와 함께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으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건 퍽 부담스러운 일일 터다.
당장 나만 해도 지금은 익숙하다지만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으니까.
‘잠깐 다른 곳에 가 있어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테오가 내 고민을 헤아린 것처럼 설명했다.
“생쥐가 잘 따르는 게 신기해서요. 보통은 피할 텐데.”
아, 룩스 때문이었구나.
―그건 내가 용감하고 착한 생쥐라 그래, 찍!
“용감하고 착해서…….”
으, 응? 잠깐.
이게 아니라 ‘룩스가 유독 날 따라서 그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머릿속에 울린 룩스의 전언대로 쏟아 내고 당황한 나와 다르게 룩스는 우쭐댔다.
―맞지! 나는 베리도 인정한 용감하고 착한 생쥐라고, 찍!
“생쥐가 용감하고 착하다는 건가요?”
“으, 응.”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닌지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착한 생쥐네요. 귀엽게 생겼어요.”
―내 귀여움을 알아보다니! 누님은 얘 별로라고 했지만 난 괜찮은 듯, 찍!
칭찬 한마디에 바로 넘어가는 생쥐라니.
“룩스도 네가 좋은가 봐.”
“그 생쥐의 이름이 룩스인가요?”
“응.”
“고대어로 이름을 지어 줄 정도라니, 많이 아끼나 보네요.”